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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뉘우스는 유럽 발트3국중 제일 아랫쪽에 있는 리투아니아의 수도다.
오는 11일과 12일 여기서 나토 정상회의가 열리기 때문에 7일(현지시간)부터 빌뉘우스 국제공항 부근에
독일이 보낸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배치되는 등 중심가를 비롯해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군사 요새로 변했다고 한다.
리투아니아는 인구 270여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국토 면적도 좁고 국내총생산(GDP) 총액 역시 적다. 독자적으로 첨단 방공 체계를 갖출 여력이 안 된다. 이에 나토 회원국들 가운데 16개 나라가 십시일반 병력을 차출해 약 1000명을 빌뉴스로 보내 정상회의 기간 경계작전을 펴도록 했다. 또 빌뉴스 일대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나삼스(NASAMS), 드론 등 방공무기 시스템도 설치했다.
리투아니아는 함께 발트 3국으로 불리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와 더불어 오랫동안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소련이 등장하며 1918년 독립국이 되었다. 하지만 1939년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틈을 타 소련은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에 “주권을 내놓지 않으면 군대를 보내 점령하겠다”고 협박했다. 세 나라는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였고 이듬해인 1940년 결국 소련에 병합됐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도 독립의 꿈을 잃지 않은 리투아니아 등은 1991년 소련 해체를 계기로 광복을 맞이했다. 이후 나토와 유럽연합(EU)에 가입해 서방으로부터 안보를 보장받고 경제 발전에도 나섰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에 큰 충격을 안겼다. 소련의 후예인 러시아가 언제든 무력을 사용해 영토 확장을 꾀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연히 이들은 미국 등 나토 회원국들을 향해 “러시아 및 벨라루스에 인접한 발트 3국의 안보 불안을 해소할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리투아니아에서 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것을 계기로 첨단 방공무기 체계가 임시로 배치되자 나우세다 대통령은 “정상회의 기간 영공 안전 확보를 위한 나토 동맹국들의 노력은 발트 3국에 영구적 방공 체계가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정상회의 이후의 영구적인 영공방위 구축 방안을 놓고 동맹국들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정상회의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상도 참여한다.
리투아니아는 2008년 3차 유럽여행시 수박 겉핥기식으로 잠시 둘러보고 지나쳤다. 다음은 그 때 메모했던 글이다.
[2008년 7월26일 토요일 빌뉘우스
캠핑 사이트에 설치한 텐트 속에 자면서 도로를 질주하는 대형화물차들의 소음 때문에 잠을 깼다. 텐트 속이라고는 하지만 피곤한 몸을 편히 뉘어 잠잘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어둠속에서 손을 뻗어 시계를 찾아보니 4시35분이었다. 낮에는 햇볕이 내리쬐어, 차를 타고 달릴 때는 더워서 에어콘을 작동시켰으나 밤이 되니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새벽녘에는 제법 서늘한 편이다. 동유럽에서는 시차가 없어 시간 계산이 번거롭지 않아서 좋다. 조금 있으니 “짹” “짹” 하고 고음으로 짧게 끊기는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또 멀리서 “까악”“까악”하는 까마귀 울음소리도 들린다.
