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 오직드릴것은 사랑 뿐이니
all I can give you is love
■ 마야 엔절로의 삶
마야 앤절로(Maya Angelou, 1928년 4월 4일 ~ 2014년 5월 28일)는 미국의 시인, 작가, 배우다.
그녀는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남부 아칸
소 주의 할머니 집에 맡겨졌고, 어머니와 재회
한 7세 무렵 어머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5년 간 실어증을 앓으며 마을 도서관에
서 시와 소설을 읽었고,
그녀는 16세에 미혼모가 돼 트럭운전, 자동차 정비, 매춘을 한 적도 있었다.
그녀의 결혼생활도 대체로 불운했다.
그녀에겐 다행히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유년
의 그녀에게 문학을 알게 한 아칸소 스탬스의 이웃집 교사, 30대 초반 뉴욕 시절 만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엑스,
한 때 연인이었던 남아공 인권 운동가 부숨지 마케 등.
그녀는 그들과 더불어 일하며 자기 삶을 객관
화할 수 있었고, 인권운동의 넓은 지평 위에 자신을 세울 수 있었다.
그녀는 각종 매체 편집자로서, 프리랜서 기자
로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1969년의 기념비적 자서전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가 그렇게 탄생했다.
■ 오직드릴것은 사랑 뿐이니
마야 엔절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취임식때 축시를 낭송할 정도로 미국내 명망있는 시인
이었다.
필자는 그녀의 명시인 '오직드릴것은 사랑 뿐
이니'가 너무 가슴에 와닿아 다음과같이 한영
으로 준비하였다.
필자는 본시에 대한 영어 원문은 찾을 수 없어 부득히 영역을 하였는바 영문이 다소 시적 감
각이 떨어지더라도 독자의 혜량을 기대한다.
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Flowers bloom, but there's no sound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Birds cry, but there's no tear
사랑은 불타도 연기가 없더라
Love is on fire , but there is no smoke
장미가 좋아서 꺾었더니 가시가 있고
I broke it as I liked roses but there were
thorns on it
친구가 좋아서 사귀었더니 이별이 있고
I made friends as I liked them, but there was a break up
세상이 좋아서 태어났더니 죽음이 있더라
I was born as the world was good
but there was death
나! 시인이라면 그대에게 한 편의 시를 드리
겠지만
Me! if I am a poet, I'll give you a poem
나! 목동이라면 그대에게 한 잔의 우유를 드리
겠지만
Me! If I'm a shepherd, I'll give you a glass of milk
나!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이기에 오직 드릴 것은 사랑 뿐이리
Me! I am a poor lady who has nothing, so all I can give you is love
■ 나의 소감
불우한 환경과 엄청난 삶의 시련을 극복하여
미국의 명망있는 시인, 작가 및 배우로 성장한
마야 엔젤루를 추앙한다.
고온에 열처리한 쇠가 단단하듯이 우리 인간
도 시련이 많을수록 강한 생존력을 갖는다.
모든 꽃들중에서도 인동초 향기가 가장 짙은
것도 인동초는 혹한을 극복하기 때문이다.
나는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詩)와 맥아더 장군의 '자식에대한 기도'외 다른 시(詩)들은 기억에 없다.
그런데 '오직드릴것은 사랑뿐이니'라는 시(詩)
는 너무 감동스러워 본 시(詩)를 영문으로 준
비한것은 난생처음이다.
상기 시(詩)는 결코 순탄지 않은 우리들 삶의
역경을 극복하는것은 오직 사랑이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예수ㆍ석가모니외 테레사 수녀등이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이들의 추앙을 받는것은 조건
없이 모두를 아우르는 아카폐적 사랑이라고
본다.
사랑에 대한 나의 소견은 '나를 희생하여 너를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영원히 다시 오지않을 2023년 11월을
보내면서 상기 시(詩)를 영역하여 게재한것
은 나의삶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한국문화안보연구원. 김명수(육사31)박사
2023년 11월 30일
PS : 오직드릴것은 사랑 뿐이니라는 시(詩)를
선물한 육사동기 장광일 장군에게 깊은 감사
를 드린다.