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프랑스 간 ‘백년전쟁’ 배경
佛 전세 기울자 나타난 19세 여전사 - 신의 메신저 자처하며 잇단 승전보
권력의 속성과 지휘관의 고뇌 그려, 밀라 요보비치 액션배우로 자리매김
15세기 프랑스와 영국(잉글랜드)이 100년 넘게 싸운 ‘백년전쟁’(1340∼1453)은 프랑스가 자신보다 더 많은 프랑스 땅을 가진 영국과 프랑스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벌인 싸움이다. 지금의 프랑스·영국의 국가 위상과 국경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으나 당시 양국은 왕조 간의 이해관계와 정략결혼 등으로 영토와 왕위계승권과 관련한 분쟁이 적지 않았다.
백년전쟁은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혈연을 따져 프랑스 국왕 자리를 차지하고 프랑스를 아예 영국에 합병하려 한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에드워드는 스코틀랜드와 전쟁(영화 ‘브레이브 하트’) 중이었는데, 프랑스가 스코틀랜드를 지원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백년전쟁 초기, 프랑스와 영국의 전력은 비슷했다. 프랑스군의 주력은 중무장한 봉건 귀족의 기사들이었고, 영국군은 봉건적 군대와 함께 신무기인 큰 활을 가진 보병대가 있었다. 영국의 가장 큰 무기는 긴 활을 이용한 강력한 화살과 굉음을 내며 터지는 대포였다. 이에 맞서 프랑스 기사들은 갑옷에 철판을 덧붙였다. 당시 병사들의 갑옷 무게는 보통 60~80㎏이나 돼 기동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전세는 영국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돼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는 더욱 늘어났다. 그 후 양국은 내란·결혼 등으로 장기간 휴전과 전쟁을 이어오다 1442년 영국과 프랑스의 부르고뉴파가 영국의 헨리 6세를 두 나라의 왕으로 세우자 프랑스의 아르마나크파가 그를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샤를 7세를 따로 프랑스 왕으로 옹립했다. 그러자 영국은 1428년 오를레앙(프랑스 중부, 루아르 강의 오른쪽에 있는 도시)을 포위해 샤를 7세를 공격했다.
이때 프랑스에 나타난 전쟁 영웅이 19살의 소녀 잔 다르크(1412∼1431)다.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그녀는 백성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전투에 앞장섰다. 이로써 승기를 잡은 프랑스는 116년 만에 마침내 프랑스 영토에서 영국군을 몰아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영국군에게 잡혀 마녀로 지목되고 화형에 처해지기까지, 신의 계시를 받은 일반 백성으로서 조국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하려는 잔다르크의 노력과 여전사로서의 무용담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남성 중심의 전쟁에서 잔다르크가 어린 소녀 병사로서 겪어야 하는 아픔과 십자군 원정으로 피폐해진 유럽 분위기 속에서 귀족 및 성직자의 갈등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도 보여준다.
당시는 십자군전쟁(1096∼1291)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녀사냥이 성행했고 교회의 이단 논쟁도 끊이질 않았다. 또한 100년이 넘게 지속되는 전쟁으로 농민들의 생활은 더욱 힘들었고 흑사병도 창궐했는데 영화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잘 재현해 내고 있다.
1420년대, 프랑스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잃고 왕권마저 영국에 빼앗겼지만 프랑스 황태자 샤를 7세(존 말코비치)는 대관식을 거행해 왕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선 랭스(Rheims)로 가야 한다(랭스에서 왕관을 쓰지 않으면 왕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영국군이 이곳을 점령하고 있어 갈 수 없다.
이 무렵 신의 계시를 받아 ‘신의 메신저’로 불리는 잔(밀라 요보비치)이 성 안에 도착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기 대신 언니가 영국군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자 언니를 위해 복수하기로 신에게 맹세했다. 잔은 샤를 7세에게 “나에게 군대를 달라. 그곳에 가서 신의 뜻을 증명하겠다”고 말한다.
샤를 7세에게 어렵게 군대를 받은 잔은 부하들을 이끌고 영국군을 공격한다. 그녀는 첫 번째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다. 그다음 전장에서도 고군분투해 기적적으로 승리하고 오를레앙을 탈환한다.
이로써 샤를 7세는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하고 프랑스는 왕권을 되찾는다. 하지만 잔은 아직 영국군에게 점령당한 많은 땅에서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의 처절한 편지를 받고는 계속 싸울 것을 샤를 7세에게 건의한다. 하지만 왕이 돼 전쟁을 할 이유가 없어진 샤를 7세는 거절한다.
영화는 프랑스군과 영국군 간의 전쟁에서 점차로 잔 다르크와 샤를 7세의 대결 양상으로 바뀐다. 신과 백성의 뜻을 따르는 잔 다르크와 권력을 좇는 왕 샤를 7세를 포함한 왕족 및 중세 성직자의 대립 구도로 전환되는 것이다.
영화는 비정한 권력의 속성을 비판하면서 한 지휘관이 전쟁 중에 자기 확신을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왕위에 오른 샤를 7세 그리고 권위만을 고집하는 중세 성직자와는 다르게 그녀는 백성을 대변해 전쟁의 당위성을 얘기하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다.
여주인공 밀라 요보비치는 뤼크 베송 감독의 ‘제5원소’로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했고, 액션 스릴러 ‘레지던트 이블’ ‘울트라바이올렛’ 등에서 잇따라 여전사 역을 맡아 드물게 액션 이미지가 강한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백년전쟁은 농민의 살림을 피폐하게 하고 농토를 황폐화한 반면, 봉건 기사 세력도 무너뜨렸다. 이를 계기로 중세 봉건 사회가 문을 닫고 중앙집권화로 절대 왕정이 들어섰다. 또 농노 해방의 길이 열렸으며, 부르주아 계급(성직자와 귀족에 대항하는 제3의 중산 시민 계급)의 등장도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