06:00 6시 조금 전에 혼자 일어나 밥솥에 쌀을 아침식사가 될만큼 계량하여 밥을 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밤사이 텐트가 이슬에 젖어 텐트 지퍼를 열고 밖으로 나가려니 허리에 이슬이 묻어 차가워 움찔하고 놀랐다. 캠핑장은 2000여 평 가량 되어 뵈는데 원형으로 빙 둘러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쪽 키 큰 나무 사이로 밝은 햇빛이 비춰들고 있었다. 키친이라고 하기보다 임시 마굿간 같았다. 개수대와 긴 테이블 하나 그리고 벽쪽에 널다란 판자가 붙었고 콘센트가 벽에 각각 2개씩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화장실 소제를 하고 있었다. 주방에는 어제 흥정을 하던 멀티 콘센트가 그대로 놓여져 있었다. 쌀을 씻으려고 수도꼭지를 트니 모기들이 그 속에 숨어 있다가 놀라서 날아 나온다. 기온이 내려가니 추위를 피하려 그곳에 모인 모양이었다. 밤을 하는 사이 사과를 씻어 비닐봉지에 담아 두었다. 시계바늘이 6시를 넘어서자 몇 사람은 세면도구를 챙겨 사워장으로 가는 사람, 텐트 속에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일어나 의자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 나뉘어졌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 캠핑장 주변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이 캠핑장도 캠핑카나 트롤리 보다 소형차와 텐트가 주류였다. 캠핑카가 서너 대 보이긴 해도 바르샤바에서는 캠핑카가 주류였는데 반해 이런 것도 빈부의 차이가 나는 것일까. 이곳은 캠핑장 사용료도 13유로로 다른 데보다도 훨씬 싼 편이었다. 햇볕이 서서히 열기를 더해갔다. 일찍 서둘러야 빌뉘우스를 보고 리가 까지 올라갈 수가 있을 것이다. 남자용 샤워실이 2개 밖에 되지 않으니 아침에는 순서를 기다려야 할 형편이다. 세면기는 4개였다. 아침이라서 그런지 더운 물이 나왔다가 그쳤다가 반복했다.
07:20, 자고 있던 아이들을 깨워 샤워를 하고 오라고 내보냈다. 형준이는 샤워를 하는 도중에 너무 배가 아파 화장실로 뛰어 갔는데 아침시간이라 화장실이 만원이라 발을 동동 구르다가 할 수 없이 문을 다급하게 두드렸더니 안에 들어있던 사람이 나와 주더라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8시였다. 오늘은 이곳 폴란드의 아우구스토프 캠핑장을 떠나 리투아니아의 빌뉘우스를 거쳐 라트비아의 리가까지 가야하므로 서둘러야겠다. 서양 친구들은 벌써 짐을 챙겨 떠나고 있었다. 샤워를 하면서 내의와 수건을 빨아 왔으므로 햇볕이 강해 잠시나마 텐트 위에 늘었다. 출발하게 되면 차 안에서 달리면서 말려야겠다. 커피를 한잔 하려고 키친으로 커피포트를 가져가 물을 끓였다. 봉지 커피를 타서 한잔 마시면서 지도를 꺼내 가야할 코스를 대충 살펴보았다.
Augustow -> Suwaki ->(폴란드/리투아니아 국경통과)->Marijampole -> Prienai -> Trakai -> Vilnius
Vilnius ->(A2 고속도로) Ukmerge ->(A2) Panevezys ->(A10 국도) Bauska ->Riga
아우구스토프에서 빌뉘우스까지 대략 180 km, 또 빌뉘우스에서 리가까지는 약 300km 정도가 된다.
08:45, 캠핑장을 출발하였다. 알고 보니 아우구스토프는 폴란드 동북부에서는 여러 갈래의 길이 한군데로 집중되는 교통의 요지였다. 시내를 벗어나니 폴란드의 평화스러운 농촌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끝없이 광활한 평지에는 누렇게 곡식이 익어가고 있었고 곳곳의 푸른 목장에는 소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들판 가운데로 뻥 뚫린 도로는 직선으로 뻗어 있다가 어느새 구릉 언덕을 향해 커버를 틀고 있었다. 도로가의 키 큰 소나무 숲은 운전자들의 시선을 부드럽게 감싸주며 하늘과 땅인 도로를 저 멀리 소실점으로 모으고 있었다.
10:00,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경을 통과했다. 국경이라 해도 옛 검문소 건물만 남아 있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표지판에는 차량의 속력을 20km/h으로 유지하라고 되어 있었다.
