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본2 - 옛 서독의 수도 라인강변의 본에서 베토벤의 집을 구경하다!
6월 13일 아침에 독일 남서부 라인강변 에 위치한 도시 코블렌츠 에서 기차를 타고 라인강을
내려가 쾰른 을 보고는 다시 기차를 타고 20분을 되돌아오다가 라인강변 본 에 도착합니다.
뮌스터 사원 Munster 을 보고 마르크트 광장 에 도착해 구시청사 Rathaus 를
보고 벼룩 시장 까지 구경하고는...... 친절한 독일 여인의
도움으로 골목길을 5분여를 걸어 베토벤 생가 Beethovenhaus 를 찾아 갑니다.
기념품 가게 간판에 Souvenirs 글씨 아래에 세계 각국어로 기념품 단어가 적혀 있으니
recuerdos(스페인어), 纪念品 (중국 간체자), СУВеНИРЫ (러시아어),
お土産(일본어)에“기념품”인데, 그외 lembrancos 등은 어느나라 글자인지 모르겠네요?
건물 벽에는 익히 아는바 베토벤의 얼굴 이 그려져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드는데 집으로
들어가니 정면에 큰 트리 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른바 “베토벤의 가계도” 입니다.
가계도 족보 라면...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에서는 조상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오니
유럽에서는 본인에서 출발해 저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그려진게 다른데
그러니까 동양에서는 시조 할아버지가 주인공 이지만 서양에서는 "나" 가 주인공이라?
여긴 베토벤의 인물화 여러점 외에도 그의 노래인양 CD 며 DVD 등이 무수히
전시된 모습을 힐껏 쳐다보고는 6유로씩을 내고 안으로 들어 갑니다.
신관에서 어느 방으로 들어갔는데 여긴 컴퓨터와 이어폰 이 있으니 바로 베토벤의
음악을 직접 감상 할수 있는 음악실 인가 보네요? 그리고 다음 방에 들어가니....
음악에 따라 그림이 춤추는 홀로그램 같은걸 구경하는데 이게 바로 그의 유일한
오페라 작품을 20분간 3D로 상영 하는 피델리오 21세기 인가 봅니다?
다시 밖으로 나와 그가 탄생했다는 건물로 올라가니 베토벤이 활동할
시절의 사진이며 악보 와 악기 등 많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어떤 악보는 여러차례 고친 모습 까지 보입니다.
그러고는 무슨 큰 나팔관 처럼 생긴게 보여 저게 무엇인가 했더니 울 마눌이
저게 바로 귀가 어두워진 베토벤이 사용 했다는 "보청기" 라고 하네요?
음악의 천재 라고 일컬어지는 베토벤 은 1,770년 본의 구시가지 인
바로 이집 3층 다락방 에서 태어나 22세 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이후 1792년에 오스트리아의 "빈" 에 간 후로는 35년의 후반생을 빈에서 마치는데
처음에는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 빈의 귀족 사회에서 환대 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후 출판자를 만나 잇달아 작곡한 작품이 출판되었으나 30세 이전에 시작된 난청이 심해져
나중에는 전혀 귀가 들리지 않게 되어 많은 고통을 받았고 고독한 생활 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창작은 이 병마에도 아랑곳 없이 오히려 고뇌와 함께 심오함을
더해가서는...... 음악의 낭만주의 에로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평생 공직에는 있은 적이 없고 귀족의 지지는 받았지만 결코 종속되지는 않았으니
그의 음악 이야말로 운명에의 반항 이며 투쟁이고 승리에의 구가 였을라나?
그의 조상은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출신 으로 음악가이었던 조부 시대에 본에
정주했으니 조부는 1735년 본의 선거후 궁정의 베이스 가수 로 들어갑니다.
1746년 궁정가수의 칭호 를 받고 1761년에 악장이 되었으니 루드비히라는 이름을 그대로
손자에게 물려 준 것을 보면 가족으로 부터도 존경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들 요한도 궁정 가수 로 근무했고 악성 루드비히는 그 둘째 아들로 태어났던 것입니다.
베토벤의 부친인 요한 은 당시에 모차르트가 신동으로 성공 한데 큰 자극을
받아서는 어린 베토벤에게 엄격한 피아노 훈련 을 시켰는데
11세 때 네페에게서 바하의 작품 을 연구한 것이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은 일찌기 13세에 작품을 발표 하기에 이르렀고 또 궁정 악단 에
근무하던 중인 1787년 빈으로 음악 공부 를 하기위해
모차르트를 방문 했는데 세상을 놀라게 할 인물이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본으로 돌아온후 모친의 죽음에 타격을 받고 실직한 부친 을 대신해서 가족을
부양해야만 했기 때문에 베토벤의 고난의 일생 은 이미 일찍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중에도 괴테, 셰익스피어, 실러, 칸트 등의 예술과 사상 및 프랑스 혁명의 이념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1,792년에 본을 방문한 하이든 에게 인정을 받아 빈으로 갑니다.
