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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퍼스, 자나그로브 사원의 추억 |
글 | 스텔라 박
아잔 브람 스님과 각산스님의 법연
각산스님은 미주현대불교 독자들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출가자일 것이다. 미주현대불교 30주년 기념 행사로 LA에서 열린 명상대회에 오신 각산스님은 100여 명의 LA 동포들을 대상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명상 지도를 펼쳤었다.
각산스님은 조계종에서 출가하셨지만 한국의 전통 참선 외에도 전 세계 여러 명상센터에서 다양한 명상 전통, 여러 명상 스승과 함께 정진하셨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호주 퍼스(Perth)에 있는 보이냐나 사원(Bodhinyana Monastery)의 아잔 브람 스님에 대한 각산스님의 사랑과 존경은 각별한 듯 했다.
각산스님과 아잔브람 스님의 첫 만남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산스님은 스리랑카의 고대 숲속 수행처인 나우야나(Nauyana) 명상센터에서 은둔 수행하던 2011년, 아잔브람의 명상법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엄청난 추진력을 지닌 각산스님은 바로 그 길로 아잔브람을 찾아 지구 남반구 끝쪽, 퍼스에 위치한 보디냐나 사원을 방문한다. 이후 각산스님은 아잔브람의 초기불교 명상수행법을 전수받아 수행에 큰 증진을 이루었다고 한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무엇인가를 하려는 마음을
놓아버려요.
모든 행위를 놓아버리고
고요하게 멈추세요.”
- 아잔 브람
각산스님은 한국에 명상 수행 열풍을 일으킨 출가자이기도 하다. 2013년, 한국에 처음 남방불교와 선불교간의 국제교류를 꾀한 봉암사 <초기불교와 간화선의 만남>으로부터, 2014년 <만해마을 명상힐링캠프>, 2016년 <세계명상대전>, 2018년 <DMZ세계평화명상대전 >에 이르기까지 그는 초대형 명상 이벤트들을 끊임 없이 창조해왔다.
각산스님은 이런 행사에 자신의 스승이자 도반인 아잔브람 스님을 초대해, 한국의 수행자들에게도 아잔브람 스님의 가르침을 직접 접할 기회를 제공해왔다. 또한 참불선원은 아잔 브람 스님의 한국 대행사라고도 할 수 있는 ‘아잔 브람 한국명상센터’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이번 수행 여행은 각산스님이 한국의 여러 법우들과 함께 했던 일련의 성지 순례 여행과 맥을 같이 한다. 한국명상총협회와 참불선원에서는 각산스님의 인도로 이미 2014년 11월, ‘대만불교 명상법 성지 순례 여행’ 길에 올랐었고 4년 뒤인 2018년에는 태국과 미얀마 등 정통초기 불교 성지 순례 여행을 떠났었다. 그리고 2019년 11월 9일부터 15일까지 5박7일의 일정으로 서호주 퍼스의 ‘자나그로브 명상센터’와 ‘보디냐나 선원’에서 직접 수행하는 여행을 기획한 것이다.
침묵이 필요해
각산스님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호주 퍼스까지 날아온 50여 명의 법우들과 함께 11월 10일(일) 퍼스 공항에서 만나 인근 지역을 여행하고 2박3일간 자나그로브 명상 센터에서 묵언정진하던 시간은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나의 마지막 묵언수행은 1년 전, 한국의 고엔카 명상센터에서였다. 물론 2019년 초 각산스님과 함께 하는 명상대전에도 참가하긴 했지만 행사 준비위원이었던 터라 온전히 침묵 가운데 있을 수 없어 아쉬웠었다.
이번 호주에서의 안거 역시 기간이 너무 짧았고 나는 아잔 브람 스님의 영어 법문을 한국어로 통역하는 일을 맡았던 터라, 완전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묵언수행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나는 2019년의 부족했던 묵언수행을 12월 26일부터 일주일간 이글락(Eagle Rock) 시에 있는 샴발라 명상 센터에서의 안거로 채웠다.
