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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전 광 용
1
제주도 남쪽으로 휩쓸어 오던 태풍이 동북으로 방향을 바꾸어 울릉도를 스쳐갔다는 라디오 방송이 있은 지도 벌써 이틀이 지났건만 하늘은 여전히 그 음침한 회색 장막을 걷어 젖히지 못하고 있다.
한여름의 막고비에 오른 대목 공일마저 끝내 헛탕으로 넘겨버리는 것 같은 아쉬움에 울화가 치미는 원산댁은 또 소주 두 컵을 선 자리에서 들이켜고 나서 굽지도 않은 오징어 다리를 질근질근 씹으면서 주점 봉당을 나와 물가로 내려오고 있다.
“제에길할 놈의 하늘이 밑창이 아주 쑥 빠졌나봐…….”
가랑비 몇 방울 떨어지다가 흐지부지 되어 버린 하늘을 쳐다보며 원산댁은 누구에게랄 것 없이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바닷가 모래톱에 모여 앉아 보행군 차림을 한 울진 노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패들, 제주에서 왔다는 모녀, 원산옥 색시 명심이,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노인의 이야기에 곁들고 있는 젊은이,
이들 사오 명의 눈길은 소리 나는 쪽으로 쏠렸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구수해서 젖은 땅에 그대로 앉아들 있소.”
이들 앞에 다가온 원산댁의 걸걸한 목소리다.
“글쎄, 언니두 진작 여기 나오지 않구.”
원산댁은 명심이가 치마 꼬리를 끄는 대로 이들 틈바귀에 끼어 앉았다.
파도가 거세게 밀려 왔다가 미처 사그라질 사이도 없이 다시 더 큰 더미로 밀려오고 주위는 더욱 어두어져 가고 있다.
이따금 산모퉁이를 돌아 언덕 위 신작로를 헤살짓고 달아나는 군용차의 헤드라이트가 바위에 부서지는 흰 포말을 비치고 지나가면 다시 파도 소리만이 사위의 온갖 음향을 삼키고 어둠 속에 포효한다.
“그래 어떻게 됐어요?”
명심이의 조름에 못이겨 울진 노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 그 이상 더 배겨낼 수 있어야지. 주문진 바닥이 온통 사람 사태가 났었으니까. 하기야 처음 며칠은 잘 잡혔지요 오징어 떼가 밀려들었다 하니 신바람이 나서들 객주집이고, 음식점이고 할 것 없이 죄다 먹어라 써라 하고 외상들을 막 주더군요 헌데 그만 수 사납게 사흘만에 태풍이 휩쓸고 보니 뒤죽박죽이 됐지. 수백 척 묶여 있던 배가 어디 하나 까딱합니까?”
“그래서요?”
이번에는 원산댁이 무릎을 바싹 들이밀며 다그쳤다.
“하늘이 하는 조화라 속수무책이었지요 보름이나 꼬박 들어 앉아서들 파먹구 있으니 몇 푼 잡았던 돈줄도 다 까불리고 모다들 알건달이가 됐지 뭐요 하루 묵으면 묵는대로 숙박료만 밀려가고 거기에 도박판까지 벌어졌으니 볼장 다 봤지요 털털이 호주머니에 방안에 처박혀 낮잠들만 자구 …… 이제는 파도가 잦아도 오징어 떼는 아마도 다 달아나 버렸을 겉요.”
“그래 아직도 사람들이 들끓구 있소.”
원산댁은 궁금증이 좀체 가시지 않나 보아 다시 그 뒤를 캐묻고 있다.
“어데오 객주에서 밀린 밥값은 안 내도 좋으니 제발 가달라고 애걸하다시피 해요 꼴들이 빤하니 내쫓는거지요 하나 둘 흩어지기 시작했지요 헌데 정작 떠날라니 노자가 있어야지요 가두 오두 못하고 혜매는 축들이 많다니까요.”
“저런, 거 안됐굼마.”
