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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우리는 왜 적극적으로 감사해야 하나? 데살로니가전서 5:18
(20190707맥추절)
그리스도인의 특징 중에 하나는 감사를 잘 한다는 것입니다. 대화를 하면서 감사를 잘 하는 사람의 신앙을 확인해보세요. 대부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은 잊어먹어도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분이 어디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틀니가 없어졌답니다. 그래서 타고 온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고, 갔었던 가게에도 연락을 했지만 틀니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틀니를 쓰던 분이 틀니가 없으면 얼마나 불편합니까. 그래서 필사적으로 틀니를 찾다보니 그 분의 입에 틀니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틀니를 끼고 틀니를 찾는 상황이 되어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인에게는 7대 절기가 있습니다. 이 절기는 여호와의 절기입니다. 그런데 7대 절기는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실체를 보여줍니다. 절기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7대 절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7대 절기를 순서대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➀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우리의 희생제물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➁무교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교절에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무교병은 누룩이 없는 떡입니다. 그때 먹었던 누룩 없는 떡은 죄가 없으신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➂초실절입니다. 초실절은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➃오순절 혹은 칠칠절 혹은 맥추절이라고 합니다. 오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의 임무교대를 보여주는 절기입니다. ➄나팔절입니다. 나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리스도인들의 휴거를 보여주는 절기입니다. ⑥속죄일입니다.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절기입니다. ⑦초막절입니다.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농사가 끝난 후 곡식을 창고에 저장한 후에 지키는 추수감사절인데, 신앙의 알곡들을 천년 왕국 혹은 천국에 집어넣으시는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와의 7대 절기 중에 맥추절을 지킵니다. 한국교회가 맥추절을 7월 첫 주에 지키고 있는데 7월 첫 주에 맥추절을 지키는 이유는 지난 반년 동안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자는 의미입니다.
오순절, 칠칠절, 맥추절은 같은 절기의 다른 말입니다. 맥추절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감사입니다. 오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가 감사를 해야 하는데 왜 감사해야 하는지 몇 가지만 나누겠습니다.
1.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공적인 인생은 어떤 인생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인생입니다.
다윗의 인생이 위대한 인생인 이유는 그는 평생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3:36입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다윗의 일생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었습니다. 두 가지가 핵심입니다. ➀하나님의 뜻입니다. ➁섬김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면 그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잘 살던 부부가 의견 충돌로 사사건건 다투다가 급기야는 이혼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모든 것을 공평하게 반씩 나누어 갖기로 했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 반씩 나누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땅도 반씩 나누었고, 집도 팔아서 반씩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녀가 11명이었습니다. 서로 많은 자녀를 맡겠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도저히 타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마을에서 존경받는 랍비를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랍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 더 낳을 때까지 살아라!” 두 사람은 랍비의 말을 듣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빨리, 아이를 만들어 이혼을 하자.”라고 말한 후, 침대에 들어갔습니다. 얼마 후 아이를 낳았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부부는 즉시 ‘이혼하지 말고 함께 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하나님의 뜻이 선명하게 알아질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몰라 당황할 때도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몰라 답답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기도도 해보고 상담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작정 기도하지 않아도, 믿음의 선배들에게 상담을 받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에 확실하게 기록해두셨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을 만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선한 뜻과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섭리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두 친구가 나란히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화창했습니다. 길가에는 꽃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하늘에서는 새들이 날고 있었습니다. 들판에는 소와 양들이 풀을 한가하게 뜯고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야! 정말 아름답다. 하나님은 위대한 창조주시다. 벌레 하나도 하나님이 세밀하게 창조하셨지. 생각해 봐! 저기 소도 처음에는 작은 송아지였지. 저 새들도 알속에서 나왔지.” 같이 걷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래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신 분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이해하지 못 할 것이 하나 있어.”, “뭐가 이해가 안 되는데?”, “소는 몸집이 크니까 먹을 것이 많이 필요해. 새는 몸집이 작으니까 조금만 먹어도 돼. 그런데 새에게는 하나님이 날개를 주셔서 온 천지를 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 먹게 하시고, 소에게는 왜 날개를 안 주셔서 주변에 있는 것만 먹게 하셨을까? 하나님은 이상해.” 그 때 새 한 마리가 그 사람의 머리 위로 날아가면서 똥을 쌌습니다. 그 사람의 이마에 새똥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이 크게 깨닫고 말했습니다. “아! 이제야 알겠다. 하나님의 뜻을 알겠다. 감사하다.” 그리고 똥을 닦았습니다. 만일 소가 날아다니며 똥을 싸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에게 날개가 없는 것도 감사거리입니다. 소가 날아다니다가 자동차 위에라도 내려앉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동차 박살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해가 되든지 되지 않든지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2.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 10:31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은 총 107개의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에 제1문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 중에 아주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시 50:23을 보겠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입니다.
