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는가(1938/06)
‘나는 작가다. 모든 작가는 ‘정치에 거리를 두려는’ 충동을 느낀다. 평화롭게 책을 쓸 수 있도록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이상은 기업형 슈퍼마켓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구멍가게 주인들의 꿈보다도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독립노동당이 제국주의 전쟁이나 영국적 형태로 나타날 파시즘에 맞서 바른 노선을 견지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라 믿는다.
‘나는 스페인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저 부정적이기만 할 뿐인 ‘반파시즘’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위험한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게 되자, 나는 독립노동당이 가입할 만한 유일한 영국 정당임을, 그리고 적어도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란 이름의 속임수에 넘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가입할 수 있는 유일한 당임을 깨달았다.
마라케시(1939/12)
‘이런 도시에서 걸어다니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또 얼마나 쉽게 죽는지를 보면, 과연 내가 인간들 사이를 걷고 있는 게 맞는가 하는 느낌을 항상 갖게 된다. 모든 식민제국은 실제로 그런 사실의 기반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사람들 피부가 갈색인 곳에서는 빈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그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몇 주 동안 매일 언제나 같은 시간에 노년의 여성들이 장작을 지고서 줄지어 집 앞을 절뚝절뚝 지나갔건만, 그리고 그 모습이 내 눈에 분명히 비치었건만, 나는 사실 그들을 봤다고 할 수가 없다. 내가 본 건 장작이 지나가는 행렬이었다.
좌든 우든 나의 조국(1940/가을)
‘일반적인 믿음과는 반대로, 과거는 현재보다 특별히 대단한 게 아니다… 1914~1918년의 전쟁이 지금의 전쟁에 부족한 웅장하고 대서사시적인 분위기를 띠는 것은 주로 그 뒤에 있었던 책이나 영화나 회상때문이다.
- 오웰은 전쟁보다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이 더 심금을 절절히 울리는 참사로 기억한다. 전쟁 중에는 ‘독일 황제’를 다룬 만화, 자신이 말이 군대에 징발돼 끌려가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마부, 런던에서 막 도착한 석간신문을 손에 넣기 위해 앞다투어기차에 뛰어오르던 청년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전쟁을 지지하는 이유를 스스로 옹호해야만 한다면,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히틀러에게 저항하느냐 아니면 굴복하느냐의 선택에선 딱히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다. 아울러 사회주의자 입장에서 나는 저항하는 게 낫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영국, 당신의 영국(1940/12)
1. 애국주의, 영국 문명
‘애국주의, 즉 국민적 충심이 갖는 압도적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오늘의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애국주의는 상황에 따라 무력해질 수도 있고, 문명의 어느 단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외국에 있다가 영국에 돌아와보면, 공기부터 다르다는 것을 당장 느낀다. 도착한 지 단 몇 분 만에, 수십 가지 자잘한 것들이 공모하여 그런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맥주는 더 쓰고, 동전은 더 무겁고, 풀은 더 파랗고, 광고는 더 노골적이다. 대도시의 군중은 얼굴이 조금씩 얽었고, 치아가 부실하고 거동이 젊잖은 게 유럽 대륙의 군중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전개되고 있는 엄청난 사건들에 대해 영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추측하기 전에, 영국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일일 것이다.
2. 영국인의 특징
‘하나는 영국인들이 예술적인 재능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유럽을 기준으로 할 때 영국인들이 별로 지적이지 안다는 점이다. … 그런가 하면 그들은 생각 없이 행동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흔히 언급되지는 않아도 대단히 눈에 잘 띄는 영국인의 버금가는 특징 하나를 언급할 필요가 있으니, 바로 꽃을 아주 좋아한다는 점이다.
‘서민들, 특히 대도시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볼 때 바로 눈에 띄는 것 하나는 청교도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영국 문명에서 점잖음gentleness은 아마 가장 두드러진 특징일 것이다
3. 엉뚱한 식구들이 살림을 주무르는 집안
‘하지만 영국은 부자와 빈자라는 두 민족으로 나뉘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러면서도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단일 국민이라 ‘느끼며’ 외국인보다는 자기들끼리 더 닮았다고 의식한다. 애국주의는 대체로 계급간 반목보다 강하며, 어떤 유의 국제주의보다 언제나 강하다.
4. 지배계급
‘지난 70여 년 동안 영국인의 삶에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 하나는 지배계급의 능력이 크게 쇠퇴했다는 점이다.
‘영국의 지배계급이 언제나 ‘도덕적’으론 꽤 건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점 하나는 전시에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플랑드르에서 있었던 작전에서도 여러 공작이니 백작이니 하는 이들이 목숨을 내놓았다. … 그들에게서 예상할 수 있는 건 반역이나 드러나는 비겁함이 아니라, 어리석음과 무의식적인 방해, 그리고 일을 그르치는 직감인 것이다. 그들이 사악한 것은, 혹은 아주 사악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배울 줄을 모르는 것뿐이다. 돈과 권력이 없어져야만 그들 중 젊은 세대가 자신이 몇 세기를 살고 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5. 영국의 정체
‘두 전쟁 사이 제국의 침체 상태는 모든 영국인에게 영창을 끼쳤는데, 특별히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중산층의 두 그룹이었다. 하나는 군인이자 제국주의자로서 흔히 블림프란 별명으로 불리는 이들이며, 또 하나는 좌파 지식인들이다.
‘’영국은 아마도 지식인들이 자국을 수치스러워하는 유일한 대국일 것이다. 좌파 지식인 사회에는 영국인이라는 것을 조금은 부끄러워하며, 영국의 관습은 경마에서부터 소기름 푸딩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비웃어주는 것을 의무로 여기는 정서가 항상 존재한다. 영국의 지식인들 대부분이 헌금함을 슬쩍 하는 것보다 애국가를 부동자세로 서서 듣는 걸 더 창피한 일로 여긴다는 건, 이상하긴 해도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무엇이든 기계적으로 조롱하는 블룸스버리의 교양인은 이제 기병대의 대령처럼 케케묵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현대 국가는 두 부류 중 어는 쪽도 배출해선 안 된다. 애국주의와 지성은 다시 결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일이 가능토록 할 대단히 독특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6. 중산층의 확대
‘1918년 이후로 영국에선 전에 없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회계층이 불분명한 사람들의 출현이었다. 1910년에는 영연방의 어떤 인간이라 할지라도 옷과 태도와 악센트만으로 당장 그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특히 값싼 자동차의 생산과 산업의 남하로 개발된 새로운 거주 지구에선 더욱 그렇다. 미래의 영국의 모습은 경공업 지구와 주요 간선도로 주변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영국은 영국일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로 이어져 있는,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모해도 여전히 같은 존재로 살아남을 힘이 있는, 불멸의 동물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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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국, 당신의 한국(2024.07)
한국은 OOO이다!
한국인은 OOO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