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미래][2. 황금의 팔]

[앙＇s]

[제국의 미래][2. 황금의 팔]

 분홍색 꽃이 수놓인 식탁보의 식탁 위엔 바삭한 식감의 빵과 작은 원형 통에 담긴 딸기잼과 땅콩버터, 달달한 향의 양젖 요구르트가

놓여 있다. 소르는 잼 나이프로 딸기잼을 듬뿍 덜어 한 줌 뜯어낸 빵에 발라 한 입 베어 문다. 빵은 막 구워낸 것인지 따뜻하고 바삭

하다. 소르의 맞은 편에 앉은 캐서린은 소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커피포트에서 끓는 소리가 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귀여운 곰

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머그컵에 커피를 따른다. 그러고선 입김을 후 분 뒤, 눈을 살며시 감은 채 커피의 향을 음미한다. 만족스러운지

살짝 미소를 짓고 다시 자리에 앉아 빵을 뜯어 커피에 살짝 찍어 먹는다. 마침 햇빛이 그의 뒤에서 비춰, 맞은 편에 앉은 소르의 눈엔

후광이 비치는 것 처럼 보여 캐서린의 금발이 더 빛나 보인다.

 "맛있니? 음식이 맞을지 모르겠어서 시장에서 양젖 요구르트를 사 왔거든. 먹어봐."

 "네, 맛있어요. 고향에선 주로 생선을 먹었는데 오랜만에 빵을 먹으니까 맛있네요. 양젖 요구르트는 오면서 자주 마셨는데 아무래도

날씨 때문에 신선한 걸 먹어본 적이 거의 없어서 이런 달달한 향은 처음이에요."

 "먹기 불편하진 않지?"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라 괜찮아요. 그래도 빨리 팔을 달고 싶긴 해요."

 "의수는 이따 기지를 다 구경한 뒤, 오후 쯤에 테일러 씨가 기지에 오신다고 했으니 그 때쯤에 얘기할 수 있을 거야."

 "빨리 만나고 싶어요."

 의수 얘기가 나오자 소르의 눈이 빛난다. 캐서린은 그런 소르의 눈빛을 보자 한 남자의 눈빛이 떠오른다. 그러나 두 사람의 눈빛은

같은 눈빛임에도 느낌이 달랐다. 하지만 캐서린은 두 눈빛이 다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다시금 빵을 뜯어 입에 넣는다.

 제노사이드의 기지는 캐서린의 집에서 멀지 않았다. 캐서린이 차를 운전하는 동안 소르는 신기하다는 듯 줄곧 창 밖의 풍경을 응시(

凝視)했다. 그의 눈에는 그것들이 낯설었을 것이다. 높게 치솟은 건물들과 잘 정리된 도로, 그 외에도 지나치리만큼 인공적인 냄새가

나는 가로수며 사거리의 대형 분수 같은 것들은 그의 눈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소르는 기지에 도착할 때까지도 넋을 잃고 있었

다.

그도 그럴 것이 메탈릭한 건물의 외관은 제국민들이 보기에도 꽤나 독특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린 캐서린과 소르는 철의 장

막만큼이나 서늘한 건물로 발을 들인다. 회전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온 소르는 또 한 번 놀라고 만다. 그가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그의 시야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소르는 본격적으로 군사기지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입구엔 어느

건물에나 있을 법한 로비가 자리하고 있다. 아마도 비밀군사기지라는 것을 외부인들에게 감추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으나, 그럴거

면 애초에 저 독특한 외관부터 좀 더 평범하게 만들었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소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캐서린은 로비

에서 소르의 목걸이 형태의 신분증을 받아 온다. 신분증에는 이름 대신 머라우더(Marauder)라는 칭호와 물의 소년이라는 코드네임

이 적혀있다. 아마 로비에 있는 저 여자는 군인인 모양이다. 신분증을 건내준 캐서린은 말 없이 저 뒤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소르는 당황하여 허겁지겁 캐서린을 따라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벽에 붙어 있는 버튼을 누르고 문이 열릴 때까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정적이 흐른다. 사실 소르만 느끼지 못한 것일 뿐, 이 정적은 차를 막 탔을 때부터 계속된 것이었다. 캐서린과 소르

는 엘리베이터의 안으로 들어가고, 캐서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어떤 버튼 하나를 누르고 문을 닫는다.

