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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용화산 산행기
일 자 : 2008년 7월 6일
산행지 : 용화산 878.4미터(춘천 사북면과 화천 간동면과 하남면 경계)
산행시간 : 6시간(점심포함)
산행코스 : 양통 사여교 →폭발물 처리장→연습바위→버드나무샘→큰고개→주전자부리→만장봉→정상→안부→합수곡→양통사여교(원점회귀산행)
날 씨 : 흐리고 간간이 약간의 비
동 행 : 비비 패밀리와 옆지기
며칠 우중충하던 날씨가 강원지역에서는 폭염과 열대야 현상이 당분간 지속된다고 한다. 잠깐이지만 비가 온 뒤 활짝 트인 하늘과 맑은 공기는 춘천의 대표적인 산으로 자리매김 한 용화산의 기암절벽과 노송을 확연히 드러나게 해줄 것 같아 한그림 되겠다 싶어 카메라를 챙기고 밧데리를 두 개씩이나 만땅 충전을 했다.
단양 제비봉에 이어 연이어 터질 것 같은 횡재에 마음은 벌써 만장봉 능선을 오르고 있다.
가끔 산을 오르다 보면 항상 아쉬움에 발길을 돌리는 것은 산위에서 조망되는 부분이 연무로 가려있어 눈을 황홀케 못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나에게 만은 산행의 재미 중 으뜸인 정상에서의 이웃한 산들과 멀리 보이는 산마루금의 풍광은 한껏 가빠진 들숨,날숨을 재우기에 충분한 조건이 된다.
그러나 버스가 구리를 지나고 북한강변을 들어서자 내 섣부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은 서글픈 울상이다.
전날 춘천지방은 가히 30도를 상회하는 더위와 강수량이 “0“이라는 일요일 날씨예보를 접했기에 또 한번 슈퍼컴퓨터의 만용을 탓할 수밖에~
들머리인 양통 사여교 다리에서 바라보는 용화산의 풍광은 온통 운무로 가득해 약간의 형체조차 내어 주질 않는다.
적잖이 아쉬워하며 오늘 산행은 위를 보고 걷기보다 아래를 보고 걸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양통 사여교를 건너지 않고 큰고개로 향했다.
용화산은 전설에 따르면 지네와 뱀이 싸워 이긴 쪽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 했다해서 용화산이라 이름 지어졌다 하는데 누가 이겼는지 또 그런 이름을 누가 처음 명명 했는지 시시콜콜하고 쓰잘데기 없는 게 궁금한 나도 그런 궁금증을 다 풀지는 못했다.
태백산맥의 머리끝 금강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내린 광주산맥에서 약간 떨어진 한쪽 북한강 줄기에서 오롯이 솟아오른 산이 용화산이다.
광주산맥의 초입부분이 1,000미터를 넘는 산들로 구성 된 반면 서울쪽으로 갈수록 낮아져 서해로 사라지는 산맥으로 용화산은 산맥의 지능선에 자리 잡은 셈이다.
용화산은 골이 깊은 산답게 여러 유래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 유래 또한 신기하고 또 한편으론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많다.
여러 자료에도 각기 부르는 명칭도 틀리거니와 각기 명칭을 부르게 된 이유 또한 재밌다. 애니미즘의 산출이 아닌가 싶다. 일례로 정상부근에 새남 바위라고 있는데 한쪽에선 새가 나는 곳이라 해서 “새남바위”라 하고 또 한쪽에선 세남자가 살던 바위라 해서 “세남바위“라고 한단다. 또 재미있는 것은 사여령이 네 여자가 살아서 사여령이라 명명 되었으며 세 남자와 네 여자가 살면서 짝이 맞지 않아 한 여자의 질투로 땅을 척박하게 만들어 용화산에는 산삼같은 약초가 살지 못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를 재밌게 지어 낸 것 같다.
용화산은 우리나라 100대 명산중 하나지만 그리 많은 사람이 찾지 않았는지 산행로가 정비되어있질 않고 이정표 또한 부실하고 정상에 안내지도 마저 길 방향이 정확하질 않았다. 왜 산행로 초입에 등산로가 표시되질 않고 정상에 지도를 만들어 세워놨나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양통을 지나 큰고개 까지는 비교적 임도로 되어 있어 어렵지 않은 발걸음이었으나 큰고개 지나서 부턴 나무계단을 시작으로 바위를 네발로 넘나드는 쉽지 않은 반릿지를 감행해야 했다.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사면 바위보다는 오랜 풍화와 외부작용으로 입자가 들뜨고 잘게 부스러진 곳도 있어 상당히 미끄러짐을 신경써야 했다.
만장봉에 오르자 온통 시야는 몇 십 미터 앞을 확보하기 힘들만큼 운무로 가득했다. 덕분에 기대했던 하늘벽과 입석대의 장관은 다음기회로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이슬비와 운무 속에서도 만장봉을 올라 온 크라이머들에게 미끄럽지 않느냐고 물으니 오르는 도중에 미끄러워 혼났다고 연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자일을 걷어 들이고 있다.
