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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佛教의 범형변화範型 變化(2)
-韓·中·日 佛敎 範型 비교론 시고(比較論 試考)-
심재룡(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2.3.日本 佛敎의 範型 變化
불교의 原 中心 인도를 제외하고 불교 전파의 副 中心을 논하자면 상좌 불교를 온전히 보전하고 있는 스리랑카, 밀교 전통의 전승자 티베트, 그리고 대승 불교의 제 2 중심을 자처하는 중국 등 세 나라를 들 수 있다. 대저 한국과 일본의 전통적 불교는, 금세기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원천 및 이를 이어받았다고 자처하는 남방불교에 대한 관심은 전무한 채 오로지 중국 대승불교 일변도의 문화 습득에 열중하였다.
일본에서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동기는 중국의 수승한 문명을 받아들이는 주 목적에 부수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중국문명의 전수자는 일차적으로 중국인들이 아니라 당시 한반도의 삼국 즉 백제, 고구려, 신라인들이었다. 따라서 초기 일본의 불교는 이중적으로 굴절된 상태에서 전수되는 기현상을 보인다. 즉 인도식 불교의 범형이 중국문화와 마주쳐서 원래 지극히 중국화된 현세중심의 불교로 변형되었음은 이미 언급하였으나, 다시금 신라인들은 그 불교를 新羅佛國土說을 중심으로 하는 護國的 불교로 탈바꿈시켜 일본인들에게 전달하였다. 이처럼 한국인들에 의해 걸러진 불교가 일본에 전수됨으로서 일본의 초기 불교는 한국불교의 直수입이라는 양상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5, 6, 7 세기 일본의 역사적 정황은 중국 문명과 불교의 영향으로 사회, 정치, 문화, 종교에 걸쳐 일련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특히 일본인들은 중국의 한자를 한국인 스승으로부터 배움으로써 저들의 문자 생활을 확충시켰다. 이 점은 그 뒤 일본문화가 외국문물을 수용하는 기본적 틀을 형성하는데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하자면, 일본인들은 원래 뜻글자인 중국 한자와 일본 말을 대응시켜 가는 가운데 개념의 확충과 문자 생활의 다변화를 이루는 동시에, 일본말의 기본적 어법과 구문은 그대로 존치하는 방법을 문화 수용의 일반적 법칙으로 정립하였던 것이다. 이 방법은 다른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컨데 일본의 지도층들이 유교 윤리관의 일부를 수용하면서, 기층민들은 여전히 저희들 고래의 신도에 흡사한 조상숭배를 존치하는 것이다. 불교의 경우 일본인들은 부처와 보살들을 결국 토속적''가미'(神)에 대응하는 외국 '가미'로 받아들였다. 혹자는 일본의 이와 같은 문화의 수용 양태를 일러 이렇게 말한다.
"일본 사람들이 불교에 가한 태도에서 우리는 일본인 특유의 외래문물 수용 태도를 발견한다. 처음엔 거의 어린 아이들처럼 열심히 그대로 유순하게 외국 것을 받아들인 다음, 그 위에 저들 나름의 특이한 꼴바꿈의 재주(transforming genius)를 부려 일본 圖章을 날인(捺印)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소위 꼴바꾸는 재주에는 몇 가지 중대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나까무라 하지메(中村元)를 비롯한 유수의 일본 문명비판가들도 일본인들이 외국문물의 외형적 모방에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지만, 그 내면적 사상이나 신념 체계의 습득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자인한다. 불교라는 고도의 정신적 문화를 받아들이는 가운데, 일본인들의 특징을 잘 나타낸 것은, 한국인 불승 및 스승들의 전수 방법이 바로 그 외형에 그친 탓일런지는 몰라도, 불교 수입 한 세기가 지나지 않아 일본인들은 벌써 장대한 건축과 예술적 장식 및 의례의 장엄에 대단한 관심을 쏟았다는 점이다. 물론 엄청난 분량의 불교 경전을 수입해서 읽고 필사하고 수지독송 한다. 그 목적은 내용을 이해하려기 보다는 일본의 토속적 신도 의례가 비를 내리게, 또는 복을 받기 위한 현세적 이익을 구하는 목적으로 수행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불승들은 불경의 뜻도 모르는채 적당히 따라 외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무도 한자로 된 불경을 일본말로 옮길려는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14세기의 어느 일본 불승은 일본 국내에서 역경의 시도가 없었음을 자랑하는 투로 말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번역을 통해 혹시 그 신통력이 감퇴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일본 불승 가운데 중국에까지 순례와 구도행각을 통한 형이상학적 탐구에 매진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것도 아니나 그 수는 극히 제한된 터이었고, 번역이 아닌 정형화된 訓讀의 영향으로 불교 교리에 소위 일본 특유의 독창적 왜곡이 가해지기도 하였다. 혹자는 聖德太子(573-621)가 몇몇 대승경전을 주석하고 강의한 사실을 들어 일본 사람들의 불교 교리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너무나 폄하(貶下)하는 것이나 아닌가하고 의심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마도 쇼오토쿠의 위업은 일본인들의 카리스마적 인물에 대한 외경심에서 울어난 과장과 분식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게다가 이 시대란 아직 중국에서 조차 불교 교리의 정확한 이해가 정착되지 않은 시대였다.
