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제니 무상버스니 하는 대중교통 의제가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 의제로 떠오른 것은 참 희귀하다. 그간 지하철 증설이니 지티엑스니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있던 공약이 아니라 유일한 지위를 가진 .선거 의제가 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무상버스냐 공영제냐는 날선 공방에도 불구하고 현재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기득권 층의 적극적인 반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역의 버스업체가 직접 말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이미 공영제에 대한 저항은 시작되었다. 때로는 시민사회단체의 얼굴로 때로는 전문가의 얼굴로 나타난다.
알다시피 노동당은 무상교통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무상교통을 위해서는 공영제를 통해 기존의 기득권 구조를 바꾸는 것을 함께 고민해야 되는 입장에서, 공영제 도입에 반대하는 논리를 미리 따져 보는 것은 공영제 논의의 심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판단한다.
통상적으로 공영제의 문제에 대해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공영제가 민영제나 준공영제보다 효율적이라는 사례나 연구 결과가 없고 오히려 반대 사례만 있다’. ‘공영제를 도입한 나라보다 운영 적자 지원율이 낮다’. ‘서비스 수준에서는 공영제나 민영제 간에 차이가 없다’. ‘공영제를 하게 되면 노조만 강력한 공룡 기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비용이 많이 들 것이다’라는 것이 그 논리들이다.
미국 오리건주의 포클랜드시는 대중교통이 무료이다(사진=방송화면)
전 세계적으로 교통선진국이라고 평가받는 나라는 대부분 공영제로 버스를 운영한다. 미국이 그렇고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그렇다. 따라서 효율성에 대한 비교 연구가 없다는 주장보다는 왜, 선진국에서는 버스를 공영제로 운영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대중교통은 시민들의 이동권과 관련된 기본적인 공공서비스로 인식되고 있다. 이를 공급하는 주체로 공공기관이 책임지고 담당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서울시의 버스 정책은 중앙버스차로, 버스환승센터, 버스정보시스템 등으로 사실상 공영제의 효과다. 버스의 공익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택시나 자가용에 비해 버스를 정책적으로 배려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서울을 비롯해 준공영제를 도입한 지역의 가장 큰 골치는 막대한 보조금이다. 서울시는 이미 3,000억원을 넘어선다.
그리고 이런 보조금의 핵심에는 회사들에게 보장해주는 적정이윤이 있다. 서울시는 2011년에만 700억원 규모였다. 버스 한 대당 2만 5천원 꼴로 이윤을 보장해준다. 이것은 운전을 하는 버스기사나 요금을 내는 승객과는 상관이 없이 지급된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에 따르면 서울지역 시내버스 업체 대표들의 평균 연봉은 2억원 이상이고 5억원이 넘는 사람도 있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준공영제의 비효율성 사례 중 많은 부분이 민영제의 요인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에는 학생 할인, 저소득층 무임 보장, 정기권 등 요금체계를 통한 대중교통 유인정책이 존재한다. 영국 런던버스의 경우에는 관광객 할인이 되는 트레블 카드와 대학생 할인이 되는 오이스터 카드를 발행하고, 프랑스 파리나 미국 뉴욕의 경우에는 다양한 정기권을 제공한다. 자가용 이용자에게도 버스 이용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낮은 요금체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고 이런 비용이 적자 보전액에 포함되는 것이다.
적자 보전 비율로만 공영제의 효율성을 접근하는 것은 지극히 근시안적인 태도다. 시민과는 상관없이 버스업체만 좋은 준공영제는 이미 한계에 직면했다. 세금도 요금도 시민들이 부담한다. 시민들이 내는 돈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대중교통이라면 차라리 시민이 주인으로 나서는 것이 낫다.
근거 없는 노동조합 혐오증으로 지하철 1~4호선을 담당하는 서울지하철공사와 별도로 5~8호선을 담당하는 도시철도공사를 만들어 불필요한 사장과 임원진만 양산했던 사례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면, 운영기구는 단순하게 서비스는 와 닿게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은 역시 공영제밖에 없다.
최근 가장 세련된 형태의 공영제 반대론은, 대중교통수단의 운영체제에 ‘정답은 없으며 따라서 공영제니 무상버스니 하나의 형태를 정해 놓고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일면 타당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이 같은 주장은 현재 준공영제 체제가 떠받치고 있는 기득권 구조와 이로 인해 양산되는 비리들 조차도 지역적 특수성으로 치부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를테면, 공영제로 운영되는 부산지하철 4호선도 적자고 민자사업자가 운영하는 김해경전철도 적자인데 이에 대해 재정지원을 하면서 공영이니 사영이니 구분할 필요가 있냐는 주장도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민간사업자의 적자는 그야말로 사유화된 이윤을 보장해주는 수단이지만 공영제로 인해 발생하는 적자는 사회적 적자다. 민간사업자의 그것은 지방정부의 ‘의무’이지만 공영제의 그것은 ‘사회적 부담’이다. 따라서 공영제는 단순히 외국의 것을 따라 하는 것의 의미가 아니라 현재 구조화된 비리를 양산하는 준공영제/사영제의 문제점을 고칠 수 있는 처방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노동당은 공영제, 나아가 무상교통의 형태가 반드시 지방정부의 직영화 형태를 전제로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공영제=직영제가 무슨 공식은 아니다. 또한 서울 외의 지역을 위성화하는 현행 광역교통체계를 효과적으로 보충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공영제는 중요하다.
노선의 사유화를 전제로 만들어진 현행 버스운행체계는 노선의 경제성이라는 잣대로 존폐가 나뉘지만, 공영제의 그것은 경제성을 넘어서는 지역 생활권의 지속가능한 순환구조를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역 내 순환 노선의 신설을 통해 서울의 도심 상업지구로 빠져나가는 흐름을 지역 내로 유도할 수 있다.
현재 전국의 버스사업자들은 대부분 6~70년대에 사업자면허를 받았다(전북지역의 한 시외노선을 가진 회사의 면허 발급 년도는 1944년으로 정부 수립 전부터 버스사업자였다).
많았던 시영버스의 면허를 논공행상하듯이 나눠 가진 기득권 구조인 것이고, 그들과 그들의 2세들이 세습되는 부와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누구는 대를 걸쳐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을 하고 있으며, 누구는 지역 유지로 무슨 무슨 후원회장직을 하고 있고, 어떤 이는 경총 부회장과 같은 지위를 누린다.
이 카르텔을 깨자는 것이 공영제 주장의 중요한 함의다. 더 많은 논쟁과 더불어 더 많은 연대가 필요하다. 이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다. 조바심을 내면 안되겠지만 그래도 안절부절하게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