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74년전인 1950년 1월 12일은 한국인으로서 참으로 잊어서는 안되는 날입니다. 바로 그날 한국의 운명이 바뀌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바로 애치슨 라인이라는 것이 발표된 날입니다. 애치슨 라인은 1950년 1월 12일에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애치슨이 선언한 미국의 극동 방위선이지요. 애치슨은 이날 태평양에서 미국의 극동 방위선을 알류산열도와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을 연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한반도의 남한과 대만은 제외됐습니다. 당시 남한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정부가 수립되어 있었고 북한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쌩뚱맞게 미국 국무장관이 남한을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제외시켜 버린 것이죠. 소련이 사실상 북한을 조종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냥 남한을 소련에게 줘버리겠다는 의지의 발표와 다름이 없습니다.
74년이 지난 지금와서 이런 이야기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한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왜 그때 미국이 한국을 버렸을까 여간 의문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었던 시점이었습니다. 중국은 공산화가 이뤄졌습니다. 주한 미군은 철수했습니다. 1945년 한국에 주둔한 미군은 7만명정도였습니다. 1948년 남한 정부 수립후 미군은 소련과의 합의를 내세워 미군 병력을 철수합니다. 1949년 6월 미국 군사고문단을 제외하고 모든 미군 병력이 철수해 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속에 애치슨이 엄청난 선물을 북한에 줍니다. 공산세력이 남한을 침략해도 미국은 개입하지 않겠다고 전세계에 공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김일성은 쾌재를 부릅니다. 갑자기 희색이 만연합니다. 이게 왠 떡입니까. 학수고대하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때부터 북한은 김일성의 지휘하에 군사력 증강에 열을 올립니다. 일제 강점기때의 조선 의용군들을 북한 인민군에 편입합니다. 군사력을 급속히 올리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미국은 이런 상황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몰랐다면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고 알았다면 남한을 그냥 북한에게 주겠다는 의도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습니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고 난 뒤 미국은 일본의 전쟁 수괴들을 거의 그대로 훈방했습니다. 당시 일본 주둔 미군 사령관 맥아더의 지시에 의한 것입니다. 급속하게 팽창하는 소련의 공산화를 일본선에서 막아야 한다는 의지의 발로 아니겠습니까. 당시 한반도 그 가운데 남한은 그냥 있으나 마나한 나라에 불과했습니다. 미국 등 선진 열강에서 볼 때는 말입니다. 또한 일본의 일왕을 포함한 호전세력들이 맥아더에게 자신들이 소련의 팽창을 온몸을 던져 막겠다 그렇게 보고했겠죠.
그당시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의 스탈린과 만나 남침과 관련된 전략과 추진 방침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시 공산화한 중국 모택동은 티벳 공습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애치슨 라인 발표로 이제 막힐 것이 없었던 김일성은 그해 6월 25일 일요일을 기해 남침을 시작합니다. 중국은 그해 10월 티벳을 공습합니다. 동북아지역의 실로 엄청난 사태가 일어날 것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미국은 강건너 불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한은 제대로 무기도 없는데 어떻게 북한군을 상대할까요. 애치슨 라인 발표때부터 남침 작전을 치밀하게 짜 논 북한에게 남한은 그야말로 코끼리앞에 비스켓 신세였습니다. 그냥 부산까지 밀려버립니다. 미국은 화들짝 놀랍니다. 북한군이 그렇게 엄청나게 밀고 내려올 줄을 몰랐던 모양입니다. 일본에서 느긋하게 일본식 여흥을 즐기던 사령관 맥아더는 기가 막힙니다. 부랴부랴 미국 대통령 트루먼에게 긴급연락을 취하지만 그의 결정에 시간이 걸립니다. 유약한 트루먼은 또 다시 국제전쟁에 휘말리기 싫습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우유부단함속에 시간은 흘러갑니다. 한반도는 북한군의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칫 북한군과 소련군이 일본까지 삼킬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미국 조야에 가득합니다. 트루먼은 겨우겨우 한반도 전쟁 참여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일본에 있던 사령관 맥아더가 또 다시 군화끈을 맺던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된 것이지요.
중국은 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북진을 하자 그해 10월 압록강을 넘어 전쟁에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중국군은 비슷한 시기에 티벳을 공격합니다. 한반도는 당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티벳은 한국전쟁에 가려 세계의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티벳은 중국군에게 점령당하고 나라를 잃습니다. 달라이라마는 망명하고 맙니다. 한반도는 3년 피비릿내 나는 민족 상잔의 비극을 겪은뒤 유엔군과 북한군사이에 휴전으로 막을 일단 내리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74년이 지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마는 너무도 한스럽고 너무도 창피합니다. 나라의 운명이 미국 국무장관 발표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었던 그런 나라에 우리 조상이 살았고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 창피하다는 것입니다. 당시 미군이 철수하면 군대를 키우고 자주국방의 의지를 다져야 했던 것 아닙니까. 하지만 당시 이승만 정부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도 단합되지 못하고 각종 갈등의 늪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겠지 미국이 뒤를 틀림없이 봐줄 것이야하는 아주 낭만적인 사고에 함몰돼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리고 전쟁이 터지니 자신은 서울을 버리고 도망가면서 서울시민들은 동요하지 말라고 그런 방송이나 한 것이 대통령 이승만 아닙니까. 그렇다면 지금 현재는 어떤가요. 현재는 많이 나아졌나요. 많이 바뀌었습니까.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나라를 지킬 군사력과 국민들의 단합된 의지가 없는 나라치고 독립과 번영을 이룬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부적으로 갈등속에 지리멸렬한 나라치고 타국을 향해 자신있게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는 나라도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74년전에 일이지만 지금도 가슴이 너무도 아픈 애치슨 라인 발표였습니다.
2024년 1월 1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