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대만 총통 선거가 그 막을 내렸습니다. 정말 요란스런 선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만 내부보다 미국과 중국의 설전고 대응이 더 세계인의 관심을 모았으니까 말이죠. 2024년 1월 13일에 치뤄진 대만 총통선거에서 친미 노선의 강경 대만 독립파인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라이칭더 당선자는 당선 기자회견에서 대만이 전세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서 계속 민주주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면서 대만이 국제 민주주의 동맹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대만 총통선거 결과에 대해 미국은 당연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것이지만 중국은 분노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국제 전문가들은 대만 총통 선거 결과가 양안 즉 중국과 대만 관계와 미중 관계에 엄청난 긴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자신들을 추종하는 대만 국민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운동 기간동안 갖가지 협박과 위협을 가한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민진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대만 침공이 앞당겨질 것이라면서 전쟁 공포심을 연일 쏟아냈습니다.
한국사람인 제가 대만 총통 선거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단순하게 대만의 총통 즉 정치적 최고 리더를 뽑는 그런 단순한 행사가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자칫 중국이 하나의 중국을 완성시키겠다고 무력을 동원할 경우 한국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이웃나라의 상황이 고스란히 한국으로 전해질 것이라는 두려움도 상당하고요. 이웃나라의 전쟁을 자국 발전 원동력으로 삼았던 일본도 있는데 한국은 도움은 커녕 북한의 침공 가능성과 경제적 손실로 대만 버금가는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그런데 좀 시간을 거슬려 올라가면 지금의 이런 대 막장 드라마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미국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중국은 청나라가 멸망한 뒤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습니다. 중일전쟁때 일본에 짓밟히고 난 뒤 더욱 그러했습니다. 소련의 공산주의가 중국으로 전파되고 모택동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이 중국을 장악하게 됩니다. 당시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과 모택동이 리더인 공산당의 전쟁에서 장개석이 패하고 대만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모택동은 대만까지 처들어가 장개석일파를 처단하고 싶었겠지만 그것만은 참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대만이 성립하게 됩니다.
그후 대만은 상당한 발전을 하게 됩니다. 서구 자본이 들어가고 기술집약적인 산업이 육성되면서 대만은 동북아시아 가운데 일본 다음으로 경제적 성장세를 보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죽의 장막을 친 채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했습니다. 그런세월이 2차세계대전이 끝난뒤 26년이 흐릅니다. 1971년 미국은 잠 자고 있던 중국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합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닉슨의 특별 보좌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합니다. 1971년 7월8일 베이징에 도착한 키신저는 중국의 2인자인 주은래와 비밀 회담을 엽니다. 미중 정상회담을 위한 조율을 한 것이지요.
그 이후 미중의 짝짝궁은 급한 속도를 냅니다. 키신저가 중국을 방문한지 석달만인 1971년 10월 중국의 유엔가입이 승인됩니다. 유엔 총회는 중화인민공화국 즉 중국 공산당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적인 정부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로인해 그때까지 유엔에서 중국을 대표하던 대만은 회원국 지위를 상실했습니다. 대만은 상임이사국 자리뿐 아니라 유엔에서 그냥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주도하에 벌어진 세계적 막장 드라마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의 막장 드라마에 비해 그 규모나 비중이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상상을 추월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로맨스는 다음해인 1972년부터 본격화됩니다. 1972년 2월 21일 미국 대통령 닉슨과 중국 공산당 주석 모택동이 만나게 됩니다. 이른바 핑퐁외교라면서 미국과 중국의 탁구선수단이 서로 왕래하는 단계까지 이릅니다. 이런 미중의 화해무드로 인해 1979년에 미국이 대만과 단교를 하고 중국과 전격적으로 수교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큰형이 단교를 하는데 한국이 안할 수 없지요. 한국도 1992년 중국과 수교를 진행하면서 대만과 단교를 하게 됩니다. 그때까지 사실 한국과 대만은 상당히 관계가 좋았습니다. 대만사람들도 한국을 좋아하는 편이었지요.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중국과 수교를 하기 위해서 중국은 대만과의 단교를 전제조건으로 내 걸었기 때문입니다. 큰 형인 미국이 일찌기 단교를 했는데 안하기는 무리였겠지요. 대만인들이 한국을 좋게 볼 리 없습니다. 단교이후에 대만인들은 한국인들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로 등록시켰다지요. 배신자라고 칭하면서 말이죠.
