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의 가장 마초적인 배우의 계보에서 말년에는 제작자겸 감독으로 변신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달리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전향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실베스타 스텔론은 그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짱으로
80말~90년대 역시 배우 출신의 대통령 레이건 시절을 통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내세운 팍스 아메리카를
대표한 배우였다. 특히 스텔론의 <람보>시리즈를 보다가 나는 토악질을 하고 극장을 나온 뒤부터 그를
슈왈츠제네거와 더불어'저질배우'의 원형질로 규정했었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흐른 구정後 회사 일이 조금은 한가해진 틈을 내 낮 시간에 큰 아이와 극장을 찾았다.
큰 녀석은 이경규를 살리려고(이경규 이 녀석, 흥행과 은퇴를 결부시킨 공갈 잡범이다) '복면 달호'를
예매했고, 시간대와 영화 포스터를 살피던 나는 웬지 빌 콘티의 Gonna Fly now의 OST가 반가워 '록키
발보아'의 표를 사고 문어 다리를 질겅거리다 극장으로 들어갔다.
'록키'가 서른 살의 가난하고 멸시받는 포르노 및 단역배우의 현실을 반영한 영화였듯이
'록키 발보아'도 어딘지 머리가 모자라고 속까지 근육질로 가득찬 퇴물배우라는 편견과 조롱을
강요받는 스텔론의 현실을 반영한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그는 재기를 꿈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종류의 비아냥에 대하여 '편견과 조롱에 신경쓰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내 스스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을 하겠다며 적의를 갖고 대든다. 아예 뻔하디 뻔한 통속적이고 진부한 이 영화에서 우리가
위안을 받는 것은 성공적인 인생이란 비록 통쾌하게 상대를 누이고 승리하는 삶이 아니라 비록 패배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내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록키>로 혜성처럼 등장하여
이후의 록키와 람보시리즈로 참혹하게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스텔론이라는 굴곡진 배우의 인생이 오롯이
녹아있고, <록키 발보아>는 그렇고 그런 배우로 치부되었던 그의 인생 마무리로 손색없이 다가온다.
"엄청 오래 걸렸군요. 내 집까지 오는데 무려 10년이나 걸렸어요. 10년. 왜요? 내 집이 싫어서요?
좁아서요? 냄새가 나요? 그렇죠, 냄새가 나죠! 당신은 전성기를 얘기하는데, 그럼 내 전성기는
어디 있어요? 당신은 그거라도 있지. 경기를 해뵜자 엄청나게 얻어맞겠지. 난 아무 것도 없어!
다리도 팔도 예전처럼 말을 안들어! 이제와서 날 도와주겠다고? 이 냄새나는 집이 좋아요? 여긴..
젠장, 온 집안이 냄새가 난다구요. 날 도와줘 보라구요!"
매니저가 되어 주겠다고 찾아온 미키에게 발보아는 자신의 인생같은 독백을 뱉아낸다.
동시에 록키의 입을 빌어 스텔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록키는 스텔론의 분신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위의 시퀀스가 촬영된 그 '좁고 냄새나는 집'은 실제로 스텔론이
<록키1>의 시나리오를 쓰며 살았던 바로 그 집이었다.
-겁날 땐 더 쎈척 하는 거야!
-얼마나 강한 펀치를 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강한 펀치를 맞고도 일어서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최선을 다해 힘껏 살아가야해. 네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사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삶을치열하게 사느냐가 중요한거다.-자신의 아들에게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 필라델피아 박물관 계단을 뛰어오르는 록키,
과거 챔프의 영광도 중절모를 삐딱하게 눌러 쓴 처진 배로 뒤뚱뒤뚱 걷는 늙은 록키,
밭고랑 만큼이나 깊어진 주름, 낮은 중저음의 뒷골목 건달들의 어투같은 촌스러움 말투,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 에이드리언을 먼저 떠나보내고, 아내와의 추억이 서린 장소를 다녀간다.
시덥잖은 농담을 준비해 가지고 카운터의 에이드리언을 만나러 가던 애완동물가게는 폐가처럼
버려졌고, 둘이서 어설픈 데이트를 즐기던 스케이트장은 아예 페허가 되어 있다. 아내는 떠났다.
아내의 묘비 위에 장미 몇 송이를 올려놓고 멍하니 앉아있는 자글자글 늙어버린 록키.
그리고 현 챔프와의 논 타이틀 전, 딕슨에게 제대로 한 방 맞고 다운되기 직전,
잠깐 흘러나오는 록키의 회상과 독백.
그러나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그 누가 스텔론이,
록키 발보아의 삶이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첫댓글 퇴물의, 퇴물에 의한, 퇴물을 위한, 영화 <록키 발보아>. 그래, 그것이 인생아닐까?
저도 이영화 봤는데요...ㅎㅎㅎ할말많았었는데......
음....체게바라님 글을 읽으니깐 더 끌리는 영화네여.....저두 조만간 감상을 하고 와야될듯...^^
체게바라님!....혹시 영화 본 감명을 문제를 내어 주실 수 있나요? 토론 좀 해보게요.ㅋㅋ...그렇게 하신다면 제가 답글을 올리죠ㅎ
`0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음악 부문에서 6번이나 노미네이트되고도 단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던 불운의 거장, 만 80세에 이른 고령의 엔리오 모리꼬네의 특별 수상부문의 '평생공로상' 수상 소감문. " 저는 이것이 도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ㅎ허걱!! 나이를 초월하는 저 장인의 아포리즘이라니... 덧붙여 '디파티드'의 4개부문 수상을 축하한다. 잭 니콜슨의 수상을 은근히 기대했었는데..
또한 '디파티드'로 6수 끝에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장인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영광은 시류에 조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한 한 예술가의 고집을 엿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백인 우월주의를 깬 이번 79회 아카데미에게 축복있기를, 모리꼬네. 스콜세이지, 앨런 아킨, 헬렌 미렌 등 나이를 잊은 노땅들에게 축복과 영광있기를..자본의 벽을 깬 리틀 미스 션사인에게도 역시 축하를 보낸다.
미국 문화에서나마 비주류를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 그런데 리틀 미스 션샤인은 누군가요?
'리틀 미스 선샤인'은 700만불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고의 콩가루 집안을 영화화한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로 선댄스 영화제에서도 각광을 받았죠. 이 영화에서 짐할아버지로 나오는 알란 아킨이 이번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양로원에서 헤로인을 복용하다 쫓겨나고, 15살된 손자에게 무엇보다도 섹스가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영감님으로 이 '후버가족'은 막내 딸인 멜 깁슨의 실제 딸인 에버게일 브레슬린이 켈리포니아주의 어린이 미인대회인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전 가족인 1박2일의 무모한 여행을 통해 끈끈한 가족애로 다시 태어나는 영화입니다.
음........역시 체게바라님은 어렵군요....ㅎㅎㅎ
제가 말씀드린 것을 오해 하셨든지 아니면 그냥 댓글로 토론하는 형식을 즐기시는데 제가 착각 했던지 둘 중에 하나네요. 그럼 제가 따르지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