 "누나."

 "후─."

 캐서린은 무표정이었던 얼굴을 펴고 깊은 한숨을 쉰다. 그리고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한다.

 "소르, 잘 들어. 이제부터 외부에서는 절대 너가 제노사이드라는 것을 밝히면 안돼. 원래 불법입국자는 군인이 될 수 없을뿐더러, 어

제 말했듯이 우린 비밀 군사 조직이야.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 둬야 해."

 어제, 그리고 오늘 아침에 봐 왔던 캐서린과의 말투와는 사뭇 다른 말투였다. 소르는 아마도 자신에게 확실하게 상기시키려는 의도

에서 나온 말투가 아닐까 생각한다. 거기에 소르는 캐서린에게 자신은 확실히 알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

한다.

 "알고 있어요, 누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나 마에스트로나, 저를 믿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저를 제노사이드에 들이지도 않았겠

죠. 전 반드시 성공할 거에요. 반드시. 그게 저의 이유니까요."

 소르의 말엔 무언가 간절함이 담겨 있다. 그러나 어구에선 이질감이 느껴진다. '제 삶의 이유'가 아닌 '저의 이유'라니. 단순하게 실

수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캐서린은 소르의 그 간절함 때문에라도 분명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웃는 얼

굴로 저런 말을 하는 소년에게 그 속사정까지 묻고 싶진 않아 그냥 넘어간다.

 둘의 짧은 대화가 끝나자 엘리베이터는 목적지에 도착해 문이 열린다. 캐서린은 소르를 데리고 '서부사령부 사령관실'이라는 팻말이

달린 방으로 노크를 하고 들어간다. 그러나 이 방엔 주인이 자리하지 않고 있는 책상과 소파가 있을 뿐이다. 캐서린은 잠시 고민하더

니 복도 안 쪽으로 좀 더 걸어가 팻말은 붙어있지 않고 문 앞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경고문이 써져 있는 방문을 확 열어젖혀 소

르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방은 굉장히 컸고, 안에는 소르가 처음 보는 기계들이 사방에 자리잡고 있다. 소르가 아는 기계라고

는 기껏해야 모니터 정도였다. 서부 슬럼에서의 모니터는 주로 거리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주 용도는 마을의 장(長)이 전체 알림이 있

을 때 모니터를 이용해 알리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간단한 회로의 연결과 전기만 있으면 어디서나 가능한 것이었으나 슬럼의 주민

들은 굉장히 신기해했다. 소르도 당시엔 그것이 신기했으나, 지금 그의 눈 앞에 있는 것들이 전부 처음 보는 것들이기에 이미 봐왔던

모니터가 오히려 친숙할 정도이다. 소르가 기계들에 한눈파는 동안, 캐서린은 긴장한 눈빛이 역력한 여자와 여유로운 표정의 남자에

게 다가간다.

 "아직 점심도 안 됐는데 벌써 업무가 끝나셨나보군요, 마에스트로."

 "캐시, 오해하지 말게. 난 단지 루시가 너무 피곤할 것 같아서─"

 "변명은 그만두시는게 좋을 겁니다, 마에스트로."

 "알겠네, 알았다고. 자, 이제 항복했으니 물의 소년에게 루시를 소개하지 않겠나?"

 마에스트로는 캐서린의 표정이 좋지 않자 두 손을 살짝 들고 항복했다는 표시를 하며 화제를 돌린다. 물론 당연한 수순이었으나 캐

서린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여전히 마에스트로를 노려본다. 결국 눈치를 보던 '루시'라는 여자가 먼저 자신의 소개를 한다.

 "안녕, 난 제노사이드의 작전참모, 지니어스야. 이름은 루시아, 그냥 루시라고 부르면 되. 업무는 제노사이드의 데이터베이스 관리와

화학, 설계야. 그리고 유사시엔 작전설계와 지휘를 맡아. 넌 소르지?"

 소르는 루시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란 눈치다. 그러나 이내 이 여자의 업무라면 당연히 알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네, 제 이름을 아시는 것 같지만 그래도 소개할게요. 제 이름은 소르 턴테입니다. 머라우더, 물의 소년이죠."