빈에서 피아노 소나타 와 피아노 협주곡 등을 작곡하고 살롱이나 공개 피아노 연주로도
유명하게 되고 귀족의 후원자를 얻어 피아노 소나타 비창과 교향곡 1,2번 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30대 중반에 완전한 귀머거리 가 되어 절망한 나머지 유명한 하일리겐시타트의
유서 가 씌어졌는데도, 이 난관을 극복 하여 영웅, 운명 등 걸작들이 태어납니다.
몇년 전에 헝가리의 세체니 도서관에서 모차르트 가 쓴 피아노 소나타 11번
이른바 “터키행진곡”이 발견되었는데..... 빈에서
활동했던 탓인지 슈베르트 와 베토벤 도 같은 이름의 곡 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683년 오스만투르크 군대 가 헝가리를 지나 빈까지 육박해 성벽을 포위 했는데
그때 터키 군인들이 북과 트라이앵글 및 심벌즈 로 흥겨운 행진곡 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빈 시내에 갇혔던 음악가들 은 적의 침략으로 도시가 함락 될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두려움 가운데서도 본능적으로 저런
낯선 음악에 흥미 를 느끼고 같은 류의 행진곡을 작곡 한 것이네요?
터키군이 물러간 후에 오스트리아인들은 생전 보지 못한 콩이 든 자루들 을 발견
했는데.... 동방무역의 경험이 있던 상인이 볶으니 유럽에 최초로
"커피" 가 전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상인 크루첵 은 1,686년
빈에 찻집 을 열고 카푸치노 를 팔았으며 크로와상 빵도 이때 탄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스만 투르크가 빈을 포위한 것은 두번으로 첫 번째는 1,529년인데 오스만 제국의
술탄 쉴레이만 1세 는 헝가리의 러요시 2세의 군대를 1,526년 모하치 전투 에서 격파합니다.
헝가리 왕이 죽자 헝가리 귀족들은 동부 트란실바니아 후작 자포여 를 국왕으로 선출하나
오스트리아 대공 페르디난트 가 헝가리 공주인 아내를 통해 계승권을 주장하자 자포여는
오스만 투르크의 속국이 되는 대가로 술탄 쉴레이만에게서 헝가리의 왕 으로 인정받습니다.
이에 노한 오스트리아 대공 페르디난트 가 헝가리의 수도 부다를 점령하니...
오스만투르크군은 12만 병력으로 반격하여 수도 빈 에까지 육박해
포위했으나 성벽은 견고한데다가 신성로마제국의 원군 이 도착하자 철수합니다.
2차 빈 포위는 1,683년 으로 폴란드 대신에 러시아와 프로이센 이 강성해지던 시기인데
합스부르크가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에 대한 반란 이 일어납니다.
호전적인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메흐메트 4세 는 이를 기회로 여기고는
1683년 무스타파 파샤 가 지휘하는 15만명의 오스만의
대군은 마침내 다시 신성 로마 제국 수도 빈에 당도해 빈을 포위 합니다.
빈의 성벽이 너무나도 높고 견고한지라 오스만투르크는 장기전 을 각오 하는데...
기독교 세계를 지키기 위해 폴란드의 기병대 윙드 후사르와 독일의 로렌,
바이에른과 작센등 7만의 원군을 보내자 투르크도 적극적인 공격전을 펼칩니다.
포격을 퍼붓고 땅굴을 파서는 화약을 매립해 폭발시키자 그 견고하던 빈의
성벽도 붕괴되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기적처럼 얀 3세 가 이끄는
7만명의 폴란드 및 독일연합군 이 나타나 오스만군을 후방에서 공격합니다.
빈의 성이 곧 무느지는 상황 이라 눈 앞에 성을 함락시키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오스만군은 뜻밖에 나타난 배후의 적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그만 패전해서 후퇴하니.... 기독교 세계는 유럽 전역에서 연합군 을 편성합니다.
오스트리아군이 반격하니 오스만은 퇴각하며 점령지를 상당수 잃고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에게 완전히 귀속 되었으며 동유럽 소국들이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기 시작 하는데, 위의 작곡들은 2차 빈 포위전 때의 일을 회상한 것입니다!
이무렵 칼 체르니 는 3년간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공부했으니 그는 수많은 에튜드 작품을
남긴 사람이며 그의 피아노 곡은 오늘날 한국에서도 교습본 으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훗날 베토벤의 부탁으로 체르니 는 베토벤의 조카 칼에게 피아노 를 가르쳤다고
하는데 결국 베토벤은 빈 교외 하일리겐시타트 에서 죽었으니.....
몇년전 오스트리아 빈에 간 김에 교외에 있는 그 집을 방문한 기억 이 떠오릅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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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첫댓글 베토벤..
그의 음악과 사랑이 그립네요.
즐겁게 봅니다
음악가들이 대단한게.....
전쟁이 일어나 터키군에게 포위된 빈 성에서
오늘내일 함락되면 모두 몰사죽음인데....
그 공포의 순간에도 낯선 음악
터키군의 행진곡을 듣고는....
그 곡조를 흉내내어 "터키행진곡"을 작곡했네요?
모짜르트와 베토벤 그리고 슈베르트에 이르기 까지.....
본을 한번 가보고싶습니다 과거 서독의 수도였던 본 이곳도 볼거리가 많아요
그렇지요? 게다가... 베토벤의 고향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