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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갈계골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갈계골
1. 미네르바 어디서 많이 듣던 단언데...
다음넷 토론방 "아고라"에
대표논객이었던, "미네르바"님이 체포되었단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검찰은 "미네르바"님의 많은 글들 중에
두 가지의 글을 문제 삼아,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소했다고 한다.
미네르바 사건에 대해서
이틀 전에 처음 뉴스를 통해서 알게되었다.
닉네임이 참 특이하다는 생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헤겔 법철학 서문 / 워매 기죽어!!!
헤겔이 "법철학" 서문에 쓴 글때문에
"미네르바의 올빼미"에 대해, 대학초년시절부터
많은 환상들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헤겔이 그의 "법철학" 책 서문에
썼다는 표현은 지금도 간혹 가방끈이 길다고 재려는 사람들에 의해
인용되는 재미난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이젠 내 주변 가까운 사람들 속엔 없다.
대학시절만 해도 써 먹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부엉이, ?)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이 한마디 말을 써 먹었던 선배들을 우러러 보기도 하고
괜히 기죽었던 시절이 있었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2. 무현시절엔 이런 일이 없었다.
디제이나 무현시대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현시대엔 어떤 일이 있었던가?
대통령을 탄핵하려고 법적절차까지
우리 국민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국민의 반대여론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집중적인 움직임때문에 말이다.
3. 촛불문화제
하지만 이와 동일한 사건이 작년 한국사회를 달궜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문제로 불거진 촛불문화제다.
지금 행정부와 디제이, 무현행정부의 차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촛불문화제는 일반 지식인들도 아닌
여중학생들로 인해서 촉발된 사건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온 국민의 관심 속에
1개월 이상 지속되었다.
3-1. 현대사의 아름다웠던 축제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이렇게 아름다웠던
온 국민의 축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현대사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사건이
내 개인적으로는 87년 6월 항쟁이라 본다.
5.18
80년 5.18로 불리고 있는
광주의 무고한 국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면서
최규하 전대통령도 협박해서 권좌에서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한 사람이 전두환이 아닌가?
전두환은 전임자였던
박정희가 죽게 된 원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국민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어, 국민들 앞에
스스로 헌법을 고쳤다. 주된 골자가 "대통령 7년 단임제"다.
본인이 하고싶어서가 아니라, 국민의 들끓는 반대여론을 무마하고
우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법을 바꾼게 아닌가?
4.13 호헌조치
그 본심이 87년 4월 13일
온 세상에 고스란히 밝혀지지 않았던가?
이름하여 "4.13 호헌조치"
자기 스스로 행정부를 차지할 조건으로
국민들 앞에 약속한 것이 "대통령 7년 단임제"이지 않는가?
그런데 7년을 마무리하려보니, 권력에 대한 욕심을 포기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더 권좌에 앉아서 국민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싶었던 모양이다.
삼청대 사건, 평화의 댐사건, 군 의문사들.....
장기집권을 위해서, 헌법을 바꾸려 했을 때
참고 있었던 온 국민의 분노가 일시에 터져
87년 6월 항쟁이라는 각본에도 없는 감동적인
현대사의 아름다운 일이 벌어졌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속이구
전두환은 놀랐을 것이다.
이러다가 79년 부마항쟁 이후
박정희가 10, 26사건으로 암살당했던
사건을 떠올렸을 것이다.
더 이상 국민을 억압하다가는
권력 내부에서부터, 자기편으로부터
암살당 할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할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6,29(속이구)선언을 통해
노태우행정부를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영삼할배와 대중할배의 아쉬움
김영삼과 김대중은 이때 분열을 이겨냈어야 한다.
그때 분열을 이겨내고, 순번에 따라 대통령직을 맡았다면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탄탄해졌을 것이다.
두 정치거물의 분열이 있었음에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험악한 세월을 잘도 이겨나왔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번 이명박행정부가 출범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민주주의가 더욱 탄탄해져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가야 할 경험으로 보인다.
한국사회 민주주의가 탄탄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더 큰 시련의 길을 통과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3-2. 피다만 불꽃
다시 촛불문화제로 가야겠다.
노무현행정부와 이명박행정부의 차이점 얘기를 하다보니
삼천포로 잠시 갔다.
이명박행정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사건으로 곤혹을 치뤘다.
정치인들의 반대에 부닻쳤다면 또 모른다.
지식인들의 반대도 아니다.