 소르가 루시와 대화를 이어나가자 마에스트로는 기회를 포착한 듯, 캐서린의 눈치를 살피며 방을 나간다. 그러나 캐서린은 애초부터

둘의 대화엔 관심이 없었던 터라 소르에게 귓속말을 한 뒤, 마에스트로를 따라 방을 나간다. 캐서린이 방에서 나가자 루시는 귓속말

의 내용이 궁금했는지 소르에게 슬쩍 귓속말의 내용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아무래도 이 여자는 지식욕이 충만해서 궁금한 것은 절대

참지 못하는 모양이다.

 "소르, 방금 캐서린 씨가 뭐라고 말했니?"

 "별 말 없었어요. 루시 누나한테 제노사이드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라고 하더라고요."

 "누나? 이거 왠지 듣기 좋은걸?"

 루시는 누나라는 소리가 좋은 듯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소르는 그런 루시의 반응엔 관심이 없는 듯, 본격적으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시작한다.

 "누나, 제노사이드의 다른 대원들을 알 수 있을까요?"

 "그럼, 물론이지. 우린 형식상 소대(小隊)지만 사단(師團)급의 위치에 있어. 개개인의 군사적 능력이 뛰어난 군인들만 모여 있는 곳

이거든. 그렇기 때문에 다들 나름대로의 프라이드도 있고 개성도 강해. 소르, 너가 방금 물어본 질문은 정말 탁월한 질문이야."

 "아, 뭐 그런 의도로 물어본 건 아니었어요. 그냥 얼굴을 알아두는게 당연한 거니까요."

 "이유야 어쨌든 결과가 좋았다는 소리야. 자, 이리로 와 봐. 지금부터 하나하나 설명해 줄 테니."

 루시는 소르를 화면 가까이 데리고 간다. 화면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것과 비슷한 신분증이 나와 있다. 다른 점이라면 화면에 나

와 있는 신분증엔 그 사람에 대한 세부 정보까지 모두 나와 있다. 첫 번째 남자는 한 눈에 보기에도 무서운 인상을 하고 있다. 구릿빛

피부에 민머리의 이 남자는 체격도 우람해, 꽤나 폭력적으로 보인다.

 "이 남자는 웨펀마스터, 최종병기야. 제노사이드 내에서 대군(對軍)공격력은 최강이라고 일컬어지지. 제노사이드의 전투에서 없어서

는 안 될 남자야. 이 남자가 없으면 전면전을 구사할 수가 없으니까. 다행이 이번에 소르, 너가 들어와서 걱정은 덜긴 했지만, 아직 너

가 전투에 직접 투입될 능력은 안 되니까 그 때까진 전적으로 이 남자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지. 덧붙여서 이 남자는 성격이 그다지

좋지 않으니 웬만하면 얽히지 않는게 좋아."

 역시나 외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성격이 좋지 않다. '군인'이라고 생각하면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상이랄까, 물론 일반화는 금

물이겠으나 이 남자는 확실히 군인에 어울리는 남자이다. 이 남자가 그렇게 성격이 나쁨에도 제노사이드의 일원인 이유는 루시가 말

한 것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이 남자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소르가 최종병기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화면엔 다음 신분증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신분증의 사진으론 이 사람의 성별

조차 구분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진 속의 인물이 전투용인듯 헬멧과 방탄용으로 보여지는 전신수트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소르

에게 특히 더 혼란을 준 것은 이 사람이 남자라기엔 체격이 너무 왜소하고, 여자라기엔 몸의 굴곡이 적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루시의 설명으로 소르의 혼란은 금새 해소된다.

 "이 남자는 스카웃, 헤이스트야. 실제로 본 사람은 마에스트로밖에 없지만 정찰병으로서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해 주고 있어. 키메라

인간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있는 남자기도 하지. 그 외에는 정보가 없어. 군 중앙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한다면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도박을 하면서까지 정보를 알아내고 싶진 않거든. 이 두 남자랑 소르 너가 본 우리 셋, 그리고 너. 이렇게 여섯 명이 제노사이드

의 총 일원이야. 사실 예전엔 좀 더 있었는데 전사(戰死)하는 바람에 인원이 꽤 줄고 말았지. 그래도 최근엔 리바이어던에게 거의 근

접한 상태라 아마도 향후 5년 내엔 녀석들과의 전면전에 돌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암울한 상황은 아니야."

