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결혼식 #4
악몽과 같던 30일이 드디어 지나갔다. 1000일이 이틀남은 날, 월급
봉투를 받는 나의 가슴은 곧 그녀에게 그녀가 가장 갖고싶어하는
반지를 선물해 줄 수 있겠다는 마음에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더욱 그녀를 놀래주기 위해서, 내가 1000일이 언제인지 까먹은 냥
그날이 오기 전까지 모르는 척 행동하기로 작정했다. 태어나서 처
음으로 가보는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허름한 옷에 운동화를 신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역시 나를 외계에서 온 외계인을 보는
양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런 시선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
게 귀금속 코너로 다가갔다. 귀금속 코너의 점원 역시 이런 모습의
내가 그쪽으로 다가오는데 대해서 놀람 반 흥미 반으로 나를 위아
래로 계속 쳐다보았다.
' 저기.. 사패이어.. 아.. 사파이어군.. 사파이어가 둘레에 박혀있는
70만원짜리 은반지 있죠? 그걸 사러 왔는데요.'
' 아.. 바그드아무르 (Bague de Amour)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바로
이 물건입니다..'
난 이 물건의 이름을 한번 듣고 외울 수 없었다. 점원에게 부끄러
움을 무릅쓰고 2번 더 물어 본 다음, 그 물건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그녀가 끼면 뭐랄까.. 잠용이 여의주를 얻은 모습이랄까.. 하여튼 정
말로 어울릴 것 같았다. 그물건이 맞다고 말을 하며, 한달동안 고생
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 70만원이 든 흰 봉투를 조심스럽
게 점원에게 내밀었다. 점원은 웃으면서 그것을 받더니, 돈을 꺼내
서 세어보기 시작했다.
' 저기.. 손님 돈이 모잘라는 데요..'
' 헉.. 이 물건 70만원 아닙니까???'
' 아.. 어디서 잘못 들으셨나 보군요. 이 물건 정가가 80만원, 현금
가로 75만원짜리입니다.'
; 아..에.. 그렇군요...'
난 지갑에서 황급히 5만원... 정확히 말하면 내가 다음달 먹고 살
쌀푸대..를 꺼내서 점원에게 건냈다. 점원은 선물할 것인지를 짐작
했는지.. 포장도 이쁘게 해줬다.
' 손님.. 나중에 또 오세요.. 그리고 선물 받으시는 분과 꼭 사랑이
이루어 지시길 빌께요..'
점원의 인사를 뒤로 하고.. 백화점을 부리나케 빠져나왔다. 잠깐 긴
장해 있는 사이.. 그녀로부터 삐삐가 3통이나 와 있었다. 주변에 있
는 공중전화에서 들어보니.. 직접적으로 말은 안해두 '오빠 뭔가 좀
생각나는 거 없어'라든지.. '우리가 만난지 참 오래된걱 같다..' 라든
지 1000일인 것을 나에게 돌려서 말해주려는 그녀의 귀여운 목소리
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내가 1000일에 대해서 안다고 말을 하면 그
녀가 분명히 선물이 뭐냐고 물어볼게 뻔하니까, 난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는 듯 그냥 태연하게 삐삐 메시지를 남겼다. 마치 1000일을
모르는냥 말이다.
드디어 D-1 이 되는날..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집으로 그녀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학교에서도 계속 정
답게 손을 부여잡으며 '오빠 뭐 생각 나는거 없어?'를 연발하던 그
녀에게 아무일도 없는 양 행동하기가 참 지옥같았는데, 저녁에 또
전화로 거짓말을 해야 될 것을 생각하니 전화 받기가 두려워졌다.
'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따르르르릉....'
결국 나는 전화를 받지 않기로 선택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
나지 않아서 삐삐에 그녀방 전화번호가 찍혔다. 언제나와 같이
'1004'를 뒤에 붙인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저녁만큼은 나의
천사를 외면하기로 마음먹고.. 그녀와 함께할 멋진 내일을 생각하며
전화기 코드를 빼구 삐삐 전원을 꺼 버렸다.
' 허허.... 총각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었구만.. 우리 애팬내 같은 경
우는 내가 핸드폰 잠깐만 꺼놔두 '이 웬수 또 바람피우러 갔구나~!!' 하
면서 오만 지랄을 다 떨어서.. 핸드폰 끈다는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암~~~.. 그래서 처자한테 반지 선물하구 이리 저리 했
나~~??'
기사 아저씨는 내 이야기에 구미가 땅기는 듯, 연신 백밀러로 나를
쳐다보며 장단을 맞춘다.
' 아.. 근데 상상도 할 수 없는 뜻 밖의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좀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뜻밖의 일이었죠..그건.. 지금 생각해
두 말이예요...'
그 말이 맞다.. 그건 지금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누구를 탓할 마음은 없지만.. 아니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건가... 하여
튼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일임에 틀림 없는 일이 그때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