10:08, 리투아니아 측으로 넘어가자마자 주유소가 보여 연료(유로 슈퍼95)를 21리터 보충하였다. 기름값은 82.74CT였으며 환율은 1유로가 3.4CT라고 하였다. 주유소 카운터를 보고 있는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여직원에게 환율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퉁명스런 표정으로 계산기에다 3.4라고만 숫자로 표시해 보여주었다. 아마 영어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정현이가 화장실에 갔다가 화장지가 비치되어 있지 않아 차로 돌아와서 화장지를 가지고 갔다.
10:22, 다시 빌뉘우스를 향해 출발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거치면서 보니 폴란드 남부는 대평원이지만 북부는 구릉지역이 조금 있었지만 리투아니아에 들어서니 다시 대평원이 전개되었다. 두 나라 모두 농사와 목축이 주요 산업인 것 같다. 밭에는 보리와 밀 그리고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으며 목장에서는 소를 방목하고 있었다. 목장 규모로는 리투아니아가 조금 크게 보였다.
10:34, 한참 달리다 보니 노란 유채꽃이 온 천지를 뒤덮고 있었다. 차를 도로가에 잠시 세우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밭에는 유채꽃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고 파란 하늘에는 흰 조각구름 몇 점이 두둥실 떠 있었다. 폴란드에서는 고속도로의 속도제한은 130km/h, 국도2차선에선 100~110km/h,국도 1차선일 때는 90km/h 인 반면, 리투아니아에선 고속도로가 100km/h이고 국도에선 90km/h으로 돼 있으나 폴란드에선 2차선 이상인 약간 넓은 도로에선 대개 130~140km/h 로 빨리 달리나, 리투아니아에선 길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보통 110km/h 정도로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시골길을 달리고 나면 벌레나 나비 곤충 등이 차 범퍼나 헤드라이트 그리고 앞 유리창에 부딪쳐 죽은 흔적들로 더러워져서 주유소에 들어갈 때나 캠핑장에서 물로 깨끗이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2:25, 빌뉘우스 시내로 진입하였다. 아직 도심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남은 것 같았다. 조금 가다가 MAXIMA 라는 슈퍼마켙에 차를 세웠다. 졸음이 와서 잠시 휴식을 취할 겸 식품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슈퍼 입구 한쪽에는 화훼코너가 있어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슈퍼마켙 안으로 들어가니 냉방이 잘 되어 시원하였다. 오이, 피클, 칼스버그 맥주 2캔, 마늘 2뿌리, 양파3뿌리를 계산하니 16.64LT였다. 환율이 어떻게 되는 줄도 모르고서 크레디드 카드로 결재를 하고 나왔다.
13:29, 차를 몰고 도심으로 들어가려고 우선 높은 건물이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 핸들을 꺾었다. 우선 빌뉘우스 중심에 있는 갸즈미나스 성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젊은 여자에게 아이들을 시켜서 길을 물어보도록 하였다. 대충 방향만 눈치로 알아듣고 찾아갔다. 시내 도로가 제법 복잡하여 초행길인 운전자에겐 어느 길로 가야할지 헷갈리게 하였다. 조금 가다가 큰 도로로 진입하려는데 반대편에서 경찰차가 다가오면서 우리 차를 길가에 돌려 세우라고 하였다. 그러더니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여자 경찰이 차에서 내려 운전면허증과 차량등록증을 보자고 하였다. 알고 보니 일방통행인 줄을 모르고 역주행 한 것이었다. 스티커를 끊으면 벌금까지 내야 할 판이었다. 성으로 가는 길을 찾다가 길을 잘못 들어왔다고 하였더니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물었다. 빌뉘우스 성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더니 경찰차가 앞서 가면서 큰 도로까지 안내 해 주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빌뉘우스에 들어와서 현지 시간을 보니 우리가 차고 있는 시계와는 한 시간 차가 있었다. 즉 바르샤바 보다 한 시간 더 빨랐다. 시내 중심을 관통하는 대로를 따라가다 보니 큰 광장이 나왔다. 갸자미나스 광장이었다. 광장 한쪽에는 그리스풍의 백옥같이 흰 석주들이 받치고 있는 큰 성당 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는 종탑이 높이 솟아 있었다. 예전에는 가톨릭의 주교나 사제가 강의를 했던 곳으로 지금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다. 이 미술관 앞에는 높은 종루가 높이 우뚝 서 있는데 예전에는 성당의 일부였던 것으로 빌뉘우스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건축물이라 한다. 여기에 걸린 종은 현재에도 건재하며 몇 개의 종에 의해 연주되는 멜로디는 시보로서 리투아니아 전국에 방송되고 있다 한다.
