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 8화. 골수야 일 좀 해라(2)
2012 / 05 /20
면역치료받은지 한달하고 반.
남들 다 온다는 싸이폴 부작용이
드디어 복용한지 한달 반만에 나타났다
나 또한 한낱 인간이었음
잇몸이 계속 부어서
모든 음식에서 피 맛이 난다
괴기스럽다
그리고 다모증..
아침에 제모하고나면 저녁에 털이 나있음
...
아니 털이 많이 나서 다모증아닌가?
자라는 속도가 엘티이라고는 안했잖아?
키가 이렇게 자랐으면 배구했을듯
가만히 두면 어떤 꼴이 될지 궁금할 정도로
털이 너무 많이, 빨리 자라서 감당이 안된다
팔다리는 물론이고 얼굴 전체에 솜털이 보송보송(?)
좋게 말해서 보송보송이지 체감은 북실북실
왠지 퇴화하는 기분이 든다.
좋은 점은
머리숱, 눈썹숱도 많아지고
속눈썹이 인형처럼 길어진다
그래, 이렇게 위안이라도 삼아야지 어쩌겠어
앞으로 5개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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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간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데 그럴 의욕도 없고
재미도 없고 하루종일 집에만 박혀있는게 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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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12 서울 외래일.
백혈구 2500
호중구 1650
적혈구 8.3
혈소판 26000
백혈구랑 호중구가 팍 뛰고 혈소판이
3주째나 유지되고 있는 이 흥겨운 상황에
적혈구는 눈치없이 계속 떨어지고있다
적혈구씨.. 눈치가 없으면
사회생활 하기 힘들어~ㅎ
그래도 조금씩 오르는거같은데
진짜 효과가 있는걸까 유지가 돼야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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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6 / 19 지방병원 외래.
백혈구 2580
호중구 1250
적혈구 11.4
혈소판 27000
백혈구 깨알같이 오르고
혈소판도 천 올랐다
이번주로 혈소판 수혈 안받은지 한달!
그래 골수야 조금만 더 힘을 내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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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오고 하루가 가고
특별한것 없는 일상의 반복인데
그 하루는 늘 다르다
어쩜 이렇게 다양하게 재미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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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7 / 11 지방병원 외래일.
백혈구 2280
호중구 1320
적혈구 9.3
혈소판 26000
......혈소판.....
이건 뭐 등록금동결도 아니고 한달넘게 뭐하는거야
왜 3만을 넘질못하니!!!!!!어!!!!!왜!!!!!!
잦은 수혈로 철분이 많이 쌓였다.
1000 넘으면 약 먹어야 된다던데
나는 2천을 찍었다.
세상에.. 드디어 철들었다.
철분 빼는 약 이름이 엑스자이드란다.
이름 한번 휘황찬란하다.
일주일치 약이 40만원이란다
????????
40만원?????
약에 도금이 돼있나보다.
그렇지않고서야 약값이 저럴수가 있단말인가
나는 중증 희귀난치질환 파워로 10%만 냈다.
중증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건 처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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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반에 웬 알람이 울렸다.
뭐야? 알람이 왜 맞춰져있지?
끄고 다시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아... 철분약 먹어야되는구나....
식전약이라 어제 알람 맞춰둔걸 그새 까먹었음
대단한 기억력에 감탄하며 약 먹을 준비했다
오렌지쥬스 200ml를 콸콸콸 부었다
200ml는 생각보다 많은 양이었음
엑스자이드 네알 투척
빨대를 꺼내서 휘적휘적 저었는데..
안녹아.
.....
눈 녹듯이 녹을거라 기대한 내가 멍청이지ㅎㅎ
졸린 눈으로 맷돌 돌리듯 계속 휘저었음
3분....5분....10분......
...........
이거 녹여먹는거 맞아요????
아닌거같은데???????
불굴의 의지로 계속 휘저으니
약이 부서지기 시작함-_-
아.. 이런거구나..
녹는게 아니라 부서지는거였어!!!!
누가 녹는다고했냐 궁시렁거리면서
완성된 약을 보고있자니....
......하.... 이 색깔은 마치...