아무튼 6세기에서 8세기에 이르는 일본 불교의 역사적 전개를 통해서 우리는 일본 불교의 세 가지 특징을 목도한다. 첫째, 종교의 보편성 보다는 특수성에 집착하는 면모를 보인 점, 둘째, 토속적 신앙에 쉽사리 적응한점, 그리고 셋째, 그 지역의 사회정치 제도와 밀착한 점이다. 이미 불교의 중국 征服(conquest) 또는 變貌(transformation)라는 이름으로 중국 불교의 특징을 기술한 문건이 많이 나와있지만, Kitagawa교수에 따르면 일본에 들어온 불교는 더욱 강도 높은 變換(transmutation)을 겪었다는 것이다.
즉 (1) 중국 불교는 인도 불교가 제시한 초월적 열반의 이상을 현세적 이 세상의 복락으로 바꾸어 놓았다면, 일본 불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로 일본 민족의 생활터전인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일본 열도를 강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본지수적(本地垂迹)이라 해서『法華經』을 해석하는 틀을 빌어 인도는 본지요, 일본은 수적으로 생각하지만 여전히 日本이 佛國土임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본지수적: 인도의 부처가 본래 모습(본지)이고, 일본의 신들은 그 부처가 일본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 것(수적)"이라는 논리입니다.- 편집자 주
또 (2) 중국에서는 인도 불교에서 강조한 개인의 깨달음보다 중생의 보편적 구제를 목표로 하였으나, 일본에 이르면 제도권 불교의 공식적인 목표는 한걸음 더 나아가 뚜렷하게 국가의 보호라는 護國 佛敎로 탈바꿈한다.
(3) 중국 불승들은 중국 고유의 고전적 세계관과 불교를 절충하여 새로운 철학적 종합을 시도하나, 일본 불교도는 불교의 철학과 종교적 수행법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그 예술적 표현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또 종교적 권위로 말하면, 인도에서는 승려 집단(승가)에그리고 중국에서는 재가 불자에 귀속되는 데 반해, 일본에서는 소수의 카리스마적 지도자 예컨데 점술가, 치병자, 정치 지도자 및 무당 등 신통력을 지닌 자들에게 귀속된다.
일본 불교가 그렇다고 전혀 불교, 아니 종교의 상궤를 벗어난 기이한 모습을 띄었다고 생각하면 곤난하다. 오히려 일본 불교는 역시 불교의 한 모습으로, 불교의 포용성이 일본의 역사적 전통에 결합되어 일본인들의 구체적인 체험에 알맞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일본 불교의 범형이라 지칭해서 무방할 것이다. 불교 본연의 보편적 구제의 이념 즉 고로부터의 해탈 내지 해방이 일본에 이르러서는 중국과 한국의 현세위주 세계관의 영향을 받아 더욱 구체적으로 호국불교, 그리고 개인의 행복과 안녕을 위한 민중의 기복불교가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불교의 일본화와 일본의 불교화라는 이중적 평행적 과정에서 우리는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 불교를 역사적으로 개관하고, 그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통하는 일본 불교의 범형이라할 몇 가지 특징들을 추출해 보도록 한다. 우선 일본 불교를 편의상 대략 여섯 시대로 구분해 보겠다.
