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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 총책 옛 소련 해군 제독 블라디미르 시도로프 첫 증언 사할린 앞바다 KAL 007 기체·블랙박스 수색전 전모
1983년 9월1일 18시 26분 21초 사할린 영공에서 소련 전투기에 격추된 KAL 007 보잉 여객기의 비극은 지금까지 수백 편에 달하는 기사와 르포, 심지어 다큐멘터리 소설로 재현됐다.
당시 소련 전투기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는 2003년 8월 시사주간지 <아규멘트 이 팍트(논거와 진실)>에서 “당시 영공 침해를 거듭하는 미군 정찰기를 격추했다는 자부심도 잠시,
졸지에 영웅에서 살인범으로 전락했다. 지금은 러시아 남부의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생계를 걱정하며 살고 있다”고 고백해 충격을 던졌다.
하지만 사고 현장 수색 총책임을 맡았던 해군 제독 블라디미르 시도로프는 “이 사건의 전모가 여전히 다 밝혀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미 알려진 사실들도 그 진위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야기를 싣는다. 글은 러시아 시사주간지 <소비에트 사할린> 2005년 1월1일자에 실린 ‘블랙박스 사냥’이라는 제목의 기사 전문이다.
■ 미국은 옛 소련 레이더 기지의 ‘데드 스테이션’ 정보를 노렸다
■ 소련, 미사일 순양함 즉각 투입… 어선들의 눈부신 수색활동 시작
■ 미국 미사일 순양함 도착, 일본 최첨단 수색선 5척도 가세
■ 소련, 가짜 블랙박스 음향 발신 장치 만들어 모네론 바다에 투척
■ 미국·일본 수색팀 엉뚱한 장소에서 가짜 블랙박스 추적 계속
■ 네덜란드 가스 탐사선 미르친크호 협조로 소련이 블랙박스 선점
미국인들이 이란의 항공기를 ‘실수로’ 혹은 ‘두려움에 떤 나머지’ 격추했을 때 세계의 언론은 이 비극에 매우 관대하게 반응하면서 지면을 아꼈다.
하지만 우리가 조국(소련)의 영공을 침범한 비행 물체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수밖에 없었을 때 전 세계 언론은, 심지어 러시아 언론까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조국 영공의 수호자들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보잉’(KAL 007 여객기)’이 첩보활동을 목적으로 캄차카 반도 상공을 비행했다는 것은 본인뿐 아니라 모든 군 종사자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던 사실이고, 이러한 믿음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당시 나는 복무 중이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사건의 중심에서 공무를 수행 중이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기삿거리를 폭로하는 데 급급했던 그 어떤 언론 종사자들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미국의 군 정보기관이 연해주에 있던 우리 측 레이더망을 정탐하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헛된 노력을 쏟아 부었는지 알고 있었다. 레이더는 영공을 감시하는 역할 외에 미사일 무기 시스템을 유도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옛소련의 레이더 기지(Radar Station) 중에는 소위 ‘데드 스테이션(Dead Station)’이라는 것이 있다. 어느 순간까지 침묵하고 있다 전시(戰時)나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만 활동을 개시하는 ‘비상 레이더 기지’를 의미한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비서실장인 유리 페트로프(왼쪽)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필립 로샤 사무국장에게 1983년 격추된 KAL 007기 블랙박스 내용물 일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사건의 보상액은 자그마치 2억6,300만 달러에 달했다. 이 비극적 사건의 도덕적 책임에 대해서는 거론하고 싶지 않다. 물론 블랙박스의 금속 캡슐에 밀폐되어 있던 ‘자성 박막 메모리 칩’을 분석하면 도덕적 책임 소재도 분명히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일련의 이유로 블랙박스를 찾는 것은 국익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한밤중에 걸려온 작전장교의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캄차카 반도 상공에 영공을 침범한 비행물체가 있습니다! 지금은 해안선을 따라 이동 중!”