노란색 물감에 흰색 물감을 짜넣은듯 하구나.
물을 갈아야될것같은 그런 느낌이구나.
맛은 어떨지 궁금하고 두려웠음
빨대로 쪽쪽 빨아먹어보니
의외로 무향 무맛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부터 지옥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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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게 다 엑스자이드 때문이다
자다일어나서 엑스자이드 먹고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구역질이 올라온다
근데 구토를 할 수가 없다
소화가 되야 철분이 빠지기때문ㅎㅎ
구토도 마음대로 못하는 내 팔자야...
빈 속에 토를 하면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기분이다
내 몸이 행주가 되어 누가 물기를
남김없이 쫙쫙 짜대는 느낌.
종일 울어서 눈이 없어졌다
아프니까 사소한거 하나하나가
왜 이렇게 서운하고 서러운지 모르겠다
졸업전시 끝나고 행복에 겨워 살았는데
그 행복은 "우리 헤어져" 라는 느낌으로
어느 날 사라지더니 여태 실종이다
언제쯤이면 나도 세상이 아름다워보일까
일단 이 그지같은 엑스자이드부터 끊어야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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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지금 수혈 안받을 수 있는 최저수치다
이 수치로는 살아갈 수 없다.
근데 골수이식도 못한다
이식하기엔 너무 높은 수치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라는거야 망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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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꿨다.
유난히 별이 많은 밤에
별자리를 보면서 과자를 먹고있었다.
별자리 볼 줄 모르는데
별들이 엄청 진하고 선명하게 보였음
와작와작 과자 먹고있는데 갑자기 별똥별이 떨어졌다
꿈에서 별똥별을 처음보다니..-_-
생각보다 천천히 떨어지길래
어머 이건 소원을 말해야돼 하고는
먹던 과자 내팽겨치고 소원을 말했음
"수치 엄청 오르게 해주세요!!!!"
빌고나서 뿌듯해하고있는데
이놈의 별똥별이 잘 떨어지다가
갑자기 유턴해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거임-_-
????? 뭐야
그리곤 다시 떨어지길래 또 소원빌었다
"완치되게 해주세요!!!!"
"저 다 낫게 해주세요!!!!"
그제야 뾰로롱 떨어졌다.
매우 흡족해하며 다시 과자 주워다가 먹었음
일어나서 생각해보니까
다른 소원 두번이나 빌 수 있었는데
두번 다 낫게 해달라고했다니....
그만큼 절실한걸까
하나는 로또1등같은거 빌어볼껄-_-
하여튼 기분 좋은 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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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사람들이 내게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있다.
처음엔 걱정해주는것같아서 고마웠는데
점점 기분이 이상하다.
마치 '그래서 걔들 사귄대?'같은 말투로
근황을 계속 물어본다-_-
진짜 걱정돼서 물어보는걸까?
무슨 병인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앞으로 치료는 어떻게 하는지 매번 설명해줘도
몇주 후에 연락와서는 물어본 걸 또 물어본다
똑같이 대답해주면 또 연락와서 또 물어본다
또 말해주면 또 연락와서 또 또 또 물어본다
그럴거면 애초에 묻지를 마라!!!!!
메모리가 휘발성인가 왜 기억을 못해!!!!
그만 물어봤으면 좋겠다.
몇십명한테 매번 똑같은 얘기하려니
입에서 단내날것같다
날 걱정해서 물어보는게 아니라
엄청난 가십거리를 알아낸 기자같다
귀찮다
다 귀찮다
사람이 다 무어냐
내 몸 하나 간수못하는 이 상황에
남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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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하게 앉아있다가 갑자기 해탈했다-_-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갑자기 수치가 쭉쭉 오르던가
아님 골수이식해서 잘 살던가
아님 뭔가 잘못되서 죽겠지
아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이것도 저것도 신경쓰려니까
머리가 터지겠다 스트레스 아닌게 없네
어떻게든 되겠지!!!! 난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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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탈이나서 며칠째 설사를 한다
내장이 같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아빠가 오전에 지사제라는걸 사오셨다
캡슐 두개만 먹으면 되는줄 알고 신났는데
다른걸 더 먹야된다면서 쪼그만 봉지를 쭉 까더니
내 손바닥에 탈탈 털어놨다.
