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계를 받은 사자..
일본의 명치시대에는 유신으로 국가의 정치구조를 막부에서 천황 친정으로 돌리고 젊은 청년들 중에 유망한 많은 인재들을 시찰형식으로 구라파의 미주지역으로 보냈다. 그 중에서 이등박분(伊藤博文)이 있었는데, 그의 귀국 보고서에는 '서양에서는기독교를 신봉하여 모든 사회가 발전하고 문물이 동양보다 월등히 발전하고 개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일본도 서양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리하여 국가에서 불교를 배척하고 기독교로 전향하는 정책을 수립하여 밀고 나가기로 하였다.
사정이 그렇게 되니 전국에 산재하여 있는 각 종파의 사찰 주지와 명망 있는 고승들과 일반 불교신자들은 물 끓듯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되다보니 정부에서는 불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궁리를 하다가 생각한 것이 우에노공원에 있는 동물원에 있는 사자를 며칠 굶겨놓고 불교에서는 자비로 사람뿐만 아니라 축생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 하니 이 굶주린 사자 우리 안에 들어가서 사자를 교화시키면 우리나라 불교를 다시 보겠다고 하고 영을 내리는 것이었다.
이때 모든 불교인은 정부의 안에 반대는 하였지만, 막상 이러한 안이 나오고 보니 누가 이 위급하고 중차대한 시기에 나서서 불교 멸망을 수습하여 자신 있게 나설 수가 있단 말인가?
제산(諸山)의 많은 고승 대덕들과 한 소식하였다는 선종의 기고만장한 도인들도 굶은 사자 앞에 나서자니 겁도 나고 잡아먹히면 우리 불교는 영영 정부로부터는 보조받기는 틀린 일이니 아주 자신이 없는 일이었다.
불교계에서는 아주 절망적인 상황이 도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대책 없이 시간만 끌 수 없었다.
제산에서 모인 노덕스님들은 누가 나서서 이 난관을 수습하여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들의 은혜를 보답하느냐 하고 중론을 모아 보았지만 누가 나서서 수습하겠다고 나서지를 못하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고야산의 자원 아사리(율사스님)가 고요히 수행 정진하고 있어 일반 신도와 스님들의 신망을 받고 있었으나 나서기를 싫어하고 명리에 구애 받지 않는 수행인 인지라 별로 아는 사람도 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이 어려운 시기에 그 자원스님한테 우리가 올라가서 말씀을 올리고 한번 권하여 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노덕스님 몇 분과 젊은 스님 몇 분이 고야산으로 올라가서 말했다.
"현재 불교계가 위급한 때에 스님 아니고서는 이 위급한 불교를 구할 수 없사오니 내려가셔서 자비를 베푸소서"
이 스님은 가만히 생각하시더니 입을 열었다.
"욧시(좋다), 가보자. 내 나이에 생을 겁내 불법이 망하는 것을 보고 살면 부처님과 선사스님에게 죄인이 되니 죽어도 우에노공원 사자 우리에 가서 죽자."
대중과 함께 고야산을 내려와 동경으로 와서 여장을 풀고 밤을 지내고는 그 이튿날 정부관리의 입회하에 사자 우리에 들어가 서게 되었다.
그런데 그 노자원스님이 사자 우리에 들어가 사자 앞에 서니 제종의 스님과 남녀노소 불교신자, 비신자 할 것 없이 인산이해를 이루고 잠잠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스님, 아사리법사는 아시리 정장을 입고 손에 진원봉을 손에 잡고 사자 우리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굶주린 사자는 가만히 엎드렸다가 스님이 들어오는 것을 힐끗 보고 가만히 있는 것이엇다. 스님은 가만히 사자 앞으로 가서 진원봉으로 사자머리를 한번 탁 때리고는 오계를 설했다.
"제일불살생(第一不殺生)
제이불투도(第二不偸盜)
제삼불사음(第三不邪淫)
제사불망어(第四不忘語)
제오불음주(第五不飮酒)"
그리고 유유히 돌아 나오니 오계를 받은 굶주린 사자은 아무 반응없이 조용히 머리만 다섯 번 맞고는 오계를 받은 사자가 되었다.
