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濃淡) 먹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표현으로 濃은 먹색이 진한것을 말하고 淡은 먹색이 흐린것을 말한다.서예에서는 먹물이 마르고 축축한 것보다 진하고 흐린것을 더욱 중요시 여기고 있다.그것은 각각 특색이 있기 때문에 상호 보완하여 조화를 이룰수 있어야 한다 옛사람들은 축축한 것으로 연미함을 취하고 마른 것으로 홈악함을 취한다고 하였다.진한먹은 작품에서 웅장한 기세를 표현하기에 적당하며 흐린먹은 고상한 경지를 표현하기에 적당하다.그러므로 한 폭의 작품 안에는 마르고 축축한 것이 서로 어우러져 진하고 흐린 것으로 체를 이루어야 걸작이 될수있다
농담의 관건은 흐린 먹으로 육중함을 나타내고 진한 먹으로도 막히지 않고 쓸수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이것은 진한먹을 쓰더라도 둔하지 않으며 흐린먹을 쓰더라도 애매모호하지 않은 글씨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반천수(潘天壽) 먹은 반드시 흐린 가운데도 진한 맛이 있어야 하며 진한 가운데도 흐린맛이 있어야 한다.그래야만 흐리더라도 웅장한 맛을 나타내어 평평하면서도 평평하지 않은 글씨가 된다 라고 하였다.글씨의 묘미는 바로 이 말 가운데 있으니 먹의 농담을 잘 연구하면 좋은 작품을 이룰수있다
조윤(燥潤) 먹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표현을 가리키는 말이다. 燥는 먹색이 마른것을 말하며 潤은 먹색이 축축한 것을 말한다.먹을 사용하는 것은 서예의 중요한 기법중의 하나로서 작품의 정신과 풍채를 나타내는데 관건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그러나 먹을 사용하는 기법에는 어려움이 따르며 경험잇는 서예가들도 이것을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붓을 사용하는 것도 어렵지만 먹을 사용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며 특히 마르고 축축하고 진하고 흐린것을 적절히 조정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다.먹을 사용하는 기법을 말할때 서예가들이 추구하는것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기호도 역시 일정하지는 않다 예를들면 어떤 사람은 진한먹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흐린먹을 좋아하기도 한다.먹색이 마르고 축축한것은 왕왕 작품을 강하고.부드럽고.웅장하고.수려하고.기이하고.험악한 예술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옛사람들은 축축한 것으로 연미함을 취하고 마른 것으로 험악함을 취한다고 하였으니 매우 일리가 있는 말이다 반천수(潘天壽)는 마른붓을 사용하면 막히기가 쉬우므로 운치가 나지 않는다.그러나 강한 팔의힘을 사용하여 붓을 움직이면 화목함을 얻어 상쾌하고 매끄럽지 않고 기이한 맛을내어 운치가 저절로 생긴다.축축한 붓을 사용하면 먹물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뼈대가 없어진다
그러나 먹을많이 사용하면 붓을 쓰기가 부드럽기 때문에 어지러워도 다스림이 있어 골격이 스스로 이루어진다 라고 하였다.이것은 마르고 축축한 먹물을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한 말이다.일반적으로 마르고 축축한먹물을 사용하면 공교한 작품을 이루기가 힘들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 요령을 깨우치면 오히려 더 좋은 효과를 나타낼수 있다
예를 들어 해서.예서.전서등을 쓸때에는 먹물이 약간 마른것이 좋지 너무 축축하면 풍채를 이루기가 힘들다.행서와 초서를 쓸대는 모름지기 마르고 축축한 것이 서로 섞여 있어야 붓도 움직이기가 편할 뿐만 아니라 기운과 맥락이 서로 통할수있다 마르고 축축한 것을 작품상에 표현하는문제는 하루 아침에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소양의 정도를 따라 결정되어지는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결코 요원하여 붙잡을수 없을만큼 높은 경지의 수법은 아니므로 글씨를 쓸때 자세히 관찰하고 생각하면 점점 그 묘를 깨달을수 있다
먹 사용방법 서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붓과먹을 다루는 기교다.먹물은 입자가 가늘고.접착성이 약하고.색이 검고.맑은 소리가 나는것이 가장 좋다.먹을 사용할 때에는 三生을 귀히 여기느데.생연(生硯) 생수(生水) 생묵(生墨)등이 바로 그것이다
生硯 벼루에 물을 부었을때 먹이 있어서는 안되며 매일 저녁에 한번 씻어서먹물이 골고루 조화를 이루어야만 효과를 상하지 않게 된다
