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파스파 문자 대신 한자음을 적기 위해 만들어진 것
한글 창제에 대한 또 하나의 관심은 누가 한글을 창제하였는가 하는 문제다. 모두에 말한 대로 ‘영명하신 세종대왕의 창제’로 보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제왕의 일에는 많은 신하들이 참여하여 도와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도왔는지 별로 연구가 없다.
우선 세종의 주변에서 새 문자의 제정을 도운 이가 유학자들은 아닌 것 같다. 원나라 이후에 북경 주변의 중국 동북 방언으로 발음되는 중국 한자음과 당나라 때의 서북 방언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된 우리 한자음, 즉 동음(東音)은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세종은 같은 한자의 발음이 우리와 중국이 서로 다른 “국지어음(國之語音) 이호중국(異乎中國)”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고심하였다.
그래서 창안한 것이 동국정운식 한자음이었는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새로운 한자음을 정하는 것을 동음으로 한자를 익힌 기성학자들이 달가워할 리가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새 문자와 새 한자음의 제정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또 몽골의 원(元)이 한자 문화에 저항하기 위하여 파스파 문자를 제정한 것처럼 조선이 새 문자를 만드는 것을 명(明)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따라서 기성 유학자들의 반대와 명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가족과 일부 젊은 유학자들만을 동원하여 암암리에 창제 작업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요동에 유배를 온 명나라의 한림학사 황찬에게 한자음을 듣고 이를 새로 만든 문자로 적어 오도록 신숙주와 성삼문을 파견한 것으로 보면, 졸저 『증정 훈민정음의 사람들』(2019)에서 고찰한 것처럼, 훈민정음의 <해레본> 편찬에 관여한 ‘친간명유(親揀名儒)’의 8명이 세종의 가족들과 함께 새 문자 제정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도와서 만든 새 문자는 반절(反切)과 관계가 있다. 반절은 졸고 “반절고(反切考)”(『어문논집』 제81호, 『中國語學 開篇』, 東京: 好文出版, 『國際漢學』, 北京: 外硏社)에서 살펴본 것처럼 서역(西域)의 역경승(譯經僧)들이 불경을 한역(漢譯)하기 위하여 한자를 학습할 때에 한자의 발음을 표시하려고 개발한 것이다. 한자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그 발음을 따로 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절은 서역의 역경승들이 자신들의 범자(梵字)를 반자(半字)로 나누어 배운 것처럼 한자도 발음을 2자로 표음하여 배우고자 만든 것이다. 리그베다 경전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 즉 범어(梵語)는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개음절의 언어로서 이를 표기하는 범자(梵字)는 자음+모음으로 된 음절 문자다. 따라서 고대 인도에서 범자를 교육하기 위하여 자음과 모음의 글자를 각기 반자(半字)로 보아 먼저 이를 교육하는 반자교(半字敎)가 있었다. 반쪽 글자의 교육은 말하자면 알파벳 교육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결합하여 하나의 완성된 글자를 만자(滿字)라고 하고 이를 교육하는 것을 만자교(滿字敎)라고 하였다.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완성된 음절 문자는 실담(悉曇)으로 불린다. 실담은 범어 'sidh-(완성하다)‘에서 온 파생명사로서 ’완성된 글자‘ 즉, 만자(滿字)를 말한다. 알파벳 교육인 반자교와 실담의 교육인 만자교는 여러 불경에서 반만이교(半滿二敎)라고 소개하였는데 모두 범자(梵字)의 문자 교육이다.
이러한 범자의 교육으로부터 역경승들은 한자음도 이러한 반자(半字)와 만자(滿字)의 방법으로 학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한자음은 범어와 달리 음절 구조가 복잡하다. 즉, 자음과 모음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모음 다음의 음절 말(coda)에 다른 자음이 결합된다. 따라서 역경승들은 음절 초(onset)의 자음과 나머지(rhyme)로 구분하고 이들의 결합으로 한자음을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한자음을 첫 자음의 반절상자(反切上字)와 나머지의 반절하자(反切下字)로 구분하여 2자로 표음하였다. 즉, 동녘 동(東)자를 덕(德)의 [t]와 홍(紅)의 [ong]을 결합시켜 ‘덕홍절(德紅切)’의 [tong]으로 발음을 표음하는 방법이다. 이것을 중국에서 그대로 받아들여 반절상자를 성(聲)으로 하고 반절하자를 운(韻)으로 하는 성운학(聲韻學)을 발달시켰다. 그리하여 수나라 때의 『절운(切韻)』 이후에 중국의 모든 운서는 이 반절로 한자음을 표음하기에 이른다.
훈민정음으로 불리는 언문(諺文)은 반절로 인식하였다. 즉, 한글의 기역, 니은을 처음으로 보여 준 『훈몽자회』의 「언문자모」에는 부제(副題)로 “반절27자(反切二十七字)”라 하였다. 언문, 즉 훈민정음을 반절로 본 것이다.
또 세조 5년에 간행한 신편 『월인석보』에 첨부된 「세종어제훈민정음」의 협주에 ‘훈민정음’을 “백성 가르치시는 바른 소리”로 풀이하였다. 즉, 임금이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올바른 한자음이란 뜻이니 세종이 새로 만든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말하는 것이다. 훈민정음이란 새로운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표음하는 기호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