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aris
- 감독
- 스티븐 소더버그
- 출연
- 조지 클루니, 나타샤 맥켈혼, 바이올라 데이비스, 제레미 데이비즈, 울리히 터커
- 정보
- 미스터리, SF | 미국 | 99 분 | 2003-04-18
무의식은 대단히 넓고 깊어 의식이라는 섬을 에워싼 바다와 같다. 의식되어 있다는 것은 어떤 심리내용이 자아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가능하다. 자아를 통해서 지각되고 판단되며 기억되지 않는 정신은 모두 무의식의 내용이다(이부영 『자기와 자기실현』31). 우리가 듣고 보고 느끼는 모든 사실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건과 내용들은 무의식으로 가라앉아 있어 언젠가 적절한 때가 되거나 자극을 받으면 의식으로 떠오른다.
실상 우리가 겪는 사실은 언제나 단편적이다. 기억 역시 단편적이다. 사건이란 어떤 관점 혹은 어떤 주제가 그 사실들을 일관되게 만들고 그리하여 그 사건의 처음과 끝이 만들어지며 처음과 끝이 생겼을 때,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주변 환경들이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그 사건의 의미가 떠오르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 사건의 참다운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은 당시 그 사건에 연관된 사실들이 조각조각 흩어져 있었고 그 조각들을 꿰어 맞출 관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진행될 당시에는 관점을 얻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사건에 몰입해 있기 때문이다. 사건이 주는 느낌과 사건에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이 참다운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도록 만든다. 기억이 단편적이 되는 이유는 겪은 일들이 당시 겪은 일들이 단편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전체적인 관점을 후에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 솔라리스는 그 단편적인 기억을 끌어 모아 하나의 관점을 생성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의식이 의식으로 떠올라 조각 기억들을 끌어 모으고 중요한 관점이 드디어 생성되어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행성 솔라리스는 그 무의식을 읽고 의식이 억압하거나 감추어놓은 사실들을 전면에 끌어내 대면하도록 만드는 행성이다. 살아 있는 바다, 살아 있는 행성에 간 사람들은 인간의 지성을 훨씬 뛰어넘는 존재와 맞부딪치지만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자신과의 싸움에 지고 만다. 언제나 싸움은 내부에 있다는 것이 솔라리스가 하는 이야기이고 그 싸움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이다.
크리스 켈빈은 심리학자, 그는 솔라리스에 파견된 동료 기바리언의 절박한 구원 요청을 받고 솔라리스로 날아간다. 솔라리스는 푸른색 바다로 이루어져 있고 우주 정거장, 프로메테우스는 행성위에 떠 있다. 거대한 정거장에는 스노우티와 고든이 있을 뿐 연구원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그가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소년, 있을 수 없는 일에 크리스는 당혹해 하고 소년은 이내 사라져버린다. 기바리언의 조수였던 스노우티는 문을 꼭 잠그고 자라는,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한다. 아무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 문을 꼭 잠그고 자라니. 고든 역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날 밤, 그는 아내 레아의 꿈을 꾼다.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가 꿈속에서 펼쳐진다. 누군가의 손길을 느낀 크리스는 잠에서 깨고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레아라는 사실을 알고 몹시 놀란다.
그 레아는 무언가 다르다. 자신의 일, 자신의 삶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프로메테우스에 있었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는 사실. 스노우티는 자신에게는 형이 찾아왔다고 말하지만 후에 그 방문객은 자기 자신이었음이 드러난다. 고든에게 찾아온 방문객은 누구였을까?
자신을 찾아온 레아가 진짜 레아가 아님을 익히 알고 있는 크리스는 그녀를 우주선에 타게 해 떠나보낸다. 그날 밤, 크리스는 다시 그녀의 꿈을 꾸고 또 다시 레아가 나타난다. 그리고 크리스는 깨닫는다. 그의 머릿속에서 레아를 떠나보내지 않는 한, 그녀는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솔라리스에 있는 물질이 그의 생각을 형상화한 것이고 그는 자신의 죄의식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
그의 공포는 자신의 내부에 있었다. 사랑했던 여인, 레아는 그와의 다툼 끝에 그에게 버림받고 자살했다. 아이를 지웠다는 말이 그에게서 극한 상황의 말을 끌어냈던 것이고 깊은 상처를 입은 레아는 그가 좋아했던 시, ‘연인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는 토마스의 시, 죽음이 지배한다는 시가 적힌 종이, 책장을 손에 쥔 채 자살했던 것이다. 그는 레아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느꼈고 그 죄의식은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레아는 자신이 크리스와의 일을 기억은 하지만 자신은 그 기억을 바라볼 뿐, 겪은 존재가 아니라는 말로 낯선 느낌을 대신한다. 나지만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는 말은 이 레아가 진정한 레아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하지만 솔라리스의 물질이 인간의 느낌을 경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레아는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존재고 그 기억을 형상화했으므로 그녀에게는 크리스가 꿈을 꾸는 만큼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고 레아 자신에게는 레아의 삶 전체가 없는 것이다.