왜 이렇게 묵언수행에 연연해하는지 궁금증을 갖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시간이 정기적으로 필요해서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에서 인가받은 마인드풀니스 명상 선생님들은 1년에 적어도 5일 이상 묵언 정진을 필수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잔 브람 스님
참불선원 법우들과의 만남
퍼스 공항에서 12시간 이상을 기다려 명상 순례 여행 길에 오른 한국 참불선원 법우들과 만나 호텔로 들어갔다.
다음 날인 11월 10일(일)은 하루 종일 퍼스 도심지를 관광했다. 퍼스는 서호주의 주도로 170만의 인구가 살아가고 있는 깨끗하고 평화로운 도시이다. 비교적 젊은 도시로 미국 LA 인근, 어바인 시와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오전에는 퍼스 시내에 위치한 킹스파크(Kings Park)와 식물원(Botanical Garden)에서 걷기 명상을 했다.
킹스파크 입구에는 전쟁에 희생된 이들 모두에게 바쳐진 기념비와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늘 타오르고 있는 불꽃이 있었다. 1895년도에 세워진 이 기념비에는 “고요한 성찰이 당신의 헌정이 되기를(Let silent contemplation be your offering)”이라고 써있었다.
묵언수행을 목적으로 여행 길에 오른 이들의 가슴 한 복판에 이처럼 큰 울림을 주는 문장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일상을 떠나 온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경이로 다가온다. 멈추었기 때문이다. 킹스파크 식물원에는 진기한 남반구의 식물들이 가득했다. 아프리카에서 옮겨 심었다는 바오밥 나무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어린왕자>에도 등장해 이름이나마 친숙한 바오밥나무를 아프리카가 아닌 오세아니아 대륙에서 대하는 감동은 컸다. 그 나무의 여정, 낯선 장소에서의 뿌리내림 그 모든 세월들이 그 큰 나무 앞에 선 순간 고스란히 내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만을 이루고 있는 ‘엘리자베스 키(Elizabeth Quay)’는 도심의 상업용 고층 건물들이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는 지역으로 특히 석양 무렵, 지는 해가 빌딩들의 유리 창에 반사되는 모습이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자나그로브에서 친견한 아잔 브람 스님
자나그로브 명상센터 입소
다음날 아침, 일행은 자나그로브 명상센터를 향해 길을 떠났다. 자나그로브 명상센터는 태국의 아잔차 스님을 스승으로 출가한 아잔브람 스님이 원장으로 계신 명상센터이다.
보다 정확하게 조직의 구조를 설명하자면 ‘서호주 불자 협회(Buddhist Society of Western Australia)’라는 승가공동체가 있고 이 승가의 스님들이 정진하며 신도들이 보시하러 방문하는 곳은 ‘보디냐나 사원(Bodhinyana Monastery)’이다. 그리고 아잔 브람 스님은 이 사원의 주지스님이시다. 그리고 재가자들의 묵언정진을 위한 안거 장소(Retreat Center)가 ‘자나그로브 명상센터(Jhana Grove Retreat Center)’이다. 보디냐나 사원과 자나그로브 명상센터는 걸어서 15-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아잔 브람 스님이 서호주로 파견된 것은 1983년도. 당시 1000달러 정도의 선금으로 구입한 93에이커의 숲은 말 그대로 아무런 건물도 없던 허허벌판이었다고 한다.
스님은 이곳에 파견돼 벽돌 쌓는 일, 화장실 짓는 일 등 온갖 노가다 일을 다 했다고 법문 때마다 자주 언급하신다. 그 유명한 ‘2개의 삐뚤어지게 놓인 벽돌’ 일화가 탄생한 곳도 바로 이 사원에서이다.