늙은 해녀가 자기 일이나 되는 것처럼 큰 숨을 내쉬었다.
“그래 나도 하는 수 없이 죽어도 집에 가서 죽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떠났지요 오늘까지 사흘 길을 걸어서 겨우 예까지 왔지요.”
“여비는 한푼도 없이…….”
듣고만 있던 젊은이가 참다 못해 입을 열었다.
“인전 피천 한푼 없쇠다.”
노인은 턱주가리 염소 수염을 어루만지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그럼 오늘두 쭉 굶으셨겠군요.”
다그쳐 묻는 명심이를 멀거니 쳐다보는 노인의 입가엔 비굴한 웃음이 가볍게 스칠 쁜 가부의 대답이 없다.
“아니 아무것도 못드셨지요.”
그제서야 마지못해,
“도중에서 고구마 몇 개 얻어먹기는 했수다만…….”
말끝을 흐리는 노인의 목소리는 맥없이 시무룩해졌다.
“쯧, 쯧…….”
혀를 몇 번 차고난 원산댁은 명심이 쪽에 눈길을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대한 몸집을 흔들면서 서너 걸음 빗겨선 원산댁은 몇 마디 속닥거려 명심이를 가게 쪽으로 보내고 다시 모래 위에 주저앉는다.
“이렇게 줄곧 걸어 가실래요.”
“별 수 있오 그렇게라도 해야지.”
젊은이는 담배를 꺼내어 노인에게 권하면서 성냥불을 그어댔다.
“이거 고마워서…….”
노인은 담배를 받아 쥐면서도 미안쩍은 음성이다.
“객지에 나오면 다 그런거지요 여기서 울진까지 며칠이나 걸리나요.”
“글쎄요 하루 팔십 리 걸음으로 쳐도 대엿새 걸리지요.”
“노비 한 푼 없다면서 어떻게 가시나요.”
“별 수 있나요 그래도 가야지.”
“어떻게 지나가는 추럭이라도 하나 잡았으면…….”
젊은이의 안타까워하는 말투다.
“그거야 바랄 수 있나요.”
“노인이 어떻게 그런 막벌이 일을 하시려고 집을 떠났어요.”
“낸들 떠나고 싶어 떠났겠오. 정 살아갈 구멍 수가 없으니 마지못해 이렇게 떠났지요.”
“자녀는 없으신가요.”
“아들이 하나 있기는 해요.”
“그런데 노인을 그렇게 떠나게 하던가요.”
“군대에서 돌아왔지요 허 절름발이가 돼가지구…….”
노인은 터져 나오는 한숨을 큰기침으로 삼켰다.
“집에서는 한몫 잘 보아가지고 돌아오는 줄 알겠지요.”
“그러니 말이요 떠나올 때 노비도 이집 저집서 몇 푼씩 꾸어 가지고 왔으니까, 아마도 지금쯤은 내가 돌아오기를 눈이 까맣게 기다릴꺼요.”
“그런데 홀몸이 돌아가기도 어렵게 되셨으니…….”
“지금은 아무 생각도 없오 그저 집까지 어떻게 돌아갈 수만 있었으면 하는 그것 뿐이요.”
둘러앉은 사람들도 제각기 큰 숨을 들이켰다.
“다 됐어요 언니 ―.”
원산옥 흔들리는 남포불 밑에서 그릇 소리를 내고 있던 명심이가 이들 쪽을 향하여 소리를 치고 있다.
“응.”
길게 대답하고난 원산댁은 노인을 끌어 일으키고 있다.
“저기 들어가 저녁 요기나 하시오.”
“아니 괜찮습네다.”
노인은 굶은 속에서도 손을 저으며 사양을 한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미안쩍은 표정이 분명하다.
“괜찮아요 들어가세요.”
젊은이도 노인의 등을 밀며 권했다.
“이거 원 폐스러워서 어디…….”
