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자루(bag)는 사람에 따라 보고 안 보고의 구별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소재입니다. 배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처음에는 접하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보게 되는 것이 커피 자루이고, 일단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커피와 담을 쌓지 않는 한 계속 보게 될 뿐만 아니라 지겹도록 보다가 급기야는 처치 곤란의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 것이 커피 자루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배전을 하지 않는다면 정말 특별히 보겠노라고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올 한 조각도 만나기 힘든 것이 커피 자루이고, 사진으로 접한다 해도 그윽하게 익은 커피와 비행기 이륙하는 것처럼 꽂혀 있는 스쿱에 눈길이 가지 '저게 그거로구나...' 라고 주의를 환기하지 않는 한 사진빨 잘 받아 카푸친 수도복같이 주름을 지어 둘러싸 있는 커피 자루는 기억에 남기지 못하고 지나가고 말 것입니다.
커피 자루는 식물의 섬유질을 원료로 하여 만든 직물을 재단하여 만듭니다. 말하자면 천연 소재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원료가 되는 식물로서 대표적인 것은 jute 입니다. 한자어로는 황마라고 하는데, 이름에 '마' 가 들어 있긴 하지만 대마와는 식물 계통상 과가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풀도 아니기에 생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식물에서 나온 동명의 섬유는 포장재로서는 커피뿐만 아니라 쌀, 밀, 옥수수, 원당 등 대부분의 농산물을 담는 자루로서, 일상에서는 의복은 물론 커튼, 카페트, 가방과 같은 다양한 생활용품의 재료로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으며, 그 양은 섬유원료로서는 목화 다음으로 많습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고등학교 사회과 부도의 뒤편에 각종 농산물 생산량이나 수출량 순위표에서 황마는 쌀, 밀, 커피와 함께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밧줄 정도로 쓰였는데 산업 혁명과 더불어 섬유 재료로서 재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상업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18세기 후반 인디아에서 영국으로 수출된 것을 처음으로 잡는다고 합니다. 원산지는 품종에 따라 인디아-버마, 아 프리카, 중국 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커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농산물용 자루에 왜 황마가 사용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할 거리가 많겠지만, 몇 가지 꼽자면 일단은 가격이 싸고, 다음으로는 높이 쌓아도 올이 터져나가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임의로 늘어나지 않으며, 자체 냄새가 나지 않으며 (이에 관해서는 뒤에 글이 더 있지만), 올을 굵게 할 때는 공기 유통이 원활하며, 어느 정도 수분 보유력이 있어서 습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천연 섬유치고는 벌레도 그다지 슬지 않아 보이지만 확실하진 않습니다.)
황마를 어떻게 처리해서 그 섬유를 뽑아내는가의 이야기는 커피와는 거리가 있겠지만, 단 하나, 황마(및 뒤에 이야기하는 kenaf, sisal 등도 포함) 실을 뽑을 때 섬유를 연화하는 작업은 커피 쪽과 관계가 있습니다. 연화 작업은 물에 담근 황마 1 kg 당 50 g 의 batching oil을 소량의 세제와 함께 수 시간 두어 처리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데 건조 후 잔존물은 섬유 무게의 1~3% 라고 합니다. 종래에는 batching oil 로서 광유(mineral oil) 을 썼는데, 이때는 잔류 탄화수소류가 고유의 냄새를 풍겨서 포장물의 풍미에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극복책으로서 vegetable oil 등이 쓰였다고 하는군요.
황마 외에 커피포장재로서 쓰이는 것은 자루로서는 황마 사촌격인 kenaf (양마), 그리고 sisal 이 있습니다. 물론 kenaf 도 대마와는 계통상 과가 다르고, sisal 은 사이잘 삼이라고 하지만 용설란과라서 또한 과가 다르죠. 이들도 역시 눈에 익은 식물은 아니겠지만, 다만 sisal 은 바다 소재 소설에서 마닐라 삼과 함께 좀 언급되는 편이고 sisal 사촌격인 henequen 은 이름 자체가 영화로도 나왔습니다. jute, kenaf 와 sisal, henequen 의 주요 차이는 전자는 줄기를 벗겨서 섬유를 얻지만 후자는 잎에서 섬유를 얻는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들 커피자루의 재료들은 열대성 작물이긴 하지만 산지가 골고루 퍼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황마와 양마는 인디아, 인도차이나쪽이 주요 산지이고, sisal 은 탄자니아와 브라질에서 많이 납니다. 탄자니아쪽은 몰라도 브라질산 커피의 자루를 보면 왠지 jute 인 것 같던데(그렇다고 sisal 과 jute 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골고루 수입해 오는 모양입니다. 물론 산지에서 원료만 수입해서 직조는 현지에서 하겠지요.
