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자령 : 바람의 언덕을 가다.
올초 속초 방문시 들렸던 대관령 삼양 목장에서 선자령 야영을 기대한바 있다.
가을쯤 가면 좋을꺼라는 생각에 숱한 후기와 블러그를 통해 어느정도 인지를 해두었고
비로소 실행에 옮겼다. 바람이 장난 아니라는 여러 글을 보고 설마 그렇게 심하겠어라는
의구심을 품고 갔지만 결론은 "자만은 금물이다. " 였다.
인천서 아침 일찍(7:40) 서둘러 원주(10:35)를 거쳐 횡계(12:15)에 왔다.
인천서 강릉으로 오는 직행 버스가 있었지만 호젓한 시골 터미널의 정취를 느껴 보고 싶어
일부러 차를 갈아타며 이동했다.

횡계터미널 근처 맛집 검색 해보니 도암식당의 "오삼불고기" 와 김영이 한우국밥집의 "한우국밥"이
유명하던데. 시간상도 그렇고 혼자 먹기도 그러해서 도암식당 근처에서 횡성 소머리국밥을 먹었다.

이상한 플랜카드가 붙어 있어 물어 보니 평창 동계 올림픽때 생길 기차 역사가 이곳 횡계에서 진부로
옮겨졌다고 한다. 횡계 주민 입장에서는 횡계가 평창 올림픽 행사의 메인 장소이니 당연 이곳에 역사가
생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곳이고 진부 입장에서는 바로 옆동네만 개발이 되니 억울 했을것이다.
그래서 지역분배 차원에서 진부로 역사 이전을 결정 한거 같은데
실제로는 엄청난 빛을 내어 올림픽역 예정지 주변에 땅을 매입한 횡계 주민들 입장에서는 통탄할 노릇.

횡계 터미널 근처 택시정류장에서 택시를 타고 대관령 마을 휴게소로 이동(10분 소요) 하였다.
예전엔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으로 가려면 꼭 들려야 했던 곳인데 지금은 양떼목장 방문객이나
등산객들의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타 후기에서 보면 횡계에서 이곳까지 택시비가
8,000원에서 10,000정도 한다고 하였는데 내가 갈때는 딱 미터 요금만 받았다. 7100원.

대관령 휴게소에서 msr수낭에 물을 채운후 1시 30분쯤 등산을 시작하였다.
5.8km, 일반 등산객 걸음으로 선자령까지 2시간정도 걸린다 하는데.
박배낭 메고 사진 찍으며 올라가니 2시간 30분정도 걸렸다.

이곳 선자령으로 가는 등산길은 가을색이 완연 하였다. 덕분에 단풍 구경은 원 없이 실컷 하고...

가는 길 곳곳이 수채화를 방물케 하였다.

저 멀리 대관령 양떼 목장이 보인다. 어??? 코스를 반대로 잡았네....
어쩐지 올라 가시는 분들보다 내려 오시는 등산객들이 많다 하였더니.....
올라가는 도중 어떤 아주머니가 내 큰 배낭을 보더니 이러신다. " 아저씨도 집 나왔어요 호호호..." 이런~

그래도 그리 붐비지 않고 한가롭다. 가을 단풍을 느끼며 쉬엄 쉬엄 올라간다.

멋진 절경에 멈춰서서 카메라에 가을도 담아 보고...

저 멀리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거의 다 올라왔다고 생각 했는데, 표지판을 보니 아직 1.8 km 남았다.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천천히..

정상 못미쳐,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니 멋진 그림이 펼쳐져 있다.

드디어 정상 도착,
이때가 오후 4시경..쉬엄 쉬엄 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 사람들... 비박1팀 나머지는 등산객들.

살랑 살랑 불어 오는 가을 바람에 땀도 식히며 주변 경관을 조망한다.
멋지다. 좋다. 오길 잘했다. 이때까지는 좋았다.

강릉 시내쪽을 보니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뿌옇다.

