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김민자
구름을 업데이트한다
목화솜 같은 구름에서 다래 맛이 난다 구름 위에 앉으면 얼마나 포근할까
휴대가방을 펼치니 순식간에 방이 하나 나타난다
구름방에 앉아 책을 읽고 차(茶)를 마신다
남편을 업데이트한다
가계부를 써가며 알뜰살뜰 살림을 하도록 한다 요리 청소까지 그에게 떠넘긴다
오늘의 식단을 업데이트한다
숟가락을 포크로 젓가락을 나이프로 밥그릇을 접시로 업데이트한다
패션을 업투데이트(up-to-date)한다
멀쩡한 청바지에 구멍을 내고 긴 치마의 길이를 자른다
시간이 업데이트한 나이를 다운시킨다
40세는 28세로 70세는 49세로 90세는 63세로 다운시킨다
― 시집 「왜 레몬이란 단어를 읽으면 침이 고일까」 (문화발전소, 2021.08)
* 김민자 시인
2001년 <문학21>에 수필 등단.
2010년 <에세이문학>에 수필 등단.
2018년 「see」 시 등단
시집 『까치밥』 『민들레의 절반은 바람이다』 『왜 레몬이란 단어를 읽으면 침이 고일까』
사찰기행수필집 『풍경소리 들리는길』 『A형남편과 B형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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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반인들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생활을 공개하며 대중과 소통을 한다. 무의식이 가상의 현실로 진입하듯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오가며 하루를 소일한다. 이제 대중은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하는 ‘누리꾼’이나 ‘네티즌’이란 단어에 익숙해졌다.
가상의 세계를 현실감 있게 표현한 업데이트(update)는 기존의 낡은 것을 최신 정보로 바꾸고 현재의 상황을 최적의 환경에 맞도록 교체한다. 가상의 세계에서 시인은 자신만의 휴식 공간인 방 하나를 찾아 차를 마시고 책도 읽는다. 남편에게 살림을 떠맡기고 간편한 메뉴로 식단도 변경한다. 젊은 층이 선호하는 최신유행으로 패션을 바꾸고 시간을 거슬러서 나이마저 다운시킨다. 참으로 즐거운 상상이다.
시인이 ‘업데이트’해야 할 것들은 현재의 지점에서 전통과 관습을 지키며 살아가는 완고한 것들이다. 부모 봉양, 살림과 육아에 지쳐 책 한번 들여다보지 못한 고단한 시간이 ‘업데이트’ 속에 들어있다.
누군가 신이 만든 자연을 “무질서하지만 완벽한 형태”라고 말했듯이 시인은 밥그릇을 접시로, 젓가락은 나이프로 바꾸며 무작위로 현실을 ‘업데이트’한다. 그릇이 달라진다는 것은 식성이나 조리방법에 혁신을 일으키는 일, 기존의 식습관이나 생활 태도를 확 뒤엎는 것이니 가히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힘겨운 가계(家計)를 내려놓고 가족에게 헌신한 시간을 이제부터 자신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의 희생양인 여성들에게 이보다 “완벽한 질서”가 또 있을까.
시인 ‘사무엘 울만’은 ‘청춘(Youth)’ 이란 시에서 “인생은 나이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理想)의 결핍으로 늙는다”고 하였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며 열정을 잃으면 영혼에 주름이 진다는 것이니 김민자 시인의 ‘업데이트’된 의식은 아직 청춘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일은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허구들이 점점 실제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식단도 식성도 서구화되고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여서 상식을 뛰어넘는 자유분방한 패션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맞벌이 시대가 오고 가사도 각각 분담한다. 최첨단의 의술로 젊음도 되돌릴 수 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이 현실이 되어간다. 말 그대로 의식과 생활의 ‘업데이트’인 것이다. ‘업데이트’는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의 단면을 해학을 통해 리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 마경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