커피자루의 사이즈는 가가이문입니다만, alibaba.com 에서는 44 X 26.5 인치, 43 X 29 인치, 40 X 28 인치 등등이 나와 있네요. 이건 그냥 빈 자루 폈을 때 이야기이고, 중요한 것은 커피를 채워서 쌓아 두었을 때 사이즈이겠지요. 예전에 손바닥에다 적어 뒀던 거라 메멘토스럽긴 하지만 82 X 65 X 20 (cm) 였습니다. 자체 무게 (tare)는 600~1200 g 정도 됩니다. 텍스쳐와 색상, 무늬는 정말로 나라마다 지역마다 농장마다 제각각입니다. 올이 굵고 틈이 적은 것이 있는 반면 그 반대도 있고 밝은 노랑색 산뜻한 것이 있는 반면 뭔가 썬탠하고 오신 듯한 어두운 것도 있습니다. 기억나는 무늬로는 콜롬비아의 빨강 녹색 빨강 스트라이프, 상표(?)로서는 킬리만자로의 퍼런색 산과 흰 눈이 있네요. (상표와 기재되어 있는 글귀는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물론 재단한 천을 접는 법도 다릅니다. 옆쪽을 접은 쪽, 아래를 접은 쪽 둘 다 있고, 접은 쪽도 감침질 해서 겹친 듯 만든 것도 있습니다.
주류 포장재가 아닌 것으로는 면, atala, 그리고 나무가 있습니다. 면은 제가 본 것으로는 Yemen Mocha 의 내포장재가 면자루였습니다. 그러니까 10kg 던가요. 그 단위로 면자루로 포장한 뒤 다시 jute (이겠지요) 로 포장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 뒤에 본 Mocha 는 일본을 거쳐서 hand pick 해서 왔다고 하는데 그 덕분인지 면자루가 없었습니다. atala 는 야자인가 가물가물한데 (확인부탁드립니다.) Sumatra Golden Mandhelin 의 독특한 소포장이 야자잎으로 만들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무는 물론 Jamaica Blue Mountain 의 barrel 을 말하는데, 18 조각을 엮고 아래 위 4개의 쇠테를 둘러 조여 박으면서 뚜껑과 밑판을 끼워 박아 만듭니다. (온통 못투성이라서 감수성 예민할 때는 후디니가 생각날 수 있습니다.) 자체 무게는 7.3~7.5 kg 라고 합니다.
이 정도면 거의 다 된 것 같고, 남은 것은 저도의 팁으로서 '커피자루 옮기는 법'과 '커피자루 뜯는법' 입니다. 혼자 옮길 때는 등에 지는 것이 기본일 겁니다. 산지 일꾼들은 자루 양쪽 귀를 쥐고 훌렁 어깨 너머로 반바퀴 돌려 등에 진다는데 요령 없으면 허리 나가기 쉽겠죠. 쌓였거나 트럭 등 높은 곳에서 내려서 등에 지는 것은 조금 낫긴 한데 다만 등에 지는 것은 언제나 허리의 무리를 동반하는 것입니다. 소위 상대성 원리의 총각 역차별이라고 할 만한 게 있는데, 콜롬비아(70kg!!)를 등에 질 때 총각은 '어우 결혼하면 사랑받겠는데' 라는 말을 듣는 반면 결혼한 사람은 '어우 결혼했으니 조심하셔야지!' 라는 만류를 듣습니다. 등에 지기 어려우면 허벅지에 올려 놓거나 양 팔로 버티며 가는 수밖에 없는데, 처음엔 편해 보이지만 등에 진 것만큼은 멀리 못가고 에너지 소모 심합니다. 두명이 옮길 때는 맞드는데, 이것은 FM 이 있습니다. 귀를 쥐는 쪽은 잡을 곳이 있으니 괜찮고, 바닥면을 쥘 쪽은 잡을 곳이 없으니 모서리 부근를 손으로 콕콕 꾹꾹 쑤셔 넣어 주어 손가락 끼울 수 있을 만 한 홈을 만듭니다. 이렇게 해서 잡으면 정말로정말로, 귀쪽을 쥐는 것보다도 편합니다.
커피자루 뜯는 법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도의 팁) 커피자루는 미싱으로 박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집안 미싱작업한 천 올 뜯는 것 상기해서 걸어 주는 쪽 실을 몇 매듭 칼로 슬쩍 떼 주고 다른쪽을 잡아당기면 줄줄줄 풀려 나옵니다. 물론 이상하게 박아 놔서 당겨도 안 되고 그래서 때로는 눈치 보이는 것이 몇 개 있긴 합니다. 이것은 자루를 펴 당겨서 안쪽을 끊어 내고 몇 가닥 풀어 다시 시도해 보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