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성경의 진리와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세상의 통념은 극과 극의 개념입니다.
맘몬 신앙은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물질과 하나님을 융합한 바리새인의 신앙입니다.
자본주의는 인본주의 신앙의 모티브가 되었고
물질만능의 배금주의는 맘몬 신앙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신본주의 신앙으로 번영과 성공을 구하는 신앙이야말로
인본주의 무속 신앙의 전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과
탐욕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세상의 성공과 번영과 물질의 부요는
성경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는 다른 삶의 패러다임입니다.
참된 믿음의 길은 세속의 유혹을 멀리하지만
세상의 성공과 번영은 기복 신앙을 선택하였습니다.
생명과 멸망의 다른 두 길을 하나로 만들어 성공의 길을 만든 것이
세속적인 기복 신앙입니다.
진리의 혼잡은 연합의 가치를 만들어 내었고....
연합의 정신은 다원주의로 인본적 가치 체계를 정립하였습니다.
문화와 종교의 다원주의는
비진리를 진리로 만들었고, 어둠, 그 자체를 빛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종교 다원주의는
하나님과 사단의 위치를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은 루시퍼의 부리는 악신으로 인간 세계의 심판을 관장하는 나쁜 신이요,
소위 사단이라는 루시퍼는 빛의 신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진리와 광명을 밝혀 인간을 신적 경지로 신화되게 하는
세계의 종교를 소통과 통합의 가치 실현으로 하나의 종교를 만들어 가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기복 신앙은 종교 다원주의 사상으로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버렸고
오히려 하나님의 주시는 성공과 번영의 복을 신앙으로 추구하는
세속주의를 혼합의 종교적 가치로 만들었습니다.
믿음의 실상은 곧 성공과 번영이라는 목적 지향적인 기복 신앙은
오늘날 수 많은 목회 사역자를 참담한 유혹의 늪으로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공과 번영의 길은
불광불급의 광신적 기복 신앙을 낳았습니다.
세속적인 기복과 무속 신앙은
서로 다른 종교의 정체성을 같은 색깔의 다원주의 이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가 연합할 수 있는 것은
공동의 기복과 무속이라는 인본주의 신앙 때문입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는 인본주의 신앙이라는 정체성을
종교의 속성으로 깆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배타적 종교의 정체성을 가진 천주교는 교회 밖의 신앙을 구원으로 받아들였고
기독교는 기복과 무속이라는 실존적 인본주의 신앙으로 타락하였습니다.
기복과 무속 신앙은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성공과 번영으로 누리기 위해 기도 신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신앙은 다원주의적인 신앙의 늪에 빠지게 하였고
한국의 기독교는 성경적인 기독교로 바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유사 기독교로
기형적인 돌연변이 성장을 하였습니다.
한 걸 더 나아가 신사도 운동의 무속 신앙으로 오염되어
성령의 충만을 무속으로 기원하는 광란의 기도에 몰입하게 하였습니다.
물질의 복과 무속화된 성령 충만의 신비를 체험하기 위한 기복과 무속 신앙의 수단은
헌금과 충성, 그리고 기도였습니다.
헌금과 충성과 기도를 무속 신앙으로 추구하면......
풍요와 번영, 그리고 영성을 얻어 마침내 물통하고 인통하고 영통하는 최고의 영적 경지를 이룹니다.
구원도 얻고 부와 영화를 누리는 기복과 무속 신앙의 매력은
대중을 교회로 몰려들게 하였고 초대형 맘모스 교회를 지상의 낙원으로 만들었습니다.
세속주의 종교의 유혹..........
그 엄청난 유혹을 물리치고 개티의 행보를 걷는 기독교 안티 세력은
진리의 목마른 갈증이 낳은 부작용일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긍정적으로 추구하는 소통과 통합의 소셜 네트워크는
극대화된 포스트 모던의 가치요, 다원주의 사상입니다.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는 합법적인 소유욕을 탐욕으로 갖게 하였고
성공과 번영을 목적 지향의 가치로 추구하는 성공주의와 배금주의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의 부작용은
경제 민주와 보편적 복지라는 사회주의 이상을 추구하는 정체불명의 정치 행태를 낳았습니다.
