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다시 정의해 봅니다.
"시는 어떤 유로(流路)를 밝히는 것이라면,
소설은 이야기의 미래를 찾아내는 것이다'
소설가 성석제 선생이 전주 특강에서 한 말....
유로는 경로 즉 시적 대상이 어떻게 시작되어 흘러 왔는지를 추적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시적 대상이 되는 것은 -소재, 존재, 주제, 이미지, 지향점 등, 모든 시인의 창조적 의식일 겁니다.
단순한 묘사나 서술, 표현. 진술이 시의 소임을 다할 수 없고 시의 정신과 뼈대를 이루는 어떤 근원적 존재에의 유로를 밝혀 인간적인 진실에 닿아야 하고 진정의 힘이 울려야 한다는 뜻이겠습니다.
따라서 시를 쓰려는 자는 시적 언어를 선택하고 이를 운용할 때 대상의 유로를 따라가야 하고, 온몸으로 겪으면서 주고받으면서 사실적이고 진실한 은유로 형상화 해야 합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위한 서시' 를 따라가 봅니다.
꽃을 위한 서시 /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 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길이 나를 들어올린다 / 손택수 (1970~ )
구두 뒤축이 들렸다 닳을 대로 닳아서
뒤축과 땅 사이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공간이 생겼다
깨어질 대로 깨어진 구두코를 닦으며
걸어오는 동안, 길이
이 지긋지긋한 길이
나를 들어 올리고 있었나 보다
닳는 만큼, 발등이 부어오르는 만큼 뒤꿈치를 뽈끈
들어 올려주고 있었나 보다
가끔씩 한쪽으로 기우뚱 몸이 기운다는 건
내 뒤축이 허공을 딛고 있다는 얘기
허공을 디디며 걷고 있다는 얘기
이제 내가 딛는 것의 반은 땅이고
반은 허공이다 그 사이에
내 낡은 구두가 있다
<감상>
아버지의 오래된 구두나 마루 밑에서 발견하게 되는 작아가는, 정작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낡은 군화를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그것은 한 뒤처진 인생이 남긴 자서
전과 닮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현관에 뒹구는 내 신발의 뒤축이 비스듬히 닳아 있는 것을 보았다. 감추고 싶은 상처를 들킨 듯 허전하고 민망하고 한편으론 마음이 쓰렸다. 나의 생활,나의 피곤, 나의 빈곤한 철학, 나의 시간, 내 외진 길의 풍화작용이리라. 그것은 길이 나를 조금씩 허공으로 밀어올리고 있는 것임을 이 시를 통해 알았다. 구두가 다 닳아서 맨 나중에는 내가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다.-장석남(시인)
-꽃이나 구두에서 시인은 단순히 묘사, 감상하는 객체로 여기지 않고 그 존재가 어떻게 흘러서 나로 변환하는지, 어떤 물체적이며(표현) 정신적인(은유와 상징 등) 의미를 불러내는 것이다.
시란 유로를 밝히거나 상상해서 자기를 객관화 하는 진술로 시적 진실을 통한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고 봅니다.
다음 김기택의 시에서 화자, 즉 시인의 렌즈에 비친 풍경을 그대로 찍었음에도 우리는 시각화된 언어에서 청각의 유로를 또렷하게 들를 수 있습니다. 시는 이런 모습입니다. 어떤 고백과도 같습니다.
말랑말랑한 말들을 / 김기택
돌 지난 딸아이가
요즘 열심히 말놀이 중이다.
나는 귀에 달린 많은 손가락으로
그 연한 말을 만져본다.
모음이 풍부한
자음이 조금만 섞여도 기우뚱거리는
말랑말랑한 말들을.
어린 발음으로
딸아이는 자꾸 무어라 묻는다.
발음이 너무 설익어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억양의 음악이 어찌나 탄력있고 흥겨운지
듣고 또 들으며
말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음직한 비밀스러운 문법을
새로이 익힌다.
딸아이와 나의 대화는 막힘이 없다.
말들은 아무런 뜻이 없어도
저 혼자 즐거워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뛰어논다.
우리는 강아지나 새처럼
하루종일 짖고 지저귀기만 한다.