만장봉은 북한산의 인수봉을 닮은 봉우리로 아찔한 높이와 깎아지른 절벽에 높은 곳을 싫어하는 나에겐 감히 쳐다 볼 엄두를 못내는 곳 이다.
다행인지 가득 찬 운무로 밑이 보이질 않아 무심코 지나치게 되었다.
정상 바로 못 미쳐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정상에 오르니 온통 잡목과 운무로 이루어져 시야가 넘나들 수 없고 중앙에는 어울리지 않게 대리석으로 층층히 쌓아놓은 커다란 정상표지석이 있다. 표지석 뒷면에는 화천군수 이름 석자까지 버젓이 있다.
옛날 임금의 순수비도 그처럼 크고 화려하지 않을진대 아무튼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산행 중 바위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노란 돌양지꽃은 작지만 그 색깔만으로도 주위를 환하게 만들만큼 앙증맞게 피어 있고 어두운 밤바다를 비춰주는 등대불처럼 갑자기 나타나는 참나리의 기품있는 자태는 위를 보고 걷기 보다 아래를 보고 걷기를 작정한 나로선 더 없는 숲속 친구였다.
고탄령 못미쳐 안부에서 합수곡으로 하산을 했다.
정상에서부터 흐르는 계곡에는 자연재해 때문인지 여기저기 산사태로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고 커다란 바위들도 계곡 중앙으로 굴러 내려와 길을 막고 있다.
곳곳에 계곡을 넘나들어 길을 찾아야 하는 곳이 많고 바위를 밟고 걸어야 하는 곳이 많아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지만 그런 자연재해도 어찌 보면 재해가 아닌 자연현상이 아닐까 싶다.
하산 내내 돌밭길을 지나야 하며 그 돌들에 습기차고 이끼가 붙어 있어 여간 미끄러운게 아니라서 특히 주의해야 한다.
나도 바위에서 미끄러져 영광의 상처를 다리에 남기고 산행을 마감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와 엄청난 습도 때문인지 몸 상태는 상쾌하질 못했지만 곳곳에서 불어주는 산바람과 시원한 계곡 물은 용화 산행 중 더 없이 고마운 존재였으며 비온 뒤 맑게 개인 날 꼭 한번 다시 찾고 싶은 산으로 기억되는 산이었다.
↗ 용화산 산행도
↗용화산 주변 지역도
↗사여교
↗아스팔트가 끝나고 비포장 임도로 난 길을 따라 큰고개쪽으로 진행한다.
↗닭의 장풀
↗쪽동백나무가 열매를 맺어 있다. 온산에 쪽동백이 지천이었다.
↗기온이 높고 습도가 굉장해 가히 상쾌한 상태는 아니다.
↗큰까치수영(큰까치수염)
↗바위가 큰고개쪽으로 인도 하는 듯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있다.
↗참싸리나무
↗꿀풀(이뇨등의 약재로쓰인다.)
↗달맞이꽃
↗옻나무과의 붉나무(엽축에 날개가 있어 쉽게 구분할수가 있으며 옻은 타지 않는 나무다)
↗소나무 숲길
↗불발탄 등을 처리하는 폭발물 처리장
↗소나무, 신갈등이 우점을 이루고 중간키로 쪽동백과 고추나무,팥배 작은키로 붉나무,국수나무등이 형성되어 있다.
↗이파리가 먹는 고추 이파리와 비슷하게 생겨서 고추나무라 부른다.
↗꿩의 다리(삼지구엽초와 비슷해 채취해 간다는데 난 아무리 봐도 비슷한 점을 찾질 못하겠다. 삼지만 약간 비슷할려나~)
↗바위 사이에 꿩의 다리
↗? 새끼 손톱보다도 작은 버섯
↗참나리에는 고고한 중년 여인의 멋을 느낄수가 있다.(나만 그런가?)
↗쪽동백
↗알록 제비꽃(꽃은 이미 지고 없다.)
↗큰고개쪽으로 가까이 갈 수록 오름길 나타 난다.(큰고개쪽의 해발이 610미터 정도임)
↗연습바위(암벽 연습을 위해 너트가 꽂혀있다)
↗일명 버드나무 샘
↗버드나무 샘 뒤의 기암
↗첫번째 숨고르기를 하는 장소 (커다란 바위가 그늘막처럼 위가 꺾여져 있다.)
↗시원한 산바람에 저절로 양팔이 벌어진다.
↗큰고개에서 오르는 등로
↗큰고개 초입에 설치 된 계단
↗밧줄로 올라가야 할곳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힘차게 솟아있는 바위(?)
↗돌틈에서도 잘자라는 돌양지꽃
↗금마타리 씨방
↗참나리꽃
↗좀깻잎과 닮았지만 거북이 꼬리처럼 생긴 오리방풀
↗660봉의 물개바위와 소나무(옆에 주전자 부리가 있음)
↗용화산에는 재밌는 전설이 한가지 있다. 누가 지어 내도 기막히게 지어 내어 웃음이 절로 난다.