경제 민주와 보편적 복지를 정치 포퓰리즘이 아닌 이념으로 추구하는 시대가 된다면.......
대한 민국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가 될 것입니다.
정치는 정치대로 혼란에 빠졌고......
자본주의 방식으로 운영되는 한국의 교회는 성경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종교 다원주의 가치로 변질되었습니다.
참으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는
참된 복음의 말씀에 깨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탐욕적으로 물질의 가치를 추구하여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사역의 지침으로 엄중히 가르쳤습니다.
사역으로 물질의 가치를 추구하는 신앙을 철저하게 경계하며
참된 믿음의 삶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교훈하였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부작용과 종교의 타락이 있기 전에도
사도 바울은 돈을 탐욕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라는 것을 계시의 정신으로 깨달았습니다.
자본을 탐닉하여 짓게 되는 일만 악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세상의 통념은
죄의 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 용암의 분출,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자본을 탐닉하는 악의 축을 패러다임으로 가졌고
본질적으로 배타적인 신본주의 기독교의 정체성은 인본의 가치로 타락하여
성탄절마저 대중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로 충만한 독생자의 거룩한 탄생은
대중이 즐기는 가장 타락한 날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바른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멸망과 심판의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자본의 탐닉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고
많은 근심이 자기를 찔러 파멸에 이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바른 교훈을 따르며 지키라고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고........
오직 하나님의 사람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자본의 탐닉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하였습니다.
참된 기독교의 믿음의 길은 세상의 성공과 번영을 기복과 무속 신앙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부한 자들 처럼 마음을 높이지 않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으며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 백성의 온전한 삶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되신 하나님께서 보장하는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야고보서는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자본의 탐닉을 강하게 경계였습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요한 계시록은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하늘과 성도들아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탐욕과 탐심으로 가득한 바리새인들에게 화있을 것이라 하였고
돈을 사랑함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웃는 바리새인들에게
날마다 연회를 베풀며 호화호식하는 부자를 지옥의 모델로 거지 나사로를 천국의 모델로 교훈하였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마태와 마가, 누가의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세속적인 부귀와 영화와 풍요를 추구하는 신앙은
구약의 바알 신앙이며 기복과 무속 신앙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자본의 탐닉을 신앙으로 추구하라는 교훈은 전무합니다.
세속적인 성공과 번영, 부귀와 영화는
헛된 재물의 탐심이 낳은 사망의 덫이요, 그물입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인본적 삶의 가치와 종교적 삶으로 추구하는 보람과 행복의 끝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악인의 형통을 질투한 시편 기자는
악인은 교만의 목걸이를 하고 , 강포으 옷을 입고, 살찐 눈은 마음의 소원보다 소득이 많으며
평안하고 형통하며 재물이 불어나는 것을 보고 실족하였으나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 갑자기 황폐하여 지고 파멸하는 악인의 종말을 보고.....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모두 다 멸망할 것이며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고 찬양하며 노래하였습니다.
야게의 아들 아굴은 잠언으로
버킷 리스트의 기도를 하늘의 하나님께 하였습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담아내었던 사도 바울에게서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자본의 탐닉을 하나님의 복으로 추구하는 기복과 무속 신앙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바울의 복음 신앙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날에 온전히 주 예수의 복음을 선포하며 증언하였습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때로는 영광을 받고 칭찬을 받으나 때로는 욕되고 비난과 비방을 받아도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직무에 충실하였습니다.
바울은 함께 동역하는 사역자와 더불어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신본주의 신앙의 정수를 가졌습니다.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으로 깨닫고
백성의 하나님 되시고 하나님 자기 백성이 되는 옛 언약을
자녀의 아버지가 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새 안약으로 영원히 성취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실하게 증언하고 선포하였습니다.
양의 탈을 쓴 이리처럼.....
말씀 중심 교회중심 하나님 중심이라는 탈을 쓰고 인본주의 신앙을 추구하는 영성은
종말론적인 종교 다원주의와 신앙의 혼합주의를 양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