여중생들의 선택
일반국민 중에서도 한국 현대사에서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여중생들로부터 시작된 "촛불문화제"가 일파만파 전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전국으로 퍼져나가는게 아닌가? 권력초반에 이런 엄청난 반대에 직면하다보니
이명박행정부에서 어떤 선택을 해 나갔던가?
백골단이 뭐야?
경찰의 태도가 이전에 비해 확연하게 달라졌다.
최루탄이 다시 등장했다.
평화시위를 하는 국민들에게 몽두리를 드는 일들이 또 발생했다.
사라졌던 백골단을 다시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빨갱이들이 난동을 부리네..
촛불문화제 배후세력을 운운하면서
반공색깔론이 다시 고개를 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색깔론은 국민의 엄청난 반대에 부닺치면서 초기에 힘을 잃고 말았다.
이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국민들이 이제는 색깔론은 알고 있다는 증거기때문이다.
결국 촛불문화제 배후세력 운운하던 일로, 가까이 있었던 전주 고백교회 한상열목사님이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참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게도, 한상열목사님이 구속된 죄목은 "교통방해죄"였다.
참으로 치졸한 모습이다. 결국 한상열목사님은 100일만에 보석석방되셨다.
또 한가지 촛불문화제에 찬물을 얹으며 대응해 갔던 것이
이명박정권 퇴진에 대한 목소리가 촛불문화제 초반에 나왔다.
그리고 노무현을 탄핵하려고 법적절차를 밟았던 경험이 있는 국민인지라
이명박대통령에 대해서도 동일한 이야기들이 솔솔 풍겨져 나왔다.
이에 이명박행정부가 강하게 불만표시를 하며 협박하자 잦아 든 일이 있었다.
물렁 무현
이런 것을 보면 무현행정부는 참 물렁했다는 생각이 든다.
좋게보자면 국민들에게 알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 준 셈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을
우리들은 노무현행정부시절에 경험했다.
이명박행정부는 탄핵말만 나와도 초동진압해 버렸는데...
평화적인 촛불문화제도 배후세력 운운하며
결국 초동진압하지 않았는가?
해도 너무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현 행정부를 비판하는 일은 일반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공개적인 사이트에서 행정부의 경제실책에 대해서
몇 가지 부정확한 표현으로 현 행정부를 비판했다고
법적인 구속으로 몰아가는 현행정부의 행위는 초라해 보인다.
권력이 얼마나 무능하고 힘이 없으면, 작은 비판에도 여유를 갖지 못하고
이렇게 한 개인을 옥죄어 간단 말인가?
그것도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노무현은 탄핵까지 법적인 절차를 밟아갔다.
그것도 국민들은 아무 말도 없고 지지하는데
의석수를 믿고 한나라당에서 추진해 나간 일이다.
현 행정부는 노무현행정부의 이런 여유를 배워야 할 것이다.
MB악법
이번 의회에서 현 행정부와 한나라당에서 강행처리하려 했던 법들이 있다.
그 중에 "미네르바"님에 대해 이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는 흔적을 세가지 발견할 수 있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목회하는 후배가
개인카페에 정리해 둔 자료를 이곳에 고스란히 퍼 둔다.
(정보자료실 922번 / http://cafe.daum.net/galgeygolstory/Fil7/922 )
첫째는 "형법 개정안(발의 :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이다.
일명 사이버 모욕죄 1호 법안. 인터넷상의 모욕죄를 가중 처벌하고 비친고죄로 한 것이 주요 내용(인터넷상 모욕죄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함. 이는 형법상 모욕죄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리는 것에 비해 무거운 형량임). 모욕죄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점, 모욕의 감정이 주관적이라는 점 때문에 현행법상 모욕죄는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모욕죄를 반의사불벌죄로 해 비친고죄로 변형해 규정할 경우, 수사기관이 자의적 판단으로 네티즌·시민을 탄압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질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1(발의 :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일명 사이버 모욕죄 2호 법안. 인터넷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친고죄가 아니라 반의사불벌죄로 도입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세번째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2(발의 : 정부 제출)"
인터넷 상의 본인확인제(인터넷실명제) 의무대상 사업자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본인확인조치 의무대상사업자를 현행 일일평균 이용자수 20~30만명 이상(조사기준일 직전년도 3개월간)에서, 10만명 이상의 모든 게시판 운영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로 확대합니다. 이렇게 되면 인터넷 실명제 적용 사이트가 현행 37개에서 210개로 확대되고, 국민이 이용하는 거의 모든 사이트가 해당됩니다. 이 법은 네티즌을 잠정 범죄자로 취급한 것으로, 인터넷 공동체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원활하게 운영되는 수많은 익명 게시판에 족쇄를 채우는 법안입니다.
