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는 방법도 여러 가지 있지만 죽이는 방법도 여러 가지입니다. 모든 동물들 가운데 다양한 살해 방법을 지니고 있는 동물이 바로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살해하는 이유는 다른 동물들처럼 생존을 위함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이유들이 더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생존을 위한 살인은 오히려 비율이 낮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살인을 하는 걸까요? 물론 보복인 경우도 많습니다. 흔히 이야기의 소재이기도 합니다. 가계를 이어가는 복수의 연속, 대립되는 그 두 가문 속에서 뜻하지 않게 피어나는 사랑 이야기는 흥미를 자아내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유명합니다. 가문의 불행이고 결국 젊은이들의 불행으로 나타납니다.
아무튼 살인의 이유 목적이 무엇일까요? 복수가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경우 욕심 채우기 아닐까 싶습니다. 죽이고 빼앗는 것입니다. 재물을 빼앗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을 빼앗는 경우도 있습니다. 강도짓은 주로 재물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인을 빼앗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때도 있습니다. 그보다 더해서 개인적 살인이 아니라 나라와 나라 간의 전쟁으로까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으로 ‘트로이 전쟁’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인 ‘헬레나’를 둘러싸고 국가 간의 대규모 전쟁이 일어납니다. 신화이든 역사적 사건이든 아무튼 사건의 중심에 한 여성이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이야기 거리가 되기 좋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살인은 선한 사업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늘 발생합니다. 더구나 국가적 단위로 발생하면 악이라는 개념조차 희석됩니다. 전쟁으로 발생하는 대단위 살인행위는 누가 단죄하기도 어렵습니다. 나중에 전쟁범죄를 따지는 국제재판이 열리기도 하지만 지극히 소수만 해당됩니다. 사실 성경 속에도 많은 전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의 약속의 이행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말하자면 ‘거룩한 전쟁’입니다. 그것을 빌려 타종교에서도 잘 써먹고 있습니다. 그러니 개인으로든 나라로든 살인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악하게 취급하는 것은 개인의 욕심이나 사적 감정으로 살해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한 것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앞에서 살인의 방법도 다양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죄인을 사형시키는 방법도 여러 가지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최근까지 가장 오래 많이 사용한 것이 아마도 교수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찌 되었건 스스로 죽는 것 외에 타의에 의해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받아서 목숨을 잃는다면 죽은 사람보다도 남아있는 그 사람의 주변 사람에게도 크나큰 상처가 남습니다. 물론 그 이유 때문에 복수라는 것이 생기지만 요즘은 나서서 복수를 할 수는 없습니다. 법의 심판에 맡겨야지요. 그렇다 해도 한번 새겨진 상처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평생 지니고 아파해야 합니다.
극악무도한 죄인들, 속된 말로 ‘인간쓰레기’요 세상에 존재가치가 없다고 낙인찍힌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필리핀에서 국내로 이송해야 합니다. 4만 톤급 화물선에 임시 감옥을 설치하여 죄수들을 태웁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 형사 한 사람씩이 따라붙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감시하며 화물선에 탑승을 합니다. 한 방에 두 명씩 모두 수갑이 채워지고 쇠사슬로 벽에 매여 있습니다. 꼼짝 못하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옥 밖에서 지킵니다. 시간이 되어 배는 출항을 합니다. 망망대해, 빠져나가봤자 바다입니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어쩌면 조금은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폭풍전야입니다. 이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몸 안에 숨겨온 쇠붙이를 피를 토하며 꺼내서 수갑을 풀어냅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실력파 형사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폭력을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글쎄, 형사들은 일말의 인권을 생각하며 대처하지만 죄수들은 그런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무자비한 폭력이 종횡무진 전개됩니다. 여기저기 피가 낭자해집니다. 그야말로 피의 향연입니다. 그런데 먹기 위해 동물을 도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마구잡이로 찌르고 치고 때리고 박살을 내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영화 촬영하는 데 사용한 피가 자그마치 2톤이랍니다. 상상이 됩니까? 보고 나서 떠오르는 것은 그 피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경고하였지만 비위 약한 사람들은 결코 관람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2차 대전 때 생체실험 대상이었던 괴물 같은 사람까지 등장하여 한 몫을 더합니다. 선내 죄수들, 형사들, 선원들, 인부들 동승한 의사와 간호사 등등 살아남는 사람이 있을까요? 직접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보고 나서도 기억나는 것은 피밖에 없다니까요. 뭐 이런 영화가 있나 싶은 생각으로 나왔습니다. 저의 경우는 시간과 돈이 아깝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반응을 하는군요. 세상 참! 뭐 혼자 사는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영화 ‘늑대사냥’(Project Wolf Hunting)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