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로 쓰는 걸 부디 양해해 주시길...>
오늘날 한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접하고 즐겨 먹는 음식이 바로 고추와 담배이다. 담배는 엄밀히 말해서 식품이 아닌 기호품이지만, 억지를 쓰자면 인체를 통해 직접 섭취하는 것이니 음식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고추와 담배는 원래부터 이 땅에 존재하던 것들이 아니다. 이 두 가지 작물이 한반도에 들어온 때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바로 한국 역사에서 미증유의 재난이었던 임진왜란의 직후에 들어온 것이다.
우선 고추가 한반도에 유입된 경위와 그 효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고추의 원산지는 한반도가 아닌 중남미의 멕시코이다. 멕시코에 있던 아즈텍 왕국을 1542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가 정복하면서 고추를 비롯한 담배, 고구마, 감자, 옥수수, 토마토, 초콜릿 등 새로운 농작물들을 발견하였다. 스페인 장사꾼들은 이러한 농작물들을 유럽과 세계에 퍼뜨렸고, 마침 스페인과 교역하고 있던 일본에 이러한 작물들이 전해지면서 인접한 조선에도 오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이 벌어지기 이전까지는 조선의 어떠한 문헌이나 기록에도 고추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써진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따르면 고추는 “남만의 풀로 큰 독이 있으며, 일본에서 처음 전파되어 왜겨자(倭芥子)라 이름 붙였다. 지금은 그 종자가 주점에 이따금 보이며, 그 맛이 맵고 독하여 많이 먹는 사람은 죽는다.”라고 언급한다.
여기서 말하는 남만이란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의 유럽을 일컫는다. 남쪽 바다인 필리핀과 동남아 방향에서 교역을 하러 오는 유럽 상인들을 보고 조선과 일본을 비롯한 동양인들은 그들을 남쪽의 오랑캐란 뜻의 남만(南蠻)이라고 불렀다.
스페인과 교역을 하는 데 열심이던 일본인들은 스페인으로부터 고추를 받았으며, 이것이 임진왜란을 치르는 도중이나 전쟁 직후, 조선과의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고추를 처음 접하게 된 조선인들은 특유의 맵고 독한 맛으로 인해 탈이 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내 고추는 조선 사회에 깊이 받아들여지게 된다.
고추가 도입되기 이전에 우리 조상들의 식생활은 어떠했을까?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만 고추가 빠진 식탁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아마 고추가 들어가지 않은 백김치와 동치미, 짠지 등이 원래 우리가 먹었던 김치였으리라. 김치를 담글 때면 맨드라미꽃으로 색을 만들고, 소금으로 간을 해서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고추가 들어오자 180도 바뀌었다. 김치와 채소류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음식에 고추나 고춧가루, 고추장 등이 첨가되기 시작했다.
약 4백 년 전에 전파된 고춧가루가 어떻게 한민족의 식성을 완전히 바꿔버렸던 것일까? 우선 매운 맛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지만 점차 먹을수록 그것에 빠져드는 성질이 고추에 있다. 또한 평소부터 마늘과 생강 같은 독한 양념을 즐겼던 조선인들은 이내 고추도 같이 대하게 되었을 것이다.
한국보다 고추를 먼저 받아들인 일본인들은 이상하게도 고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연하고 순한 음식을 선호하여 고추의 매운 맛을 싫어하고, 고추를 즐겨 먹는 한국인들을 은근히 깔보기까지 한다.
쓸데없는 국수주의와 혐한론을 회피하기 위해 말해 두자면, 전 세계에서 고추를 즐겨 먹는 민족은 한국인만이 아니다. 중국과 베트남, 태국인들도 고추를 좋아하며 이탈리아와 스페인 인들도 고추를 음식에 많이 넣는다. 고추의 본고장인 멕시코 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멕시코와 인접한 미국 텍사스의 주민들도 매운 고추 요리를 별미라 여겨 선호한다.
또한, 많은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나는 고추가 세계에서 가장 매운 것인 양 생각하고, 외국인이 고추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마치 한국인이 된 것처럼 놀라워한다. 하지만, 고추의 원산지가 애당초 한반도가 아닌 멕시코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일은 결코 놀라워할 만한 일이 아니다. 한국인이 자랑하는 청양 고추는 세계에서 매운 색소가 가장 적은 고추이다. 또한 청양 고추는 그 자체가 제주도 산 고추와 태국산 고추를 교배해서 만든 품종이다.
세계의 온갖 진기한 기록들을 수집하는 영국의 기네스북에 의하면, 이제까지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는 인도 펀자브 지방의 특산물인 부트 졸로키아(Bhut Jolokia)이며, 1,001,304스코빌을 기록했다고 한다. 여기서 스코빌이란 고추의 매운 성분을 나타내는 수치이다. 2위는 방글라데시의 도싯 나가(Dorset Naga)이며 876,000스코빌에 달했다. 3위는 인도의 나가 졸로키아(Naga Jolokia)로 855,000스코빌을 기록했으며 4위는 고추의 원산지인 멕시코 산 레드 사비나 하바네로(Red Savina Habanero)로, 577,000스코빌을 기록했다. 그에 반해 한국의 청양 고추는 10,000스코빌 (보통 4,000~7,000스코빌)을 기록해 훨씬 낮은 매운 수치를 나타냈다.
고추에 얽힌 통설들도 선뜻 믿기 힘들다. 한국인들이 고추를 많이 먹어서 위암이나 위염에 많이 걸린다는 속설은 잘못 알려진 상식이다. 매운 고추를 즐겨 먹는 멕시코와 인도인, 방글라데시 인들의 경우는 위암이나 위염 등의 발생률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capsaicin)이란 성분은 신체의 지방을 연소시켜 비만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으며,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한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위암 및 위염 발생 원인은 고추보다는 지나치게 짜게 먹는 식습관 때문이라고 봐야 옳다.
또한 일본인들이 말하듯, 고추를 먹게 되면 두뇌 활동이 둔해져 머리가 나빠진다는 이야기도 허황된 망상일 뿐이다. 고추를 즐겨 먹는다고 미국인이나 중국인, 멕시코, 이탈리아인들을 멍청하다고 비웃는 목소리는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고추는 뒤에 가서 설명할 담배와는 달리, 조선왕조실록에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아마 조정 대신이나 양반 사대부 계층은 고추 같은 하찮은 작물을 국가공식기록에 일일이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다. 다만 영조는 식사 때, 고추장을 밥에 곁들여서 즐겨 먹었다고 한다.
첫댓글 추가하면, 고추를 넣는 추가적 장점은 1) 음식에 소금을 적게 써도 된다는 점과 2) 비린내를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점 등이라 하네요. 조선 시대에 고추가 들어온 뒤에 급격히 확산된 뒤에는 조선 후기 소금값이 비쌌던 이유가 자리잡고 있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임
역시 웰빙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