짜고치는 고스톱
이런 법안까지 마련하려는 이명박현행정부와 한나라당의 움직임을 보자면
"미네르바 사건"을 의도적으로 행정부에서 터뜨린 측면이 많을 것도 같다.
일명 짜고치는 고스톱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미네르바님을 구속하는 행정부의 처사는 잘못되었다고 본다.
재판부가 얼마나 공정하게 권력의 중립을 지키면서 재판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행정부의 처사는 온당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국민들의 반대여론만 자극할 것으로 본다.
권력은 언제나 여유와 너그러움을 베풀줄 알아야 된다고 본다.
하물며 정치세력도 아니고
배후조종세력도 없는 그냥 평범한 개인이다.
그것도 독학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는가?
현행정부가 "미네르바" 한 개인을 영웅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미네르바" 한 사람을 통해 한국사회에 만연된 인터넷을 통한
반정부의 글이 유포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력이 동원되고 있겠지만, 이건 아니라고 본다.
4. 박노해를 추억하며...
미네르바님 사건을 보면서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한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얼굴없는 한 사람이 생각난다.
노해문도 있었어?
본명 박기평 / 일명 "박노해"로 알려진 인물이다.
"노동해방" 문학지가 지금도 출판되는 지는 모르겠다.
80년 후반엔 노동해방문학지가 출판되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려던 사람들에겐
필독서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노동해방" 계간지인지, 월간지..
"박노해(노동자 해방의 약자)"라는
이름으로 글이 꾸준히 투고된 적이 있었다.
그 글로 인해 "박노해"님이 노태우행정부시절 체포명령이 내려졌다.
도피를 하면서도 꾸준히 노태우행정부를 비판한 공개적인 글이 실렸다.
결국 이분이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노동의 새벽
박노해란 이름도 대학시절 처음 접했다.
대학시절 내 주변 사람들에 의해, 박노해의 첫 시집인 "노동의 새벽"은
읽지않으면 무식한 취급을 받는 시대적인 상황이고, 내 주변 상황이였다.
당연히 "노동의 새벽"을 감동적으로 잘 읽었다.
지금 읽으라면 시대상황이 많이 달라서 읽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란 시집이 필독서로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지금 읽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시집과 시내용 자체는 아직도 유의미하다고 본다.
4-1. 박기평이라고..
구속되면서 "박노해"란
사람에 대해 정보들이 속속 공개되었다.
본명: 박기평
친형이 카톨릭사제다.
사노맹(사회주의 노동자 동맹)활동을 했다.
젊어서(70년대) 우리 교단에 소속된 향린교회에서 청년회활동을 하면서,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처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의식화" 된 셈이다. 그리고 노동현장을 다니면서 현장에서 경험되는 다양한 모습을 대부분 시로 표현했다. 그리고 많은 시집을 냈다. 그러다가 노태우행정부시절 장문의 반정부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박노해님의 시집은 내가 대학다닐 시절만해도 탄탄한 독자층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지는 못하는 내용들이다. 대부분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되어 있었다. 이젠 고인이되신 김남주님에 버금갈 정도였다.
박노해님의 글 중에 아주 인상적이었던 책이 하나 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이 잘 나갔을 때, "할일은 많고...."라는 책을 써서 열풍을 일으켰던 일이 있다.
그런데 박노해님이 그 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조목조목을 들어가면서 노동자의 입장에서 글을 쓴 것을 읽으면서
박노해가 참으로 탁월한 식견과 가치관을 갖고 있음에 다시 한 번 놀랬던 적이 있었다.
박노해님은 고졸출신자다.
4-2. 북한산 자락 수유리 캠퍼스에서
박노해을 얘기하니
신학대학원시절 수유리 캠퍼스에서
경험했던 또 하나의 사건이 기억난다.
시간이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박노해님이 감옥에서 나온 뒤인가?
나오기 전인가?
사람만이 희망이다
감옥에 있으면서 자신의 느낌들을
시로 쓴 것이 한 권의 시집으로 출판된 적이 있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시집이다.
시집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구입해서 탐독했던 기억이 있다.
95-6년도에 출판된 듯하다.
