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본1 - 쾰른에서 기차를 타고 옛 서독의 수도 라인강변 본에 가다!
독일 중서부 쾰른 중앙역 Koln Hbf 에서 12시 40분에 출발하는 IC 기차를 타고는
라인강을 왼쪽에 끼고 20분간을 달려 13시에 본 중앙역 Bonn Hbf 에 내립니다.
본 중앙역 에서 나와 시내지도를 보고 걸어서 7분만에 뮌스터 광장 에
도착하니.... 먼저 갈색 벽돌로 지은 뮌스터 사원 Munster 이 보입니다.
이 교회는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양식 으로 옮겨가는 전환기의 건물로는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는데... 12세기에 지어진 첨탑 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 성당에서 1,314년에 프리드리히 왕 과 1,346년에 카를 5세 신성로마제국 황제 의
대관식 이 거행되었다고 하는데 첨탑은 무료 라지만 시간이 없어 오르지는 못합니다.
교회 내부로 들어가서는 스테인드 글라스 며 파이프 오르간 을
구경하고는 다시 나와 마르크트 광장 으로 가다 보니....
저 뮌스터 광장 에는 이 도시 본 출신의 음악가 베토벤 동상 이 서 있다고
했는데...... 미처 보지 못했으니 어떡한다? 지금 다시 돌아가야 하나!
나중에 돌아올때 찾아 보기로 하고 걷는데 도로변 건물에 여자 바이킹 전사 가
뿔 투구에 도끼 를 들고 장난스레 서 있는 모습이 우리 눈길 을 끕니다.
5분을 걸어 도착한 마르크트 광장 에는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으니 구시청사 Rathaus 인데
반대편에 탑 을 보면서 베를린으로 옮겨가기 전의 서독의 수도 였던 본을 떠올려 봅니다.
이 도시 본 Bonn 은 원래 라인강 좌안에 위치한 소도시였으나... 1949년에
서독의 임시수도 가 된후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옛 본의 시역 안에는
국회의사당 이 신축되고 코블렌츠가에는 대통령 및 수상 관저 가 자리했습니다.
쾰른 과의 사이에는 1932년 완성된 아우토반 이 개통하고 코블렌츠와 사이에는 유람선 이
운항되며... 시내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뮌스터 교회 가 있고 베토벤의 탄생지 입니다.
쾰른 선거후 거성이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대학 과 라인 향토박물관, 알렉산더왕 박물관
에 바로크 양식의 시청 청사 그리고 베토벤의 생가 와 콘서트홀인 베토벤홀 이 있습니다.
본은 원래 켈트인의 취락 이었으나 1세기 중엽에 로마군의 성채 가 설치되고 이후 프랑크족
지배아래 게르만의 도시가 되었는데 1244년 쾰른 대주교 에 의해 도시권이 부여 됩니다.
1,964년 경제개발 자금 을 빌리기 위해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은
당시 독일의 수도이던 이 도시 본 에서 뤼브케 대통령 을 만났습니다.
박대통령은 간절한 심정으로“지금 한국인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으니
도와달라” 라고 눈물을 흘리며 간청하였고... 광부와 간호사의
임금 을 담보로 해서 경제개발 자금 1억 5천만 마르크를 빌렸다고 합니다.
2차대전후 17년간 한국에 막대한 경제원조 를 해주었던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이
경제개발 자금 까지는 빌려줄수 없다고 거절하니 독일로 눈을 돌린 것
인데... 한국에 돈을 빌려줘 봐야 돌려받을 길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해방후 일본인 사장 들이 일본으로 돌아가 버리니 한국의 공장들은
가동을 멈추었고 직원들은 원료나 재료를 시장에 내다 팔아먹었는데
미군정하에서 소득세 10위 중에 중국인 화교 가 6~7명씩 차지했던 시절입니다.
한국에서는 봄이면 보릿고개 라고 해서 굶어죽은 시체 가 거리에 널렸으니
미군 부대에서 먹고 버린 음식 을 씻어서 끓인게 "꿀꿀이죽" 이요...
미군이 씹다 버린 잔밥통 을 뒤져서 건진 고기 조각을 재료로 끓인게 "부대찌개" 이고!
미국이 주는 옥수수 죽 으로 연명하고 필리핀과 인도에서 원조 를 받던 시절 입니다.