다음
인간을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초월적인 존재가 인간을 만든다면 인간을 만들어낸 솔라리스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존재인 셈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인간이 오로지 물질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물질을 괴롭힐 이유는 없다. 솔라리스는 인간을 만들어냈지만 행성이 만들어낸 인간은 인간의 생각과 느낌을 갖고 있기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동을 한다. 자살을 하는 것이다.
차츰 더 많은 것을 기억해낸 레아는 괴로움으로 인해 액체 산소를 마시고 자살을 시도한다. 그녀의 삶이 가져온 결과, 어느 것에도 정착할 수 없었던 그녀의 삶은 허무함만을 남겼고 생명에 대한 경시, 낙태가 그녀에게 유일한 삶의 지표였던 남편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레아는 되살아나고 고든은 그들의 부활을 지켜보는 일이 끔찍하다는 말로 그들이 겪은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토로한다. 그들은 솔라리스의 일부, 솔라리스가 없어지지 않는 한, 그들이 만들어낸 인간 또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생명이 아름다운 것은 그 생명의 유한함에 있다. 시작과 끝이 있고 불완전하기에 우리는 다른 생명을 기억하고 그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으로 시달리는 것이다.
영원한 것, 완전한 것, 아름답기만 한 것에는 불완전한 인간이 겪는 고통과 사랑을 넘나들면서 겪게 되는 충일감이 없다. 인간이 신을 만든다는 생각에는 신 또한 인간이 겪는 감정을 겪으리라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의 신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전에 등장하는 신은 여러 감정을 표현하고 있으니까.
인간의 기억을 뒤져보고 인간의 감정을 겪으면서 인간다운 생각을 하게 된 레아는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 고든에게 자신을 반힉스 입자기로 쏘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찾아온 손님을 반힉스 입자기로 쏘아 사라지게 만들었던 경험이 있는 고든은 그녀의 부탁에 응한다. 힉스 입자는 솔라리스의 구성 입자, 반힉스 입자는 그 물질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다음
레아는 사라지지만 솔라리스는 반힉스 입자기 가동으로 인해 더욱 큰 중력을 갖게 되고 우주 정거장 프로메테우스를 끌어당긴다. 마지막 순간 스노우티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는 스노우티 본인이 아니라 스노우티를 찾아온 손님이었고 그 손님은 스노우티 자신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죽여 시체를 감춘 스노우티, 그 스노우티는 정거장에 남기를 택하고 우주선을 타려던 크리스는 마지막 순간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의 눈에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순간이 보인다. 우주로 떠나오기 전, 손가락을 베었던 그, 손가락 상처는 레아가 그랬던 것처럼 쉽게 낫고 그에게 레아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들이지만 그들이 아닌 그들, 그것은 제 삼의 세계속의 그들, 모든 것을 용서받고 행복할 수 있는 세계지만.
추락하는 프로메테우스에 남은 그의 앞에 제일 먼저 만났던 소년이 나타난다. 소년은 어른의 아버지, 그를 닮지 않으면 살아갈 방법이 없다는 뜻일까.
그에게 공포는 자신의 내부에 숨어 있는 죄의식이었고 우주 정거장에 있던 그들 모두에게도 동일했다. 무의식, 의식에 떠오르지 않는 무의식 속의 기억이 그들 모두를 파멸시킨다. 화해할 방법은 단 하나, 스스로를 없애는 것 뿐이다. 스노우티처럼. 옛날의 자신을 없애고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지 않는 한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억눌러 두었던 그림자와의 화해는 새로운 자신을 탄생시킨다. 그것은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통찰을 필요로 한다. <<솔라리스>>는 무의식이 의식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관해 깊은 통찰을 표명한 영화이다. 쉽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첫댓글 이 영화를 보셨군요 무서바 죽는 줄 알았어요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더 공포스런,,,,,조지 크루니의 그 암울한 시선들,,, 그리고 미래!
제겐 무의식을 뒤져내는 그 존재가 훨씬 더 관심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