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꽤 많은 만년필이 있습니다. 총 27자루의 만년필을 가지고 글을 씁니다. 만년필의 필기감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 펜촉(닙)이 굳기 때문에, 계속해서 글을 쓰기 위해 많은 만년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잘 나오지 않는 만년필이 한 자루씩 늘어갔습니다. 매일 사용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 잉크가 조금씩 굳어서 나오지 않게 되는 만년필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 나오지 않는 만년필을 다시 잘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척하면 됩니다. ‘만년필 세척 도구’를 이용해서 세척하면 처음처럼 다시 잘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세척이 잘되지 않습니다. 그때에는 미지근한 물에 하루 정도 담가두면, 그 안에 있던 잉크들이 흘러나오면서 막혔던 부분이 뚫리게 됩니다.
2023년을 보내면서, 가지고 있는 만년필 모두를 세척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잘 나오는 만년필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죄도 이렇지 않을까 싶더군요. 우리 안에도 죄의 찌꺼기가 계속 쌓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미사를 통해 소죄는 사해지지만, 죄들이 쌓이고 쌓여서 미사만으로 부족하게 되지요. 그래서 고해성사를 봅니다. 하지만 고해성사를 통해 깨끗해지자마자 또 곧바로 죄를 짓는 우리의 나약함을 보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더 큰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만년필의 잉크가 굳으면 하루 종일 물에 담가 두는 것처럼, 우리 역시 오랫동안 주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런 노력 없이 주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아닌 죄에 찌들어 있다면, 불안함으로 인해 세상 안에서 기쁨의 삶도 살 수 없게 됩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 자신을 공적으로 드러내 보이신 날입니다. 이 주님 공현 대축일에 우리는 주님의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어려움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편한 것도 아니었고, 예수님에 대한 어떤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동방의 별만을 보고서 먼 여행을 떠났던 동방 박사들의 노력을 우리는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그에 반해 헤로데는 동방 박사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닌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죄에 찌들어 있는 삶에 더 큰 죄를 더하는 모습입니다. 실제로 그는 무죄한 아이들을 죽이는 엄청난 죄를 더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합니까? 죄가 아닌 선을 따르는 삶, 언제나 주님 안에 머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나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정성과 마음을 다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레프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