주차장이 눈에 뜨지 않아 다른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골목 한쪽에다 차를 세워 놓고 성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성당 안에서는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고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정장차림의 하객들이 많았다. 신랑신부의 친구들은 손에 꽃을 들고 있었으며 신혼부부가 타고 갈 긴 리무진에는 풍선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성당 오른편에는 청동으로 된 기마상이 서 있었고 성당 뒤편 야산 위에는 성의 깃발이 나붓기고 있었다. 성으로 오르는 길이 있겠지 하고 카메라를 들고 광장을 지나 야산 아래로 다가 갔으나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야산 언덕 아래에는 푸라타나스 나무가 무성한 공원이 조성돼 있었다. 높이가 100m 될까말까 한 야산은 도심 가운데 있어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으려고 산 주위를 걷다보니 결과적으로 한 바퀴를 돌게 되었다. 산 뒤쪽에는 숲속 실개천에 맑은 물이 졸졸 흘러가고 있어 이곳이 도시라기보다는 한적한 시골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앞쪽으로 걸어 나오니 성으로 올라가는 리프트가 있었다. 걸어서는 올라가지 못하게 해 놓고 표를 팔고 있었는데 현지돈만 받았다. 우리는 환전할 시간도 없었고 현지화폐도 수중에 없었으므로 아무리 사정해도 성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성으로 올라가 구경하는 것을 단념하고 대신 시내 골목풍경을 구경하기로 했다.
오래된 골목으로 들어가니 중세풍의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낡은 교회도 보였다. 골목 한 곳에는 외국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 마켙도 있었다. 다른 데서는 관광객이라곤 별로 보이지 않더니만 이곳에서는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물건을 구경하고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 한 중년 남자가 크라리넷으로 클래식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귀에 익은 곡조였다. “아키니타”였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 들러 그림엽서 몇 장을 샀다. 30장에 11유로였다. 젊은 처녀 아이가 팔고 있었는데 50유로짜리 지폐를 주었더니 계산하는데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다. 골목에는 여기 저기에 교회나 성당건물이 많아 보였다. 두 손을 모은 그림이 붙은 건물의 성당내에서는 수녀가 기타를 치며 미사를 보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다시 광장 한쪽으로 나왔다. 이렇게 외딴 동구 빌뉘우스에도 우리나라의 [SAMSUNG] 이라는 광고판이 서 있는 걸 보니 올림픽게임에서 종합8위의 성적을 거둔 것만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마켓팅을 하는 경제팀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에 이르러선 그 나라의 문화를 모르고는 마켓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문화의 비중이 높아졌다.
15:34, 빌뉘우스를 구석구석 돌아보려면 하루쯤 머물러도 시간이 모자라겠지만 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중요한 볼거리는 대충 둘러본 셈이므로 다음 행선지인 라트비아의 리가(Riga)를 향해 출발하였다.
16:11, 빌뉘우스 시내를 빠져 나와 리가로 가기 위해 A2 고속도로를 탔다. 조금 가다보니 졸음이 와서 눈이 슬슬 감겨 왔다. 잠이 한참 쏟아질 때에 눈꺼풀을 내리 누르는 체감중량은 50톤이나 된다고 한다. 과장이 심한 중국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로 보이지만 며칠간 잠을 자지 못하면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 가운데서도 수마가 찾아온다고 하니 생리작용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가에 마련된 Parking Place로 들어가서 차를 잠시 주차 해 놓고 식빵으로 점심을 때웠다. 10분후 다시 출발을 했다. 차는 광활한 평원의 황금벌판 가운데 북으로 곧게 뻗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왕복 4차선 고속도로이지만 오가는 차량수는 별로 많지 않았다. 5시 30분, 주유소에 들어가 기름을 보충하였다.