박노해님이 감옥에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한 마음에 구입해서 밤새 읽으며 감동을 했던 기억이 있다.
http://cafe.daum.net/galgeygolstory/FaKR/103 / 주변교회이야기 103번
왼쪽 - 채수일교수(한신대 실천신학) / 오른쪽 - 김창락교수(한신대 신약학)
김창락교수 신약학 개론 첫수업
그리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원시절, 97년 2학기
신약신학 개론시간에 김창락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지금은 은퇴하신 서울대 영문학과 출신이자, 독일 유학파다.
현재 한국 신약신학계에서 김창락교수님의 따라갈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김창락교수님은 학점을 짜게 주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럼에도 김창락교수님의 수업시간은 많은 학생들이 신청을 한다.
그만큼 진지하고 깊은 사고력을 노교수님을 통해 배울 수 있기때문일 것이다.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함에 대해서 뿐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신앙인으로, 성경으로, 사회를 해석하는 능력을 배울 수 있기에 학점이 잘 나오지 않고
침을 맞아야 하는 강의실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좋아했던 교수님이다.
한상렬목사님이 구속되었을 때 서울에서 열렸던 한 시국기도회에 갔을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회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서 속으로 '역시 김창락교수님이구나' 했던 기억이 있다.
아직과 이미사이 = 하나님 나라
이런 교수님이 97년 2학기 첫 수업시간에
뜬굼없이 박노해가 쓴 "사람만이 희망이다"란 시집에
나오는 시 한 구절을 가지고, 첫 수업 한시간을 다 보내는 게 아닌가?
그 시가 바로 "아직과 이미사이"였다.
"아직과 이미사이"란 박노해님이 감옥에서 쓴 시를 가지고
신학의 영원한 주제인 "하나님 나라"를 설명해 주셨다.
그때 받았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 강의 한 타임때문에 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역시, 김창락 교수야!!!' / '역시, 한신대야!!!'
그러면서 한신대에 문제가 많지만 그럼에도
가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다.
국문학을 전공한 교수였다면 이해가 된다.
일반대 교수였다면 그렇다고 넘어갈 일이다.
그런데 명색이 신학대 교수가 일반인의 시도 아니고
그 당시 지식인사회에서 인지도가 높은 감옥에 가 있는
한 사람의 시를 인용해서 신학의 중심주제인 "하나님 나라"를 설명해 갔다는 것은
나에게 커다란 파장을 몰고왔다.
신학이란 학문이 이렇게 현실을 직시할 수있어야 한다는
나의 평소의 생각에 더욱 확고함을 준 대표적인 사건이 되었다.
그때 김창락교수님의 한시간의 수업으로만도
나는 노교수님을 존경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5. 미네르바와 박노해
미네르바와 박노해
모두 가명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나에게 드는 생각들을 정리하자면
대충 이렇다.
정권의 안정화를 꽤하려는 현행정부의 고도의 정치술로 읽혀진다.
첫번째는 표적수사로 포털사이트와 국민들 길들이기
대부분 포털사이트는 이제 현행정부편으로 거의 유입된 상황이다.
다음넷도 거의 현 행정부쪽으로 길들여진 측면이 많다.
정확한 데이터는 제시하지 못하지만, 일련의 정보를 유추해 보건데
그런 느낌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다음넷 토론방 "아고라"로 대표되는
공개공간이 가지고 있는 힘을 현 행정부에서 모를리가 없다.
작년 정국을 시끄럽게 했던 "촛불문화제"의 시발이
다음넷 "아고라"였고, 그때그때 토론들이 실시간으로
인터넷망을 통해 공유되면서 촛불문화제의 열기가 데워진 것을
정부에서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로서는 이런 작은 움직임조차
크게 부각시켜 포털사이트에서 정부비판의 목소리들을
잠재울 복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표적수사를 통해
모범답안을 만들어 국민들 길들이기 작업에 들어간 셈이다.
두번째는 권력이 폭력화되어 가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다.
권력의 폭력화는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치가 떨리게 경험했다.
박정희행정부시절, 전두환행정부시절, 노태우행정부시절
약화된 느낌이 들었지만 김영삼행정부시절에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권력의 폭력화가 그나마 김대중행정부와 노무현행정부시절을 거치면서
거의 사라진 듯한 분위기였다.
권력의 폭력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은 경찰의 움직임이다.
경찰이 시위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하는가?
이것을 보면 권력의 폭력화부분은 금방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박정희행정부에서 김영삼행정부시절 시위에 대해서 경찰의 폭력을 보지 못한 경우는 없었다.
