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읍성지(蔚山邑城址) 탐방"
울산에는 많은 문화 유적지가 있습니다. 계변성, 고읍성, 울산읍성, 울산왜성, 삼포개항지, 화정천내봉수대, 대왕암 등 실로 많습니다.
그중 중구 중앙동에 있는 울산읍성지를 탐방하고 관련된 문화재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울산읍성둘레길>과 <울산읍성길 이야기로>를 탐방해 보고자 합니다.
울산읍성은 왜구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서 고려 우왕 11년(1358)에 처음 축조하였습니다. 그후 조선 성종 8년(1477)에 개축하여 완성하였습니다.
당시 성곽의 위치는 중구의 옥교동, 성남동, 교동, 북정동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군이 허물어서 울산왜성 축조에 사용되어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성곽지는 추척으로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현재 중앙동에 있는 동래읍성둘레길과 울산읍성길 이야기로를 탐방해 보면 될 것입니다. 그 읍성둘레길에 의하면 성곽과 동서남문지는 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본래의 성곽이 축소되고 북문지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성곽이나 성문이 모두 중구 중앙동내로 되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의 성곽은 중구의 북정동, 교동, 성남동, 옥교동으로 광범위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읍성둘레길은 양사초등하교, 울산동헌, 울산시립미술관, 울산초등학교(舊)를 둘러싼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 울산읍성둘레길은 서문지에서 북문지를 거쳐 동문지로 가도록 안내되어 있습니다. 북문지는 표지판이 없어서 그 위치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서문지에서 북문지(추측)로 해서 동문지까지 읍성둘래길만 확인했습니다. 북문지는 해남사 왼쪽인 것 같으나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해남사 왼쪽에서 동남쪽으로 성마을길이 있으므로 그 부근에 북문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환언하면 해남사 왼쪽(서편)의 약간 높은 지대가 북문지일 것 같기도 합니다. 고지도에는 북문이 표시되어 있으나 어딘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울산동헌내 오송정의 서북편 되는 곳입니다.
울산읍성둘레길 표지판은 전신주 높이 붙여 있으므로 찾는데 좀 신경이 쓰였습니다. 길바닥에는 간간이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어서 다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둘레길표지판은 서문에서 해남사까지 4개이고, 그 해남사에서 동문지까지 1개로 모두 5개였습니다.
동문지, 남문지, 서문지는 <울산읍성길 이야기로>를 따라 찾으면 되는데 그 표지판을 확인하기가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표지판이 작은 길안내판처럼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동문지, 남문지, 서문지도 확인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남문은 "강해루"라 칭하였습니다.
중앙동은 울산읍성지나 울산부동헌 등 한말이전의 유적외에도 볼거리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특히 고복수길과 음악관은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안성맞추이었습니다. 고복수는 아시다싶이 타향살이, 휘바람, 풍년가 등을 불러 인기절정의 가수가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학원을 차려서 동백아가씨의 이미자와 대전부루스의 안정애 같은 유명한 가수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황금심은 고복수의 부인이란 사실입니다. 그녀는 미성의 육성 가수로 4천곡 이상을 불렀다고 합니다. 음성이 너무 좋아서 마크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울산 큰애기란 노래도 황금심이 처음 부른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풍년가는 부군 고복소와 함께 불러서 더욱 유명한 곡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대중가요에 길이 빛나는 부부 가수였습니다.
울산 중구 중앙동은 부산의 동래와 같이 유적지가 많았습니다.
뿐만아니라 유적지가 아니더라도 맨발의 청춘길, 울산 큰애기상가, 친구2 촬영지 등 일반 볼거리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가족들이나 친지 들과 나들이 하기도 좋은 곳입니다. 특히 부산지역 거주자들은 거리상, 교통상 탐방하기 아주 좋은 곳입니다.
그리고 울산시립미술관에도 가 보았습니다. 전부 영상 작품이라서 특이했습니다. 그런데 미술관인데 회화(繪畵)작품이 전혀 보이지 않아 다소 이상했습니다.
이상 두서 없는 말로 중앙동 유적지 탐방 소감을 알려 드립니다.
《한국서지학회 명예회장 김치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