“사령관 동지! 곧 차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는 차가 필요 없었다. 내가 묵던 숙소가 함대사령부 옆 산에 위치해 있어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잉기가 캄차카 상공을 비행하면서 오호츠크해를 가로질러 가는 동안 우리 함대사령부에서는 보잉의 움직임을 하나도 빠짐없이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전함에 있는 모든 대공 화기를 열고 전투태세에 돌입할 것을 명령했다. 쿠릴 열도에 나가 있던 군함에도 같은 명령을 내렸다. 보잉이 그곳을 통해 영공을 빠져나갈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련의 대공방위사령부 조종사들이 먼저 손을 쓰지 않았더라도 우리 해군의 대공포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자들을 응징했을 것이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 쪽에서 개입할 사이도 없이 상황은 종료되고 말았다.
보잉은 소비에트연방공화국 영공에서 격추돼 고공활주하다 추락해 우리 영해 밖으로 떨어졌다. 나는 사할린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즉시 추락 장소를 해도에 표시해 두도록!”
당시 나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군들, 트레치약(당시 소비에트연방 대공방위사령관)은 제 할 일을 다했으니 훈장 받을 일만 남았다. 그런데 우리는 꼴이 영 우습게 됐다. 우리의 본모습을 보여줘야 되지 않겠나?”
▶KAL기 잔해를 인수받아 소련에서 싣고 돌아온 쓰가마루호. 선상에서 유품을 공개하고 있다.
나는 우선 군함 몇 척에 추락 장소로 이동할 것을 지시했다. 우선 사할린에 있던 미사일 고속정들을 보냈고, 뒤따라 소프가반(러시아 하바로프스크주 남동부의 항구도시)에 머물러 있던 초계정과 구조선들을 투입했다.
머지않아 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지시가 내려오리라 생각하고 취한 조치들이었다. 추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정확하게 12분 뒤 정부 고위층에서 전화가 걸려왔으니까.
“국방부 장관님 전화입니다.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곧이어 우스치노프 장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있었나, 시도로프? 지금 어디인가?”
“함대사령부 작전사령실입니다. 장관님.”
“상황파악은 다 된 게로군. 잘 듣게, 시도로프. 유리 블라디미로비치(안드로포프 서기장) 동지의 지시네. 사태가 매우 심각해. 우선 추락한 비행기를 조속히 인양하게.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에 선수를 빼앗겨서는 안 되네. 미군은 아직 안 보이나?”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만, 정보에 의하면 1시간 안에 이곳에 나타날 것이라고 합니다. 아군의 미사일 고속정이 이미 추락 지점에 가 있습니다.”
“내 말 듣게, 시도로프. 가장 중요한 것은 블랙박스일세. 언제쯤 끌어올릴 수 있겠나?”
기가 막혔다. 그곳은 수심이 최고 900m나 되는 곳이었다. 더구나 아직 비행기도 찾지 못한 판에!
“장관님, 우선 보잉부터 찾아야 합니다. 보유한 수색 장비도 수심 300m 이상은 작업이 어렵습니다.”
“알았네. 블랙박스를 찾을 수 있을지 아직 자네도 모르겠다는 소리군. 어쨌든 이것만은 알아 두게. 만약 미국이 우리보다 먼저 찾는 날에는 자네뿐 아니라 나도 무사하지 못할 것일세. 알아들었나? 사령부는 부사령관에게 맡기고 자네는 지금 즉시 사할린으로 가게. 수색작전을 직접 지휘하라는 말일세.”
“알겠습니다….”
당시 해군에 주어진 임무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바로 그것이었다. 다행히 해안 레이더 기지가 비행기 추락 지점을 표시해 두었지만, 어떤 레이더든 거리나 방위각에 약간의 오차는 있는 법.
표시 지점과 목표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수색 면적은 큰 폭으로 넓어졌다. 시도로프 제독의 명령을 받은 즉시 사할린 병참기지로 차출된 측량 및 지형학 전문가들이 지도에 표시한 수색 지역은 너비 20km에 밑변의 너비가 8.5km에 달하는 쐐기형의 드넓은 해역이었다.
나는 그들이 표시한 해역의 중앙 부분이 가장 유력하다고 보고 그곳을 수색작업의 근거지로 삼았다. 당시 우리를 돕던 대형 어선들에 해역의 중앙 축으로부터 좌우 대칭으로 이동해 가며 해저를 관측해 달라고 지시했다.