지난 6월 29일 토요일 실버예배에는 두 달에 한 번씩 오는 아가농선교회에서 인도했습니다. 말씀을 전해주신 선교사님은 35년 동안 파라과이에서 선교를 하신 고용철선교사님이셨습니다. 선교사님의 메시지의 핵심은 ‘감사생활’이었습니다. 선교사님께서 감사를 통해서 체험한 기적 중에 한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한 번은 가스 폭발로 선교사님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선교사님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엠블런스에 실려서 병원에 가는데 엠블런스가 얼마나 덜컹거리는지 그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선교사님을 침대에 뉘었는데 침대가 푹 꺼지면서 선교사님의 몸이 침대 속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온 몸이 화상으로 피부가 벗겨지는데 침대 사이에 낀 선교사님의 몸을 꺼낼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선교사님은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날 밤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통증 때문에 너무 아파요. 통증이 사라지게 해주세요” 그날 밤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침에 일어나보니 몸에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그때 화상이 심해서 눈이 붙어버렸고 손가락도 다 붙어버렸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선교사님이 정상으로 회복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은 그 상태로 1년 이상을 치료를 받으면서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선교사님은 1년간 치료를 받으면서 매 주일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 1년 동안 교인들은 선교사님의 변화하는 모습을 다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1년 동안 쉬지 않고 감사를 하는 선교사님을 기적적으로 치료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얼굴에 큰 흉터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선교사님은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쉬지 않는 선교사님을 치료해주셨고, 교인들은 그 모습을 매주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시 50:23을 다시 보겠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셨고,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신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그 행위를 옳게 하는 것은 감사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신다고 하셨는데, 화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감사하는 선교사님을 치료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타나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욥 1:21에서 욥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수고해서 돈을 벌었는데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주신이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신 이도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재물도 하나님이 주셔야 생기는 것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소가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농사철이 되면 소 주인은 동네 사람들에게 소를 하루씩 빌려주어 수월하게 일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농사짓는 집에서는 그 집에서 소를 배당하는 날 부지런히 논을 갈아야 했습니다.
그 마을에 믿음 생활을 잘하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에는 이분이 소를 배정받은 날이 하필이면 주일이었습니다. 그는 소 주인을 찾아가서 다른 집에 먼저 소를 빌려주고 그 집과 소 빌리는 날을 바꾸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절당하였습니다. 이분은 이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예배를 그만 두고 논을 갈 것인가? 아니면 예배를 드리고 금년 농사는 포기할 것인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농사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로 작정하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예수 믿더니 돌았나봐.” 그분은 결국 소로 논을 갈지 못 하고 호미로 콩을 심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돌 수가 있는가?”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뭄이 계속 되었습니다. 논의 모가 말라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농부들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끝내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논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습니다. 그 해 논농사는 모두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콩 농사는 풍작을 이루었습니다. 이 걸 본 동네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다고 고백하며 많은 이들이 교회로 돌아 왔습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노력한다고 다 얻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셔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너무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만사는 해석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부요함으로 인하여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주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남보다 많이 가지지 못해서 불만을 갖습니다. 해석을 잘못해서 그렇습니다.