 소르는 제노사이드가 자신을 포함해서 고작 6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러나 제노사이드가 이런 소수의 인원임에도

'사단'급인 이유는 대원 모두가 최강의 능력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6명은 '불사의 존재'인 리바이어던을 말살시키라

는 명령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리바이어던, 소르는 이 녀석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자신의 팔을 물어뜯은 그 녀석, 반드시 말살

시켜야 하는 그 녀석들.

 "누나, 리바이어던에 대한 모든 것들을 알고 싶어요. 놈들 개개인의 정보라든가, 베아트리스 교수의 연구일지라든가, 알 수 있는 모

든 정보들은 전부 알고 싶어요."

 소르는 의욕의 찬 눈빛으로 말한다. 지식욕이 넘치는 루시에게 이런 소르의 태도가 얼마나 사랑스러워 보일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

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첫인상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소르는 루시에게 꽤나 좋은 평가를 받을 가

능성이 농후하다.

 "소르, 너 나랑 코드가 맞는 것 같은데? 좋아, 아무래도 이런건 혼자 조용히 보는게 좋을 테니까 리바이어던 녀석들의 프로필과 제노

사이드 대원들의 프로필을 인쇄해서 줄게. 그리고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베아트리스 로만 교수의 실험일지와 논문, 교수의 일기는 지

하 도서관에 있으니까 빌리면 될 거야. 더 필요하거나 궁금한 점이 있니?"

 없어요. 라고 대답하려던 찰나, 궁금한 것들이 생각난다. 로비에 있던 여직원, 본 진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늘따라 이상해 보이

는 캐서린. 그 외에도 이 제국에 관한 것들이나 처음 접한 기계 같은 것들 등도 궁금했으나 이런 것들은 차차 생활하면서 알아가기로

결정하고, 로비의 여자와 캐서린에 대해서만 질문하기로 한다.

 "로비에 있던 여자분, 군인인가요?"

 "응? 푸훗. 소르, 너 정말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네?"

 루시는 소르가 뜸을 들이길래 뭔가 또 심각한 얘기를 하려나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르가 뚱딴지 같은 질문을 하기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온 것이다.

 "아니아니, 됐어. 큭큭. 그 여자는 군인이 맞아. 여긴 군용 건물이니까. 설마 소르 너, 제노사이드가 비밀 군사 부대라서 우리 기지도

어딘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뭐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일단은 우리 신분이 군인이라서 그것

까지 따로 숨길 여력은 없어. 그래서 우린 '제노사이드'라는 사실을 숨기고, 다른 부대의 대원으로 위장전입을 하고 있지. 사실 비밀

이래봤자 군 상층부는 전부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건 없어."

 "그렇군요. 군인은 군인이되 비밀 부대의 대원이라는 사실은 숨긴다라, 적을 속이려면 우리 편부터 속여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황제가 생각한 거야. 그 사람, 군인 출신이라서 군대 내부 정황에 대해선 족집게거든."

 군인 출신의 황제라. 리바이어던에 대한 정부의 자료가 파손되었다는 사실과 연관해 보면 알 수 없는 수상한 냄새가 난다. 게다가 리

바이어던은 스스로를 레지스탕스라고 칭한다는 점도 연관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이 황제란 작자에 대해선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캐서린에 대한 질문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궁금한게 있어요. 캐서린 누나에 관한 건데……."

 "캐서린 씨?"

 "네, 누나가 어제랑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던데, 오늘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소르의 질문에 루시는 무슨 일이 있는지 생각해본다. 눈살을 찌푸리며 십수초 동안 생각하더니, 드디어 무엇인지 알아낸 듯 눈을 동

그랗게 뜨며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이내 미소는 수그러들고, 꽤나 무거운 느낌의 얼굴로 변한다.

 "오늘은 글쎄, 별로 안 좋은 날 정도로만 알아두는게 좋을거야. 캐서린 씨의 성격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외엔 알게 하고 싶지

않을 거니까."

 "아, 죄송해요."

 "죄송할게 뭐가 있어. 이제 더 이상 궁금한 건 없니?"

 "네."