노인은 마지 못하는 몸가짐으로 원산댁이 끄는 대로 등불 쪽으로 따라 들어갔다.
2
울진 영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둘러앉은 축들은 그것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어쩌면 자기 신세의 거울을 마주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늙은 해녀 복실이 어머니는 고향인 서귀포를 떠난 지 벌써 십 년이 가까웠다.
4·3 사건 당시 아들은 열여섯의 아직 철부지였다. 외삼촌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젊음이 죄라고 해녀는 지금껏 가슴 속 맺힌 것이 풀리지 않고 있다. 남편은 마을에 내려온 아들을 하룻밤 집에서 재워 보내면서 고발을 하지 않았다는 죄과로 시비를 가릴 여유도 없이 즉결 처형이 되었다.
마지막 토벌 전에서 목숨이 겨우 부지해온 몇몇이 거의 해골이 되어 귀순해 올 때도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인제 산 속에는 백록담까지 훑어도 씨 하나 남지 않았다고 확인이 되었다는데도 아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몇 해 동안은 기적에 얽매인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한라산만 바라보아도 몸서리쳐졌다. 무리 죽음이 터지고 피비린내 코를 찌르던 자리마다 세워지는 비석을 보고는, 더욱 가슴 속이 조여 터질 것만 같았다.
돌각담 밑에 숨어서 밤을 새는 오빠에게 철모르고 심부름을 듣던 복실이의 허벅다리 총알 상처를 매만지면서 끝내 고향을 떠났다.
목포에서 여수로 포항에서 주문진으로 동해안 물 속을 올려 훑어서 일년이 가고 다시 내려 훑으면 또 한 해가 갔다. 어느 곳이든 한 곳에 지그시 몸을 붙이고 있으리만큼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늘 허공으로 맴돌고만 있었다.
어느덧 복실이도 열아홉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시집 줘야 할 나이가 찼다고 생각되었다. 잠질도 곧잘 해서 어미보다 해삼이나 전복을 몇 갑절씩 더 따왔다. 볼 때마다 토실토실 더 피어가는 딸의 몸집을 바라보면서 어머니의 걱정은 더 무거워 갔다.
어머니는 퇴색한 검은 물옷을 갈아 입을 때마다 뱃가죽의 주름이 나이를 알리는 것 같아졌다. 열다섯 길 스무 길 되는 검푸른 물 속에 곤두박질해 들어갔다가도 발을 툭 차고 다시 솟구쳐 올라와 서너차례 휘파람을 불어제껴 길게 큰 숨을 뿜으면, 가슴 속이 후련하여 풀풀 뛰는 생선마냥 날래던 몸뚱이다. 그것도 이제는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한두 길 들어갔다 와도 금방 숨이 가쁘다.
다시, 저주하던 고향이 그리워졌다. 동서남북 떠돌아 다녀도 죽을 곳은 거기 뿐이라 싶었다. 비명에 가버린 남편의 무덤 옆에 고요히 묻히고 싶어졌다. 어차피 그릴 바에야 딸자식도 제고장 섬사람에게 주어, 속아도 알고 속으리라 마음 먹었다. 뭍의 제비같이 날씬한 젊은이들은 좀체 믿겨지질 않았다.
딸은 노상 뭍에서 그대로 살자고 버티지만 네 아비나 오래비의 혼이 울며 헤매고 있는 섬으로 가야 한다고 우격다짐을 해왔다.
늘 어머니의 눈길은 아득한 수평선을 건너 남쪽바다 한끝에 못박혔고 딸은 딸대로 도회의 화사한 거리에 끈질긴 유혹을 느끼고 있었다.
3
원산옥! 이름은 그럴싸 하지만 바닷가의 가설 주막이다. 푸른 물 넘실거리는 바다를 찾아 모여드는 해수욕객이 철새라면 원산옥은 그 철새들 둥우리의 하나라고나 할까.
