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라파(출애굽기 15:22-26)24.07.28.주일낮설교
2007년에 개봉되었던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실 겁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외도하던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게 된 젊은 여인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인 경남 밀양으로 이주를 합니다. 피아노 학원을 하면서 살아가던 어느 날, 아들이 유괴를 당해 살해당하고 맙니다. 영화 밀양은 상실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한 여인의 삶을 묘사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인간에게 주어진 고통의 문제를 누가, 무엇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독교인 유괴범을 영화 속에 소품으로 끌어들입니다. 결국 기독교는 인간의 고통, 절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누구도 자신의 절망,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절규하며 몸부림치는 연기를 통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절망과 고통의 문제의 근원을 밝혀주고 그 해결책을 제시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400년 종살이를 청산하고 출애굽 할 때의
감격은 참으로 벅찼습니다.
특별히 홍해바다를 건널 때의 감동은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홍해바다를 건넜고 가나안을 향해 행진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후 3일 동안이나 마실 물을 찾지 못했기 때입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메마른 광야,
아무리 가도 가도 오아시스 한군데도 보이지 않는 사막 땅이었습니다.
3일 길을 걸어 그들이 도착한 곳은 수르 광야였습니다.
22절을 봅시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물을 찾지 못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3일전의 홍해기적의 감격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먼저 원망이 솟아올랐습니다.
원성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소리를 칩니다.
"저기 물이 있다. 오아시스가 저기 보인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사람들이 허겁지겁 물가로 달려가 손도 씻지 않고
정신없이 물을 퍼 마십니다. 그러나 이 웬일입니까?
그 물은 독물처럼 써서 마실 수 없는 물이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소리를 칩니다.
"아! 마라, 마라! 물이 너무나 써. 물이 써서 못 먹겠어"
그래서 그곳 이름을 ‘마라’라고 하였습니다.
‘마라’라는 의미는‘쓴 맛‘ ‘쓰디 쓴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이스라엘백성들의 원망소리가 빗발쳤습니다.
마라를 만났을 때, 고통을 당했을 때, 백성들이 먼저 한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원망이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1. 우리의 삶에 마라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마라의 고통을 경험했듯이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쓰디 쓴 고통을 경험 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는 쓴 물이 있습니다. 이 쓴 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가정에도 쓴 물이 있습니다(창 16:4~6).
우리나라는 신혼부부서부터 시작해서 황혼이혼까지 무려 40% 이상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또 가족의 죽음을 통해서 인생에 슬픔을 당하게 됩니다(창 23:2).
학대를 받을 때도 있고(출 1:11~12),
배신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삿 16:18~19).
또 귀신들려서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삼상 16:14).
자녀들이 탈선하여 부모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삼하 13:30, 37). 여러 가지 생각지 못하는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쓴 물을 마시고 고통당할 때가 있습니다.
자살을 생각한 연예인이 전체의 40%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영화배우 박진희가 2009년 11월 발표한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전공 석사학위 논문 '연기자의 스트레스와 우울 및 자살 생각에 관한 연구'에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연기자 가운데 38.9%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40%는 자살을 생각한 경험이 있다. "사는 것이 지겹다",
"자살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 "구체적 자살 계획을 세워본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40%라는 설명입니다.
특히 자살 위험이 있는 심한 우울증 환자가 10%에 달하며 "자살을 실행에 옮기고 싶다"는 연기자는 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 자살을 위해 약품 등을 모은 연기자도 20%로 조사돼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박진희는 논문에서 연기자들의 우울증 및 자살 충동의 원인을 '과도한 사생활 노출과 악성 댓글. 불안정한 수입,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꼽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마라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1. 우리의 삶에 마라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2. 마라의 쓴 인생을 하나님이 치료해 주십니다.
마라와 같은 인생의 쓴물을 마셔야할 때에도 문제의 해결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똑 같은 사건을 놓고도 원망하고 불평하는 불신앙의 사람이 아니라 모세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고난과 질병 속에서도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모세는 인생의 마라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 처방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지시하여 한 나무를 꺾어 그것을 물에 던지도록 했고 모세가 즉시 순종하자 쓴 물이 단물로 치료가 되었습니다. 25절을 보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26절에서 하나님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하셨습니다.
치료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라파”란 말입니다.
또는 “라파”는 의사라는 뜻으로도 사용했습니다.
“여호와 라파”라는 말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치료하시는 의사라는 뜻입니다.
병원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당신의 병은 고칠 수 없는 병이요.
당신에게는 치료할 약이 없습니다. 라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망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라파”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예수님이 활동하실 때에도 병든 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면서 병든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아픔을 치료하였으며, 그들의 삶을 회복시켜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병자들을 치료한 이유는 ‘긍휼’ 때문입니다.
긍휼로 예수님은 우리의 병을 치료하는 치유자입니다.
야이로라고 하는 회당장에게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중병에 걸려 소생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흔쾌히 그를 따라 나섭니다.
그렇게 길을 하던 중에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하혈하는 증세는 부정한 병이기에 사람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 마음에 ‘저 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이 나을 것 같다’ 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려고 이리저리 밀치는 상황이라,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고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데 옷자락을 만지자 그녀의 지병이 그 순간 나아버렸습니다.
그 즉시 몸에서 피가 멈추고 얼굴색이 돌아오며 몸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얼마나 기쁘고 놀랐을까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그 사실을 알고 그 여인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주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 불쌍한 병든 여인의 절박한 처지를 알았고, 용기 내어 자신의 옷자락을 만진 것도 알았고, 또 예수님의 능력으로 그 여인이 치료된 것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은 단지 그 여인의 혈루증이라는 병만 고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병을 앓으며 가졌던 마음과 영혼까지 모두 치료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 육신의 병만 고치길 원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병과 마음의 병 그리고 죄로 인해 죽어가는 영혼의 병까지 모두 치료하시는 치유자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기록이 마태복음 4장 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역의 3대 핵심은 가르치시고(Teaching),
전파하시고(Preaching), 병든 자를 고치시는(Healing)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과 함께 수많은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말씀이 증거 되는 곳마다 치료의 능력이 나타나, 세상에서 고칠 수 없는 수많은 병자들이 찾아와 고침을 받았습니다. 군대귀신이 들려 공동묘지 사이에서 사악하고 무서운 성품으로 변해 버린 자를 고쳐주셨고,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을 고쳐주셨으며, 앞 못 보는 소경을 고쳐주셨으며, 38년 된 베데스다 못가의 앉은뱅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고침 받을 수 없는 자들, 절름발이, 간질병자, 중풍병자 귀머거리, 벙어리가 예수님을 만나 육신의 질병에서 고침을 받고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찬송 가운데 “나의 갈길 다 가도록”(434장)이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가사의 마지막 부분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과연 이 찬송의 작시자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난과 역경이 없는 만사형통의 인생이라고 믿어 이렇게 작사했을까요?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 것은 이 찬송의 작시자는 패니 크로스비라는
시각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눈먼 그녀가 걸어가는 길이 결코 만사형통의 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크로스비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고 노래합니다.
고통이나 시련이 없어서 만사형통이 아닙니다.
고통이나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의 길, 시련의 길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 마라의 길이 있다 해도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해주시기 때문에 만사형통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나중에 천국에 입성해서 고백하는 찬송은
나의 갈길 다하도록 예수 인도했으니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아픔을 대신 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치료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보혈을 흘려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 주시고,
우리의 병든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료해 주십니다.
“여호와 라파”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