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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이전(吏典) 제1조 속리(束吏)
10. 아전들이 구걸하면 백성들은 고통스러워 한다. 그것을 금지하고 단속하여 함부로 악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탁무(卓茂)가 밀현(密縣)의 수령으로 있을 때 백성을 아들같이 여기고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기 때문에 아전이나 백성들이 차마 속이지 못했다. 백성 중에 관하의 정장(亭長)이 쌀과 고기를 받아 먹었다고 말한 자가 있었다.
탁무가, “정장이 너더러 달라고 하더냐? 네가 청탁할 일이 있어서 받게 되었느냐? 아니면, 평소에 어떠한 은혜를 입은 일이 있어서 그에게 주었던 것이냐?” 하니, 백성이, “그저 가서 주었을 뿐 입니다.” 하였다. 탁무가, “주어서 받았는데 무엇 때문에 말하는가?” 하니, 백성이, “들으니 현명한 임금은 백성이 관리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관리들은 백성들에게서 취하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지금 저는 관리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가져다 준 것인데 관리는 그것을 받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와서 말하는 것입니다.” 하니, 탁무는, “네가 몹쓸 백성이구나. 관리가 위력을 가지고 강제로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지만 정장은 본래 착한 관리일 뿐더러 선물을 보내는 것은 예인 것이다.” 하였다. 백성이, “참으로 그렇다면 법률은 왜 이것을 금합니까?” 하니, 탁무는 웃으면서, “법률은 큰 법만 설정한 것이요, 예(禮)는 인정에 따르는 것이다. 이제 내가 법률대로 너를 다스린다면 네가 수족을 제대로 놀릴 수 있겠느냐? 돌아가서 잘 생각해 보아라.” 하였다.
탁무란 자는 점잖은 체하는 비루한 사람이다. - 그의 행사가 본래 그러하였다. - 백성들이 관리를 고소할 적에는 으레 제대로 말을 다 못하는 법이다. 백성이 한 가지를 말하면 수령은 세 가지까지 알아들어야 그의 진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탁무는 관리의 횡포는 의심하지 않고 백성의 잘못만을 탓하니, 역시 어둡지 않은가? 백성이 만일 기꺼이 주었다면 반드시 이처럼 호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껍지 않게 주었으니 거기에는 반드시 숨은 사정이 있을 것인데, 어찌 성급하게 몹쓸 백성이라 할 수 있겠는가? 서민은 마치 어린애와 같아 어디가 아프거나 가려워도 제 입으로 말하지 못하고, 설령 말한다 하더라도 똑똑하게 말하지 못하니 아, 가엾을 따름이다.
후한(後漢) 때의 오우(吳祐)는 교동후상(膠東侯相)으로 있을 적에 인자(仁慈)하고 간명(簡明)하게 정치를 하니 백성들이 차마 속이지 못했다. 색부(嗇夫) 손성(孫性)이 사사로이 백성 돈을 거두어 옷을 사서 자기 아버지에게 드리니, 그의 아버지가 노하여, “이와 같은 사또가 계시는데 어찌 차마 속일 수가 있겠느냐? 속히 돌아가 죄를 자복하라.” 하자, 손성은 부끄럽고 두려워하며 오우에게 자복하는 동시에 자기 아버지가 한 말까지 함께 이야기하니 오우는, “이 아전은 부친 때문에 일시적인 더러운 이름을 받게 되었으니 이른바 ‘허물을 보아 어진 정도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이것이다.” 하고는, 돌아가서 그의 아버지에게 사죄하게 하고 옷도 다시 보내 주었다.
《북사(北史)》에 이렇게 말했다. “송흠도(宋欽道)는 제(齊)나라에 벼슬하여 중산 태수(中山太守)를 역임하였는데 자잘한 일 살피기를 좋아하였다. 그 주부(州府)의 좌리(佐吏)로서 민간에 볼일 보러가는 자는 먼저 밥값을 낸 다음 백성의 밥을 먹었으니, 송흠도는 부임해 가는 곳마다 엄정하다는 평을 받았다.”
여몽정(呂蒙正)은 이렇게 말했다.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나치게 간섭하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 조참(曹參)이 옥시(獄市)를 동요시키지 말게 한 것은 그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아울러 사랑했기 때문이다. 만일 끝까지 추궁하면 간특한 자가 용납될 곳이 없기 때문에 신중히 하여 동요시키지 말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이것 또한 폐단이 있는 말이다. 요즈음 재상들은 이같은 말을 귀에 익도록 들었기 때문에 일체의 시비와 선악을 모두 혼동시켜 구분하지 않으려 하니 상처를 받는 백성들만 많게 된다. 모든 일에는 균형이 있는 법이니, 한쪽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다산록(茶山錄)》에 이렇게 말했다. “교활한 아전은 교만 사치하고 음란 방일하다. 그가 일에 실패하게 될 때에는 마을을 순행하면서 곡식을 구걸하고, 혹은 본촌(本村)의 환곡(還穀)을 제류(除留)하여 포흠진 것을 갚기도 한다. 그러니 수령은 반드시 그런 것들을 미리 알고 ‘네가 이러한 죄를 범하면 반드시 처벌하고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나서 뒤에 염탐하여 그러한 자를 발견하면 법에 비추어 중하게 다스려야지 용서해서는 안 된다.”