지붕에는 보루 상자를 이었지만 주위의 벽은 광목 한겹으로 둘러쳐 있다. 그것이 오히려 날마다 얼굴들이 바뀌어 모여지고 흩어지는 계절조들에게는 더 청신함을 자아낼지도 모른다.
습기를 머금은 광목 차일이 마를 사이도 없이 짓궂은 날씨에 방안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퀴퀴하게 코밑까지 번져온다.
낡은 돛으로 지붕을 한 이웃의 빵 가게까지도 견디다 못해 철거하고 나니, 바람길을 피하여 낡은 철길 밑에 음폭하게 자리 잡은 원산옥만 외톨로 남게 되었다.
개업 당초의 며칠은 날씨가 좋아 손이 묘자랄 정도로 복작대었다. 광목으로 칸막이를 하고 가마니를 깔아 놓은 방 두 개는 빌 사이가 없었다. 송판으로 된 상에 길다란 나무 걸상 두 개를 맞닿아 놓은 홀도 좌석이 모자라, 노천에 그대로 음식을 날라가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태풍이 터지자 해수욕군이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캠프하는 학생들의 텐트 한두 개가 겨우 남아 있을 뿐이다.
한산한 나날, 우울한 날씨, 지나가던 차를 멈추고 잠시 심심 요기를 하는 운전수들이나, 그렇잖으면 일요일 저녁의 탄광패들이 기껏 찾아주는 손님이었다.
읍내를 벗어나와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첫 일을 시작할 때 원산댁의 포부는 컸었다. 피서객이 서해안에서 동해로 많이들 옮겨졌다는 술꾼들의 느닷없는 이야기의 실마리에서 첫구미를 돋구었던 것이다. 한여름 잘하여 톡톡히 밑천을 잡으면 이번에는 기어코 숙망의 서울로 떠나려는 것이 원산댁의 속심이었다.
해안선을 타고 삼팔선을 같이 넘어온 남편이 품팔이의 고역에 시달리다 못해 세상 떠난 후는, 어린것 하나를 믿고 살아왔다. 부대, 잡역부, 담배장수, 식모살이, 결국엔 음식점 밥덕이로 자리가 굳어져 갔다. 못먹던 술도 울화를 밀어내기에 약이 되는 맛으로 입맛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린것도 새해에는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이왕 같은 고생살이를 할 바에는 대처에 가서 공부를 시키고 싶었다.
돈을 놀리고 계를 하고 하여 푼푼이 모은 돈을 밑천 삼아 한 집에 있던 색시 명심이를 타일러 명색 첫 사업이라고 시작했다.
일만 손조롭게 되면 겨울이 오기 전에 명심이와 함께 이사를 하리라는 한줄기의 희망이 가슴을 뛰게 했다.
4
밤은 꽤 깊어졌다. 파도 소리를 거쳐 어두움을 뚫고 곰바위 쪽에서 먼 산타루치아가 들려 온다. 젊은이의 노랫소리다.
남만주 여순 공업학교 재학중에 해방이 되었었다. 육로로 줄곧 걸어서 거지꼴이 되어 두 달만에야 서울에 다다랐다. 남대문 자유시장에서 그 때 막 터져 나온 일본 군복 장사를 시작했다. 얼마 후는 양키 깡통 장사로 옮겼다. 다시 양담배장사로 넘어 붙었다.
일이 한창 흥성해 갈 때 사변이 터졌다. 후퇴하는 길에 방위군에 끌려갔다가 군대에 정식으로 편입되었다. 철원 삼각지대 전투에서 겨우 살아 남은 덕분에 이등상사로 제대되었다. 아직도 뱃속에는 빼지 못한 파편이 하나 남아 있다.
삼척에서는 공민학교 선생까지 지냈었다. 비굴한 교장이 하는 짓이 비위가 거슬려 싸우고 뛰쳐나왔다.
다시 탄광으로 들어갔다. 서투른 일에 과로가 겹쳐 폐를 앓았다.