중국은 미국의 지원하에 급속한 성장을 이룹니다. 미국은 중국을 이용해 경제적으로 자국에 더욱 이익이 되도록 했고 중국이 성장하면 미국의 충실한 조력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중국은 2001년 12월 세계무역기구 WTO의 정식 회원국이 됩니다. 중국은 경제 성장에 날개를 단 셈이 되었습니다. 중국 기업들의 대외신임도가 높아지고 해외 자본 투자 기회가 급증하면서 중국 경제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미국의 연출에 미국과 중국의 공동 주연배우의 활약이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이 앞장서서 고양이를 호랑이로 키워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압도적으로 성장하는 중국을 바라보는 대만인들의 속은 타들어갑니다. 국공내전때 장개석과 함께 대만으로 밀려내려온 세력들은 친중을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 살자고 말입니다. 대만에서 오랜기간 살았던 다시말해 예전 명나라시절 건너와 살아왔던 원주민들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냅니다. 그래서 생긴 당도 대만 독립을 우선시하는 민진당과 중국을 그리워하는 국민당으로 나뉘게 됩니다.
미국은 대만 알기를 정말 우습게 알았습니다. 정말 한입거리도 안되는 존재로 판단했지요. 하지만 대만의 저력은 만만치 않았습니다.대만은 반도체에서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냅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미국의 눈이 갑자기 둥그레집니다. 그러던 중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등장하면서 중국과 대립각이 살벌하게 이뤄집니다. 중국의 무지막지한 성장에 놀란 미국이 어떻게든 중국을 길들여야겠다고 판단한 뒤 중국에 대한 집요한 간섭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미국이 키워준 호랑이에게 이제 물릴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시진핑이 집권하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제 미국의 말을 순순히 듣지 않습니다. 사사건건 대듭니다. 얼마전까지 저자세를 보였던 입장과는 전혀 다른 양상입니다. 트럼프는 드디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합니다. 앞서 언급한 중국 키우기 전략에서 중국 죽이기 전략으로 급선회한 것입니다. 막장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황 아닙니까. 조강지처를 버리고 재혼한 남녀가 부부싸움끝에 끝장 이혼소송전으로 돌입하는 모양새 아니던가요.
그런 가운데 시진핑은 대만을 삼킬 결심을 합니다. 시진핑은 중국 역사에서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진정한 중국통일을 이룬 위인으로 남고 싶은 것입니다. 한데 미국의 행보가 놀랍게 바뀝니다. 한때 유엔에서 내쫓고 단교까지 한 대만을 감싸기 시작한 것입니다. 버린 조강지처를 다시 찾아 눈물겨운 해후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대만의 이룩한 그 대단한 반도체때문 아니겠습니까. 특히 바이든 정부들어 반도체의 중요성 그리고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왕따 시키는 작전에 대만이 핵심 조력자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대만에 공을 쏟습니다. 중국에게 절대 빼앗길 수 없다 그런 속셈인 것이죠. 버린 조강지처를 보호하기 위해 엄청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각오입니다. 이 정도면 막장 드라마도 그런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습니다.
하여튼 대만 총통 선거를 막을 내렸지만 지금부터입니다. 아마 중국은 지금 수뇌부들이 머리를 맞대로 대책회의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미국도 미국 수뇌부들이 작전회의를 시작했겠죠. 중국은 대만을 공격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을 것입니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대만 침공을 할 것인가 아니면 대통령이 트럼프로 바뀔 경우 변화된 상황을 보고 공격할 것인가 등등 경우의 수를 놓고 치열한 수싸움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대만 공습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은 그들 나름대로의 이득과 명분이 있겠지만 한국은 과연 무엇인가요. 중국 대만 전쟁으로 이득은 커녕 엄청난 피해는 물론이고 그와중에 북한군의 남침 예상까지 구체적으로 등장하니 정말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닙니까. 북한은 믿져야 본전이라는 심보로 남침을 할 가능성도 있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그냥 파괴뿐입니다. 손자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훌륭한 전략이라고 했지만 과연 우리에게 그런 전략과 외교전술가가 존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대만에서 끝난 총통 선거의 후유증이 이제 정말 한국으로 밀려오는 것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그런 전망과 예상이 빗나가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2024년 1월 14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