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연(18) : 동숙의 노래(한산도 씀)
『너무나도 그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
원한 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에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
뉘우치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음~ 때는 늦으리
님을 따라 가고픈 마음이건만
그대 따라 못 가는 서러운 미움
저주받은 운명이 끝나는 순간
님의 품에 안기운 짧은 행복에
참을 수 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
음~ 뜨거운 눈물』
이번에는 詩는 아니고 대중가요의 가사이지만 너무나도 애절한 사연이 있는 한산도가 작사한 ‘동숙의 노래’에 관하여 한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경상남도 함안 시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오동숙이라는 아가씨는 국민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채, 1960년대에 서울로 올라와 구로공단 가발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 시절 공단에 다니던 여공들이 다들 그리하였듯이 동숙이도 월급은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나머지를 동생들 학비와 가사에 보탬이 되라고 시골 부모님께 내려 보내며 살았다.
그러기를 여러 해, 나이가 들어가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오동숙은 깊은 뜻을 세우고 검정고시 준비를 한다. 대학에 들어가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종로에 있는 중앙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하고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여 중학교 졸업자격을 얻는다.
그러던 그녀에게 변화가 생긴다. 학원에 있는 연세대 법대를 졸업한 박선생이라는 총각 선생님을 사랑하게 된다. 착하고 순진한 동숙은 박선생의 자취방까지 찾아가 선생님 밥도 해 주고 옷도 빨아 주며 행복을 느낀다. 장래를 약속하며 마음과 몸 그리고 돈까지도 모두 그에게 바친다.
그런데 어느 날 동숙이와 함께 검정고시학원을 다니는 친구로부터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박선생 그 사람은 약혼자도 있고 이번에 덕성여대를 나온 아가씨와 결혼한다더라. 순전히 너를 등 처먹은 기라, 가시나야..."
동숙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를 만나서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이미 돌아서 있었다.
박선생은 동숙에게 싸늘하게 한 마디 던졌다. "너와 난 학생과 제자야. 그리고 네가 좋아서 날 따라 다녔지... 솔직하게 말해 너하고 나하고 어울리냐... 꿈 깨고, 고등학교 검정고시나 잘 보라고."
박선생의 진심을 확인한 동숙이는 단 한 마디로 응수하였다. "알았씸더, 예"
더 이상 긴 이야기가 필요 없었다. 이미 농락 당한 여자임을 알게 된 동숙은 복수를 결심한다. 그렇게도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유일하고 큰 희망이었던 짝사랑 박선생에게 배신을 당한 동숙은 '어차피 내 인생은 이런 거야" 하며 자조 썩인 비관을 한다
이어서 그녀는 동대문 시장에 가서 비수의 칼을 사서 가슴에 품고 온다. 그리고 다음날 수업시간에 박선생이 칠판에 필기를 하고 막 돌아서려는 순간, 원한에 찬 동숙은 박선생의 가슴에 복수의 비수를 꼽는다. "이 나쁜 놈!" 순간적인 일이었다.
비명소리와 함께 박선생은 쓰러지고... 결국 동숙은 경찰서로 박선생은 병원으로...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동숙은 눈물을 한없이 흘리면서"선생님은 어찌 되었어요? 잘못 했어요, 형사님! 제발 선생님만 살려주세요"라고 자신을 탓하면서 박선생 안부를 더 걱정하지만 동숙은 살인 미수죄로 복역을 하게 된다.
한편 이러한 사실을 어느 여성 잡지에서 눈여겨 본 당대 최고의 작사가인 한산도가 사실 확인차 동숙이가 있는 구치소에 면회를 갔다. 그리고 잡지에 실린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 한 한산도는 이를 모티브로 ‘동숙의 노래’라는 대중가요를 작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중 “원한 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에/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 뉘우치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음~ 때는 늦으리”라는 대목의 뜻과 의미는 이와 같은 사연을 알고 나면 이를 제대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하튼 한산도가 작사한 이 노래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백영호가 작곡을 하고 매혹의 저음 가수 문주란이 데뷔곡으로 불러서 공전의 히트를 한 불멸의 대중가요가 되었다.하지만 그 노래의 이면에는 이렇게도 서글픈 사연이 숨어 있는 애절한 노래가 되었던 것이다. 끝.
(장상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