자나그로브 명상 센터의 시설들
지금껏 여러 명상 센터에 다녀봤지만 자나그로브 명상 센터는 일단 시설 면에서 단연 최고의 센터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된다. (분별의 습을 용서하시길…)
센터의 중앙에는 돌로 쌓은 대형 탑이 있고 탑의 한쪽 방향에는 대형 명상홀, 명상홀의 건너편은 부엌 겸 식당이 들어서 있다. 다른 한 방향으로 보면 안거 참가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보이고 또 다른 한쪽 방향에서 보면 구릉 아래로 숲이 내려다보인다.
대형 명상홀은 3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운데 가장 큰 방이 단체 명상 방이고 작은 두 개의 방에는 붉은 색 카페트가 깔려 있는데 걷기 명상을 위한 전용 공간이다. 아잔 브람 스님은 늘 “여러분들을 위해 레드 카페트를 깔아 놨다.”고 농담을 하신다.
숙소는 가운데 간이 부엌이 있고 한 건물 내에 6개의 방이 들어가 있다. 방에는 샤워실과 화장실이 딸려 있다. 북가주의 스피릿록 같은 명상센터도 대개 방은 독방일지라도 샤워실은 기숙사 스타일로 공동 사용하게 되어 있는데 이렇게 각기 방에 딸린 화장실을 대하자니 어찌나 감사하던지. 명상센터 계의 5성급 호텔에라도 들어온 느낌이었다. 자나그로브 명상센터가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총 60명. 이런 건물이 10동 정도 있다는 얘기다.
자나그로브 명상센터 입구
자나그로브 명상센터 경내
호주에서 김치를 대하는 감동
식당은 아주 넓었고 스태프들이 정성껏 아침과 점심 식사를 준비해주었다. 한국인들의 리트릿인 점을 배려해서인지 메뉴에 김치와 밥이 나오는데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그 김치가 또 대충 담은 짝퉁 김치가 아니라 제대로 담근 배추김치로 아삭하고 싸한 발효의 맛까지 느껴져 먹을 때마다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해 했다.
보통 명상센터에서는 오후 불식이다. 고엔카 명상센터의 경우, 처음 온 이들에게는 차와 함께 약간의 과일이 제공되는데 이곳에서는 치즈 조각과 다크 초콜릿, 약간의 과일, 그리고 점심 때 먹고 남은 후식류가 나왔다. 치즈 몇 조각과 초콜릿 몇 조각만 먹어도 상당히 든든했다.
나중에 아잔 브람 스님이 자나그로브의 9일짜리 리트릿 참가자들에게 하는 인터넷 강좌의 법문을 들어보니 스님은 리트릿센터 내에서 무엇을 먹던, 무엇을 하던, 그 어떤 것에도 그다지 강제적인 규제를 두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너무 피곤하면 ‘그게 몸이 원하는 것이니’ 단체 명상 시간에도 가서 자라고 하셨다. 저녁 때 너무 배가 고프면 식당 문이 항상 열려 있고 냉장고에 먹을 게 있으니 알아서 먹으라고 하셨다. 지나치게 꽉 짜여진 수행 스케줄이 버거울 때도 있는데 아잔 브람 스님의 유동적 운영이 몸과 마음을 모두 활짝 열어주는 것 같았다.
중앙의 대형 수투파
명상센터 내 숙소 외관
자나그로브에서의 수행
우리 일행은 2박 3일 동안 각산스님의 지도에 따라 50분 좌선, 10분 걷기 명상을 반복했다. 저녁에는 아잔 브람 스님이 법문을 해주셨다.
자나그로브 명상 홀의 제단을 중심으로 양옆에는 스님들이 앉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제단 왼쪽의 방석 위에 웬 곰돌이 인형이 놓여 있다. 나중에 보니 그 자리는 아잔 브람 스님 것이었다. 스님의 겉사람을 보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이 경망스럽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는 아잔 브람 스님의 모습과 곰돌이 인형 사이에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유사성을 발견했다. 맨 처음 그 자리를 아잔 브람 스님 자리라고 표시해놓는 방법으로 곰돌이 인형을 놓아두겠다는 생각을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만,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스님이 계시지 않을 때도 곰돌이 인형만으로도 그 분의 현존이 느껴지는 기분이 드니 말이다.