(위 그림 좌측에서 첫번째가 주전자 주둥이바위로 춘천에서 비가 오지 않을 때 여기에 개피를 발라 기우제를 지낸다고 하는데 이를 "개적심"이라 한다.하늘에서 그 더러운 개피를 씻어 내기 위해 비를 내려준다 한다. 그리고 위 중간그림은 여성의 가슴과 꼭지를 닮은 바위이며 용화산이 여신의 산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정상근처 세남바위에 사는 세남자가 위그림 맨 오른쪽의 바위가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데 매일 그 여성의 성기를 바라보며 애태우다가 중간의 그림 처럼 각기 다른 세남자의 심벌이 굳어버렸다 한다. 아래그림 왼편은 그남자들이 여자를 차지하기위해 내기 바둑을 뒀다는 바둑바위이며 아래 중간그림은 원래 용화산에는 네남자가 살고 있었으나 어느날 한남자가 몰래 여자를 보러 가기위해 세남바위에서 말을 타고 뛰어 내렸으나 거리 측정을 잘못하여 말의 한발자국만 찍히고 나머지 발은 그 남자와 낭떠러지 밑으로 굴러 즉사하고 말았다 한다. 마지막 그림은 그 말과 남자가 떨어져 압사해서 납작해진 형상이란다.)작자에게 경의를 표한다.ㅎ ㅎ
↗바위산으로 곳곳에 로프가 설치되어있다.
↗큰고개 쪽으로 하산하는 산꾼들~
↗소나무 두뿌리가 서로 엉켜 전쟁중~
↗운무속으로~
↗운무속의 소나무
↗층계바위와 하늘벽 위
↗하늘벽을 타고 온 클라이머
↗하늘벽위 (운무로 인해 아래쪽 시야가 가려져 아찔함이 없이 지나간다.)
↗운무속의 하늘벽
↗원래 저런 낭떠러지로 위부분을 지나게 된다.(보기만해도 아찔해 아랫도리가 바짝 조여 든다.)
↗정상 50미터 전 헬기장에서 식사
↗고탄령쪽으로 하산 하려면 정상을 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한다.
↗운무로 가득한 정상 표지석(산신제를 지내는 제단이라 해도 군수의 이름까지 새겨 넣는다는 것은 자신의 치적을 내세우는 졸렬함이 껄쩍지근하다.)
↗들머리에 없던 등산로 지도 (지도를 좀더 세밀하게 그릴 필요가 있다.)
↗정상에서 다시 내려 와 고탄령쪽으로 하산 길
↗위험구간
↗여기에도 이정표가 없어 잠시 해메이는 곳이다.
↗좌측으로 돌아 858봉쪽으로 에둘러 돌아가야 한다.
↗하산 능선 길
↗연리수를 이룬 두나무
↗도깨비 부채 발견
↗더많은 도깨비 부채
↗어랍쇼 갈수록 아주 떼거리로 몰려 있네
↗당단풍나무
↗오리방풀에 포위 된 우산나물
↗우산나물 열매
↗참배암 차즈기 (뱀의 대가리를 영락없이 닮아서 참배암차즈기라 한다.)
↗작은 폭포
↗ ?
↗참나무류들이 서로 햇볕을 차지하기 위해 키경쟁을 한 탓인지 위로만 솟아있다. 결국 약한 나무는 도태되고 말것이다.
↗시리도록 차가운 계곡 물
↗계곡을 어크로스로 몇번 건너야 하산 할수가 있다.
↗이깔나무 숲길
↗작은 개활지가 나오고~
↗여름에 많은 사람들이 찾을거 같다.
↗벌써부터 행락객들이~
↗마지막 계곡물을 건너 나타나는 집을 바라보고 우측으로 가야 사여교로 갈수가 있다.
↗사여교쪽으로 꽤 긴 거리를 가야 한다. 우린 여기서 오던 트럭을 얻어 타고 왔다.
↗사여교 하산 완료 후 바라 본 용화 정상은 오전 보다는 약간 운무가 걷혀 희미하나마 조망이 된다.
~ BYE~
첫댓글 감사합니다....덕분에 용화산 편안히 잘 보고갑니다...*,,
오래동안 감상하였읍니다. 한편의 영화를 본듯.... 내가 같이 동반해서 여행하는 듯이 즐겁고.힘들고 시원하고 그랬던것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용화산의 아름다운 야생화 및 산행일지가 이마의 땀방울을 식혀줍니다.
상세한 설명과 그림에 직접갔다온 느낌이네요. 산행기 잘 봤습니다.
용화산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 이네요. 세세한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잘보았습니다.... 덕분에 제가 정상을 다녀온 느낌이 듭니다....
좋은 그림과 서명 그리고 산행기 즐감하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내가갔다온느낌 ~ 기경 잘했심더 ~
오랜 산행 후기 잘 보고 감니다..
용화산의 전체가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감사합니다.
힘든 산행을 하셧네요 갖가지 들꽃과 식물들 잘 보고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