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이전(吏典) 제1조 속리(束吏)
9. 모르는 것도 아는 체하면서 술술 응해 주는 것은 수령이 아전의 간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문신(文臣)은 시부(詩賦)나 약간 익히고, 무신(武臣)은 무술이나 약간 익힐 뿐, 그 외에 배운다는 것은 곧 도박이나 기생 끼고 술 마시는 일일 따름이다. 학문이 높은 자는 구궁팔문(九宮八門)의 이치와 하도낙서(河圖洛書)의 수를 연구하나, 이 몇 가지 것은 인간 만사에 있어서는 아무런 해당이 없고 무술만은 실무라 하겠으나 그것 또한 관리의 사무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갑자기 집을 떠나 천리 밖으로 와서 홀로 많은 아전들과 여러 백성들 위에 우뚝 앉아, 평생 꿈에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들을 맡게 되니, 사무에 어두울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수령은 일에 어두운 것을 수치로 여겨 모르는 것도 아는 체하며 명령을 내려 시행케 하되, 일체 곡절은 묻지도 않고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도장을 꾹꾹 찍으며 마치 물 흐르듯 술술 응대하여 스스로 모든 일에 막힘없이 두루 통하는 것으로 자처하니. 이것은 수령 자신이 술책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한 명령이나 한 패(牌)를 내더라도 수리(首吏)와 그 해당 아전에게 물어 일의 근본과 졸가리를 속속들이 캐서 자신이 환하게 알고 난 다음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몇 달 안 가서 사무에 통달하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현성(縣城)에 있을 때 매양 들으매, 새로 부임한 관원이 사무에 서툴러서 뿌리를 캐는 경우에는 그 고을 늙은 아전들이, “앞으로 몹시 괴로울 징조다.” 하고, 술술 응대해 주는 자의 경우에는 서로 웃으면서, “앞으로 있을 징조를 알 만하다.” 한다 하였으니, 아전을 단속하는 요령은 진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주-D001] 구궁팔문(九宮八門) : 구궁은 역산(曆算)의 아홉 분야로 즉 태일(太一)ㆍ섭제(攝提)ㆍ헌원(軒轅)ㆍ초요(招搖)ㆍ천부(天符)ㆍ청룡(靑龍)ㆍ함지(咸池)ㆍ태음(太陰)ㆍ천일(天一)이다. 《唐會要 九宮壇》 팔문은 술수가(術數家)의 말로 즉 휴(休)ㆍ생(生)ㆍ상(傷)ㆍ두(杜)ㆍ사(死)ㆍ경(景)ㆍ경(驚)ㆍ개(開) 등이다.
[주-D002] 하도낙서(河圖洛書) : 하도는 중국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나타났다는 쉰 다섯 점의 그림이다. 복희씨가 그것을 보고 팔괘(八卦)를 그렸다 한다. 낙서는 하(夏)나라 우왕(禹王)이 9년 홍수(洪水)를 다스릴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그려져 있었다는 마흔 다섯 점의 그림이다. 우왕이 그것을 보고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 한다. 《易 繫辭 上》
[주-D003] 패(牌) : 여기서는 지시하는 패지(牌旨)를 가리킨다.
[주-D004] 수리(首吏) : 여기서는 이방(吏房)을 가리킨다.
[주-D005] 현성(縣城) : 현청(縣廳) 소재지이다.
不知以爲知。酬應如流者。牧之所以墮放吏也。
吾東之人。文臣少習詩賦。武臣少習弓矢。此外所學。卽馬弔江牌。挾娼轟飮而已。上焉者。窮九宮八門之理。河圖洛書之數。凡此數件於人間萬事。絶無所當。唯弓矢爲實務。亦與吏事無涉。一朝去家千里。兀然獨坐於群吏萬民之上。任之以平生不夢之事。其逐事瞢昧。於理當然。乃牧以瞢昧爲恥。以不知爲知。一應發號施令。皆不問曲折。隨手著押。酬應如流。自處以周通不滯。此牧之所以自陷也。凡出一令一牌。宜向首吏該吏。採其根荄。達其枝條。直窮到底。自心爽豁。然後乃肯押之。不過數旬。明達事務。靡不通矣。余久居縣城。每聞新官生澀採根者。其老吏議之曰。其兆可苦。其酬應如流者。相與笑之曰。其兆可知。束吏之要。亶在是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