生水 먹물을 사용할때 잡된물을 써서는 안되며 차를 끓인물을 사용하면 먹물의 광택을 해치게 되며. 끓인물을 사용하게 되면 먹이 닳아지고 빠르게 갈면 빨리는 갈리나 먹의 입자가 거칠어지므로 좋지 않다.그렇기 때문에 가장좋은 먹물은 빗물이나 자연수인 생수를 사용하는 편이좋다
生墨 묵직하면서도 가볍게 갈려야 하며 먹이 수직으로 곧게되어 있어야만 동일한 방향으로 갈기가 좋다.하룻밤을 재운 먹물은 먹의 부스러기와 거품이 섞여있기 때문에 글씨를 쓰기에 좋지 않다.이외에 먹물의 농도와 양은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할 문제이나 일반적으로 강한붓은 진한먹을 사용하여야 하고 부드러운 붓은 연한먹을 써야만 글씨 쓰기가 편하다 그리고 楷書를 쓸때는 약간 진한것이 좋으며 行書나 草書를 쓸 때에는 약간 흐려도 무방하다.동기창(董其昌)은 화선실수필(畵禪室隨筆)에서 말하길 글씨의 공교함은 붓을 사용하는데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먹을 사용하는데 있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서예의 묘미가 필법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먹을 사용하는 법에 따라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것을 말한 것이다.먹을 사용하는 법에 대하여 옛사람은 먹물이 흐리면 정신과 풍채가 상하기 쉽고.너무진하면 먹이 붓끝에서 막히게 된다고 말하였다 만일 먹이 흐리면 붓이 너무 축축하게 스며들어 제어하기 힘들고 붓밖으로 먹물이 터져나와 묵창(墨漲)이라는 병에 걸리게 되어 작품에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된다.반대로 먹이 진하면 붓이 펴지지 않아 움직이기 곤란하여 좋은 작품을 이룰수 없다.그렇기 때문에 글씨를 쓸때에는 먹의 특성을 발휘하여 지면에 효과적으로 써야한다
먹이 진하여 붓이 막히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또한 흐려서 글씨가 뜨지 않도록 하여야 먹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만일 먹물이 진하면 맑은 물을 더 가하여 고르게 다시 갈아서 붓이 막히는 폐단을 없애야 한다.반대로 너무 흐리면 먹을 더 갈고 붓에 먹물을 많이 묻여서는 안된다.붓에 먹물을 너무 많이 묻히면 묵창이라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먹의 건습과 농담은 각각 쓰임에 따라 적절히 쓰면 서로 반대되면서도 어울려 빛나게 된다.그리고 먹을 말릴 때에는 가을 바람에 쐬어야 하며.윤택은 봄의 빗물을 머금어야 한다.예사람들이 글씨를 쓸 때에는 대부분 진한먹을 잘 사용하였다.억대의 서예작품들을 다세히 살펴보면 지금까지도 먹색이칠흙같이 빛나며 정채를 발하고 있어 남은 향기가 흩어지지 않고 있다
예를들어 소동파(蘇東坡)가 먹을 쓰는것에 대하여 세상사람들은 진한먹을 가장 잘사용하는 사람이라고하였다.그는먹을 사용할때 먹물의 말기가 마치 어린아이의 눈동자처럼 되어야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하였다.이것은 먹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가장 생생하고 적절한 표현이다 글씨를 쓸대는 먹물은 진하게 하고 붓을 강하게 하여야만 힘있는 글자와 기운이 넘치는 작품이 될수 있다흐린 먹으로 작품을 하는 것도 예술적인 측면에서 볼때 가능한 일이다. 옛사람도 종종 흐린먹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는데 (淸나라 王夢樓와 같은 사람이 그중의 한사람이다.그는 흐린 먹으로 꽃의 눈을 찾아야 한다는 찬미론을 폈다 최근 일본에서는 많은 서예가들이 흐린 먹으로 작품을 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흐린먹을 쓰는 수단은 중국화에서 잘 나타나는 현상으로 윤택함과 연미함을 추구하여 온화하고 세련된 맛을 표현한다.그리고 흑백 대비의 예술적 효과를 꾀하여 선명하고 산뜻한 정취를 자아내기도 한다.흐린 먹으로 좋은 작품을 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때에도 서예의 예술적 기교와 소양에 근거를 두어야지 억지로 무리하게 해서는 안된다.대부분 성공한 서예가들을 보면 전후의 호응과 먹색의 윤택함을 잘 배합하고 있다.하나의 작품에서도 이것은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먹을 한번 찍은다음 일필휘지로 몇자를 쓰면 먹이 마르게 된다.이때 다시 먹물을 찍어서 쓴다 그렇게 되면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불과 몇번 밖에는 먹을찍지 않았지만 먹색의 변화는 끊임없이 이어진다.그 속에는 먹물이 많이 찍힌곳 적게 찍힌곳 진하고 흐린데가 서로 섞여 있으면서도 맥락이 연결되고 하나의 실을 펼친 것과 같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변화가 있어 그 묘한 맛은 사람들을 감탄하게 한다.