오늘, 하루밤 쉬어갈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정상에서 많이들 야영 하시던데 느낌상 여기는 아닌거 같고 주위를 돌아 다녀 보니
역시나 지천이 "똥밭" 이였다.
한겨울에도 등산객들이 많이 다녀가는 이곳에 이동식 화장실 하나쯤 설치하면
않되나 싶어 횡계로 돌아 오는 날,
횡계 택시 기사님에게 말씀 드렸더니, 정식으로 군청에 건의 하신단다. 부디 설치해 주시길....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서 전망 좋은 곳에 자릴 잡았다.
벌써 석양이 내리고, 멋진 뷰를 보여주는 장소에 만족해 할 무렵,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한다.

사실,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도 알았고
바람을 피해 반대편 능선쪽에 야영을 해야 한다는 글도 보았지만
그래도 나름, 캠핑 다니면서 산전 수전 다 겪었는데
그깟 바람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만 이였다.

사실, 저 의자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 하며 폼 좀 낼려고 했는데
사진상으로는 못 느끼지만,
엄청난 바람에 의자가 막 굴러 다니고...

더 어두워지기전에 반대편 능선으로 사이트를 옮길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밤이 되면 반대편으로 바람이 불지 않을까 하고 기다려 보았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였다.

도저히 텐트밖에서는 취사가 불가능하여 모든 장비를 텐트안에 정리하고 실내 취사를 하였다.
텐트 밖에는 체감온도가 영하를 맴돌고 1500g 침낭에 패딩점퍼를 껴 입고
그 난리통에도 햇반에 꽁치찌개, 고기와 쏘세지를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일찍 잠을 청해 본다.
그런데 잠을 도저히 잘수가 없다.
텐트가 나를 쉼없이 때린다.
바람소리가 나를 깨운다.
자지 말라고....

자다 깨다를 반복,
새벽 5시, 바람이 멈추질 않는다.
잠이 오질 않아 밖에 나와 보니 컴컴한 어둠속에서 일찌감치 철수 하시는 분들이 목격되고,
나도 짐을 싸고 내려 갈까 하다 조금 더 뭉기적 거리니
동쪽하늘에서 새벽의 여명이 밝아 온다.

다행히 살아 있네.

이 글 보시고,
새텐트 구입하시면, 텐트 내구성 테스트 삼아
선자령 가셔서 꼭 주무시길 권해 본다. ㅎㅎㅎㅎㅎ

그날 선자령에서 비박 하셨던 다른분들의 후기를 보니,
텐트 날아가고, 텐트가 찟어지신 분도 있다하고
텐트가 밤새 싸데기(?)를 치는 바람에 잠을 한숨도 못 주무셨다고 하니...참 바람 무섭다. ㅎㅎㅎㅎ

그래도 우리집은 밤새 나를 잘 지켜 주었다.

아침으로 간단히 스프를 끓여 먹으려다,
밤새 뒤척인 덕분에 입맛도 없고 해서
커피 한잔 하고, 서둘러 하산 준비를 하였다.
바람이 멈추질 않아 텐트 접을때도 애를 먹다 결국 포기,
배낭에 대충 쑤셔 넣고 기억에 남을 선자령을 내려 왔다.
이때가 8시 30분 정도,

하산 길,
전망대가 보인다. 어제 이길로 올라 왔어야 하는데 반대편 등산로로 올라 온것이다. 아무렴 어때....

선자령, 대관령, 딱 중간지점

저건 뭐지??? 대관령 기상 관측소인가..???

내려 오는 길,
바람이 멈추었다.
아니 멈춘게 아니라 능선이 막아 준거겠지...

저 나무를 보면, 이곳 바람이 얼마나 센지 알수 있다.

하산하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 부부 비박팀.
부럽다. 난 언제나 저러고 다닐수 있을까? 야외취침 싫어하고 잠도 많은 내 처자, 비박이 가능할까?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 길이 나온다.
선자령, 이제 기억의 저장도 끝이났다.
안 좋은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 다 좋은 추억이 되겠지만
선자령의 이번 호된 경험은 당분간 내 머릿속에 오래 기억 될꺼 같다.