대형 어선의 트롤망은 16~20m 너비의 공간을 감당했다. 네 그룹으로 나뉜 예인선들도 태평양을 샅샅이 뒤졌다. 어부들의 솜씨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들은 자로 잰 듯 열을 맞춰 서로 진로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차근차근 훑어 나갔다. 그리고 6마일마다 그물을 끌어올렸다.
▶KAL 007기 탑승 승객의 유족들이 피격 지점 인근 해상에서 조화를 바다에 던지며 울부짖고 있다.
우리에게는 작전을 돕기 위해 그곳에 온 네덜란드 석유·천연가스 탐사선 ‘미르친크’가 있었다. 사실 간신히 설득해 오게 한 것이었다. 미르친크호의 항해 장비는 심해 300m 깊이에서 주변을 촬영해 전송하는 수중 해저 카메라를 비롯해 매우 훌륭했다.
미르친크호 덕분에 우리는 보잉의 잔해를 거의 다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눈치챌 것을 염려한 우리는 아무것도 인양하지 않았다. 머리 위에는 미군의 헬리콥터가 잠시도 떠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나는 때때로 속임수를 쓰기도 했다. 파란색 점퍼를 제복 위에 걸쳐 해군 제독 견장을 숨겼던 것이다.
나는 우리가 쳐놓은 미끼가 모네론 섬으로 적들을 유인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렇게 다섯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뭐야? 우리의 수법이 먹히지 않는 것인가?’
시간은 자꾸 가는데 미국의 무적 함대는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점심을 들기 위해 함장실로 내려갔다. 전채요리를 막 먹으려는데 정보장교가 방문 앞에 나타났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다. 나는 복도로 나갔다.
“무슨 일인가?”
“사령관님, 미제 구축함 브래포드와 프리깃함 한 척이 갑자기 급선회하더니 모네론 섬 쪽으로 갔습니다. 무선통신망도 갑자기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유인책이 제대로 먹히는구나!”
하지만 아직 만족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위장 수색조 세 팀을 조직해 수중 수색을 계속하게 함으로써 아직도 우리가 비행기 잔해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잠시 후 함대사령관을 태운 미사일 순양함 한 척이 모네론 섬으로 갔고, 일본의 초계정 세 척과 다른 프리깃함들도 뒤따랐다.
그들이 있던 곳에서 쿠릴리온 곶까지는 최소한 28마일, 50㎞가 넘는 거리였다. 나도 군함 한 척을 그곳으로 보냈다. 모네론 섬에 있던 부관이 소식을 전해 왔다.
“미국인들은 지금 잠수작업이 한창입니다.”
그곳은 수심이 850m나 되는 곳이었다. ‘그래, 어디 찾아 봐라, 찾아 봐.….’ 그들은 이미 전 세계에 대고 한국의 비행기가 추락한 지점을 알고 있으며 블랙박스도 곧 인양하게 될 것이라고 떠벌린 뒤였다.
그 시각 우리는 추락한 비행기의 동체와 날개와 터빈을 인양하고 있었다. 인양한 잔해는 모두 사할린에 있는 국경경비여단의 연병장으로 옮겨졌다. 공병(工兵)들이 아스팔트 위에 보잉의 외형을 실제 크기로 그린 뒤 인양한 잔해들을 배치했다. 모스크바에서 날아온 참모본부의 육군 중장을 비롯해 비행기 전문가 총 21명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가 이 일을 지휘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계속했다. 미르친크호는 정확하게 비행기 잔해더미 바로 위에 머물러 있었다. 미르친크호의 선저(船底)로부터 140m 떨어진 곳에 잔해들이 산재해 있었던 것이다.
심해잠수정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심해잠수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해잠수정을 준비해 작전에 투입하려면 최소한 72시간이 필요한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는가?
미국인들은 여전히 우리가 쳐 놓은 함정에서 있는 힘을 쏟아붓고 있었다. 작전 중에 헬리콥터도 한 대 바다에 추락했다. 정보사령관이 이런 보고를 해왔다.
“내일 오전 11시에 미국의 함대사령관이 미사일 순양함에 기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블랙박스 인양 장면을 보여주겠다고 했답니다.”
