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모악산 등반을 답사차 다녀왔다.
의사회 가족등반 준비를 위한 것이라 했다.
이젠 스스로 운동의 필요를 절감하는 터라 군말 없이 기쁘게 따라나섰다.
수구초심인가?
전주는 전라북도지만 전라남도 출신인 나는 경기도 이남이어서인지 고향가는 길처럼 정겨웠다.
가을의 전령사인 억새가 도로변에 무리지어 은빛으로 출렁이고
토실한 알곡이 익어가는 가을들판은 내집 곳간처럼 넉넉하다.
난 고교 졸업후 벌써 삼십년 넘게 살고도 도무지 서울, 경기도에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집도 단독주택인데다 시내에서 많이 벗어난 한적한 마을에 산다.
앞집은 이장님이 살고 옆집엔 성당 연령회장님 같은 든든한 이웃들과 적당히 버무려져 사는 것이다.
전원주택을 분양하는 그런 곳도 아니고
그저 옛 마을 한 쪽에서 매일 뜯으락 붙이락 살고 싶은 집을 만들며 사는 것이다.
그래도 마을에서 조금이라도 위화감을 줄까 싶어 늘 조심스럽다.
그런 차에 고향길 같은 전주. 기꺼이 따라 나설 수밖에...
점잖고 양반의 기상이 서린 태조 이성계의 땅은 길이름도 태조로가 있었다.
그 곁에 우리나라 첫 순교자를 배출한 역사적인 전동성당이 창문 밖으로 보인다.
초신자일 때 치명자산 성지 순례를 왔다가 들렀던 이곳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유명하다.
담을 헐어 시민과 호흡하는 성당.. 늘 신자로서 바라던 바람직한 교회상이다.
모악산은 전주를 지나 김제군에 있었다.
품안의 금산사가 멀리로 보이던 등산로엔 가을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소문났던데 아직 단풍은 주차장의 느티나무가 붉으스레한 것뿐.
산행시엔 먼 이야기.. 아마도 가족 산행때는 나도 감탄사 좀 날리겠지...
엄마가 끌어안은 형상의 모악산은 내가 느끼기론 금산사를 살포시 꼭 안았다.
완주 방향엔 대원사도 있다는데 다음 산행엔 그곳도 보았으면 좋겠다.
금산사 경내엔 발도 못 디뎌보고 멀찌감치 바라다보는 게 아쉬웠다.
산은 그리 가파르지 않았지만 저질체력인 내겐 쉬운 산이란 없다.
그 일행 안에서 우리 부부는 닭살행각으로 유명하다.
내가 저질 체력인 탓이다.
항상 일행보다 뒤쳐진 나는 남편에게 앞서 가기를 늘 주문하지만
"내가 보살펴 줘야지."
하고 말하고 내 곁을 떠나지 않으니 우리 둘은 늘 일행과 동떨어져 걷는다.
그러니 어제도 돌아오는 차안에서 한동안 우리를 화제로 삼아 놀려 먹었다.
그럴 때마다 가지말까 회의가 들지만
그나마 산행이라도 운동삼아 해야한다는 남편 성화에 또 이 악물고 뻔뻔하게 따라 나선다.
정상 근처 헬기장엔 억새가 한마당이다.
전라도 가는 길엔 언제나 억새가 눈에 밟힌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만난 하나같이 돌담을 둘러친 옛스런 느낌의 마을.
제주도에서나 빈번히 본 돌담 너머로 과일들이 달렸다.
은행이 가지 가득 달리고 배나무에 감나무까지, 마을 어귀 여기저기엔 효자비 열녀비가 섰다.
시대가 바뀌어 이혼 재혼이 난무하는 요즘의 눈으로 바라보니
은장도 서슬퍼런 어느 여인의 한이 가슴에 박힌다.
시절이 그러니 더 빛나기도 하지만...
원종인 마을이라 했던가?
이름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마을 돌담을 따라 걷는 내내 온몸의 피곤보다
선인들에 대한 경탄의 념으로 마을이 마치 자연문화재 같아 정겨움이 물씬 느껴진다.