짖음과 지저귐만으로도
너무 할말이 많아 해 지는 줄 모르면서.
가재미 /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의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 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문태준, 「가재미」(문학과지성사, 2006년) 전문
나비 / 송찬호
나비는 순식간에
째크 나이프처럼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도대체 그에게는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인데,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에
나비는 꽃에서 지갑을 훔쳐내었다
옛 노트에서 / 장석남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쫓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폐타이어/함민복
구르기 위해 태어난 타이어
급히 굽은 길가에 박혀 있다
아직 가 보고 싶은 길 더 있어
길 벗어나기도 하는 바퀴들 이탈 막아주려
몸 속 탱탱히 품었던 공기 바람에 풀고
움직이지 않는 길의 바퀴가 되어
움직이는 것들의 바퀴인
길은 달빛의 바퀴라고
길에 닳아버린 살가죽
모여모여
몸 반 묻고
드디어 길이 된
*14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사
좋은 시인, 좋은 시집을 찾아서
읽고 또 읽는다 (며칠 간격으로 계속)
시어와 그 상이 들어오거나, 시인의 마음(주제의식)이
읽혀지면 그 때 공책에 베껴 쓴다.
(내가 쓴다면 무엇이었을까?)
- 평상시 좋은 구절을 수집한다
- 시간 날 때. 내 몸이나 주위 사물을 촘촘하게 묘사해 써본다. 메모한다
- 남다른 시의 제목을 오랫동안 구상해 본다.
좋은 시집 추천/ 손택수: 목련전차 외 2-3권을 택해 집중적으로 읽으면 좋다. 작품을 인터넷에서 찾아
모아 써보면 좋겠다.
.그 외 문태준. 장석남. 이영광, 승찬호. 김기택 등도 좋다.
-시만으로는 안 된다..
인문학 소양을 쌓고, 산문집, 평론집, 시해실집 (손택수 지은 '선천성 그리움'이 매우 좋음)신춘문예 시를 많이 읽도록 노력할 것... 그 외는 차차. 그림, 음악 등 인접예술들, 연결 탐구하는데 주의를 기울이면 정말 바람직... 모든 지적 정황을 만들라.
읽고 → 사유하고 → 읽고 → 비교 → 쓰고 →읽고(잘 읽히는지 소리로) 고치고 → 고치고 → 고치고 → 다시 쓰고, 완성 ...그렇게 2-3년!
시는 고치는 것이다.
-글쓰기는 무지와 맹목에서 나와 삶의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걷게 만든다.
이야기 속에서 '공감' 을 찾고 인생 항로들에 한 '예시'를 발견한다.
이것은 이야기와 시대, 세계가 공통적 감정 기반을 짖기에 가능하다.
세계는 이야기와 날줄과 씨줄로 짠 피륙이다.
- 글쓰기를 '배설'이다. (넓은 환유 속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한 몸으로 존재했던 것들이 쓰는 순간 분리가 이루어진다.
"그것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공간이며 아무것도 생성하지 않는 시간이다.거기서 사람은 단지 방황할 수 있을 뿐이다. 지나가는 시간은 자신의 뒤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과거를 가지지 않는 시간이며 현재를 가지지 않는
시간이고 어떤 약속의 시간, 약속은 하늘의 공허와, 사람이 결코 그곳에 있지 않고 언제나 있는 벌거벗은 땅의 불모성 안에서만 현실적인 약속인 것이다. "
-<도래할 책 /모리스 블랑쇼>
"나는 그가 '최후의 만찬 '을 어떻게 작업하는지 관찰한다.
아침 일찍 해뜨기 전에 그는 집을 나서서 해질 때까지 하루 종일 그리는데 밥을 먹는 것도 잊을 정도다."
... 지구의 운명이 거기에 달려있는 듯 달려든 한 르네상스적 인간의 절대헌신으로 만든 최후의 만찬
-D. 메데조프키
육체의 실제적인 고독은 침범할 수 없는 쓰기의 고독인 것이다. 나는 그것에 관해 어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고독을 느끼던 그 시기에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바로 글을 쓰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