 소르는 괜히 마음이 무거워진다. 물어보지 말아야 할 것을 물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캐서린에게 직접 묻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캐서린의 이야기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아 어색한 정적이 흐른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 정적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캐서린이 방으로 들어와 소르를 찾았기 때문이다.

 "소르, 테일러 씨가 오셨어. 생각보다 빨리 오셨지만 그 편이 너한텐 희소식이겠지?"

 "정말 기대되는데요. 빨리 가요, 누나."

 "그래, 빨리 가자. 루시, 수고해요."

 "아, 네. 수고하세요."

 캐서린은 루시에게 수고하라는 인사를 하고 소르를 데리고 복도로 나간다. 소르는 기대에 부풀어 싱글벙글한다. 팔을 잃었을 때의

그 충격, 도대체 얼마나 기절해 있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 절망과 고통의 심연 속에서 헤매던 그 시간에서 이젠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이토록 기쁘게 만든다. 캐서린은 소르가 저렇게나 기뻐하자 자신도 기분이 다소 좋아지는 것을 느낀

다. 어쨌거나 매년마다 이렇게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좀 더 마음을 다잡아야만 한다. 캐서린이 소르를 데리고 도착한 방은 거대한

무기고다. 이 곳 역시나 소르에겐 별천지나 다름없다. 처음 보는 무기들이 가득해 무엇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그나마 눈에 익는 무기들은 총, 포 등과 같은 범세계적 무기들 뿐이다. 무기고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은 노인과 소

녀였다. 아마도 노인이 마에스트로가 말한 '제국 최고의 의지공'인 것 같다. 노인은 이미 머리가 하얗게 세 저 정도의 손녀가 있다고

보기엔 꽤나 늙어 보이고, 왠지 모르게 날카로운 느낌이 든다. 반면 소녀는 긴 생머리의 금발을 사과머리로 묶어 상큼한 느낌이다. 게

다가 꽤나 발랄한 느낌의 얼굴이어서 사람과 금세 친해지는 성격일 것 같다.

 "이 소년인가?"

 "네. 어떻게 보면 테일러 씨에겐 인연일지도 모르겠네요."

 "예끼, 이 사람아.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아. 그나저나 이 처리 방법은 그 녀석의 짓이겠구만."

 "출혈이 너무 심한 상태여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래, 신경이 짓이겨지지만 않았으면 상관 없어. 짓이겨졌으면 이 아이가 고생깨나 해야겠지만."

 소르의 느낌과 달리 노인은 그다지 신경질적인 구석이 없다. 오히려 자신을 걱정해주는 모습이 꽤나 자상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노인이 말한 처리 방법이란 상처 부위를 불로 지져 버린 것을 말하는 듯 하다. 솔직히 소르는 팔이 지져져있는 것을 처음 봤을 때, 다

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맨 정신에 상처를 지지는 고통 따위를 버틸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초면이니 인사부터 하는게 예의인데, 인사가 늦어서 미안하네, 어린 친구여."

 "아, 아닙니다. 저야말로 뵙자마자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저는─"

 소르는 말을 끊고 캐서린을 돌아본다. 캐서린은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소르 턴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난 그냥 토르라고 부르게나. 이전에 쓰던 코드네임인데, 그게 듣기 편하거든."

 토르는 말을 끝마치면서 캐서린을 쳐다본다. 생각해보니 캐서린은 토르를 '테일러 씨'라고 불렀다. 토르는 아무래도 그것이 싫은 듯

하다. 토르가 '코드네임'을 언급한 것을 보면, 토르도 이전에 군인이었던 것 같다. 소르는 토르가 어쩌면 제노사이드였을지도 모른다

는 생각도 들었으나, 마에스트로가 어제 해 준 말들을 살펴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결론내린다.

 "이 아이는 내 손녀딸, 페넬로페라네. 자, 인사하려무나."

 "안녕, 페넬로페 테일러야. 너 어쩐지 낯이 익는데, 착각이겠지. 그나저나 너 대단하던데? 그 철의 장막을 무너뜨리다니. 요즘 상당히

이슈야."

 소르는 어안이 벙벙하다. 초면에 반말이라니. 아무리 또래로 보여도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렇게 허물없

이 대하는 것도 능력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상대가 먼저 반말을 했으니 소르도 반말을 하기로 한다.

