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의 봄풍경이 문득 그리워
텅 빈 머리통을 건들대면서 ‘병아리떼 쫑쫑쫑 봄나들이 가는’
고향의 봄이 보고 싶다.
노란 유니폼을 일제히 차려 입고서
어미의 궁둥이를 쪼르르 쪼르르 쫓아다니는 병아리들의 행진은
상상만 해도 사랑스럽다.
엄마는 봄이 될 무렵 사과궤짝 안에다 헌옷을 깔고서
계란 몇 알을 넣어두셨다.
암탉은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그 달걀을 품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궤짝 안에서는 노란 생명체들이 하나둘씩 삐쭉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목화솜처럼 몽글거리는 녀석들이 너무 예뻐서
틈만 나면 사과궤짝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미가 모이를 구하러 나가면
아리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한껏 목을 빼고 어미를 불러댔다.
그들의 아우성을 굳이 우리말로 번역해 본다면
“엄니" 배고파서 못 살것슈” 혹은 “엄니 막내가 응가했슈”
그것도 아니면 “나도 클 만큼 컷슈. 이제 내보내 줘유” 쯤일 것이다.
복길할머니 : “거기 시방 뭐 허냐? 어이구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자남?”
아래층 복길이 할머니다.
복길할머니는 봄이 되자 부쩍 자주 올라오신다.
복할 : “대낮인데 퍼질러 자는 개비네... 그럼 나 그냥 가우?”
복길할머니는 워낙에 성격이 급하셔서
항상 저렇게 원맨쇼를 하다가 그냥 가시려고 한다.
------- 효과음 : “쾅” 부딪히는 소리 -------------
복할 : “아얏! 이런 염병 헐... 문을 그렇게 갑자기 열면 어떡햐?
아이구~ 아파 죽겄네. 여기 피 안나나 한번 봐봐봐.
응? 안나? 안죽겠어?”
들에 나가서 캔 냉이랑 씀바귀를 자랑하러 오신 모양이다.
할머니는 바닥에 떨어진 검정색 비닐봉지를 주워 들고 벌떡 일어나다가
다시 현관문 손잡이를 강력하게 들이받더니 머리를 감싸 안고 털썩 주저앉았다.
춘자 : “할머니, 제가 봄나물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복할 : “우~라질 또 할머니라 그러네. 그렇게 가르쳐 줘도 몰라. 하여간...”
춘자 : “미안해요 언니. 제가 벌써 치매가 왔나봐요”
복할 : “뭐 치매? 디랄하구 자빠졌네. 할머니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어”
춘자 : “언니라면서요. 언닌데 뭐 어때요”
복할 : “그렇지. 내가 언니지. 깜빡했네. 거기두 나이 먹어봐.
자꾸만 깜빡깜빡하구 그러지. 그나저나 내가 여기 왜 왔을까?”
춘자 : “언니. 내일은 나물 캐러 같이 가요. 맨날 혼자 재미 보시지 말고”
복할 : “그럴까? 하여간 이거 무쳐 먹어봐.
된장을 조금 넣으면 아주 죽여 준다니까.
날 좋은데 우리 오늘 물 좋은 캬바레나 갈래? 그 뭐냐...
거기가 어디지? 응 그래.
마트 옆에 ‘살비벼캬바레’가 생겼는디 아주 그냥 영계들이 버글버글하대....”
춘자 : “아이 참 언니는 농담두 잘하셔. 근데 몇 살이나 된 영계예요?”
복할 : “몇 살? 응 이제 겨우 60쯤 되는 할배들. 디따 어리구 왕귀엽잖아?”
봄을 왜 여성의 계절이라고 하는지 알 것도 같다?
나도 자꾸 밖으로만 나가고 싶다.
나비처럼 예쁘게 차려 입고서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싶다.
이천 산수유 마을의 노란 봄동산도 좋고,
소녀의 젖가슴처럼 수줍은 뒷산의 진달래꽃 봉우리를 둘러 봐도 좋고,
내친김에 내 고향 파릇한 강언덕까지 걸어봤으면 좋겠다.
꽁트 간절한 춘자씨 중에서
주일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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