[마 26: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저물 때에 - 유대력에 의하면 니산월 13일이 끝나고 14일이 막 시작하려는 시간(오후 6시 전후), 곧 성 목요일에서 성 금요일로 접어드는 시점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엄밀히 따져서 예수 최후의 만찬은 니산월 13일에서 시작하여 14일까지 계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앉으셨더니 - 여기서 '앉으셨다'는 말은 '기대어 앉았다'는 뜻이며, 이것은 왼쪽으로 비스듬히 식탁쪽으로 기대어 오른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유대인의 식탁 자세에서 연유한다
여하튼 예수께서는 모든 외부 인사를 물리치시고 오직 당신의 12제자들과 더불어 내밀하고도 뜨거운 교제를 나누시고 계신 것이다
[마 26:21]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저희가 먹을 때 - 역사적인 유월절 식사가 시작되었다. 예수께서 제자들로 더불어 나누신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잔치였고,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이것은 최후의 유월절이었다. 즉 유대인의 유월절 잔치가 예표하는 바 '구속'은 그 다음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써 완성된 것이며, 여기서부터 유월절의 지위는 우리 주의 성만찬으로 알려진 그리스도인의 성례가 되었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 당신이 친히 선택한 사랑하는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이 선언은 마태, 마가, 요한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유다는 은밀한 중에 예수를 팔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었으나 예수께서는 그것을 이미 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되어가는 일에 대해서 알 리가 없었다.
만약 제자들이 그 계획을 알았다면 유다는 그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실로 이 말씀은, 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에게는 너무도 큰 충격이었으며, 유다에게는 예수께서 자신의 배반적인 거래를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신 것은 물론 그 죽음에 이르는 절차까지도 은연중에 예견하신 바 있다
한편 예수께서는 유다의 악행을 아셨으나 그를 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너희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는 말로 마지막까지도 그의 마음을 돌이킬 것을 권고하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매우 완곡한 사랑의 호소였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인을 위압, 강요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회개를 호소하신다.
[마 26:22]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 요한은 이때 '서로 마주보며'라고 기록함으로써(13:22) 제자들의 의아한 심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한편 공동 번역과 새번역운 '저마다'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본래의 뜻은 '각자가 한 사람씩'이라는 뜻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각자가 한 사람씩 확인해보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주여 내니이까 - 여기서 의문사 '메티'는 질문자 쪽에서 '아니라'는 대답을 기대하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즉 이를 달리 번역하면 "저는결코 아닙니다. 그렇죠? " 정도의 질문이 될 것이다.
사실 11제자들은 이러한 본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질문을 통해 적어도 자신들의 연약함을 직시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부지 불식간예수를 해칠 수 있는 자라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제자들은 '주여'라는 말을 함으로써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즉 신앙의 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유다는 '랍비여'라는 말로 부름으로써 예수를 단지 '선생님'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마 26:23]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 이 '그릇'은 과일이나 식초를 혼합하여 만든 소스를 담은 '대접'으로서 도구를 사용치 않고 주로 손으로 취식하는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라 쓴 채소와 함께 음식을 여기에 담갔다가 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이때가 구운 양고기를 먹는 시간이었다면 '그릇'에는 나물과 과일 그리고 퓨레가 담겨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누룩없는 떡과 함께 그것을 먹었을 것이다. 한편 본문에 있는 대로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라는 말로만 가지고는 그 당사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유월절 식사 때에는 함께 자리한 사람들각자가 그 그릇에 손을 넣어 찍어먹기 때문에 예수께서 손을 넣으실 때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 사람이 함께 손을 넣었을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이에 대한설명도 여러가지가 있다.
즉, 이말은 (1) 예수와 동시에 찍어 먹는 자, (2) 예수가 말씀하실 그 순간에 그릇에 손을 넣은 자등의 견해가 있다. 이외에도 휀샴이라는 학자는 쿰란 공동체의 규율에 따라서 유다가 예수와 함께 손을 그릇에 넣은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쿰란 공동체에서는 그릇에 손을 넣는 순서가 있는데 그것은 계급에 따라서 차례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다가 예수와 함깨 그릇에 손을 넣었다는 것은 유다가 예수의 지도자적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반역의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은 전체 분위기상 큰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한편 마가복음에서는 단지 예수와 함께 같은 접시에서 먹는 한 사람이 그를 배반할 것이라고 말할 뿐인데
마태복음에서는 방금 그의 손을 예수와 함께 접시에 넣은자가 배반자라고 말한다. 이것은 당사자에 대한보다 구체적인 암시이다. 더욱이 예수 자신이 떡 조각을 찍어다가 유다에게 주는 것을 기록한 요 13:26, 27에서는 배반자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하튼 가장 친근한 사람끼리 마음을 터놓고 식사하는 유대인의 풍습에 비춰볼 때 식사 중에 가룟 유다의 배신 예고를 한 것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곧 예수께서 다함없는 사랑을 베푼 바로 그가 예수에게 가장 해로운 배신을 한 것이었다.
[마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인자는...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는 구약 예언에 대한 일반적 언급이다). 그러나 본문에 있는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가 의미하는 것을 설명해 줄 수있는 구약 성경 인용구는 찾을 수 없다. 혹 고난받는 종을 노래한 이사야 53:7-9이나 다니엘 9:26과 같은 구절을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유월절 어린양과 같은 예언적 유형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이 말을 하나님이 작정하신대로, 곧 거룩하신 하나님의 경륜대로 되어진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편 '간다'는 말은 죽음을 향하여 갈 길을 간다는 말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 단어의 직접적 의미는 죽는다는 뜻이기보다 차라리 '떠나간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대하여 예언한대로 고난의 길을 '갈'뿐 아니라 그 길을 통과한 후 영광을 받아 아버지께로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 하나님의 예정 때문에 인간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는 예정된 대로 죽음을 겪게 되지만 그를 파는 자의 죄는 결코 가벼워질 수 없다. 따라서 유다는 결국 자기가 한 일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그의 형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뻔한 그런 종류의 형벌인 것이다. 아뭏든 이는 유다의 배신에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모두 관계가 있음을 말해 준다. 하나님의 주권은 구원의 효력을 발생시키고 구속사가 성취되도록 한다.
그러나 인간의 책임은 악한 마음의 유혹에 넘어간 잘못에 대한 것이다. 그 결과로 해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인하여 메시야의 백성이 죄에서 구원받게 되고, 인간이 유혹에 빠짐으로 인해서 영원한 심판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 가룟 유다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비참하게 될 것을 아시고 그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다. 이는 당시 랍비들이 흔히 사용하는 속담적 표현으로 욥기와 외경에서도 발견된다. 한편 배신하여 절망적 운명에 처하는 것보다
차라리 세상 햇빛을 보지 않은 자가 훨씬 좋았겠다는 이 비극적 선언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계속 자신의 반역 의지를 실천해 갔다. 그리고 요한의 기록에 따르면 바로 이때 유다가 밖으로 뛰쳐나간 것임을 추정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