(1) 6-7세기(飛鳥 시대) : 韓國 佛敎의 移植
韓半島에 있는 百濟, 高句麗, 新羅의 三國으로부터 中國 文明을 간접적으로 받아 들임과 동시에 한국 불교를 도입, 고대 일본의 문화적 범형을 완성한다. 이때 한국불교의 성격과 고대 일본의 전통적 종교(神道]가 일본불교에 끼친 영향은 심대하다. 즉 한국에서 巫佛習合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일본에서는 神佛習合이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2) 8세기(奈良 시대) : 中國 佛敎의 輸入
한국이라는 매개자를 거친 舊 佛敎 여섯 宗派(南都六宗)가 수립된과 동시에 일본 불교의 기본적 典範이 확립된다. 上流 귀족층에게는 國家중심의 예술적 불교가, 下層 민중에게는 고통을 덜어주는 구세적 종교로서 民衆불교가 뿌리를 내린다.
(3) 9-12세기 (平安 시대) : 日本 佛敎의 成長
중국에서 직접 수학하고 돌아온 最澄(767-822)과 空海(774-835)에 의해서 새로이 天台宗과 眞言宗이 더해져서 新불교 여덟 종파가 확립되지만, 여전히 나라 시대 일본 불교의 기본적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4) 13-19세기 중반(鎌倉, 室町, 德川 時代): 日本的 佛敎의 展開
드디어 일본 特有의 敎理 解釋과 儀禮가 완성되고 일본의 사회에 완전히 적응한 일본 불교는, 한국 불교나 중국 불교의 권위를 업지 않고도, 일본인 創宗者들의 개인적 체험과 직관에 의거하여 자생적 일본 불교의 전통으로 자리를 굳힌다. 특히 중세의 幕府와 결탁하여 일본의 모든 家口는 불교 사원에 등록되는 등 엄격한 통제사회 속에서 불교는 일본인들의 정신적 지주를 점하게 된다.
(5) 1867-1945(明治 시대) : 日本 佛敎의 受難과 再興
神佛分離를 시발로 폐불기석(廢佛棄釋)의 수난을 거쳐 정신을 차린 일본 불교계는 한편으로는 일본을 위한 불교를 택한 일부와, 다른 한편으로는 불교를 위한 불교적 일본을 세우겠다는 開明한 佛子들로 大分된다. 즉 전자는 國家神道라는 국수주의적 팽창주의에 편승한 일본 국가불교의 前衛가 되어 한국에 일본식 식민지 불교를 수립하는데 기여하였고, 후자 즉 눈을 뜬 선각자들은 서구의 역사적 연구 방법을 배워다가 일본 불교 역사상 처음으로 비판적 시각에서 일본 불교의 位相을 반성하기 시작한다.
(6) 1945 이후 (現代) : 日本 佛敎의 國際化와 新興宗敎의 울흥(蔚興)
아직도 祭政一致의 神道至上主義를 잊지 못하는 國家 神道 追從者들이 神社 參拜를 계속하며, 한편으로는 극단적 서구 편향의 '목적없는 신세대'들이 요란하게 두 바퀴 자동차를 몰아 붙이고,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극소수의 지식분자들이 학문적 불교학을 국제적으로 수준급에 올려놓는 문헌학적 작업에 열을 올리는가하면, 다른 한편 대부분 중년의 여인들로 구성된 신흥종교 교당에는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주술적 신앙생활을 불교 또는 그와 유사한 이름으로 지속하고 있다.
이십세기도 저물어 가는 오늘날 한 · 일 간의 불교적 교섭은 현재 학자간의 교류가 약간, 그리고 일본 종교의 일방적 직수입(예컨데 創價學會, 天理敎,나무호렌게교 등등)뿐이다. 중세의 단절을 제외하곤 고대와 근세이래 한국과 일본은 너무나도 밀착된 교제를 해왔다. 따라서 똑같이 중국문명권에 속했으면서도 한국과 일본의 불교 문화적 범형은 너무나도 유사하다. 여기에 연유하는 두 나라 모두의 정체감의 위기가 우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한국적 전개와 일본적 전개는 그 역사적 궤를 달리 했기 때문에 유사한 가운데서 특수한 차이점을 발견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하겠다. 이제부터 일본문화 속에 자리잡은 불교적 범형을 약술하고, 이어 한국불교의 궤적과 그 범형을 추출하여 두 나라가 중국의 문화를 수용, 변용하는 모습을 대조해 볼까 한다.
일본 불교의 역사적 전개가 결국 일본 불교의 범형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한 점을 인식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범형을 약술한다.