어느 날 공주병에 걸린 할머니가 길을 가는데, 웬 청년이 생선 트럭을 타고 따라오며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 할머니는 ‘설마 내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고 계속 걸어가는데, 잘 생긴 청년이 계속 “같이 가 처녀!”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를 처녀라고 부르다니, 더 자세히 들어봐야지’라고 생각한 할머니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보청기를 꺼내 귀에 꽂자 매우 뚜렷하게 들렸습니다. “갈치가 천원! 갈치가 천원!” 이 유머가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해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듣든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보다 가난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를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몇 년 전 선교를 갔던 캄보디아 끄로째 사람들 중 절반 정도가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엄청난 부자들입니다. 우리는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에 3분의 1이 전기가 없이 산다는 것 아십니까? 세계에 3분의 1이 수돗물이 없습니다. 우물이 없어서 몇 십리 밖까지 물 길러 다니는 여자들과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합니다. 먹을 것이 부족해서 한 끼 밖에 먹지 못 하는 사람이 8억이나 됩니다. 잠 잘 수 있는 집이 없고, 몸에 옷이 없고, 신발이 없는 사람이 세계에 3분의 1이랍니다. 비참하게 살아갑니다. 돈이 없어서 단 한 번도 학교에 가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우리가 없다고 불평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부요합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갑에 현금을 갖고 조그마한 통장을 가진 사람들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8%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 여기계신 분들은 유치부만 빼고 휴대폰을 들고 다닐 겁니다. 장모님이 살아계실 때 저와 아내에게 “개하고 나만 휴대폰이 없다”고 해서 제가 하나 사드렸습니다. 물론 요금은 제 통장에서 나갔지요. 여러분 개하고 제 장모님만 휴대폰이 없을까요? 여러분! 이 세상에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 중에 하나가 양심의 회복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양심이 살아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16:7입니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시편기자는 자신의 양심이 제 기능을 다하는 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송축했습니다. 우리는 양심이 살아있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날 때 회개하고 돌이켜 정도를 걷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가 복음화 된 이유를 아십니까? 로마는 황제를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황제숭배를 받아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핍박하던 로마가 복음을 받아드리고 기독교국가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든 기독교인들의 성결한 생활 때문이었습니다. 로마가 타락했고 타락이 극에 달하여 동성애나 혼전 성관계는 일반적이었습니다. 로마의 귀족들은 자기 자식들은 타락했지만 배우자는 깨끗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핍박했지만 기독교인들이 순결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식들을 기독교인들과 결혼을 시켰고 귀족들과 결혼한 기독교인들이 자식을 낳아서 거룩하게 키우다보니 로마가 기독교화 된 것입니다. 왜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일반인들과 다른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서 벗어나면 찔림을 받는 양심이 살아있습니다. 성령님은 기독교인들이 악한 길을 가면 양심을 눌려서 돌이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고, 우리의 양심이 살아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믿는 믿음과 그 믿음으로 인한 영생입니다. 요한복음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선물을 주셔서 그분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가졌어도 이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불행한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갖지 못해서도 이 은혜를 받았다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육신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한 양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독생자를 주셔서 그분을 믿게 하셨고 그 믿음으로 보시고 영생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8:28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좋은 일만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힘든 일도 만나고 때로는 억울한 일도 만납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만난 어떤 문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일만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일도,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 사건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떠난 한 여자 선교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악성 위궤양을 앓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때가 되어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그런데 선교지로 간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본부에서 선교비가 오질 않았습니다. 그 동안 선교사님은 돈이 없으니까 아무 활동도 못하고 매일 보리죽만 먹으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그렇게 고생을 하며 지내고, 그리고 한 달 뒤, 선교 지원금이 도착하여 육 개월 동안 활발히 선교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본국으로 돌아와 선교보고를 하면서 “한 달 동안 선교비가 오지 않아 보리죽만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건강을 지켜주신 것을 감사합니다.”하고 보고했습니다. 선교 보고가 끝나자 한 의사가 선교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선교사님은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선교사님은 그때 보리죽만 드셨기 때문에 살아나신 겁니다. 선교사님의 악성 위궤양은 본국에 있으면 절대 못 고칩니다. 왜냐하면 먹을 게 많아서요. 그런데 그 곳에 가서 한달 동안 굶다시피 보리죽만 먹고 살았는데, 악성위궤양은 안 먹으면 낫는 병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서 그 병을 낫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 때에 선교사님이 깨달았습니다. 사실 선교비가 오지 않은 한 달 동안 얼마나 원망했겠습니까?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하나님 정말 나를 사랑해서 이곳에 보냈습니까?’라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한 쪽 다리가 부러졌으면 두 다리가 부러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십시오. 두 다리가 부러졌으면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십시오. 목이 부러졌으면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음을 감사하십시오.” 우리는 적극적으로 감사거리를 찾아서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는 왜 적극적으로 감사해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1.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2.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