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일의 ‘내가 여기에 사는 뜻은’ *
영해 북쪽은 관동과 경계가 되며, 영해에 속한 영양은 영해에서 서쪽으로 80리 떨어져 있다. 영양에서 동북쪽으로 40리를 가면 수비라는 고을이 있는데, 여러 봉우리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으며 그 안은 넓고 평평하다. 이 고을에 들어가려면 험한 산을 넘고 언덕길을 지나야 한다. 험한 산길을 수십 리 지나면 시야가 넓게 탁 트려 마음이 맑고 시원해진다.
땅에서는 뽕나무, 삼, 쌀, 보리, 콩, 조, 기장 등이 잘 자란다. 벼랑과 골짜기에서는 늙은 나무가 자라고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이 있다.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른다. 수심은 얕고 주변 경치는 몹시 아름답다. 그러나 지대가 높은 곳이어서 차가운 바람이 불고, 구름도 산마루에 걸쳐있다. 눈과 서리가 일찍 내려서 겨울이 오기 전인데 많이 춥다. 그러므로 본디부터 산림에 뜻을 두어 추위를 꺼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오래 살 수 없다. 편안할 리도 없다.
지난 계사년(1653)에 나는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와서 집을 마련하고 지내기 시작했다. 초가집을 한 채 지었는데 집 이름을 칡 갈자(葛)를 넣어 갈암(葛庵)이라고 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와서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사는 곳은 오른쪽에는 산이 있고, 왼쪽에는 .물이 흐릅니다. 골짜기는 뻬어나고 봉우리는 높아 아침저녁으로 경치가 달라집니다. 물이 휘돌아 소용돌이치는데 그 물 소리 또한 참 아름답습니다. 단풍나무, 삼나무, 가래나무 등 과 같은 나무가 많습니다. 지초나 복병, 인삼, .삽주 등과 같은 풀도 많습니다. 시렁과 벽에는 책도 가득합니다. 이와 같으니 집 이름을 아름답게 불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좋은 것을 모두 버리고 칡으로 그 이름을 삼았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저는 자기가 사는 곳에 이름을 붙이면서 말로만 꾸미는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있는 그대로 집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칡은 줄기고 깨끗하며, 줄기는 길고 부드럽습니다. 꼬아서 밧줄을 만들기도 합니다. 짜면 칡베가 되고, 수건이나 신발도 만들기 좋아서 시경에서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기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여러 책에도 기록을 남겼습니다. 우리 생활에 칡은 오래 전부터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저는 칡베로 술을 거르고, 칡으로 엮은 신발로 서리 내린 땅을 밟으며, 칡베로 만든 옷을 입고 여름을 납니다. 칡으로 지붕을 얽어 매 바람과 비를 막기도 합니다. 잇고,매고, 묶는 이 모든 것을 하고 있으니 칡의 쓰임새가 아주 많은 것이지요.
저는 칡로 제 삶을 넉넉하게 하고, 분수에 맞게 살고 있습니다. 또한 남의 도움을 바라지 않고 거짓 없이 스스로 만족해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지극해지면 갈천씨와 같은 부류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집 이름을 짓는데 칡보다 더 마땅할 것이 없어 저는 다른 많은, 좋은 것들을 다 버리고 칡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사람이 다시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어찌 아무 생각없이 이름을 지었겠습니까? 옛날 주희 선생은 여산 폭포 아래에 있는 와룡담을 보고는 와룡암이라는 초가를 지은 후에 와룡 선생이라 불리더 제갈공명의 제사를 지내 주었답니다. 이처럼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옛날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당신이 집 이름을 갈암이라고 하였으니 제갈공명의 초상화를 구해다가 벽에 걸어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당신이 품고 있는 더 없이 큰 포부를 이 집에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정말로 그러고 싶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일은 없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마음에 꼭 드는군요. 삼가 받들겠습니다.”
그 사람이 가고 나서 나는 그와 나눈 이야기를 여기에 적어 둔다.
무술(1658)에 안릉 이현일이 쓰다.
* 갈천씨 - 전설적인 상고시대의 왕으로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