먹〔墨〕 정승웅․천진기․박찬욱 Ⅰ. 조사개요 1. 먹의 원료 Ⅱ. 먹의 德性 2. 전통적인 제묵법 Ⅲ. 먹의 역사 3. 조사지의 먹 제조과정 Ⅳ. 製墨法 Ⅴ. 먹과 관련된 유물과 풍속 Ⅰ. 조사개요 먹은 종이〔紙〕,붓〔筆〕,벼루〔硯〕등과 함께, 學問을 하는 선비가 다루는 전통적 인 文房具이다. 문방에 없어서는 안 될 종이,붓,먹, 벼루 4가지를 문방의 四友라 고 하며, 혹은 文房四候,1) 사보(四寶, 四譜)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우를 紙, 筆, 墨, 硯의 순으로 부르는 데 반해 중국에서는 紙, 墨, 筆, 硯, 또는 硯, 紙, 筆, 墨으로도 부른다.2)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또는 책을 읽을 때에 사용하는 문방사우의 역사 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나타난다. 기원전 1세기의 경남 의창 茶戶里 유적에서 붓필 __________________________ 1) 文房四候는 붓을 뜻하는 管城候, 벼루를 뜻하는 墨候, 종이를 뜻하는 好峙候, 먹을 뜻하는 松 滋候로 문방사우를 높여 부른 것이다. 2) 제 7회 서울시민소장문화재전 도록, 1991년, 서울시 - 97 - 관3)이 출토되었고, 벼루는 신라와 백제의 도연(陶硯)이 발굴된 바 있다. 또 일본정 창원(正倉院)에는 신라시대의 붓과 먹이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삼국시 대 때부터 문방구가 발달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이래의 문방취미(文 房趣味)의 전통은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중국 송대(宋代)와 명대(明代)의 文房淸 玩의 전래와 함께 문방구류의 세련과 폭넓은 보급에 영향을 받아 문방취미와 문 방구의 意匠에도 적지 않은 변모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문방구 는 중국과는 달리 우리 민족의 생활양식과 민족정서, 그리고 미적 형식에 맞게 변화하게 된다. 우리 선조들은 고고한 志操를 생명처럼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 생활이 소박 하고 품위가 있으면서도 멋을 지니고 살아 왔다. 詩, 書畵를 즐기는 우리나라 선 비들의 기품 있는 풍류는 대국이었던 중국에서도 부러워하고 칭찬했을 정도이다. 이런 선비들의 멋이 상징적으로 표출된 곳이 사랑이다. 선비들은 이 곳에서 벗과 더불어 시를 읊고 서화를 논하고 담소하기도 했다. 선비의 방, 즉 문방에는 항상 墨香이 그윽하게 배여 있고 문방사우가 구비되어 있었다. 조선조의 건축양식과 사랑방 취미의 유행, 그리고 문방구가 실제 사용에 불가 피했던 상황에서는 다량의 생산과 뛰어난 세련미를 지녔었지만, 이러한 문방구는 현대에 들어와서는 서구문명의 영향을 받아 실용위주의 문방구로 바뀌게 되었고 점차 愛玩品에서 소비적 상품으로 변하게 되었다. 따라서 문방사우로 일컫던 종 이, 붓, 먹, 벼루 등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화선지나 선화지 대신 갱지나 모조 지 등 洋紙를 사용하고 붓 대신 연필, 만년필, 볼펜 등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먹 이나 벼루는 이제 서예를 익히는 사람에게나 필수품이 되게 되었다. 이 報告書는 전통적인 문방구조사의 일환으로서 現地調査와 文獻調査를 통해 먹의 역사, 생산과정과 종류, 특성 등을 조사한 것이다. 1988년 11월부터 1990년 12월에 걸쳐 경남 울산시에 소재한 먹을 만드는 공장(김준태)과 서울 인사동의 필운회4)를 통해 현재의 제작과정, 종류, 유통경로 등을 현지조사했고, 먹의 歷史 와 전통적인 製墨法, 製作道具 등은 문헌조사를 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3) 『考古學誌』 제 1집, 한국고고학연구소, p.25, 도판 32참조. 4) 서울 인사동에 소재한 전통적인 문방구 판매상인과 문방사우 제작자들이 모여 결성한 계의 일종. - 98 - Ⅱ. 먹의 德性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옹기는 물을 담으면 물단지, 꿀을 담으면 꿀단 지, 간장을 담으면 간장항아리, 쌀을 담으면 쌀독 등으로 불린다. 