여기가 시작점인걸 나는 반대로 돌았다.
휴게소 도착시간 10시 정각,
하산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몸 좀 녹이려 따뜻한 원두 커피 한잔 사마시며 어제 그 콜택시 기사분에게 콜을 했다.
근데 오늘 쉬는 날이란다.
" 기사 아저씨....어제 그런 말씀 안하셨잖아요"...이런 ㅠㅠ
다행히 등산객을 태우고 들어오는 횡계 택시를 운 좋게 잡아 횡계 터미널로 돌아 왔다.
도착시간 10시 30분. (택시요금 7200원)

횡계 터미널에서 11시 3분 강릉행 차에 몸을 실었다.(버스요금 2300원)
강릉으로 간 이유는 동해 바다도 한번 보고 강릉에서 인천으로 오는 무정차 시외버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11시 35분 강릉 시외버스 터미널 도착, 오후 2시 인천행 버스를 티켓팅 한후(시외버스요금 16.400원)
선자령 바람에 아침도 거른채 도망하다시피 내려온지라
배가 고파, 택시를 타고 초당 순두부 마을로 향했다.(12시 도착, 택시요금 4800원)
초당 순두부 마을을 거닐다.
얼핏 어느분 후기에서 본듯한 할머니 순두부집.
지체 없이 들어가 순두부 백반( 백반 7.000원 두부찌개 8.000원)을 시켜 먹었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긴 했는데,
그 옛날 강릉에 왔을때 먹던 고소하고 진하고 담백했던 그 맛이 아닌것 같은뎅?
이유는 나오면서 알았다.
옛날에는 직접 두부를 만들어 팔았는데 지금은 마을 초입에 있는 두부 공장에서
일괄 공급한다는거.
그러면 이젠 그집이 그집이라는거 에혀~


어쨋든 배는 채웠고(12시 30분),
버스 시간이 여유가 남아 강문해변에서 경포해변까지 트레킹을 시작했다.
이번 여행중 처음 찍은 내 사진이다.
저러고 해변을 걸으니 사람들이 다 희한하다는듯이 쳐다본다...ㅎㅎㅎㅎ

강문 해변 솟대 다리,
해변 트레킹 시작점, 경포해변까지 1시간정도 걸으면 된다.


동해 바다는 3월에 속초에서 보았지만,
경포 앞바다는 실로 오랫만이였다.
21살때 강릉 사는 친구 따라 경포에 와서 그 이름도 유명한 " 경월소주 "
콜라를 타 마셔도 그 독했던 맛은 지금도 생생하다.
술이 취하지 않고도 토할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으니까..ㅋㅋㅋ
20년이 훨씬 지났지만,
그 후로 강릉 경포에 올때마다 그 친구와 경월소주 딱 2개가 생각난다. ㅎㅎㅎ



해수욕장에서 뭔 낚시를 하시나 하고 조용히 다가가 봤더니
어??? 놀래미랑 이름모를 물고기가 그득, 역시 동해바다.

날 좋은 가을의 주말,
경포대 해수욕장은 딱 한쌍의 말과,
이루 헤아릴수 없는 남녀 커플들의 뜨거운 애정행각으로 상당히 더웠다..ㅋㅋㅋ


1시간의 짧은 트레킹후 택시를 타고 강릉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였다.(택시요금 6400원)
2시 출발, 3시간 30분 소요예정, 5시 30분, 인천 터미널 도착예정이였지만
가을 단풍철 행락객 차량들때문에 시간이 조금 지체되어 6시 10분에 인천에 도착하였다.

마치며: 차편도 미리 알아보고, 예약도 하고, 등산코스도 정하고, 비박지도 눈 여겨 보고,
기온이 떨어 질것에 대비해 겨울패딩과 동계용 침낭도 준비 했건만
선자령의 바람 앞에 무기력하게 보낸 야영이였다.
지금까지 내 기억속에 존재하는, 몇 안되는 강한 충격의 캠핑이였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