언제 한번 모악산 둘레길도 걸어보고 싶어졌다.
전주에서 안과를 하신다는 김원장님은 요번 산행가이드로 육십이 넘었다는데 품새가 날아갈 듯 하다.
용인에서 안과를 하시는 정원장님 친구분이시라는데 예전에 신세를 졌다시며 겸손하셨다.
친구란 모름지기 이럴 일이다.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흔쾌히 시간을 배려해야겠지.
산행이 끝나고 당신 단골 집인가?
시장안에 있는 전주 서울식당(063, 251, 7093) 으로 우릴 인도했는데
홍어애국에다가 홍어삼합, 진짜배기 전라도김치, 가을전어구이, 두부쌈, 꼬막 전라도 맛이 일품인 상이 준비되었다.
그런데 값을 믿을 수가 없다.
한상이, 막걸리 3병 값으로 12000원이란다.
물론 우리 일행 13명이 막걸리를 이십만원 어치나 마시긴 했지만
참 놀랍도록 푸짐하다.
한없는 반찬 리필에 깊은 홍어애국맛을 경기도에서 어찌 맛보겠는가!
보리싹이 피면 싹싹 비며 홍어애국을 끓여주기를 좋아하셨던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났다.
일행에게 전라도식으로 꼬막 삶는법, 김치에 돼지고기 얹고 홍어한점을 싸는 홍어삼합을 먹는 법을 알려 드렸다.
지인들에게 모두들 한번씩 들르기를 강력 추천해야겠다.
절대 후회 안한다.
난 전화기에 번호를 보관했다.
함께 오신 원장님 한분은 아내가 좋아한다며 꼭 한번 함께 와야겠다고 벼르시기까지 하셨다.
그런데 그 식사? 전주 중심가에 있다는 김안과 원장님께서 한 턱을 쓰셨다.
두 분의 우정이 정스럽다.
모악산, 사실 전라도에 살면서 한번 들어 보지 못했던 곳이다.
산에 무심해서였을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단풍이 아름답다고 극찬한 기사들이 많이 있었다.
하긴 조금 아래 내장산이 있으니 안 그러겠는가!
내가 모르는 곳이 한두군데 일까....
가끔 '죽기 전에 여기저기 돌아 봐야지' 하고
외국여행도 다니고, 국내 여행도 다니지만
때론 내가 다니면 얼마나 다닐 수 있겠나 싶어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땐 금세 삶이 허무하다는 느낌에 갇히고 '세상 별 거 없지' 하며 무력해진다.
꾸며도 어색하고 안꾸미면 흉한 중년.
품격있게 살아내서 삶의 갈무리를 잘 해야할텐데...
건강하게 삶을 유지하기 위해 등반을 하지만 인간의 한계는 뻔하다.
그저 자식들에게 욕이나 되지 않을 부모가 되고 싶다.
내일 나를 돌아보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오늘 하루를 살아내면 그뿐.
아침엔 마당에 엎드려 풀을 봅았다.
누구를 만나 어떤 수다를 떠는 것보다 가치 있게 여겨진다.
자연에 동화되는 느낌.
올 봄 게으름을 피운 댓가로 잔디가 다 망가졌다.
동유럽여행 여파다.
인생은 제로섬 법칙이 작용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게 당연지사.
올 가을 바삐 풀을 뽑을 일이다.
결국엔 집앞의 테라스를 내 직성에 맞게 뜯어 고치고 있다.
내 뜻대로 일을 해 주시는 목수분을 만나 마음이 평화롭다.
거기에 창가 선반을 걸치고 화분을 올려야지.
그 창밖을 바라보며 섬세하게 내린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싸늘한 가을의 한기를 느끼고 싶다.
낮으막히 만든 나무 의자 두 개를 두고 책 한 권 읽으며
앞산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보는 평화의 시간을 보내야겠다.
삶의 여유가 느껴지는 하루하루가 영혼을 풍성하게 만드는 인생 갈무리가 되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