 "그래? 별로 좋진 않은데. 나이가 어떻게 되니?"

 "열여섯. 너랑 동갑이야."

 "어떻게 내 나이를 알았어?"

 소르는 깜짝 놀라 눈이 둥그레진다. 자신은 제국에 건너온 이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나이를 말한 적이 없었다. 도대체 페넬로페는 소

르의 나이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소르는 혹시 제국에서 자신의 모든 신상정보를 알아낸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페넬로페의 대답에 의심의 불씨는 사그라진다.

 "너, 낯이 익는다니까. 아마도 우리 본 적이 있을거야."

 "말도 안 되.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는 걸거야."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자신은 제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절대 만난 적이 있을 리가 없다. 소르와 페넬로페의 대화가

끝나자 캐서린이 페넬로페에게 말을 건다.

 "페넬로페는 요즘 잘 지내니?"

 "네. 몇 개월 전부터 할아버지한테 의지공 수업을 받고 있어요. 아직 혼자서 만드는건 무리지만, 할아버지를 보조할 정도는 되요."

 "그럼 오늘도?"

 "네. 게다가 오늘은 정말 특별한 걸로 만들거든요."

 특별한 것이라는 말에 소르는 마에스트로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자신이 하는 걱정은 해결해 줄 것이라고. 아마 그 해결책이 페넬로

페가 말한 '특별한 것'인 모양이다.

 "내 살다살다 이걸로 의수를 만들긴 처음이야. 그나저나 그 녀석, 아직도 나한테 무기를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하던데, 염치가 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렇지만 테일러 씨 만한 아키텍트가 없잖아요. 게다가 저희 상황에 다른 아키텍트에게 부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테일러 씨가

이해해주세요."

 "내가 현역에서 은퇴한 지가 얼만데, 아직도 그렇게 추켜세우나. 그렇게 비행기를 태우니 화낼 수도 없고 이거 원. 아무튼, 저 친구가

이걸 굉장히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당장 보여줘야겠군."

 그렇게 말을 끝마치고 토르는 그 것을 덮고 있던 붉은 천을 걷어낸 뒤, 꽤나 커다란 나무 상자를 연다. 상자 안엔 정말 생각도 못한

것이 들어 있다. 누가 이 것으로 의수를 만들 생각을 하겠는가. 그러나 확실하다. 물과 절대 반응하지 않아 소르에겐 최적이다. 게다

가 이 금속은 굳기가 낮지만 전성과 연성이 매우 높아 파괴될 일은 거의 없다. 잘만 활용한다면 충분히 의수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

을 것이다.

 "자네에게 황금의 팔을 달아주지."

 토르가 상자에서 꺼낸 것은 황금이다.

[개조심]

군대에서도 짬나면 쓸거지? 재밌게 읽엇고 왠지 설정이 묘하게 강철의 연금술사랑 맞아 떨어지는게 몇개 잇어서 ... 약간 걸리네 그래도 아직 초반이니깐 좀더 이야기를 끌고 나가면서 강철과는 확연히 구별되게 햇으면 좋겟어. 군대 잘갓다와. 아흙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앙＇s]

글쎄, 외박은 시간이 짧아서 힘들겠고.. 그래도 틈틈이 쓴다면 외박 2~3번 나올 때 한 번 정도는 쓸 수 있겠지. 물론 그렇게 쓸 거라고 장담은 못하지만.. 설정은 프롤로그에서도 밝혔듯이 나로선 항변이 불가능한 부분이라 노 코멘트 할게. 내용 전개는 다를거야.

[[영웅]Micco]

어줍잖은글에는 비웃음과 비난이 몰리지만 빼어난 글에는 감탄이 절로 실리는것이 인간의 도리. 표현에는 섬세함이 담겨있고, 스토리에는 탄탄함이 담겨있으니, 읽는이의 얼굴에 미소가 실리는것이 당연. 재밌게 읽고 갑니다.

[앙＇s]

나에게 너무 과한 댓글을 단 게 아닐까 싶다. 특히 화학적 지식에 대해선 너한테 도움 받은게 많으니 순전히 내 능력만도 아니지. 수능 끝나면 너의 좋은 글 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