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우리가 아주 어렸을
제 학교에서 배워 즐겁게 부르던 낮 익은 노래로 박목월 작사 김성태 곡이다. 쎈치하게 노래, 시를 들고 나오게 된 것은 깊은 가을 의미에서 ‘황혼을’ 그리고 너도 나도 ‘가는 세월’을
느꼈던 것은 엊그저께 동기 바둑모임에 갔다가 새삼 친구들 얼굴을 보니 내 얼굴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내가 즐겨 부르는 ‘가는 세월’을
떠 올려 본다. “그래 가는 거야! 세월이 가면 가야지! 암! 그렇고 말고!” 이
말의 의미를 진리라 철두철미하게 믿고 앞으로 불변된 내 삶, 가치 모든 것을 맡기고 꿋꿋이 사는 내
자신을 그리면서 가볍게 나이 70을 맞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과
세월에 순응하면서 도사처럼 <무위의 삶> 즉 아름다운
내 삶의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만족했는지 모른다.
오늘 청력 검사를
다시 받아 보라는 마하님 재촉을 차일피일(此日彼日) 미루다가
드디어 이비인후과에 가서 정밀 청력검사를 받았다. 한 4년전에
마하님 몰래 들린 의원인데 정밀검사 받으라는 조언을 무시하고 조금 청력이 약하다는 소견에 “괜찮겠지! 그리고 난 좋아 지겠지! 그리고 요새 술이 좀 과해서 일시적인 현상” 이라고 무시하고 그냥 지냈는데 마하님 집에서 같이 생활하니 복창이 터졌다.
하기사 세상사
하도 하수상해서 어지간한 것은 안 보고 안 듣고 사는 것이 어쩌면 건강에 특히 정신 건강에 더 좋다는 가정 하에 귀가 좀 떨어지는 것보다 정신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이를 무시하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다. 그러나 마하님 못 듣는 나를 보고 터진
복창이 한 두번이지! “예! 예! 오늘 검사 받아 결과 보고 하겠습니다.” 겨우 빌고 들린 의원이다.
“연세도 있으신데 4년전 정밀 검사 받으시라고 여기 적혀 있는데 안 받으셨죠! 그리고
오늘 검사결과 그때보다 훨씬 청력이 약해 지셨습니다. 청력이 약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 나는지 알고 계시죠! 알고 계신 것 말씀 좀 부탁 드립니다.”
“지적
능력 및 신체 균형감각 퇴보, 언어능력 감퇴 뭐 이런 것에 의한 무서운 치매로의 진행 등이라 알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면서 자그마치 4년을 우물쭈물 왜 지나셨습니까?”
“바둑은 청주에 상대가 없는 정도니까 절대로 치매는 없을 것이고 그리고 세상사 좀 덜 보고 덜 듣고 살면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하고
대화는 다 됐고요 2일 후에 정밀검사 직권에 의해 받으실 것을 명합니다. 충분히 설명 드렸고 보청기 착용에 따른 검사입니다.”
“감사합니다”
뭐 그렇게 약속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의사와 진행되었던 대화내용,
청력이 50~60데시빌이 일반 사람에 비해 떨어진다는 검사결과, 2일후 보청기 착용을 위한 정밀검사 등 미주알고주알 상큼하게 보고 드렸더니 얼굴이 피시는데 하! 이 모습이 진정한 보살의 모습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몇 번씩 신랑을
부르는데 대답 안 하면서 겨우 알아 들었다 싶으면 하나도 미안하지 않고 처음 듣는 양! 시침 뚝 따면서
게서 더욱 얄미운 것은 귀가 잘 안 들린다는 미명하에 뻔히 듣고 알고 있는데도 자신이 불리하면 모른 척 하기 등등 그 동안의 죄상을 들먹이는데
“두고 봐라! 보청기 하고 또 요런 짓 하면 혼나는 수가
있다” 라는 으름장! 뭐 이런 것이다.
그 동안 귀 잘
안 들린다는 재롱으로 좀 힘들고 돈 들고 시간 들고 하기 싫은 것 등등 요리조리 피하는데 적당히 이용했는데 아이고! 이제 망하는가 보다. 그래도 집에 와서 귀가 간지럽다고 보청기를
신속히 빼는 방법을 연구하면 무슨 수가 날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런 것이지 뭐! 그러면서 억울한 것이 의사가 보청기 장사꾼으로 변한 것은 아닌가? 라는
의구심 속에 가끔씩 보청기 회사 직원의 전화가 걸려 오고 있다.
“그때 오른 쪽만 하셨는데 지금쯤 왼쪽도 하실 때가 된 거 같습니다. 한번
병원에 들려 검사 받으세요!”
보청기 회사가
의원 대신 환자를 관리해 주면서 서로 상부상조 하는 것은 환자 주머니를 합동작전으로 우려 먹는 카르텔의 일종으로 신종 사기까지는 아니래도 소비자를
너무 무시하는 작금의 상황에 의료보험 조합의 맹성을 촉구해 본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보청기 값이
터무니 없이 비싼 원인이 되는 것은 고사하고 그 의사에게 가서 그 의사가 지정하는 보청기를 껴야만 하는 이런 어리석은 일이 앞으로 얼마나 횡행할까! 안경은 안 그런데도 말이다.
그리고 보청기
한쪽 값이 삼백만 원으로 뉘 집 애 이름인지 모르겠지만 의료보험 120만원이 보조가 되니 180만원에 한 보청기를 볼 때마다 억울한 것은 고 조그만 것이 너무 비싼 것이 아닌가? 하는 개운치 않은 구석을 나만 느끼고 요새 살면서 한 30만원에서
의료보험 보조로 18만원에 장착하는 기발한 보청기 회사를 만드는 꿈을 꾼 지가 벌써 4년이 다되어 간다. 이비인후과 의사는 처방전만 내 놓고 지정된 보청기
회사 제품을 무조건 써야만 되는 현실을 안과에 들리지만 안경은 안경점에서 맞추는 것처럼 하면 훨씬 쉬운 데도 말이다.
무슨 수가 없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