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4월이면 산에 가서 고사리를
꺾자
안골은빛수필문학회 황 복
숙
또 한 해를 보내고 2018년 새해를 맞았다. 돌아보니 2017년도 정신없이 달려왔다.
해마다 새해를 맞으면 다짐을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면 다짐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만 남는다. 살면서 탁 트인 고속도로를 달리는 직진의 삶보다 구불구불 구부러진 길을 여유 있게 걸어가는 삶을 동경하며 살았다. 구부러진 골목길로 언덕을
올라가 하늘이 보이는 집 마당에는 봉숭아꽃,
채송화, 백일홍이 가득 피어있던 집. 그 집에선
언제든 찾아가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밤이면 환한 달이 가장 먼저 찾아오고, 보름달 옆에서 초롱초롱 빛나던
별들 같은 삶이 있었다. 올해부터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겠다. 이건 올해 첫날의 모습이다.
무술년 1월1일, 눈부신 햇살이 온 대지를 찬란하게 비추고, 밤에는 동짓달 보름달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초등학교 2학년인 손녀는 환한
달을 보며 나를 동화세계로 초대하고, 달 속에서 토끼 두 마리가 사이좋게 방아를 찧고있다며 자세히 보라고 한다. 아이스크림 사러 가는
길을 환하게 보름달이 비춰주고, 손잡고 함께
걸어가고 있지만, 손녀는 동심의 길을 걸어가고
나는 추억의 길을 가고 있다.
세월에 묵은 먼지가 쌓일수록 어릴적 추억은 더 선명하게 세월의 강으로 흐른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날개가 돋아나는 나의 어렸을
적의 꿈은 지금까지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오늘의
나를 이끌어가고 있다. 자연 그대로 풍겨오던 흙냄새와 찐고구마 냄새와 탱자나무 울타리가 떠오른다. 넓은 마당의 정원에는 사시사철 꽃이 지질
않았다. 봄이면 매화, 목련, 수선화, 앵두꽃,
복숭아꽃 그리고 여름이면 장미, 다알리아 또 가을에는 국화, 홍초가 으스름한 겨울에는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서 참새가 겨울을 나고,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머니 치마 끝을 잡고 산속 절을 따라 다니면서 사람의
태어남과 삶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자연에서 터득하려고 하였다. 지금은 감감하여 잘
떠오르지 않지만, 올라가는 길목 외딴 곳에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 있었는데 그 사립문은 나에게 꿈과 낭만을 주었다. 쓰러지는 외딴집이 어설프고 초라했지만,
'달걀이 먼저냐, 병아리가 먼저냐?'로 갈등하던
사춘기 때의 번뇌와 그 답을 산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지금도 그때가 떠올라 가끔 그곳을 찾아간다. 어느새 나이가 들어 희망이나
알참보다는 이루지 못한 꿈이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을 울적이게 하고 눈시울을 적신다. 그래,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스스로 다짐하면서도 마음은 항시 외딴섬을 찾아 낯선곳을 헤맨다. 지금은 옛길이 되어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만덕산 중턱의 조그마한 절[寺], 그 절에
가려고 새벽길을 나서서 인적이 드문 첩첩산중을
지팡이로 착착 길을 내며 찾아 갔다. 그 산의
산등성이에서 멀리 건너다보면 동경하는 세계와 내가 가야할 길이 보였다. 그래서 번번히 그 곳을 찾아가 마음을 다독였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으리라. 돈이면 다 된다는 세상인데 어디 가서 들을까? 보리가
영그는 5월 새벽이면 구슬프게 울어 대던 뻐꾸기
소리를, 건강에 좋다하여 다 잡아다 건강탕으로
만들어 먹어 뱀이 사라진 들녘에는 누런 송장메뚜기밖에 없다. 한창 모를 심는 5월 논두렁길에 가면 배부른 맹꽁이가 맹꽁맹꽁 울어대던 그 소리도 사라진지 오래다. 산에
가면 산도 마찬가지다. 개발한다고
해마다 스키장과 골프장을 만드느라 산을 벌겋게 깎아내려 낭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도 세월이 흘러 옛 사람이 아니니 옛 물도 아니리라. 밤이면 호롱불 밑에서 구수하게 들려주시던 외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심을 키웠다. 물과 꿈이 있던 집터에는 버젓이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로에는 하루에
몇 명씩 교통사고로 사망하지만 자동차는 질주하고, 아이들의 생각도 메말라 가서 컴퓨터화 되어간다. 어린이들은 제기차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같은 놀이는 사라지고 오락기와
컴퓨터게임에 빠지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세상인데 어디서 고향을 찾고 동심을 찾을까? 그래 아직 늦지 않으니
자연을 보호하고 아껴 냇가에서는 붕어도 잡고
논고랑에 가서 미꾸라지와 우렁이를 소쿠리로
훑어보면 좋겠다. 여름밤이면 반짝이는 반딧불을 만져 보고 벼가 익어가는 가을 들녘에서
허수아비를 만나자. 먹는 음식도 중국산이나
대만산, 러시아산인 외국산이 아닌 우리 신토불이로 먹자. 생각과 꿈도 옛날의 정서를 되찾았으면 한다. 물도 옛 물, 산과 강도 옛 산 옛 강으로
돌아가자. 옛 사람들의 올곧고 정겹게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슬기로운 지혜를 알기위해 오늘도
우리 것 우리의 자연을 찾아 나서면 좋겠다.
(2018. 1.
5.)
60년을 전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며칠 전 친정이 있는 전주시 인후동 성황당 화약골 옛집에 다녀
왔습니다. 20년 전에 팔아 다른 사람의 집이
되었지만 대문을 열고 보니 어릴 때의 꿈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넓은 마당의 꽃나무와 과일나무는 없어졌지만, 모과향과 배향, 사과향이
그윽한 내 고향 전주 안골사거리는 어릴 때 소나무 산이었습니다. 이 소나무 산에서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며 동요를 배웠습니다. 전자랜드와
LG전자 사거리는 가재미 냇가였습니다. 경찰관이셨던 아버지는 밤에 근무를 하셔서 옷을 많이 껴 입으셨고, 가재미냇가에서 빨래를 했었습니다.
이가 많던 시절, 뜨거운 물로 빨래를 하면 이가 떠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화약골에서
가재미를 오려면 똥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여름에는 이 똥고개를 넘을 때 코를 막고 뛰었습니다. 고개에서 내려오는 길 양 옆에 골을
만들어 집집마다 받아 온 똥을 부어놓고 마지막 아래 똥을 퍼다 배추밭에 주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그 뒤로 배추를 사서
김치를 담그니 김치를 먹지 않았습니다. 마당에다 배추와 무를 심었는데 아버지도 뒤뜰에 있는 노깡에 오줌을 모아 두었다가 그 오줌을 거름으로 주는
것을 보고 마당의 배추와 무로 담근 김치도 먹지 않았습니다. 중학교에 가니 그 때부터는 오줌 아닌 거름과 비료 또 디디티로 소독을 하기에 김치를
먹었습니다. 안골농협이 있던 자리에 안골방죽이 있었습니다. 안골방죽이 초등학교 가기 전에는 덕진연못으로 알았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덕진
연못으로 소풍을 가게 되어 지금의 덕진연못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옷날 덕진연못에서 머리를 감는 여인네들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래도 저는 그 추억을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동네 백제대로는 꿈과 희망, 즐거움, 기쁨 또 슬픔, 좌절, 실망을
실은 자동차가 오늘을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 길을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며 바쁘게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