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는 학창 시절 저의 성찰적 계기가 되어 주었던 노래였습니다. 2000년이 된 시대와 불화하는 90년 대의 촌스러운 사운드는 제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은 오직 꼭 잘될 거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모습은 무엇일까?"라는 메시지가 들릴 따름이었습니다.
순하고 내성적이던 저는 기본적으로 자의식이 약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뒤쳐지던 집안의 성적순에 의해 '착한 아이' 컴플렉스도 앓았지요. 그러던 제게 서태지라는 존재는 '꿈의 의지'를 일깨워준 선배였죠.
<환상속의 그대는>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던 내 안의 세계와 내 밖의 세계 사이에서 손쉽게 세상을 나무라기 바빴던 제게 '방 구석'을 보여준 곡입니다. 꿈은 열정과 치밀한 노력 속에 자라는 나무인데, 저는 '차이'라는 허술한 굴 속에서 비겁함을 숨겨두고 있었죠.
많은 사람들이 꿈과 현실의 괴리 앞에서 낙망합니다. 하지만 실상 하지 않고 있음에도 하고 있다고 믿는, 혹은 그것을 연기하며 살고 있는 삶이 여전히 많습니다. 실제적인 실천이 있어야지 괴리는 좁혀질 수 있으며, 그것이 환상인지 꿈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을 향한 실천은 진득한 노력을 통한 습관의 변화라는 재미없는 과정을 무조건적으로 요구합니다.
물론 모든 꿈이 열정과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태지는 자신의 재능과 노력, 그리고 운이 겹쳐 크고 아름다운 나무로 자랐지만, 그 아래로 수 없이 꺾인 가련한 풀과 나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기만하여 환상 속에서 조화를 품으며 향기를 꿈꾸는 망상을 해서는 안되겠죠. 꺾인 나무는 새로운 자연의 시작이 되지만 조화는 쓰레기가 되니까요.
첫댓글 첨엔 사랑 노랜줄 알았는데 가사의 의미를 알고 나서 좀 놀랐어요 저 가사를 서태지가 당시 만 20살 무렵에 적은 곡이라니 ;; 만 스물때 데뷔를 했으니 그전에 19세때 썼을수도 있는
이렇게 심오한 가사에 그렇게 경쾌한 사운드라니..천재는 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