[주-D001] 탁무(卓茂) : 동한(東漢) 때 남양(南陽) 사람으로 자는 자강(子康)이다. 예법(禮法)과 역산(曆算)에 밝았으며 평제(平帝) 때 밀현(密縣)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교화를 크게 행하고, 광무(光武) 때 태부(太傅)가 되고 포덕후(褒德侯)에 봉해졌다. 《後漢書 卷25》
[주-D002] 정장(亭長) : 진(秦)ㆍ한(漢)의 제도에 10리를 1정(亭)으로 정하고, 정에는 담당관을 두어 도적 잡는 일을 맡게 하였다. 정(亭)은 나그네들이 정류하는 집이다.
[주-D003] 오우(吳祐) : 자는 계영(季英)이다. 효렴(孝廉) 출신으로 제상(齊相)에까지 이르렀다. 《後漢書 卷64》
[주-D004] 색부(嗇夫) : 여기서는 벼슬 이름을 말한다. 한(漢)나라의 제도에 작은 고을에는 색부 한 사람을 두어 백성의 생활 상태와 부세(賦稅)에 관한 일을 전담하게 하였다. 《後漢書 百官志5》
[주-D005] 허물을 …… 있다 : 《논어》 〈이인(里仁)〉에 “사람의 허물은 각각 종류에 따라 다르니, 그 허물을 보아 그 사람의 어진 정도를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주-D006] 송흠도(宋欽道) : 서하(西河) 사람이다. 본래 관리 출신이므로 고금의 사리에는 너무도 어두었다. 벼슬은 비서감(秘書監)ㆍ황문시랑(黃門侍郞)에 이르고 이부 상서(吏部尙書)ㆍ조주 자사(趙州刺史)에 증직되었다. 《北史 卷 26》
[주-D007] 여몽정(呂蒙正) : 송나라 때 하남(河南) 사람으로 자는 성공(聖功),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성품이 관후(寬厚)하고 학문에 조예가 깊었으며, 벼슬은 태자태사(太子太師)에 이르고 허국공(許國公)에 봉해졌다. 《宋史 卷265》
[주-D008] 조참(曹參) : 한(漢)나라 때 패(沛) 땅 사람이다. 소하(蕭何)와 함께 한 고조(漢高祖)를 도와 중국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평양후(平陽侯)에 봉해지고 제(齊)나라 승상(丞相)이 되었다가 뒤에 소하가 죽자 한나라 승상이 되었다. 《漢書 卷39》
[주-D009] 옥시(獄市)를 …… 것 : 조참이 제나라의 승상에서 떠날 때 그 후임자에게 “제나라의 옥시를 그대에게 맡기니, 신중히 하여 요동시키지 말라”라고 부탁하였다. 후임자가 “다스릴 일이 이보다 더 큰 것은 없는가?”물으니, 조참은 “그렇지 않다. 옥시는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을 모두 수용하는 곳인데, 이제 그대가 동요시킨다면 간인(姦人)이 어디에 용납하겠는가? 이렇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먼저 말한 것이다.” 하였다. 《漢書 卷39 曹參傳》 여기서 옥시(獄市)란 옛날에 시사(市師 저자를 맡은 벼슬)가 저자에서 큰 옥사를 처리하였기 때문에 저자를 옥시라고 한다.
[주-D010] 환곡(還穀) : 각 고을에서 사창(社倉)에 간직하고 백성에게 봄에 꾸어 주었다가 가을에 받아들이던 곡식을 말한다.
[주-D011] 제류(除留) : 실제로는 거두어 들인 환곡을 문서상에는 미납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吏之求乞。民則病之。禁之束之。無俾縱惡。
卓茂爲密令。視民如子。口無惡言。吏民不忍欺。民有言。部亭長受其米肉。茂曰。亭長爲從汝求乎。爲汝有事囑之而受乎。將平居。自以恩義遺之乎。民曰往遺之耳。茂曰。遺之而受。何故言耶。民曰。竊聞賢明之君。使民不畏吏。吏不取民。今我畏吏。是以遺之。吏旣卒受。故來言耳。茂曰。汝爲弊民矣。吏顧不當乘威力强求請耳。亭長素善吏。歲時遺之禮也。民曰。苟如此。律何故禁之。茂笑曰。律設大法。禮順人情。今我以律治汝。汝何所措其手足乎。且歸念之。〇卓茂者。鄕愿之鄙夫也。其行事本然。 民之訴吏。倒不盡言。民擧其一。牧反其三。乃得其情。今也不疑吏橫。唯咎民險。不亦昏乎。民若樂遺。必無此訴。不樂而遺。必有隱情。豈可徑謂之敞民乎。小民如小兒。疾痛疴癢。不能自言。縱一言之。不能明言。嗟乎其可哀也已。
後漢吳祐爲膠東相。政崇仁簡。民不忍欺。嗇夫孫性。私賦民錢。市衣以進其父。父怒曰。有君如是。何忍欺之。促歸伏罪。性慙懼自首。具談父言。祐曰。椽以親故。受汚穢之名。所謂觀過知仁矣。使歸謝其父。還以衣遺之。
北史。宋欽道仕齊。歷位中山太守。好察細事。其州府佐吏。使人間者。先酬錢。然後敢食。臨𦲷處。稱爲嚴整。
呂蒙正曰。水至淸則無魚。人至察則無徒。曹參不擾獄市者。以其能兼愛善惡也。若窮之則奸慝無所容。故告以愼勿擾耳。
〇此亦有弊之言。近世宰相。習聞如此之言。一切是非善惡。皆欲混沌而不分。民之受傷者多矣。總有權衡。不可膠也。
茶山錄云。猾吏驕奢淫佚。及其敗也。巡行村里。求乞錢穀。或以本村還穀。許其除留。以納浦欠。牧必知幾。先戒曰。汝犯此罪。必罰無赦。旣而廉得之。照法重繩。不可原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