국민들의 정당한 행동에도 경찰의 폭력사용의 모습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디제이와 노무현행정부로 들어가면서 무시무시했던 "백골단"이 해체되었다.
시위현장에서 경찰이 국민들을 보호하는 기현상을 경험하면서
정치변화지형을 금방 감지할 수 있었다.
이번 촛불문화제에서
국민들이 어청수경찰청장의 퇴진을
그렇게 외쳤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현행정부가 안정화되는 것을 나는 적극찬성한다.
일단 권력을 잡았기에 생각하는 바를 해 나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일들이 일방통행을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충분히 국민들에게 알려져서 여론수렴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의회공간을 통해서 대화와 타협점을 마련하면서
늦더라도 충분히 국민적인 공감대를 마련하면서 일을 추진해 가는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
집권시기에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내려는 발상자체에서 해방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발상은 국민의 오해와 반대에 부닻질 뿐이다.
국민과 반대자들을 폭력자로 매도하는 일만 경험될 것이다.
이번 의회법안 강제처리하려 했을 때도 경험하지 않았는가?
강기갑의원의 폭력적인 장면을 왜 그렇게 스포트라이트로 보여주는가?
강기갑의원이 몸을 던저서라도 막으려고 했던 "법"의 구체적인 장단점에 대해서
왜 공개토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주지도 않고, 내 개인으로 보건데도 "악법"인데,
국회의원이고, 그것도 민주노동당으로 선임된 국회의원인 강기갑의원은 얼마나 분통이 터졌겠는가?
그것을 강행하려는데, 강기갑의원이 온몸을 던져 막으려고 했다.
시대가 지나고나면 강기갑의원의 거룩한 분노를 더 높이 평가하게 될 날이 곧 올 것이다.
권력을 잡은 사람이 자신의 집권시기에 뭔가 가시적인 것을 보고 싶은 욕망을 왜 모르겠는가?
나 역시 목회를 하면서 내가 있을 시기에 보다 많은 좋은 사건들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래서 이것저것 많은 것을 시도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지만 계속해서 늦더라도 탄탄하게라는 말이 내 귓속을 떠나지 않는다.
한국인의 기질중에 이런 서두름이 분명이 있음을 본다.
세계에서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핸드폰 문화, 인터넷 문화가
한국사회에서 급속하게 확산될 수 있었음도 이런 한국인의 기질에
맞았기때문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이것은 좋은면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하지만 서두름이 부정적으로 나타날 땐
국민을 폭력자들로 매도시키는 일도 경험된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 같다.
이것이 심화되면
또 다시 현대판 삼국시대를
경험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권력의 폭력화 현상은 이젠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경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민들의 선택에 의한 자업자득이지만
안타깝다.
세번째는 더 이상 이런식의 유명인사들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네르바님이 굽힘없이, 당당하게 나간다면
감옥에는 갈지언정, 많은 국민들의 심정적인 동의를 얻을 것이다.
여기에서 심정적인 동의라함은 국민들이 권력의 횡포를 알기때문이다.
그래서 속으론 욕을 하지만, 겉으로 말하지는 못한다는 사실때문이다.
하지만 미네르바님은 유명인사가 될 것이다.
결국은 양심수가 될 것이다.
군부독재시절 한국사회엔 양심수를 많이 양산해 냈다.
이곳이 지리산에 인접해 있기에 빨치산에 대해서 종종 듣는다.
지리산 오솔길사업이 많이 진척되어가고 있는데, 초반에 사업을 위해서
이 사업의 연구원으로 일했던, 명지대 영문학교수로 있는 선배님이 종종 내려와서
함께 답사도 다니고, 잠도 자고 대화를 나눌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때 빨치산에 관련된 사람을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지금도 살아있고, 일반인들의 접촉을 꺼려하시는 분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80대 중반이 넘은 사람이다. 그런데 빨치산자로 내몰려 감옥에서 20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이젠 사람을 기피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국가의 폭력에 희생된 삶을 살아가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분 외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이 국가의 폭력에 망가졌던가? 희생되었던가?
순수한 한 인간이 폭력에 내몰림으로 말미암아
상황이 악화되면 죽음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이런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이런 민주주의는 천박할 뿐 아니라
탈을 쓴 늑대다.
국민들 한사람 한사람들이 모두 소중하다.
모두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몸부림치며
최선의 삶을 선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모두들 유명인사들이다.
