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 張敬夫曰 譬之五穀 知者知其可食者也 好者食而嗜之者也 樂者嗜之而飽者也 知而不能好 則是知之未至也 好之而未及於樂 則是好之未至也 此古之學者 所以自强而不息者與 장경부가 말하길, “그것을 오곡에 비유하자면, 아는 사람은 그것이 먹을 만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고,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먹으면서 즐겨 먹는 사람이다. 즐기는 사람은 그것을 즐겨 먹어서 배가 부른 사람이다. 알고서도 좋아할 줄 모른다면 이는 아는 것이 지극하지 못한 것이고, 그것을 좋아하면서도 즐기는 것에 이르지 못하면, 이것은 좋아하는 것이 지극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옛날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힘쓰면서도 쉬지 않고 한 까닭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程子曰, 學至於樂, 則成矣. 篤信好學, 未如自得之爲樂. 정자가 말하길 “배움이 즐기는 경지에 이른다면 완성된 것이다. 독실하게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직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知之者 我知之也 好之者 雖篤而未能有之 至於樂之 則爲己之所有 안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안다는 것이고, 좋아한다는 것은 비록 독실하기는 하지만 아직 그것을 갖고 있지는 못한 것이며, 즐기는 경지에 이르면, 자신이 갖고 있는 바가 되는 것이다.
朱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人之生便有此理 然被物欲昏蔽 故知此理者已少 好之者 是知之已至分明見得此理可愛可求 故心誠好之 樂之者 是好之已至而此理已得之於己 凡天地萬物之理 皆具足於吾身 則樂莫大焉 주자가 말하길, “知之者는 好之者만 못하다고 하는데, 사람이 생겨나면서부터 곧바로 이러한 이치가 있었다. 그러나 물욕에 의해 캄캄하게 가려지기 때문에, 이 이치를 하는 자가 이미 적은 적이다. 好之者는 아는 것이 이미 지극하여 이 이치가 사랑할만한 것이자 추구할만한 것임을 분명하게 알아보기 때문에, 마음이 진정으로 그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落之者는 좋아하는 것이 이미 지극하여 이 이치를 이미 자기 안에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무릇 천지만물의 이치가 모두 내 몸에 충족하게 갖추어져 있다면, 즐거움이 이보다 큰 것은 없다.”고 하였다.
問不如落之者 此樂字與顔子之樂 意思差異否 曰 較其大槩亦不爭多 但此樂之者之字 是指物而言 是有得乎此道 從而樂之也 猶樂斯二者之樂 樂循理之樂 如顔子之樂 又較深 是安其所得後與萬物爲一 泰然無所窒礙 非有物可玩而樂之也 누군가 묻기를, “樂之者만 못하다고 하였는데, 여기의 樂자는 안자의 樂과 더불어 그 뜻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 대강을 비교하자면, 또한 많은 것을 다투지는 않는다. 다만 여기 樂之者의 樂자는 사물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이 道를 터득함이 있어서 그에 따라 그것을 즐기는 것으로서, ‘樂斯二者’의 樂과 같은 것이다. 循理를 즐기는 즐거움은 안자의 樂과 같은 것이니, 또한 비교적 깊은 것으로서, 그가 터득한 것을 편안히 여긴 후 만물과 하나가 되어 막히는 바가 전혀 없이 태연한 것이지, 갖고 놀만한 사물이 있어서 그것을 즐긴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此章當求所知所好所樂爲何物 又當玩知之好之樂之三節意味 是如何 又須求所以知之好之樂之之道 方於己分上 有得力處 이 장에서는 알아야 할 바, 좋아해야 할 바, 즐겨야 할 바가 어떤 것인지 마땅히 구해야 하고, 또한 그것을 알고, 좋아하고, 즐긴다는 세 가지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마땅히 완미해야 하며, 또한 그것을 알고, 좋아하고, 즐기는 방도를 반드시 구해야만, 비로소 자기의 분수 위에서 힘을 받는 부분이 있게 될 것이다.