쉬는 시간에 야외를 걷다 보면 호주 대륙에만 있는 캥거루 가족들을 지천에서 볼 수 있었다. 먹이 사슬의 피라미드 가운데 아래쪽에 위치한 초식동물들은 늘 포식자의 위험에 깨어 있다. 수행자들의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바스락’ 소리에도 풀을 뜯어먹던 캥가루들은 경계 태세를 갖춘다. 3마리의 가족들이 평화롭게 풀 뜯어먹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조금씩 조금씩 발걸음을 그들 가까이로 옮겼다. 첫 발자국에 바짝 긴장하던 캥가루는 자신을 지켜보는 호모 사피엔스로부터 해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것을 확인하자 다시금 먹는 일에 몰두한다. 아기 캥거루가 엄마 배의 주머니로부터 나와 걷다가도 다시금 태어나기 전처럼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걷기 명상을 하며…
각산스님은 스님께서 걷기 명상을 하시던 자나그로브의 숲들을 일행에게 보여주시며 걷기 명상을 이끄셨다. 아잔 브람 스님의 법문에 늘 등장하던 그 숲이 바로 내 눈앞에 펼쳐졌다. 푸르게 하늘로 뻗어 있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뒤틀린 나무, 삶이 다해 쓰러져 있는 나무 등 상상 가능한 모든 나무들이 그곳에 있었다.
과연 파릇파릇 생명력 넘치는 나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뒤틀리고 어려움을 겪으며 움푹 들어간 옹이가 있는 나무들이었다. 우리들도 삶의 굴곡을 지나며 생긴 상처들이 나이테처럼 형성될 터이다. 그리고 그 상처가 실은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것임을 깨달음으로 진정한 치유가 일어났을 때, 나의 상처는 다른 존재들을 도와줄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숲은 고요 속에 말하고 있었다.
죽은 나무 아래에서는 버섯과 묘목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우리 몸이 그 기능을 다 하는 날이면, 몸이 산화되면서 다른 생명체가 그곳에서 자라날 것이다. 이 거룩한 순환의 고리를 일행은 산길 명상을 통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보디냐나 사원에서의 공양 올리기 체험
이튿날에는 자나그로브 명상센터에서 20분 정도를 걸어가 보디냐나 사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스님들을 뵙고 남방불교의 전통대로 직접 스님들 발우에 공양을 올리는 체험을 했다. 사실 사원에는 신도들이 마음을 다해 준비한 음식이 언제나 넘쳐난다. 그래서 비구들은 탁발을 한다기 보다 공양을 받는 것이라고 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신도들이 밥(Rice)만이라도 한 숟가락씩 떠서 비구들의 발우에 던져주는 행위는 아름다운 의식(Ritual)이었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스님들은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행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공양을 받기에 응당한(應供) 수행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루에 한 차례, 되풀이한 날들이 수십년이 될 때, 그 존재는 뿌리에서부터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발우를 채운 스님들은 보디냐나 사원 식당 2층의 법당에 둥그렇게 모이고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신도들도 그 공간을 가득 메웠다. 염불(Chanting)과 스님들의 축복이 이어진 후, 신도들이 자리를 뜨고 나면 스님들의 식사가 시작된다. 하루 한번의 식사는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마음챙김 수행의 연속이다.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린 우리 일행은 산길을 걸어 각산스님께서 수행하셨다는 숙소(꾸띠) 앞까지 들러봤다. 홀로 자신을 만나고, 내가 아닌 것들에 대해 개입하지 않고 내려놓으셨던 스님이 진정한 자유로움에 도달했던 순간의 환희를 보디냐나 숲은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명상 홀 내 입구의 불상
명상센터 내 숲
서양 불교의 아이돌 스타, 아잔 브람 스님
아잔 브람 스님은 2박3일간의 안거 기간 중 총 4번의 법문을 들려주셨다. 이번 여행 가기 전부터 그의 법문을 들으며 통역 연습을 했던 그는 이내 그의 열혈 팬이 되어버렸다. 그는 이제껏 내가 접했던 그 어느 스승보다 쉽게 다르마를 설명하는 출중한 능력을 지녔다. 가장 쉽게 설명한다는 것은 가장 잘 이해했다는 의미일 수 있을 터이다.
