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관광은 집을 떠나고 돌아오는 원점회귀(原點回歸)의 여정이다. 여행이나 관광은 얽매인 곳으로부터 벗어나 일정 기간 동안 여유와 쉼을 통해 보고 만나고 느끼는 자유로운 영혼의 깨우침이다. 여행과 관광은 떠나기 전에 얼마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볼 것인지를 준비하며 일정과 경비를 짠다. 여행과 관광은 우리가 속한 공간을 벗어나려는 열정으로 다른 공간에 뛰어드는 도전과 모험이다. 거기에 비해 순례는 출가(出家)를 통해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고 성찰하는 수행이다. 우리는 ‘가고 또 가고 또다시 떠나는’ 순례자의 삶을 꿈꾼다. 여행, 관광, 순례는 누구나 마음먹기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삶이다. 순례(pilgrim)의 어원은 라틴어 ‘per agrum'으로 그 뜻은 ’들판을 가로질러‘라는 의미다. 순례나 여행, 관광은 드넓은 세상을 통해 스스로의 내면과 속살을 샅샅이 들여다보며 성찰하는 삶의 창이리라. 초등학교 2학년인 손녀 리아가 지난 9일 새벽 가족과 함께 호주 퍼스에서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유럽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리아는 어린 가슴이 얼마나 설레고 들떴을까? 이번 여행은 23박 25일 일정으로 독일 프랑스 두 나라의 4개 도시를 돌아보며 체류하는 일정이다. 독일에서는 드레스덴에서 4박 5일, 프랑크푸르트에서 2박 3일, 스튜트가르트에서 9박 10일에 이어 파리에서 8박 9일을 머문다. 리아는 호주에서 싱가폴을 거쳐 이튿날 새벽 하루 만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시간을 더 달려 드레스덴 숙소에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드레스덴의 어원은 ‘강변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드레스덴은 엘베강의 플로렌스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강변도시로 유럽 분위기를 품은 고즈넉한 곳이다. 엘베강변 작센 주의 중심도시로 츠빙거 궁전을 비롯한 박물관과 화랑이 즐비한 아름다운 문화 예술 도시이기도 하다. 유럽여행을 앞두고 꿈에 부푼 리아는 그동안 틈틈이 여행 정보를 공부하면서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볼 것인지를 작은 가슴에 준비해왔다.
두 번째 방문지 프랑크푸르트를 2박 3일 동안 둘러보며 아빠의 학회 일정을 마무리 하는 동안 엄마와 관광을 마친 뒤 파리에서 8박 9일을 머물게 된다. 파리에 관한 관광 안내서를 읽고 가장 궁금한 곳을 에펠탑으로 미리 점찍었고 피카소 작품 전시장을 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나는 지방자치제의 부활을 앞두고 40일 동안 영국 런던과 지방도시 세필드와 서리 카운티, 그리고 독일의 함부르크를 비롯한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밀라노, 벨기에 앙트워프와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 유럽 6개국 13개 도시를 순회하며 해외 특집〈세계의 지방시대〉를 취재했었다. 당시 한 시간 길이의 프로그램 제1편 장미를 꽃피운 지혜, 제2편 지역특성을 살린다, 제3편 바다 위에 선 도시를 제작하기 위해 취재했다. 그보다 1년 전인 1988년에는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농업이민과 대서양 어장 개척에 나선 이민의 생활을 추적한 해외 특집〈대서양시대를 연다〉5부작(제1편 멀고 먼 뱃길, 제2편 팜파스에 심은 사과나무, 제3편 루따 뜨레스, 제4편 거듭 태어난 사람들, 제5편 띠그레 꼬레아를 취재한 바 있었다.
누구나 파리에 가면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직접 오르고 싶어 한다. 리아도 마찬가질 것이다. 나는 30년 전 그림과 사진으로만 보아온 파리를 취재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324m의 에펠탑에 올랐다. 1889년 파리 엑스포 때 세워진 에펠탑은 몇 차례 개보수 공사를 거쳐 휠체어가 올라갈 수 었고 건립 100주년을 알리는 ‘100ANS' 네온불빛이 선명했다. 건축가 알렉산드르 귀스타브 에펠이 세운 에펠탑은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 독일에 패한 치욕을 씻고 파리엑스포를 계기로 프랑스가 더 이상 농업국이 아닌 공업국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세운 탑이다. 에펠탑 건설 당시 욕이라는 욕은 다 먹고 갖은 비난 속에 20년 뒤에는 해체하겠다고 여론을 무마했다. 그러나 에디슨이 에펠탑 엘리베이터를 설계하면서 ’신의 기술‘이라고 극찬하고 미국이 1893년 시카고엑스포 때 ’페리스힐‘을 세우고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이 재기의 야망으로 1958년 에펠탑을 모방한 도쿄타워를 세웠다. 그 뒤 에펠탑은 태양전지판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빗물을 재활용해 화장실에 사용하는 친환경 구조로 바뀌었다. 에펠탑 전망대에 오르면 파리로부터 세계 각국의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파리로부터 평양이 8794km, 서울 8991km, 부산 9321km로 표시되어 있다.
이정표를 보는 순간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반도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좁은 골목과 계단을 따라 이어진 파리의 달동네 몽마르뜨르 언덕을 올랐다. 몽마르뜨르라는 말은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는데 영혼을 깨우는 불멸의 화가, 고흐와 드가, 마네와 마네 등 인상주의 화가를 비롯한 피카소가 이곳에서 화폭에 삶을 담아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서쪽 테르도르 광장에서 산 하얀 돔의 샤크르쾨르 성당을 그린 유화 한 점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1870년 보불전쟁과 이듬해 파리코뮌 시가전 때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샤크르쾨르 성당의 건립 때 몽마르뜨르 언덕 아래 환락가의 창녀들까지 건축헌금에 동참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몽마르뜨르 언덕 위의 ‘예수님의 마음’이라는 뜻을 가진 샤크르쾨르 성당을 오르는 길에서 질펀한 파리 전경과 에펠탑을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리아는 역사와 문화, 예술과 실험, 혁명과 사상, 패션과 여인, 사랑과 꽃의 도시를 어떻게 보고 느낄지 궁금하다. 가을이다. 입은 옷 그대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역마살이 낀 것일까? 역마의 기운이 강한 사람은 변화와 개혁을 향한 열망도 강하리라. 항상 새로운 것을 꿈꾸고 추구하는 열정이여. 오늘도 일상을 벗어나려는 힘이 새삼 솟구친다.
첫댓글 멋지네요
좋은 정보입니다
재미있는 글입니다 잘봤습니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