지난날 자기 사업이 잘 되던 시절에 톡톡히 신세를 입힌 친구의 얼굴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첫 밑천을 대어준 친구, 그 후 군수물자 취급에서 단단히 한몫 보았다는 그를 찾아갔다. 얼마 동안 머물러 있었으나 기침만 쿨룩거리는 자기를 짐스럽게 생각하는 친구의 눈치가 미안쩍어 간다 온다 소리 없이 떠나 버렸다.
오늘 아침 이발소집 장작을 빠개주고 받은 삼백 환에서 파랑새 담배 한 갑을 사 피우고 남은 이백오십 환은 낡아빠진 군복 호주머니에 아직 포개져 있다.
세상이 싫어졌고 모든 인간이 미워졌다. 조국이니 민족이니, 그런 것은 염두에도 두기 싫었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는 아직도 막연한 미련이 남아 있다. 이제라도 자기를 믿고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면 육신이 자라는 데까지 있는 험을 다하고 싶다. 자기도 세상이 믿어지지 않거니와 믿어주는 사람도 없다.
이 넓은 천지에 여섯 자도 못되는 자기의 몸뚱이 하나 의지 할 곳이 없다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바다를 향하여 파도 소리와 맞겨누기라도 하러는 듯이 노래를 부르고는 목이 터져라고 고함을 치는 것이다. 그 뒤에는 또 가슴을 에이는 기침의 고통이 엄습해 온다.
5
밤은 더욱 깊어갔다.
육중한 지엠시의 멈추는 소리가 나고 언덕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이 곳을 스칠 때 한두 번 들른 일이 있는 운전수다.
오늘 하루, 느지막히 첫 손님이다. 술상이 차려졌다. 명심이가 이 자리에 한데 어울렸다.
광목벽을 슴새어 들어오는 바닷바람에 가루장나무에서 내려 드리운 남포불이 깜박거리고 있다.
그들은 잔이 차기가 바쁘다. 연거푸 쏟아 넣는다.
“자, 명심이도 한잔 하지.”
운전수는 명심이에게 잔을 건네었다.
“조금만 주세요”
“조금은 왜, 잔은 차야 정이 든다는데.”
안주도 신통치 않은 술상에서 삼십 도의 소주는 삽시간에 그의 혀를 꼬부라지게 했다.
“자, 명심이 노래나 하나 부르지.”
“노래 잘 봇 불러요”
“홍 내가 왜 이 집에 온 줄 알어, 명심이가 좋아서 온거야…….”
“헤, 가짓말…….”
“가짓말은 무슨 가짓말야. 어디 증거를 보여줄까.”
운전수는 명심이의 목을 쓸어 안고 까실까실한 수염을 그 뺨에 비벼댄다.
“이거 놓아요 아이 숨이 막혀.”
“그럼 내가 싫어?”
“누가 싫다나, 목을 놓으래두요”
“요게.”
“아이구 갑갑해.”
명심이가 발버둥치는 통에 술잔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덜그렁 거렸다.
어느 틈에 원산댁이 들어와 이들 사이에 끼었다.
“이 아저씨 왜 이러세요 색시는 놓구 이야기를 해요.”
“명심이가 좋아서 그러는데 무슨 상관이야.”
“좋으믄 이렇게 사람을 잡아야 하나요.”
“잡기는 누가.”
“아이 숨차 놓아요.”
명심이는 겨우 운전수의 손아귀에서 버둥쳐 나왔다.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는 명심이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글썽하다.
운전수는 새로 따라 놓은 큰 컵의 술을 단숨에 들이켜고 잔을 원산댁에게 내밀었다. 원산댁도 넘쳐흐르는 잔을 들어 쉬지 않고 비웠다.
“내말 좀 들어요 운전수 아저씨, 저 차가 언제 떠나나요.”
“왜, 그래.”
“글쎄요.”
“명령대로야.”