이승만 정부하에서는 기업다운 기업이 없으니 농업국가 한국 은 국세 수입이
너무 작아 공무원 월급 줄돈 도 안되니... 국가 재정의 70% 를 미국의
원조 로 충당했는데... 이제 미국이 쿠데타 군인들에게 등을 돌린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에서 빌려온 저 금액은 그리 큰 돈이 아니라서 결국 박대통령은
민족의 원수 인 일본정치인 과 일본경제인 을 만나 무릎 꿇고 머리숙여
도움을 호소하여 청구권 자금 6억달러 를 받아 경제 개발 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중 농업개발에 사용될 1억달러 를 박태준 이 와세대대학 은사를 통해 야스오카 세이도쿠
라는 인물을 소개 받고 그의 주선으로 일본 외상 아이치와 통상상 오히라등을
만나서 관계자들을 설득해 간신히 용도를 바꾸어 공업의 쌀인 "포항제철" 을 짓게 됩니다.
하지만 야하타 제철과 후지 제철 사장과 담판했으나 기술이전을 꺼리는 탓 에
제철소 건설이 무산되는가 싶던 중에 합병한 신일본 제철 사장
이나마야 요시히로 를 휴가지 까지 뒤따라 가서는 마침애 설득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1억불로는 새 기계설비를 구입하기에는 돈이 모자라니 일본 기술자 들이
신일본 제철의 기계설비 를 뜯어와서는 포항에서 공장을 조립 하고
선발된 한국인들을 기술자로 훈련 시키면서 첫 쇳물까지 뽑아주었던 것입니다!
5억불은 울산공업단지, 경부고속도로, 소양강 댐과 발전소, 비료 공장과 항만시설을 짓고
석유와 철광석에 고무며 원재료를 수입 해서는 한국 공업화에 초석을 깔았던 것이니
이렇게해 1965년 GDP 100 달러 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은 2,017년 30,000 달러 에 이릅니다!
일본에서 받은 6억불은 무상 3억불, 유상 2억불에 보증 1억불 인데 당시 일본 외환 보유고
의 3분지 1 이었으니... 돈과 기술이 필요해 아쉬운 소리 를 해야하는 사정이라 독도나
군 위안부며 강제징용 을 똑 부러지게 처리하지 못해 오늘날에 분쟁의 씨앗 이 되었습니다.
여기 마르크트 광장 에는 야시장 같은 먹거리 벼룩 시장 이 섰기로 구경하던 중에
라인강변에 있는 오페라 극장과 베토벤 홀 Beethovenhalle 로 갈까 하다가.....
그보다는 베토벤 생가 Beethovenhaus 를 먼저 보기로 하고 행인에게 묻는데
어떤 부인은 스스로 먼저 다가와 어딜 찾느냐고 묻더니 길을 일러 줍니다.
일본인은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들 이라 길을 물으면 만약에 자기가 모르면
가게에 들어가거나 또는 다른 행인 에게 물어서라도 가르쳐 주고
외국인이 어설퍼 보이면 가던길을 마다하고 반대방향 이라도 데려다 주고 갑니다.
하지만 일본인은 소심한지... 아니면 개인의 프라이버시 를 중하게 여기는 탓에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꺼리는지 먼저 다가와 도와주는 법은 전혀
없는데 유럽인들은 활달 해서 이처럼 먼저 다가와 도와주는 경우가 흔한 것이네요?
타임지가 2,014년 세계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한게 “셀카봉”인데 한국인들이 유럽등지
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한 탓에 발명자가 싸이의 말춤 처럼 우리나라 사람인가 했더니...
최초 발명자는 "일본인 우에다 히로시” 로 1983년 “셀카봉”의 원천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일본에서 실용신안으로 등재 됐으며 1985년 미국에서 특허로 등록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소극적이고 수줍어하는 성격 이라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탓에
저 셀카봉은 일본에서 제품 까지 판매되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던 것이라?
하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자기를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에다가 SNS의 시대 가 도래하니 크게 유행된 것인데....
미국 미술관에서는 타인에게 방해가 되므로 사용금지 조처가 내렸다나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친절하고 적극적인 독일인 아주머니를 뒤따라 가다가 일러준대로
골목길을 접어들어 얼마 걷지를 않아서 드디어 "베토벤이 탄생한 집" 에 도착합니다.
첫댓글 베토벤이 그리운 시간입니다.
그의 운명교향곡...
그렇지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1770년 바로 이 도시 본에서 태어났다고 하네요!
쾰른에서 라인강변을 보면서 기차타고 여행가고싶습니다 7년전 쾰른갔을때 라인강변을 따라서 전용버스타고 여행하던게 생각납니다
아..... 라인강변을 버스로?
그보다는 기차나 유람선이 제격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