‘뭐가 어째? 보잉은 우리 발 밑에 있는데 무슨 박스를 보여주겠다고? 대체 그들은 무엇 때문에 모형 자동 기록기를 만들어 자기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녹음하겠다는 건가? 하기는 프로 정신이 있는 그들로서는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 그런데 그 가짜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우리 측에 보여주시겠다?’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의 브리핑을 앞질러야 했다. 미르친크호는 자체 잠수정을 해저로 내려보냈다. 라이트와 전송 모니터가 설치된 잠수정은 비행기 잔해들을 차근차근 훑어 나갔다.
항공 전문가들은 스크린을 통해 잠수정이 촬영한 화면을 주시하면서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그것은 인양해라” “그것은 만지지도 마라” 등. 잠수정은 선별한 부품들을 금속 망에 담았다. 보잉은 심해의 험준한 경사면에 떨어져 있었다. 잠수정이 접근할 수 없는 곳까지 흘러 내려가지 않은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나는 미르친크호로 옮겨타려고 했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가 심하게 출렁거렸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내가 모함(母艦)으로 돌아왔을 때 특수 통신 무전기로 와달라는 전갈을 받았다. 저쪽은 소연방 해군참모본부의 제1부사령관인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스미르노프 제독이었다. 송수신 내용은 이러했다.
“내일 일본인과 미국인들이 모네론 섬 부근에서 블랙박스를 인양할 것이라는 소식 들었습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행동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왜 그곳에 있습니까?”
나는 우리가 쳐 놓은 함정에 대해 말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우선 슬쩍 돌려 말해 보기로 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돼 가고 있습니다. 제가 계획한 일이거든요. 제 말을 믿어 주십시오. 모네론 섬은 텅 비어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진짜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럼 미국인들이 다 바보라는 말이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있는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지금 미국인들은 제가 만든 올가미에 빠져 엉뚱한 곳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전문이 이어졌다.
“이것은 총사령관님의 명령입니다. 미르친크호는 부관에게 맡기고 시도로프 제독은 지금 즉시 닻을 올리고 모든 군함을 이끌고 미국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십시오.
제독이 직접 블랙박스를 찾지 못할 것 같으면 미국인들 옆을 왔다갔다 하면서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라는 말입니다. 미국이 블랙박스를 끌어올리지 못하도록 방해라도 하라는 말이오!”
“스미르노프 제독! 이번 일에 모든 책임을 진 사령관으로서 다시 한번 보고드립니다. 그곳에는 블랙박스고 뭐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도로프 제독! 총사령관님 명령이라잖습니까? 제독은 지금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하나 본데, 만약 미국이 먼저 블랙박스를 인양할 경우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정말 모른다는 말입니까?”
무전이 끊겼다. 어떻게 하나? 나는 전투정보 상황실로 내려가 다시 한번 상황을 점검한 후 여러 가지 가능성을 나열해 보았다. 분명 우리의 판단이 옳았다. 잠수정이 블랙박스를 건져 올릴 일만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세 시간 후 탐사대 지휘관인 아폴로노프 소장이 나를 찾아 상황실로 내려왔다.
▶대한 항공 007기 격추 당시의 숨가쁜 기체·블랙박스 수색작업을 보도한 <소비에트 사할린> 2005년 1월1일자.
“제독님, 조금 전 해군 작전본부에서 제독님과 제가 어디 있는지 물어왔습니다. 그리고 제독님께 지금 즉시 이곳에서 철수해 모네론 섬으로 가라고 전달하랍니다. 자신은 저와의 대화를 보고하러 총사령관님께 간다더군요.”
“알았네.”
나는 함대 참모부의 장교들을 소집해 그들에게 군함 20척을 이끌고 모네론 섬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제독님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아폴로노프가 물었다.
“나는 군함 두 척과 함께 여기서 미르친크호와 함께 있겠다.”
당시 전함에는 국가보안위원회(KGB) 전권요원이 항시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는데, 그가 나와 장교들의 대화를 엿듣고 자체 정보 채널로 무전을 친 모양이었다. ‘시도로프 사령관이 총사령관의 명령에 이렇게 저렇게 대응했다’고 말이다.