첫째, 일본불교의 호국적 성격은 본시 일본열도를 신성시하는 신화시대의 전통에, 초기 불교의 전파 과정에서 한국 특히 신라인들에 의해서 강조되었던 불교의 애국적 열정이 가미된 결과이다. 그러나 지배 집단의 호국불교적 경향은 불교의 다른 경향들과 언제나 힘에 겨운 평형 관계를 유지해왔다. 즉 불자로서 일본인들은 개인의 세속적 행복은 물론 모든 중생의 해탈을 도모할 것이냐, 아니면 진호국가'鎭護國家'의 일본적 불교 범형을 따를 것이냐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일본불교의 혼합절충적 성격이다. 개인의 복을 비는 불교는 이미 중국에서도 그 마술적 경향을 받아들여 밀교의 형태로 발전한 바 있지만 , 일본의 경우는 본시 한국에서 불교가 무속과 습합한 것과 비숫하게 神道는 물론 儒敎, 祖上崇拜 등의 요소를 습합하여 불교 본연의 초세간적 경향을 완화하고 현세구복적 경향을 강조하는 역활을 했다.
셋째, 일본불교에서는 석가모니를 주불로 불교의 원초적 지도자를 숭배하기 보다. 특정 종파의 開山祖 또는 특별히 영험이 있다고 믿어지는 카리스마적 개인들을 모시는 경향이 농후하다. 聖德太子는 물론 豊臣秀吉 등을 神格化하거나 菩薩의 칭호가 부여된다.
넷째, 인생의 의미를 형이상학이나 윤리적으로 천착, 규제하기보다 미학적으로 승화하려는 일본인의 기질이 불교에도 나타난다. 일본 불승들은 불교의 예술적 표현에 정성을 들여 장엄한 불찰과 의례의 형식미등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섯째, 일본불교는 自然을 神聖한 곳으로 여긴다. 불교 전래 이전의 神道에서 나타나듯이 自然에 精靈이 깃들인 것으로 생각하던 일본인들은 중국 천태종 계통의 불교에서 山川草木도 皆有佛性이라는 사상을 자연스레 이어받아 이른바 자연법리(自然法爾) 내지 本覺 사상으로 정형화하여, 일본 불교가 역사적으로 불교 및 일본 고대 종교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자각하기에 이른다.
일본 불교의 전통적 범형을 위와 같이 규정한 것은 일본 밖에서 비교종교학적 안목으로 범형 변화라는 이론적 틀을 구사한 결과이다. 그러나 일본 안에서 불교를 관찰한 비판적 안목의 불교사상가 와타나베 쇼오코는 현대 일본 불교의 부정적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일본 불교는 (1) 호국 불교로서 국가주의에 영합하여 정치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며, (2) 여전히 마술적 밀주(密呪)의 암송 내지 기타 미신에 심취해 있고, (3) 산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이기 보다 죽은 이의 장례 행사나 명복을 비는 일에 치중하며, (4)교리가 불분명해서 쉽사리 타종교 내지 세속적 이념과 영합하기 일수이며, (5) 인간의 내면적 심성의 도야보다 겉으로 형식적 의례의 정제미만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일본 불교를 부정적 시각에서 진단한 와타나베의 시각이 한국의 현대 불교, 특히 민중 불교를 주창하는 사람들에게 가슴에 와닿을 법하다.
중국문명의 한 갈래로 한국인에 의해 호국불교로 굴절된 불교를 받아들여 일본 고래의 신도와 습합한 일본불교는 가마쿠라 시대부터 독자적 발전의 길을 걸어왔으나, 앞으로 서양 문명과 문화접변을 통하여 계속 그 범형을 변화해 나갈 것이다.(계속)
심재룡, 沈在龍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 대학원에서 철학 석사학위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사 기자와 미국 하와이대학 강사를 거쳐 현재 서울 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선불교의 철학적 기초』(태학사), 『끈기와 슬기의 사람들』(계몽사), 『한국의 전통사상』 (박영사),
『현대사회와 윤리』(공저, 박영사) 『현대사회와 평화』(공저,서광사), 『한국에서 철학하는 자세들』(공저, 집문당), 『동양의 지혜와 선』 (세계사), 『부처님이 올 수 없는 땅』 (세계사)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아홉 마당으로 풀어 쓴 선』 (스즈끼 지음, 현음사) 『연꽃속의 보석이여-티베트 불교 길잡이』(베출러 엮음, 불일 출판사), 『있는 그대로의 자유』(앨런 왓츠 지음, 세계사) 『유배된 자유-달라이 라마 자서전』 (정신세계사)등이 있다.
1993년 8월호 미주현대불교 제 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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