“좀 부탁이 있어서 그래요.”
“갑자기 무슨 부탁…….”
“꼭 들어 주셔야 할 부탁이 있어요.”
“어서 얘기해 봐요?”
“묵호 쪽으로 가지요?”
“그래. ”
“오늘 밤에 떠나나요.”
“봐야 알지.”
“내일 새벽에?”
“몰라, 야, 색시 이쪽에 와 앉으래두.”
운전수는 원산댁 옆에 바싹 다가앉은 명심이를 끌어다 자기 곁에 앉힌다.
“무슨 부탁이던 명심이만 내 시키는 대로 하면 들어주지.”
“그거야 제 재간 나름이지…… 얘 명심아 좀 고분고분하렴.”
“요 깍정이 소리만 치고, 말은 영 안 듣는단 말야 총각 심정을 이해 못해.”
“총각, 흥!”
명심이는 혀를 쑥 내민다.
“왜?”
“무슨 총각야 다 구리닝구 하구두.”
“헤, 이게.”
“아저씨, 차가 떠날 때 한 사람 태워줘요 울진 가는 노인이 한 분 계신데 …….”
원산댁은 운전수의 손목을 잡고 잔을 권하며 말을 건넸다.
“그건 안 돼, 군대차에는 민간인 편승이 엄금이야.”
“늙은이래두.”
“늙은인 민간인이 아닌가, 나 원.”
“글쎄, 그렇게 해줘요.”
“명심이만 말 잘 들으면 될 수도 있지.”
“한디에 파 놓은 우물 갖구, 다 제 재간나름이지…….”
“자 어때, 명심이.”
운전수는 명심이의 등을 치며 다그친다.
“홍. 이건 누굴 동네 북인 줄 아나 봐.”
“이게, 왜 이래, 명심이 글지 마아, 우리 잘들 해보자니까.”
“어디 재간껏 해보래두.”
명심이는 운전수가 권하는 술잔을 받으며 이번에는 웃음을 띠고 재잘거리고 있다.
6
밖이 떠들썩하며 탄광패 두 사람이 뛰어 들었다. 어디서 들이켰는지 그 중의 하나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게걸음을 치고 있다.
“마담 있어.”
파나마 모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주인을 찾는다.
원산댁은 자리를 떠서 밖으로 나왔다.
“아, 강 주임이 아니요 어서 오시오”
원산옥에는 가장 큰 단골 손님인 탄광의 경리 주임이다.
광목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이들은 옆방에 자리 잡았다.
“명심이 없나, 명심이.”
모자 쓴 채로 술상에 앉은 파나마는 첫 잔을 들기 전부터 명심이를 찾는다.
“옆방에도 손님이 있어서 그래요 좀 조용히 하세요.”
원산댁은 낮은 목소리로 파나마에게 거의 애걸하다시피 했다.
“이건 처음부터 훈계쪼야.”
“글쎄 좀 있다 교대할께, 우선 들어요.”
“나도 이쯤 됐으문 술 먹자고 왔나, 명심이 보러 왔지.”
“색시 불러, 색시.”
거의 죽어가는 것 같던 옆의 친구도 반죽을 맞추어 곁들인다.
“곧 와요 우선 첫 잔을 들어요.”
원산댁은 어린애라도 달래듯 타이르는 어조다. 마지못해 잔을 든 파나마는 술이 첫 모금도 넘어가기 전에,
“이거, 소주 아니야 소주, 집어치우고 맥주 가져와 맥주.”
“맥준 다 떨어졌어요 ”
“그럼 정종 가져와.”
명심이를 끼고 앉았던 운전수의 눈길이 옆방을 흘기고 있다. 원산댁은 술주전자를 갈아들고 다시 들어왔다.
첫 잔을 들고 난 파나마는 옆방을 턱으로 가리키며 호기띤 고함을 친다.
“어떤 놈이 명심이를 끼고 앉았어, 가서 내가 왔다고 그래.”