17:47,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헤드라이트를 켰다가 끄면서 신호를 보내왔다. 경찰이 과속단속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속력을 낮추었다. 잠시후 도로가에서 경찰이 스피드건으로 과속차량을 적발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마터면 과속으로 적발되어 벌금을 물게 될 뻔하였다. 6시10분, 리투아니아/라트비아 국경을 통과하였다.
19:29, 리가 시내에 진입하여 강을 따라 죽 올라갔다. 내륙에서 흘러 내려온 강이 바다와 만나는 폭이 제법 넓은 강 하구였다. 강 건너편의 대형빌딩 옥상에는 LG 로고가 새겨진 광고판이 눈길을 끌었다. 강 하구의 부두에는 대형 크루즈선이 접안해 있었다. 차를 바닷가 쪽으로 계속 몰고 갔더니 오래된 부두가 나왔다. 하역장비들도 방치된 채 녹이 슬어 벌겋게 되어 있었다. 살아있는 것이라곤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 우범지구로 보였다. 간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이크! 큰일 났군!” 싶었다. 잘못했다간 강도를 만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도 있겠다 싶어 급히 차를 돌려 나왔다.
시내로 도로 나와 요트 계류장 옆에 차를 잠시 세워 놓고 차 안에 있던 중요서류는 가방에 넣어 어깨에 메고 카메라는 손에 들고 걸어서 돔스키 성당까지 가보기로 하였다. 요트 계류장이 있는 걸 보니 서민들의 생활수준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 보였다. 서녘 하늘엔 낮 동안 대지를 뜨겁게 달구었던 태양이 붉은 노을에 휩싸인 채 서서히 함지박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해가 지고 나니 길거리엔 금세 어둠이 스며들었다. 전깃불이 하나 둘 켜지면서 레스토랑에선 관광객들이 테이블에 앉아 라이브 음악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시내 번화가에선 골목마다 카페와 레스토랑에선 젊은 남녀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성당의 뾰족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어 도시의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었다.
성당 앞에 도착하였으나 육중한 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으나 안에서는 미사가 진행되는지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여왔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강가 산책길로 나왔더니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왔다. 강가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에서는 모터 보트를 타는 사람들도 있고 유람선도 다니고 있었다. 으슥한 골목길에 세워둔 차는 유치창이 박살나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주차해 둔 요트 계류장으로 돌아오니 9시 7분전이었다. 혹시 차 속에 있는 물건을 꺼내 가려고 차 유리창을 부수지나 않았나 내심 걱정을 하였으나 다행히 그대로 있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캠핑 사이트 찾기에 들어가야 한다.
9시, 리가 시내를 도로 빠져 나와 A2 고속도로를 찾아 동쪽인 Sigulda로 향하기로 했다. 시내에는 캠핑사이트 표시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다음 행선지인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21:30, 상트 페테르부르크 방향으로 가려고 A2 고속도로를 계속 찾았으나 A2 고속도로표지판이 보이지 않아 도로 수리 공사를 하는 지점에서 도로 돌아왔다. 우선 길을 찾아야 했으므로 주유소 앞에 차를 세우고 두 아들을 내 보내 물어 보기로 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으므로 지도책을 들고 가서 시굴다(Sigulda) 도시를 가리키며 리가에서 가는 길을 물었다. 주유소에서 가르쳐 준대로 빠져 나가 겨우 길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예상대로라면 리가에서 조금 벗어난 교외 지역에 캠핑사이트가 하나 정도는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캄캄한 어둠속을 한 시간이나 계속 달려도 캠핑사이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22:30, 도로가의 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했다. 완전히 칠흑 같은 밤중에 어디서 캠핑 사이트를 찾는단 말인고? 정보도 제대로 없는데다 여행 거리를 너무 무리하게 멀게 잡은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