.....
.........토끼똥?
이것도 지사제라고했다
토끼똥아니고?-_-
그렇게 하루동안 토끼똥을 60알을 먹었다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올바른 육체로 삶을 살아보고싶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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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자이드 부작용치고
피부트러블이 이정도면
엄청 양호한 편이였구나
내 피부 돌려내라고 맨날 찡찡댔었는데
오히려 감사해야할 지경이구나.
복용하는 약 중에
어느것 하나 독하지않은게 없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부작용이 없는 편이었어
감사하면서 약 먹어야할 입장이였구나
그렇구나-_-잘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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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8 / 09
오늘까지만 거지같다 욕하고
오늘까지만 원망하고
오늘까지만 부러워하고
오늘까지만 욕심부리고
오늘까지만 힘들어하자
오늘까지만 억울해하고
오늘까지만 조급해하고
오늘까지만 답답해하자
오늘까지만 의욕없어하고
오늘까지만 사는게 재미없다하고
오늘까지만 날 싫어하자
오늘까지만 그러자
이제 나도 살아야지
언제까지 밤마다 울면서 살기싫다할꺼야
많이 답답하고 많이 힘들어
뭐하나 좋은 일은 쥐뿔도 없고
세상이 밉고 내가 미워
그래도 내 인생인데
거지같아도 내 인생인데
갖다버리고싶어도 내 인생인데
살아야지 버텨야지 일어나야지
나보다 힘든 사람이 수두룩한데
백번 다짐하고 한번 무너지고
백번 다짐하고 또 한번 무너지고
괜찮아 사람이니까 무너지는거야
기대를 하니까 실망을 하는거야
누가 알아 그래 아무도 몰라
내가 누군가의 슬픔을 대신 할 수 없듯이
내 슬픔도 마찬가지야
누가 뭘 어떻게 알겠어
힘들지? 이 한마디에 주저앉아 우는 내 심정을
누가 알아서 위로해주겠냔말이야
결국 혼자 이겨내야 될 문젠데.
어차피 해야된다면
좋은게 좋은거라 생각하고
기분좋게 살자
그래 어쨌든 난 나을거잖아
또 얼마나 울고
얼마나 아파하고
얼마나 힘들고 답답할지
짐작도 안되지만
결국 나을테니까
그럴테니까 너무 울지말자
힘내야지 하긍정이였잖아
비록 병이 모든걸 바꿔놓고
뺴앗아간것도 많지만 나중엔 값질거야
지금은 이렇지만 지나고나면
비할 데 없이 값진 경험이 될거야
그러니까 웃자
힘내자 다 괜찮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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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거라 다짐한지 이틀째.
밥 먹기 싫어서 엄마아빠 앞에서 펑펑 울었다-_-
속이 괜찮아야 움직이기도하고
산책도 하고 나가놀기라도하지
이건 뭐 하루종일 울렁거리니
누워있는거말고 뭘하라는거야
이게 약이여 독이여!!!!
안먹자니 수혈을 안받는 것도 아니고
계속 수혈받고 사는 이 상황에
약 중단도 못하겠고 미치겠다
빌어먹을 엑스자이드.....
처음엔 이렇게까지 울렁거리진 않았는데
갈수록 점점 심해지는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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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폴을 100mg로 줄인지 한달.
잭과 콩나물마냥 자라던 내 털들이 모조리 빠졌다
본래 숱없는 나로 돌아왔음
세수하고 나면 수건에 눈썹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속눈썹도 언제 길었었냐는듯 본래 길이로 돌아왔음
조금 아쉽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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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8 / 03
면역치료받은지 4개월째.
점점 강한 확신이 들고 있다
면역치료는 글렀다
이제는 골수이식밖에 방법이 없다
동생과는 반일치니, 공여자도 없으면
동생이나 엄마랑 반일치 이식을 해야한다
그래 일단 공여자부터 찾아보자
코디선생님과 연락해서
팩스로 서류받고 작성하고 보내고....
골수찾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