慶源輔氏曰 尹氏之說卽張氏之說 食而知其味 故嗜之 嗜則所謂好也 然其未至於樂者 則雖嗜之而未能得飽滿饜足 蓋猶有嗜好之意焉 至於樂 則飽滿饜足 自得於心 有不可以語人者矣 張氏以人之食五穀爲喩 其曉人又更明切 故具載之 然則知而不能好 未能知其味也 好之而未能樂 未能與之爲一也 纔到樂處 則無息無二 學者苟未至於樂 則當益鞭 其後自强不息以求之 必期至於自得而樂之之地 則不能自已耳 경원보씨가 말하길, “윤씨의 학설은 곧 장씨의 학설인데, 먹어서 그 맛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기쁘게 먹는다는 것이다. 기쁘게 먹는다는 것은 곧 이른바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즐기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라면, 비록 그것을 기쁘게 먹는다고 할지라도, 먹어서 충분히 배부른 정도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여기에는 대체로 좋아하고 기쁘게 먹는다는 의미가 있다. 즐기는 경지에 이른다면, 먹어서 배불러 흡족하게 되고, 마음에 저절로 만족하게 되어서, 남에게 말하지 못할 것이 있게 될 것이다. 장씨는 사람이 오곡을 먹는 것으로써 비유를 하였는데, 사람들에게 깨우쳐줌이 더욱 밝고 절실하였다. 이 때문에 이것을 갖추어 논어에 실은 것이다. 그렇다면, 알면서도 좋아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그 맛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것을 좋아하면서도 아직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직 그것과 더불어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즐기는 곳에 이른다면, 곧 쉼도 없고 둘이 됨도 없을 것이다. 배우는 사람이 만약 즐기는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면, 마땅히 더욱 채찍질해야만 한다. 그 후에 스스로 힘쓰기를 쉼 없이 하여 그것을 구한다면, 반드시 자득하여 그것을 즐기는 경지에 이를 것을 기약할 터이니, 이렇게 되면, 스스로 그만둘 수가 없게 될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論地位 則知不如好好不如樂 論工夫 則樂原於好好原於知 大學物格知至 是知之者 誠意如好好色 是好之者 意誠而心正身修 則心廣體胖而樂矣 쌍봉요씨가 말하길, “경지를 논하자면, 아는 것이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이 즐기는 것만 못하다. 공부를 논하자면, 즐기는 것은 좋아하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고, 좋아하는 것은 아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학의 사물의 이치가 궁구되고, 앎이 지극해짐이 知之者이고, 뜻을 정성스럽게 함를 미색 좋아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 好之者이며, 뜻이 정성스럽게 되고 마음이 올바르게 되며 몸이 닦인 것은 곧 마음이 넓고 몸은 편안하여 즐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知不如好 知之深自能好 好不如樂 好之深自能樂 好在未有所得之先 樂在旣有所得之後 운봉호씨가 말하길, “아는 것이 좋아하는 것만 못하지만, 아는 것이 깊어지면 저절로 좋아할 수 있게 되고, 좋아하는 것이 즐기는 것만 못하지만, 좋아함이 깊어지면 저절로 즐길 수 있게 된다. 좋아하는 것은 아직 터득함이 있기 전에 있고, 즐기는 것은 이미 터득함이 있은 후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學者之於道 當自知之而始 又必好且樂之而後爲至 非眞知之不能好 然旣知之必當求進於好之 非篤好之 不能得之而樂 然旣好之必當求進於樂之 果能樂之 則所知所好者 方實得於己 其樂有不可以語人者矣 所謂自强不息者 蓋如此 신안진씨가 말하길, “배우는 사람은 道에 대하여 마땅히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한 반드시 좋아하고 즐긴 이후에 지극하게 될 것이니, 진짜로 그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좋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미 알았다면 반드시 그것을 좋아하는 경지에 나아가기를 구해야 마땅한 것이다. 독실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것을 터득하여 즐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좋아하였다면, 반드시 그것을 즐기는 경지에 나아가기를 구해야 마땅한 것이다. 과연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면, 아는 바와 좋아하는 바가 비로소 자기에게 실제로 터득된 것이니, 그 즐거움에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바가 있는 것이다. 이른바 스스로 애써 노력하되 그침이 없음이란 대체로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