1951년 8월 7일생으로 올해 68세가 된 아잔 브람 스님은 런던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피터 베츠(Peter Betts)라는 속명으로 자라난다. 그는 이미 고등학교 때 불교 서적을 접하고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니, 전생에 불법과의 인연이 보통 깊은 게 아닌 듯 같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이론 물리학과(스티븐 호킹 박사와 같은 전공)를 졸업하고 1년여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태국으로 건너가 아잔 차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9년간 그 아래서 수행했었다. 이후 호주로 건너가 남반구 최초의 사찰, 보디냐나 수도원과 자나그로브 명상센터를 세운 그는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불법을 전하는가 하면 또한 명상을 지도하고 있다. 국내에 번역된 스님의 책도 10여권이나 된다.
아잔 브람 스님은 매주 금요일마다 보디냐나 수도원에서 법문을 하고 명상을 인도하고 있는데 이 클래스는 유튜브로 실시간 스트리밍되기도 하고 실시간 스트리밍 이후에는 동영상으로 업로드되고 있다.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말하는 것은 물론, 아잔 브람의 트레이드마크인 썰렁개그까지 더해 재미있기까지 한 그의 동영상은 불교인들뿐 아니라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현대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최근 런던 지하철을 타고 가던 스님은 역으로 나가기 위해 올라가는 방향의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었는데 내려가는 방향으로 가던 한 여성이 “어머나, 유튜브 스님(Youtube monk) 아니세요? 스님의 법문 동영상이 저를 심각한 우울증으로부터 구해줬어요!!!”라는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120년 전통의 심신의학 분야 최고 영향력을 지닌 <왓킨스(Watkins)>지에서 선정한 ‘2018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존 영적 스승 100인’ 리스트에 프란치스코 교황, 달라이 라마, 틱낫한 스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와 함께 아잔 브람 스님이 오르기도 했다.
걷기 명상을 하는 일행들
보니냐나 사원의 법당
호주 불교의 역사
북반구에서 시작된 불교가 남반구인 호주에 맨처음 전래된 것은 1848년 골드러시 때부터이다. 호주로 이주했던 스리랑카 노동자와 중국인들에 의해 불교가 전래되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불법의 전파는 1950년대 들어 호주 불교 협회(Australia Buddhist Society)가 창립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아잔브람 스님이 호주 퍼스에 보디냐나 사원과 자나그로브 명상센터를 세우기 시작한 것은 1983년. 이 즈음, 그는 서호주불교협회(BSWA - Buddhist Society of Western Australia)를 설립해 출가자들에게는 철저한 비구계를 지킬 것과 헌신적인 명상교육을, 그리고 재가자들에게는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접근 가능한 명상 교육을 펴나갔다.
1998년에는 비구니 스님 전용 수행처를 세워 초기불교 최초로 남녀 평등의 서양 비구니 스님 수행공동체를 설립했고 2009년에는 비구니 스님에게 계를 주었다. 타일랜드 숲속 전통에서 비구니 스님들에게 계를 주었던 것은 1천 년만에 처음 일이었던지라 타일랜드 본국에서조차 이 사건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었다. 하지만 비구니 스님들이 계를 받았던 것은 붓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만큼, 서양인으로 타일랜드 불교계에 들어가 이처럼 혁명적인 일을 추진한 스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자나그로브의 명상홀에서 요가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킹스공원 내의 기념물.