옹기는 그 모양 그대로 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담기느냐에 따라서 옹기의 이름짓기는 달라진다. 먹의 이름짓기도 그러하다. 검은색은 그대로 변화하지 않지만 墨客에 따라 글씨 나 그림 혹은 먹통의 먹물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먹의 사전적 해석은 “종이, 벼루, 붓과 함께 문방사우의 하나로 검은색 固型體 로서 벼루에 갈아서 사용한다.” 라고 되어 있다. 검은색 고형체이지만 畵工의 손에 먹이 들리면 청초하고 담박한, 그리고 여유 있는 한폭의 墨畵로 나타나고, 書藝 家의 손에 잡히면 힘이 넘치고 살아 움직이는 듯한 不世出의 名筆로 변신한다. 마치 촛불이 자신을 태우며 어둠을 밝히듯이 검디 검은 먹은 자신을 벼루에 갈리 어 묵객들의 손을 빌려 아름다움의 세계로 환신한다. 먹이 원래의 자신의 검은 덩어리만 고집했다면 어찌 神品四賢, 안평대군, 양사언, 한석봉의 名筆과 정선, 김 홍도의 名畵가 표현되고 전해졌을까. 옛사람들이 먹을 쓸 때에 반드시 精한 물품을 선택하는 것은, 당장의 미적 효 과를 바랄 뿐 아니라 한층 더 나아가 그 아름다움을 먼 훗날까지 전하고자 하였 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수백 년을 지나온 그림과 글씨가 오늘날까지 퇴락하지 않 고, 아니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온전히 남아 있는 것도 먹의 숨은 德 때문이다. 좋은 먹은 오랜 시간이 흘려도 墨光(먹의 윤기)이 나고, 먹빛이 漆과 같다. 만약 먹이 좋지 않으며 먹빛이 짙을 때에는 물에 묻으면 번져 더러워지고, 먹빛이 옅 을 때에는 표구를 다시 할 때 神技가 완전히 소실되어 2~3년도 되기 전에 먹빛 이 다 빠져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먹의 선택은 될수록 좋은 것이어야 한다. 高深甫5)의 『遵生八牋』에 보면 먹을 다루는 법이 잘 나와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5) 명나라의 高濂 - 99 - “먹을 잘 쓰는법은, 質은 가벼운 것을 취하고 연기는 맑은 것을 취하며, 냄 새에 향기가 없고, 갈아도 소리가 없는 것이라야 한다. 새로운 벼루에 새물을 따르고, 먹을 갈 때에는 힘을 빼고 슬슬 갈아야 한다. 급히 갈아서 열이 생기거 나 열 때문에 거품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사용할 때에는 갈아서 곧 쓰도록 하고, 갈아서 놓은 것은 오래 두어서는 아니 된다. 오래 두면 먼지로 먹이 더러워지고 아교 때문에 진흙처럼 엉긴다. 사용한 뒤에는 씻어 두도록 하고 먹 의 찌끼가 잔뜩 붙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오래 저장해 두었다가 쓰면 아교가 말라서 먹의 작용이 잘 된다.”6) Ⅲ. 먹의 歷史 오늘날 우리들이 쓰고 있는 먹〔墨〕의 시초는 중국에서 생겼다. 먹이 발견되지 않은 그 이전에는 문자를 기록하는 데 있어 骨片이나 金石에 새겼으니 이른바 甲 骨時代․金石時代를 말한다. 그 후 인지와 문화가 발달됨에 따라 문자의 사용범 위가 넓어지고, 갑골문이나 금석문만으로는 기록하기가 어려워지자 대나무 조각 이나 나무 조각 또는 천 같은 것에 문자를 쓰게 되었다. 이 때를 이른바 竹簡時 代라 한다. 당시 죽간에 쓰던 것은 붓이 아닌 竹挺이란 것으로 옻을 묻혀 썼다. 그래서 그 문자의 획은 마치 올챙이 모양 같아 이것을 竹牒蝌蝌文字라고 하였다. 공자와 맹자가 쓴 글씨도 모두 竹簡漆書였다. 絹帛이란 천(명주)은 종이보다 다 소 먼저 발명된 것으로 죽간시대에 이미 명주에 글씨를 썼는데, 이 글씨는 붉은 단서(丹書: 붉은 광석이나 돌가루를 반죽하여 그것을 붓에 묻혀 쓴 글씨) 아니면 墨書였다. 이 때 묵서의 원료는 자연산의 석날(石捏)이라는 일종의 광물이었다. 거기에 옻을 섞어서 썼던 모양이다. 그 후 문화가 발달됨에 따라 점차 그을음, 즉 煙煤를 옻 대신으로 쓰고, 이어서 연매를 아교풀과 섞어서 쓰게 되면서 드디어 製墨의 단계로 옮겨지게 되었다. 6) 권덕주 역, 도융 저, 『고반여사』, 을유문고 89, 1986, pp.111~112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