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천명의 추모객이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시신이 안치된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 길게 줄을 만들고 서 있다.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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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안한 모습으로 잠자듯 누워 있었다. 생전 관저 창문에서 신자들에게 보여주던 미소가 입가에 희미하게 번지는 듯 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들도 행복하시오” 마지막 남긴 ‘말씀’이 귓전을 맴돌았고, 평화롭기만 한 표정은 아름답다 못해 숭고함을 느끼게 했다.
4일밤 10시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성 베드로 성당에는 나즉한 연도(죽은 이를 위한 기도)소리가 깔렸다. 성당 안쪽의 거대한 발다끼노(베르니니가 디자인한 청동 제단)를 향해 물 흐르듯, 천천히 행렬이 움직였다.
이윽고 발다끼노 앞. 교황의 작은 두 발이 하늘을 향해 가지런히 놓인 게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발다끼노 쪽으로 머리를 향한 채 붉은 융단 베개 두개를 베고 단위에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붉은 제의에 하얀 주교관을 쓰고 한 손에 주교 지팡이를 든 채 잠들어 있는 교황은 금방이라도 일어설 것 같았다. 하얀 화장에 붉게 물든 뺨…그냥 편안히 잠든 모습이었다.
침묵 속에 교황의 시신을 지키는 이는 네 명의 교황청 근위병.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알록달록한 전통 근위병 복장을 하고 목각 인형처럼 네 모퉁이에 꼼짝 않고 서있다. 시신의 오른쪽 머리 뒤론 커다란 부활의 촛불이 교황의 긴 여행을 따뜻하게 밝혀주고 있다.
교황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 지 10초쯤이나 됐을까. 계속 들어오는 참배객들에 밀려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짧은 만남을 위해 성 베드로 광장과 대로에서 대여섯시간을 꼼짝앉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 4일 성 베드로 성당으로 옮겨 안치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왼쪽)를 참배하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잇고 있다. 참배객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모두 5~6시간씩 기꺼이 기다려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AFP연합 | |
수만명의 신자와 일반참배객들이 지금도 성당바깥에서 조용한 표정으로 참배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참배를 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은 차마 발길을 떼지 못했다. 성당 곳곳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훔쳤다.
교황의 시신은 이에앞서 4일 오후 5시(한국시각 4일 밤 12시) 성 베드로 성당으로 옮겨졌다. 이어 밤 9시(한국시각 5일 새벽 4시) 일반인들의 참배가 시작됐다.
교황은 4일 밤부터 장례식 전날인 7일 저녁까지 만사흘 밤낮 성 베드로 성당에서 신자들과 일반인들을 만난다. 성당 문을 나서자 광장과 대로까지 구불구불 이어진 인파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광장은 양초와 편지, 꽃으로 뒤덮여 있다.
스페인서 온 유학생 마리아 유지니아(25)씨는 “파파(이탈리아어로 교황이라는 뜻)를 만날 수 있다면 밤새 기다리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슬프고도 기쁘다”고 했다. 알렉산드라 훌리아레나(32)씨는 교황의 모국 폴란드에서 온 소피 수녀를 만나 “파파를 우리에게 보내줘 고맙다”고 감사해했다. 그는 그렇게 아직도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