국민들이 평안하게
헌법에 명시된 대로 대한민국인으로
존귀함을 받아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네번째는 늦더라도 차근차근 탄탄한 기본을 다져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 현대사는 파란만장하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세계에서도 대단한 민족이다.
일제 식민지를 경험했다. 6.25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천천히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사회엔 일재잔재들이
우리들의 뇌리 속에 뿌리깊게 박힌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법적인 장치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은 "국가보안법"이다.
6.25로 대표되는 동족상잔의 비극은
아직도 냉전 이데올로기가 통하는
사회적인 기반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촛불문화제에서도 색깔론이 힘을 쓸뻔하다
국민들의 반대여론에 힘을 쓰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가,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진 모습이라 감사했다.
새마을운동으로 대표되는 극속한 경제성장은
한국사회가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성장만능주의, 정신적 기반보다는 보이는 물질만을 쫓아오다보니
우리들의 정신문화가 탄탄하지 못한 아쉬움은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다.
물론 90년대로 들어오면서 이 저변이 탄탄해져가고 있음은 속일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로는 안된다고 본다.
성장속도가 다소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사람사는 맛을 더욱 풍성하게 경험하는 사회로
온전히 진입했으면 좋겠다.
국가기관에 의한 폭력성은
더 이상 한국사회에 발붙일 수 없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촛불문화제 초반에 행정부와 한나라당에서 색깔론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가,
국민들의 거센 항의에 쏙 들어간 것은 안타깝지만, 좋은 일이다.
국민들이 더 이상 색깔론으론 먹히지 않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회다.
국가기관에 의한 폭력성 부분도 앞으로 이 정도의 거센 반대여론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다른 부분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한가지 분명코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반대가 아니라
반대당이였던 한나라당이 주도한 대통령 탄핵소추를 받아들이고
법적인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모습을 온 국민들
아니 전 세계인들에게 선물해 준 이 사건은 분명코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들마다 이런 자세만 있다면
한국사회는 비록 늦을지는 모르지만
탄탄한 내실을 기해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6. 글을 마치며...
최근 뉴스를 통해 다음넷 토론방 아고라에 쓴 글이 문제가 되어
글을 쓴 논객인 "미네르바"님이 구속되기까지 한다는 소식을 접하며
마음이 편치 않다보니, 80년 후반에서 90년 초반, 군부독재시절에
지식인사회에서 많은 영향력을 미쳤던 얼굴없는 대표적인 논객인
박노해님이 생각이 나서 글을 쓰다보니 이까지 내려와 버렸다.
마지막으로 "미네르바"님의 구속사건은 현 행정부가 나서서
한나라당이 나서서 없던 것으로 했으면 좋겠다.
국가기관에서 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힘없는 한 개인을
매몰차게 모범사례로 희생시키는
파렴치한 처사라고 본다.
그것이 아무리 현행법상 맞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지리산자락 산골에 있는 무명의 목사도
한 사건을 보면서, 공개된 정보만을 가지고
내막을 이렇게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사회의 저변의식 수준이
높아져 있음을 현행정부에서 더욱 직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공개되는 것이지만
이렇게 공개하지 않더라도
내가 이런 판단을 하는 것으로 봐서
국민의 40%는 나와 같은 판단을 할 것으로 본다.
"미네르바"님께 선처가 주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7. 후기
박노해님이 쓴 시 "이미와 아직사이"가
노래로 만들어 진 것이 있어 이곳에 올려두고
글을 마친다.
글을마치니 2009년 1월 10일(토), 이른 0시 46분이 지나고 있다.
이곳에 찍힌 시간은 20시 57분이니, 적어도 4시간은 족히 걸린셈이다.
오랜만에 생각가는 대로
아무 것도 의식하지 않고
맘편하게
장문의 글을 썼더니 기분이 좋다.
박노해님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아직과 이미사이 ... 박노해 詩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살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나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아직과이미사이/꽃다지/ plsong.com/> Photo . Michael Grindstaff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사람들을 봐
우리 닮고 싶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 |
음악이야기 1227번 / http://cafe.daum.net/galgeygolstory/FUNl/1227
첫댓글 구구절절 옳은 애기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둠이 내린 후에야 날아오른다"고한다. 헤겔의 명언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지혜는 참으로 짧아서 역사의 진실이나 판단은 한시대가 끝난 후에야 평가가 가능하겠지요? 미네르바의 구속으로 세상이 떠들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