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조원수박차]라는 단어(혹은 이름)을 아십니까? 다른 팀 야구에도 관심이 많고 인터넷 게시판을 많이 다니시는 분이라면 들어보신 단어겠지요. 그냥 한화야구만 띄엄띄엄 보시는 분들이라면 잘 모르실 수도 있고요.
조원수박차는 삼성의 투수 5명을 묶어 부르던 이름입니다. [조현근+최원제+(투수)김상수+박성훈+차우찬]을 합쳐서 그렇게 불렀습니다. 삼성라이온즈가 [2차 암흑기]라고 부르던 2008~2009년 시즌에 팀에서 전략적으로(?) 키우던 투수들이죠. 당시 삼성은 13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큰 충격(?)을 받은 상태여서 팬들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팬들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조원수박차를 [불쇼계의 아이돌] 혹은 [방화범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2009년 조원수박차는 이런 기록을 찍습니다
조현근 : 34경기 5.81 (시범경기 성적 1.69) 2차 2순위
최원제 : 40경기 5.21 (2차 1순위 입단)
김상수 : 43경기 6.00 (시범경기 성적 0.90) 2차 2순위
박성훈 : 20경기 5.17 (시범경기 성적 0.00) 2차 4순위
차우찬 : 42경기 6.09 (당신이 아는 그 차우찬)
09라이온즈는 권혁이 80.2이닝을 던지며 2.90을 찍었고 당시 '국노'라는 별명으로 주가를 높였던 정현욱이 79이닝을 던지며 3.42로 불펜을 지켰습니다. 2009년은 권혁과 정현욱이 커리어 사상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33년 프로야구 역사상 딱 4번만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던, 역대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 87.9%의 삼성라이온즈가 말입니다. 불펜의 핵심 선수들이 팔이 빠져라 열심히 던지며 막아냈는데 팀은 실력발휘를 못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시즌 삼성에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승환-안지만-권오준의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거든요. 가을야구를 못 한 책임을 묻자면 그들에게 화살을 돌려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09라이온즈에서 중요한 키워드 하나를 읽습니다. 그것은 바로 [젊은이들이 정말 난세의 영웅이 되는가, 만일 그런 선수가 있다면 그 확률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하는 부분입니다.
조현근과 김상수는 2차 2순위 지명자로 삼성이 전략적으로 키우던 유망주였습니다. 09 시즌을 앞두고 시범경기에서 '언터처블'한 구위를 보이기도 했고요. 페넌트레이스에서 그들은 불펜의 부진을 메우기 위해 많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최원제는 2차 1순위 유망주였는데 투수로서 눈에 띄는 성적을 내본 경험이 없습니다. 고민 끝에 타자로 전향했지만 빛을 못 봤고 지금은 그의 방망이에 기대를 거는 삼성팬들이 거의 없습니다. 문선엽이나 구자욱한테도 크게 밀렸죠. 박성훈은 삼성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결국 팀을 옮겼습니다. 넥센에서 한 시즌 전성기를 맞았으나 여전히 통산 ERA는 5점대에 육박하는 선수입니다. 비교적 괜찮은, 1군에서 가끔 제 몫을 할 수 있는 투수지만 팀의 핵심 선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암흑기(?) 삼성 마운드의 희망, 주력 선수들의 공백을 메워줄 것이라던 영건, 2차 1순위 혹은 2순위로 뽑아 전략적으로 육성하던 유망주들이 차우찬 말고는 모두 자취를 감췄습니다. 대한민국에서 2군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고 3군까지 만든 팀, 선수들의 육성과 부상 관리를 위해 연고지 내 병원과 심지어 지역 내 대학교 물리치료학과 학생들에게까지 돈을 쓰는 삼성라이온즈의 유망주들이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야구계의 [현실]이며 팬들이 마주해야 할 [불편한 진실]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유원상을 [화상]이라 부르며 애증을 표현하고 김혁민을 [진상]이라고 부르면서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할 때, 선수 잘 키운다는 삼성도 [불쇼계의 아이돌 조원수박차]라는 표현을 써가며 자조적으로 한탄했습니다.
원래 젊은 선수들은 잘 안 큽니다. 유망주 2~3명 중에 1명씩 성공하는 게 아니라 20~30명 중에서 겨우겨우 1~2명이 크는겁니다. 조원수박차에서 차우찬 혼자 살아남은 것 처럼 말입니다. 인재풀 자체가 남들보다 더 넓어야 되고, 그 인재를 남들보다 더 오래, 더 많이, 더 좋은 시설에서 훈련시켜야 남들보다 더 성장하는 겁니다. 선수를 그렇게 잘 키워서 공백이 생겨도 어떻게든 메운다던 두산도 김강률이나 성영훈 혹은 장민익 같은 선수들은 기대보다 덜 컸습니다.
