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철기시대가 되면 그때부터 청동기와 석기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고학 유물들은 그런 고정관념이 그릇된 것이라고 대답한다. 시기상 분명히 철기시대에 만들어진 유물임에도 불구하고, 철이 아닌 다른 것으로 만든 유물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진시황릉에서는 돌을 얇게 다듬어서 만든 작은 조각들을 실로 이어만든 찰갑이 나왔고, 지금도 날이 날카로운 구리칼과 구리창, 구리 화살촉이 나와 철기시대라는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돌과 구리(청동)로 만든 무기가 쓰였음을 알 수 있고,
“한(漢)나라 말부터 철제갑옷이 쓰였다고 하나, 그전까지는 가죽갑옷이 널리 쓰였다. 춘추전국시대에 가장 좋은 갑옷재료는 놀랍게도 코뿔소 가죽. 원래 코뿔소는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야생동물로, 각종 청동기 유물에 사실적으로 묘사돼있다. 그런데 그 많던 코뿔소가 수많은 병사의 갑옷용으로 남획되는 바람에 결국 멸종되다시피했다(『장정일의 삼국지』에서).”
라는 연구결과로 미루어볼 때 전국 7웅(연나라, 제나라,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 진나라, 초나라)의 병사들도 무쇠 갑옷이 아닌 “가죽갑옷”이나 “돌로 만든 갑옷”을 입고 싸웠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는 우리 역사에도 나타나는 현상이어서 백제의 군사기지였을 가능성이 큰 몽촌토성에서도 짐승 뼈를 얇고 납작하게 깎아서 만든 자그마한 판대기들을 가죽끈으로 묶어서 만든 찰갑(刹甲)이 나왔고(고고학자들은 그 갑옷이 서기 3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상남도의 무쇠 판갑(板甲)은 서기 3세기에야 나오지 그 이전에는 나오지 않는다(서기 3세기 이전에는 “영남의 재래 갑옷”이 “피갑皮甲[:가죽 갑옷], 혹은 목갑木甲[:나무갑옷]”이었다).
따라서 철기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곧 철제 무기가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지고 철제 농기구도 널리 퍼진다는 통설은 잘못된 것이며, 철제 무기는 철광석이 녹는 온도를 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퍼지지 못하다가 무기로 쓸만한 철을 만드는 기술이 만들어진 다음에야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
- [장정일의 삼국지]
-[삼한사의 재조명]
첫댓글 가격문제 아닐지...
무기에 들어가는 철보다 갑옷에 훨씬 많이 들어가니까.
방어력도 옻칠만 해도 가죽은 휠씬 단단해지기도하고.
글쎄유 철제 보호구가 생각보다 많은 기술을 요하는지라, 서양도 고위 전사계급이 아니면 가죽갑옷이나 갬비슨(누비옷...)이 절대 대다수의 일반 병사들이 입는 보호구였습니다.
또 중장기병이 주력에서 밀려났다기 보단 순전히 충격력을 극대화한 노빠꾸 중기병 (카파트락토이와 같은 그런...)이 서서히 전술적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보는게 낫지 않나 싶네요. 16-17세기까지도 동아시아권 기병은 철갑을 둘렀거든요.
그래도 마갑을 씌운 중기병은 금나라도 운용하는 등 퍽 오랫동안 살아남았습니다.
아무래도 중화뽕 오지게 맞고 일찍하니 중앙집권/제민지배 시스템으로 미친 물량이 쏱아져 나오는 중화랜드 같은 동네를 보면 아무래도.....프로페셔널 킬러, 전국구 칼잡이님들이 개다리 스텝을 밟으며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던 동네보단 가성비 좋고 대량생산 보급/유지보수 용이한 물건이 나오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