“왜, 이러세오 술도 들기 전에 주정부터 하시는군요.”
“주정은 무슨 주정, 명심이를 불러달란 말이야.”
“그래 꿩 대신에 닭은 못 쓴답데까, 야 명심아 탄광 서방님 오셨단다.”
앙칼진 목소리를 남기고 원산댁은 자리를 떠서 옆방에 들어섰다.
“얘, 너 저쪽방 좀 가봐라, 난리 났단다.”
명심이의 등을 밑치며 원산댁은 자리에 앉았다.
“안 돼, 명심이는. 누군 손님이 아냐.”
“글쎄 저 손님들 취했으니까 잠깐만 다녀오게 해요.”
일어서려는 명심이를 운전수는 붙잡고 놓지 않는다.
“못가…….”
“홍, 나만 새에서 곯네, 어떻게 하라는 거야 언니.”
“나도 모르겠다, 네 마음 내키는대로 하려므나.”
“안 건너와, 명심이.”
“못 보낸다고 그래, 명심이는.”
운전수도 노기가 찼다.
“명심이 그러면 없어.”
파나마는 사뭇 협박조다.
“돈이문 제일이라더냐 제에길, 야 이것봐.”
운전수는 호주머니를 뒤적거려 지전 뭉치 꼭지만을 명심이에게 내보인다.
“그거 대체 어떤 새끼야.”
“머이 어째.”
파나마의 고함을 그대로 운전수가 받아챈다.
어느 사이에 오고가는 말은 칸막이를 거쳐 한방이 되고 말았다.
운전수의 술잔이 광목벽을 치고 떨어졌다. 남포불이 흔들린다.
“이거 어디 덜된 새끼야.”
파나마의 던진 접시가 칸막이의 이은 혼솔을 뚫고 튀어나와 운전수의 술상에 떨어졌다.
“이 자식이.”
“이 새끼가.”
칸막이는 찢어지고, 파나마와 운전수는 멱살을 쥐고 맞붙었고 거기에 취한 친구까지 덮쳤다.
이 사이에 끼어 원산댁과 명심이는 뜯어 말리느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낡은 돛 차일 밑에 자리를 깔고 누워 풋잠에 들었던 울진 영감, 해녀 모녀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간사한 네 년은 썩 나서라.”
파나마에게 발길로 채인 명심이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통에 남포불이 꺼졌다.
가슴팍을 밀고 드는 두 녀석을 뿌리치면서 운전수는 허리의 권총을 빼어 몇 발을 연발하였다.
폭풍을 막느라고 지붕에 올려놓은 통나무가 떨어지면서 원산댁의 가슴팍을 내려쳤다.
캄캄한 방 속에서 노기 띤 아우성과 가냘픈 신음 소리가 얼마 동안 계속 되었다.
7
새벽달이 어슴프레 지고 오래간만에 아침 해가 솟기 시작했다.
겹겹으로 싸였던 구름은 흩어지고 바다는 어제의 포효를 말쑥히 잊은듯 아득한 수평선까지 빙판처럼 고요해졌다.
묵호 쪽으로 가는 군대 트럭 운전대에는 병원으로 가는 원산댁을 부축하여 명심이가 같이 탔고 뒤쪽 짐짝 위에는 울진 노인이 불안에 찬 표정으로 쪼그리고 앉아 있다.
제주 해녀 모녀는 오래간만에 태박과 갈퀴를 겨드랑이에 끼고 바닷가 바위 위에 나섰다. 이마에 걸은 수경에는 유난히 아침 햇살이 반사되었다.
학생들 캠프의 마지막 천막까지 간밥에 사라진 모래 사장에 젊은이는 서서, 가 없는 하늘 끝을 바라보면서 실신한 것처럼 그 특유의 먼 산타루치아를 가슴이 터지도록 부르고 있다.
갈매기 두셋이 물을 차며 수면에 원을 그리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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