그때 우리는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블랙박스가 있을 만한 가장 유력한 장소에 미르친크호를 재배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한 부품들이 하나 둘 걸려들었다. 잠수정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훌륭했다. 우리는 작업에 열중하느라 밤이 지나는 줄도 몰랐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다시 한번 특수 통신 무전기가 있는 곳으로 불려갔다. 이번에는 총사령관이 직접 질문했다.
“지금 어디인가?”
나는 모네론 섬으로 군함을 보냈노라고 보고했다.
“자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묻고 있네.”
말투로 보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총사령관 각하, 저는 아직 이전 장소에 남아 있습니다. 비행기 잔해를 인양하기 위해 마지막 지시를 내리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즉시 내 명령을 이행하라! 지금 당장 모네론 섬 부근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직위해제해 버리겠다! 지금 자네가 맡고 있는 일이 국가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렇게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 극적인 순간에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처럼 아폴로노프 소장이 사령실로 들어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나는 손을 내저었다. ‘지금 이런 종이 조각을 들이밀 때가 아냐’라는 뜻이었다. 그 순간 종이에 적힌 내용이 언뜻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령관님, 방금 첫번째 블랙박스를 찾았다고 미르친크호에서 보고가 왔습니다.’
그 순간의 감정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모스크바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총사령관님, 명령을 이행하겠습니다. 지금 즉시 모네론 섬으로 떠나겠습니다. 그런데 국방부 장관님께 미르친크호가 첫번째 블랙박스를 찾았다고 보고 좀 해주십시오.”
▶1992년 11월19일 노태우 대통령이 옐친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KAL 007기의 블랙박스를 넘겨받고 있다. 그러나 이 블랙박스는 비행경로기록장치의 테이프가 없는 등 빈 껍데기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시 한번 말해 보게.”
“반복합니다. 미르친크호가 첫번째 블랙박스를 찾았습니다.”
“어떻게 찾았다는 것인가? 어디서 찾았다는 거야?”
목구멍에서 치밀어오르는 말이 혀끝에서 맴돌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바닥에서 찾지 어디는 어디야?’
하지만 꾹 참았다. 그때 잠수정이 블랙박스를 금속 망에 실었고, 인양을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나는 좀 앞서나가기로 했다.
“보고드립니다. 첫번째 블랙박스가 방금 미르친크호에 실렸답니다.”
“그럼 두 번째는?”
“아직 수색 중입니다. 찾는 즉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는 모네론 섬으로 이동하는 겁니까?”
침묵이 흘렀다. 꽤 긴 시간이 흐른 후 제1부사령관이 총사령관을 대신해 무전을 보냈다. 나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아직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여기 남아서 두 번째 블랙박스 수색을 지휘할까요, 아니면 모네론 섬으로 갈까요?”
스미르노프 제독은, 익히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참 유별난 사람이었다.
“시도로프 제독, 어리석은 질문 좀 작작 하시오! 지금 당장 두 번째 블랙박스나 찾아요!”
첫 번째 블랙박스는 어떻게 했느냐고? 우선 증류수에 담가 두라고 지시했다. 그런 다음 우리가 발견한 장비를 어떤 용액에 담가 두어야 하는지 극동과학센터의 화학자들에게 물어 그대로 처리했다.
여기서부터는 사족이 될 것 같다.
잠시 후 우리는 두 번째 블랙박스도 찾아 인양했다. 당시 조건이 매우 불리했음에도 태평양에서 조업하는 어부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조국은 국가적 위신을 지킬 수 있었다. 누군가에 의해 정찰기로 이용되어 버린 억세게도 운이 없었던 대한민국의 보잉 여객기.
해독 결과 보잉의 비행정보 기록기에 녹음된 내용은 소비에트 연방의 주장과 논거를 뒷받침하는 데 충분한 근거가 되어 주었다. 후에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서울을 방문하는 길에 이들 블랙박스를 대한민국 정부에 전달했다. 냉전시대의 암울한 유산인 블랙박스! 그것은 지금도 서울에 있다.
[월간중앙 2005년 08월호 | 입력날짜 2005.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