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거나 집히다
박춘남
빨래 널다 떨어뜨린 집게, 보일러 배관 틈새로 숨어버렸다
투덜투덜 벌린 집게 머뭇머뭇 주워 보려다
내 검지와 중지가 우둔해졌음을 알았다
어설픈 외로움에 떠밀린 집게는
더 먼 구석으로 드러눕기 마련
당신의 비밀을 콕콕 잘도 집어내던
내 명성은 어디가고 꼬일 대로 꼬이고 말았다
고속도로 휴게소
유리 진열장 속 집혔다가 흘러내리는
곰 인형조차도 내 화를 돋군다
집히는 것이 관심이라는 것도 모르는 당신
겨우 줄에만 걸쳐진 채
빨래가 되어 풀린 고삐로 펄럭인다
눈길 끝에서 떠는 저 능청
햇살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없을 때
바퀴벌레 우글거리는
더 캄캄한 어둠 속으로
떠밀어 버릴까
<형상시 6집에서>
첫댓글 집히면 잘 말라요.
집힌 자국은 정말 싫던데요.
그것 때문에 다림질할 수도 없고
햇살을 외면하고 숨었네요.
그의 소임을 져버린건가요?
능청스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