고요한 성찰이 당신의 헌정이 되기를… 이란 글귀가 보인다
아잔 브람 스님의 법문 – 해탈은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것
“잡초에 물을 주지 말고 꽃에 물을 주라.”는 가르침과 함께 “여러분들은 배우자의 잡초에 물을 주나요? 꽃에 물을 주나요?”라는 스님의 질문에 일행은 “어쩜 저렇게도 정곡을 찌르나?” 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해탈이 무엇이냐는 한 법우의 질문에 스님은 “아무 것도 원하는 것이 없는 상태”라고 답해주셨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만족스러워 아무 것도 원하는 게 없는 상태, 아무런 탐욕도, 저항도 없는, 탐진치가 완전히 소멸된 상태가 바로 깨달음이요, 해탈이라는 것이다.
<숫타니파타>에서 붓다도 그렇게 말했었다. "황소처럼 고삐를 끊고, 코끼리처럼 냄새나는 덩굴을 짓밟으니 나는 다시는 더 모태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수행조차도 무엇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이란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더 깊은 수행, 더 깊은 깨달음조차 원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 보세요.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무엇인가를 하려는 마음을 놓아버려요. 모든 행위를 놓아버리고 고요하게 멈추세요.”
스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진지하게 수행하는 이들의 가슴을 콕콕 찌른다.
또 한 법우는 바쁜 일상 가운데 어떻게 하면 수행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밥 먹을 때, 온전히 집중해서 먹고, 아이랑 놀아줄 때엔 온전히 그 아이에게만 집중하세요.” 그렇다. 시간이 없어서 수행 못한다는 핑계를 단 한 방에 내려놓게 만드는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을 열게 하는 아잔 브람 스님의 썰렁개그
아잔 브람 스님의 법문은 쉽지만 깊다. 스님은 늘 썰렁한 개그 하나를 준비해 말하신다. 가끔씩은 “여러분도 지금쯤은 아마도 나의 썰렁한 개그를 모두 외우실 거에요.”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나도 이제 몇 가지 개그를 기억하게 됐다.
스님은 자신이 이렇게 썰렁 개그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아버지로 돌린다. 스님의 아버지는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너는 언제나 내 아들이고 내 집의 문은 네게 열려있다.”며 어머니 사랑보다 깊은 사랑을 표현하셨었다고 하는데 언제나 농담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다정다감한 분이었던 것 같다.
배꼽 빠지게 웃고, 또 때로 감동하고, 가끔씩은 “와우!” 하며 놀라 입을 벌리고 있는 사이, 몸의 긴장은 모두 풀어지고 편안해지고 결국에는 고요해지도록 유도하는 아잔 브람 스님은 어느덧 내게 있어 가장 좋아하는 영적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이 되셨다.
삶의 기적에 대한 감사의 마음
밖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모두 내려놓고 점점 내면을 향해 고요히 침잠해 들어가면 나를 괴롭힌다고 믿었던 고통의 본질도 결국은 무상한 현재의 경험 가운데 하나라는 통찰이 일어나고, 지금 이곳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가운데 불평 거리가 아니라 현재 삶을 이루고 있는 기적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가는 날 아침까지 우리들을 배웅하러 나온 아잔 브람 스님… 마인드풀니스보다 붓다의 가르침을 더 잘 함축한 ‘카인드풀니스(Kindfulness)’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스님의 깊은 깨달음과 이를 나눠수심에 감사드린다. 댕기 감기로 인한 기침을 많이 하시던데... 다음 번 만나뵐 때까지 건강하시길…
수행을 마친 일행은 무어리버와 란셀린 사막, 피너클스, 로트네스트섬, 항구 도시 프린맨틀을 관광한 후 각자 삶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수행 후 펼쳐지는 눈앞의 경치는 안식의 집착 대상이 아니라 그저 감사할 ‘경이’였다.
대륙을 건너 옮겨 심은 바오밥 나무
수행 후 여행한 힐링의 섬, 로트네스트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