[서산의 젊은이들]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이정훈의 투지를 물려받았을 영건]들에 대한 기대도 있습니다. 1군의 성적이 워낙 나쁘니 2군에 대한 기대는 상대적으로 더 커집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년간의 행보는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이 성적으로 연결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최근 몇년간의 행보를 앞으로도 꾸준히 더 해나갈 수 있도록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남들은 이미 우리보다 더 먼저, 우리보다 더 많이, 우리보다 더 잘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개막이 딱 26시간 남았습니다. 기분 좋은 승리로 출발해 4월부터 신나게 승승장구 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젊은 선수들이 시원시원하게 방망이를 돌리고 묵직한 공을 던지며 팬들의 눈을 정화시켜주면 참 좋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확률]만 놓고 보면 안 그럴 가능성이 아직은 더 높습니다. 중요한 것은, 혹시 그렇게 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팬들의 기대가 모두 전력으로 연결된다면, 긍정적인 가능성이 항상 좋은 결과로만 연결된다면 지금 삼성의 에이스는 조현근이나 최원제일 것입니다. 그들이 팬심대로 성장했으면 삼성이 장원삼을 데려오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윤성환과 차우찬을 키워낸 삼성의 시스템이 정말 대단하지만, 오승환을 내보내고도 우승한 그들의 선수층이 매우 놀랍지만, 그 이면에는 [조원수박차]같은 키워드가 숨어 있습니다. 어쩌면 조원수박차같은 실패를 기본적인 리스크로 깔아 두었기에 지금의 그런 성과가 가능했는지도 모릅니다. 삼성이 조원수박차에 대한 투자 없이 장원삼만 돈으로 데려왔다면, 차우찬만 키우고 매번 외국인 투수 영입에만 돈을 썼다면 4년연속 우승이 가능했을까요?
한화는 승리의 기쁨을 누릴 준비가 아직 덜 됐습니다. (맨날 지라는 얘기가 아니라 삼성 같은 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원래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는 실망스럽습니다. 그리고 젊은 선수들은 대개 성장하지 못하고 그냥 사라집니다. 꽤 많은 선수들이 그렇게 되는 가운데 일부만 살아남아 스타가 되는 겁니다. 그게 이 바닥의 생리고 불편한 진실이죠. 올해의 한화도 그럴겁니다. 뉴페이스 중 일부들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하는 평가를 받을겁니다. 저는 팬들이 그것을 잘 참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화가 야구를 잘하려면 아직도 멀었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좋은글 잘보았습니다..마지막 " 왜냐하면, 한화가 야구를 잘하려면 아직도 멀었기 때문입니다." 이말이 참 진하게 남네요,,,
약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면, 모기업도 조급해하지 말고 근래와 같은 모습의 꾸준한 관심과 투자로 구단을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여줄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적에 대한 조급함으로 제풀이 지쳐 나가 떨어지지 않았으면...왜냐하면? 한화가 야구를 잘할려면 아직도 멀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우리는 기다릴 줄 아는 팬 아닙니까??? 이 암흑에서도 변치않고, 한줄기 빛만 기다리며..
좋은글 잘 보았읍니다
아직 멀은 그 기간이 언제 끝나는 걸까요? 안끝날수도 있고 머나먼 훗날이라면 그 동안의 고통을 어떻게 감내해야하나요? 슬픈 현실이네요
공감이 많이 가는 글입니다. 흔히 말하는 '야잘잘'이니 하는 말도 그만큼 내구성 좋은 1급 선수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돌려서 말하는 것 같습니다. 레전드급 선수들이 왠만하면 자기 자식들은 운동 안시키겠다고 하는 이유도 그렇구요. 신진들이 많이 배우고 클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저는 유망주들이 클 수 있는 확률이 점점 줄어드는 또하나의 이유로 선수생활의 수명연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의 스포츠 의료시설은 나날이 발전하고 선수들의 몸관리는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하면서 40넘어서도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되니까요
그런의미에서 넥센,두산은 정말 대단하군요..
왜 이글을 읽으면서 유창식 선수가 생각나는걸까요? ㅋ
지금까지 잘 참아왔는데... 그래도 요즘 한화의 행보는 긍정적입니다~~
우리는 가다릴줄 알아야 합니다 올해보다는 내년에 더 좋은 성적 내겠지요 ~~~
좋은 말씀 잘 보았습니다.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 이글스가 1년 안에 대박을 칠 기대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팬들에게 정말 성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