이 광경을 보고 온 국민이 다시 불법이 위대함을 눈으로 보고 직접 확인하게 되었고, 우리는 불법으로 개화하고 살아가자고 정하였으나, 입산 승려들도 취처(娶妻)를 하여 국민을 늘리자는 일본 정책에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일본의 불자는 80%정도이고 기독교는 약0.2%정도이다- -도우스님의 글에서-
*성공스님과 금강경테잎 제작 사연..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의 일이다. 그해 여름 나는 오대산 상원사 중대(월정사 말사중의 한곳)에 가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하루에 네 번씩 하는 사분 정진이었다. 새벽 3시에 법당에 가면 6시에, 아침에 8시에 올라가면 11시에 내려오고, 오후에 1시에 가면 4시에 내려오고 저녁에는 6시에 가면 9시에 내려오곤 했다.
그날도 오후 1시에서 4시까지 기도를 마치고 법당 청소를 마치고 쓰레기를 들고 나오니, 잣나무 있는 쪽에서 하얀 옥양목 남방셔츠를 입은 십 팔, 구세 가량의 청년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하도 이상해서 쓰레기를 버리고 와서 다시 보려고 신을 옳게 신었는지 거꾸로 신었는지도 모르고 잠깐 끌고 갔다오니, 그 청년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날 저녁, 같이 있던 스님에게 물었다.
"내가 법당에 갔을 때 누가 온 사람이 없었어요?"
"날이 궂고 비오는데, 누가 올라와요."
그곳은 문수동자를 친견한다는 말이 전해져 오던 곳이었는데, 아마 문수동자님을 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밤9시에 기도를 마치고 와서 마루에 앉아 있는데, 건너편 서대 쪽에서 동그란 불이 하나 보였다.
'저게 호랑이 불인가, 무슨 불인가?' 하고 호랑이 불은 푸르고 살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빛은 푸른빛도 아니고 살이 없었다. 그 둥그런 불이 50미터쯤 이동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서서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다음날 점심공양을 하고 그곳을 가보았더니 아무 흔적도 없었는데, 내 마음에 '산삼이 있는데 산신기도를 하면 산삼을 캘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히 문득 들었다. 그래서 음력7월 초순 입추가 지나자, 중대밑 산신각에서 산신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중이 산왕대신을 부르고 기도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산신각에서 '금강경'을 독송했다.
3일 간 그렇게 '금강경'을 독송하다보니 저절로 외어지고, 내가 '금강경'독송한 뒤 불을 보았던 그 장소로 다시 가보니 이상한 풀이 하나 우뚝 솟아 있었다.
처음 갈 때는 풀이 없었는데 색다른 풀이라 뽑아와서 아랫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산삼이라고 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금강경'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전에도 '화엄경', '법화경', '원각경','금강경'을 공부했던 건 틀림없었지만 그때까지 나는 '금강경' 보다 '원각경', '보안장'을 주로 보았다. 산사람 수행을 위해서나 영가를 위해서나 '원각강'이 참 좋은 법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무튼 그 일로 하루에 한 번씩 늘 '금강경'을 독송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하고 있다.
그뒤 마산 포교당에 가서도 매일'금강경'을 아침에 외우곤 했는데, 신도들이 듣고는 내가 독경할 때면 살며시 녹음기를 갖다 대곤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신도들이 내 독경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하더니 날이 갈수록 녹음기의 숫자가 불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많은 사람들이 내 독경을 듣고 신심을 내어 더욱 정진하게 된다면 산삼을 먹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 당시로서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독경 레코드를 만들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오대산 산신각에서 3일 동안 산신기도 대신 금강경을 읽어서 외었고, 외운 금강경으로 산삼을 캐먹었고, 그 뒤로 계속해서 염송하다 보니. 마침내 73년도에 본격적으로 한국불교 독경 레코드를 제작, 마을 마을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울려퍼지게 하는 작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후 원각경, 보안장을 비롯하여 오늘까지 20여 종의 레코드와 독경과 법문 테이프를 만드는 것으로 내 나름의 포교 방법으로 택해왔다.
-성공스님 글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_()_()_()_
네!저도 요즘성공스님 독경을듣고있네요.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성불하세요_()_
성공스님 금강경 독경듣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_()_()_()_
오계를 받은 사자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습니다.
우리나라는 근대화의 길목에서 너무도 쉽게 기독교를 받아들여
늘 국론이 갈라지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유교의 득세 속에서
함허 득통스님이 계셔서 그나마 불교가 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기록을 보면 선지식이 얼마나 중요한 호법을 하시는지 다시금 감사드리게 됩니다.
좋은 이야기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불교의 법맥을 이어오신 선지식님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_()_()_()_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_()_
감사합니다.
잠시 머물면서 즐갑하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행복하소서
감사합니다_()_()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_()_
감사합니다_()_()_()_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